진정한 소통의 기술
진정한 소통의 기술
  • 미래한국
  • 승인 2013.11.12 09: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경귀의 고전 읽기: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Ⅰ>
 

요즘 ‘수사학(rhetoric)’, 즉 ‘레토릭’은 교언영색(巧言令色)의 ‘교언’에 해당하는 진실성 없는 ‘꾸미는 교묘한 말’과 ‘허언(虛言)’ 정도의 부정적인 이미지로 쓰이기도 한다. 정치인들이야말로 이런 ‘레토릭’의 대가다. 하지만 진정한 수사학은 이런 가벼움과는 거리가 멀다. 수사학은 단순한 변론술, 웅변술과도 그 내용과 깊이가 다르다. ‘말 잘하기’가 수사학의 본질이 아니란 뜻이다.

수사학을 최초로 체계화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인간과 인간이 소통하기 위해 숙지하고, 체득해야 할 지혜와 기술이 얼마나 깊고 어려운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수사학은 “설득하기에 적당한 것을 사변적으로 발견하는 능력”이자 일종의 ‘테크네(techne)’이다. 쟁점 주제에 대해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주제의 본질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알기 쉽고 적확하게 표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이에 관계되는 주제와 예증들을 인식하고 표현하는 진정한 역량은 단순한 경험을 넘어 말하는 이(話者)와 듣는 이(聽者)의 인식과 감성, 이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요구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설득의 수단으로 에토스(Ethos), 파토스(Pathos), 로고스(Logos)를 들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Ⅰ’에서 과거의 수사학자들이 단순히 ‘담화의 기술들’을 편집한데 불과했으며 소송에서 이기기 위한 기술적 규칙들에 치중했다는 점을 비판한다.

그는 기존에 인식된 ‘사법적 장르’ 이외에 ‘토론적 장르’와 ‘제시적 장르’라는 수사학의 핵심적 기능을 추가했다. 나아가 각 장르별 담론을 전개하는 데 필요한 주제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해설하고 담론의 전개 방식과 기술적 요소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수사학의 영역을 소피스트들의 기술적, 사법적 관심에서 벗어나 인간 사회에서 소통과 설득을 필요로 하는 영역으로 관심을 확장하도록 이끌고 있다. 그는 토론적 장르에서 자주 사람들의 토론의 주제가 되는 소득, 전쟁과 평화, 영토의 수호, 수입과 수출, 입법 등에 관해 각 주제의 인식을 이끄는 정의를 보여준다. 수사 이전에 이런 주제에 대한 철학적 관념의 정립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제시적 장르에서는 사람들의 칭송이나 비난을 받는 주제들, 즉 선과 악, 아름다움과 추함, 미덕들에 대한 그의 정의를 들려준다. 토론적 장르, 사법적 장르, 제시적 장르의 구분에 관계없이 공통적으로 요구되는 수사학적 역량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통찰이 중요하다. 담론의 주제가 되는 증거들, 예증의 개념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요구되는 것이다.

토론의 주제에 대한 개념 파악이 안 된 주장으로는 남을 설득할 수 없을 터.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한마디로 인간의 본성과 사회 현상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정치학, 윤리학, 철학의 메시지와 일정 부분 중첩되기도 한다.

그의 수사학은 소피스트들이 가르치던 경험주의적이고, 관례적이며, 눈속임적인 기교에 바탕을 둔 궤변(詭辯, sophism)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인간에 대한 근본적 이해와 사회 현상의 본질의 파악을 바탕으로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수사를 전개하도록 인도한다는 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의 진정한 창시자라 불려 마땅하다.

수사학은 논리학, 문법(현대적 의미의 문법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문학, 철학의 텍스트를 토대로 한 광범위한 인문학 교육)과 함께 중세의 교육체계에서 3대 학문으로 매우 중시됐다.

근대 이후 수사학이 덜 중시됐지만 온·오프라인 소통의 도구가 넘쳐나는 오늘날이야말로 진정한 수사학을 배워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공중 커뮤니케이션(public communication)과 공중 스피치(public speech)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것도 바람직한 현상이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