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성장이 어려워진 이유, 휴먼캐피털이 없다
경제성장이 어려워진 이유, 휴먼캐피털이 없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3.11.14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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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경기가 침체기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오바마노믹스는 막대한 재정지출에도 불구하고 그 효과는 실망스럽다. 미국은 여전히 유동성 출구전략을 확신하지 못한다.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GDP 대비 225%라는 국가부채를 해결할 뾰족한 방법이 없어 고심중이다. 전쟁범죄자들이 누워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아무리 절하고 ‘니혼 반자이’(일본 만세)를 외쳐봐야, 소비세를 인상하고 복지체제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아베의 정책에 일본 국민들 반응은 냉담하다.

유럽은 재정파탄 위기에서 한숨을 돌린 표정이지만 여전히 활력은 미미하다. 그나마 제로 성장을 면했다는 점에 안도하는 모습이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의심받고 있다.

동남아 국가들의 반짝 성장은 외국투자자금의 썰물로 다시 가라앉고 있다. 브라질을 비롯 브릭스 국가들 역시 예전 같지 않다. 선진국이고 중진국이고 모두 깊은 불경기의 늪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흥미로운 가설이 있다.

2011년 <거대한 침체(The Great Stagnation)>라는 제목의 책에서 이른바 ‘낮은 나뭇가지 열매’이론을 제시했던 미국의 경제학자 타일러 코웬 교수(49)의 주장이 그것이다. 단 한권의 책, 그것도 너무 내용이 짧아 종이책이 아닌 전자북으로 발행했다는 코웬의 책은 전세계 경제학자들을 뜨거운 논쟁에 빠지게 했다.

브레이크 걸린 성장, 이유는?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와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많은 언론 매체들이 앞다퉈 소개한 ‘거대한 침체’에서 코웬 교수는 미국 경제가 위기로 내몰린 것은 소득불평등 아닌 ‘성장 한계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따라가 보자.

‘거대한 침체’는 지난 300여 년 동안 경제성장을 이끌어온 이른바 ‘낮게 달린 과실’에 대한 이야기다. 여기서 낮은 나뭇가지에 달린 과실이란 쉽게 그리고 빨리 이용할 수 있는 자원을 뜻한다.

미국은 17세기 이후 비옥하고 광활한 무상 토지, 기술 혁신, 높은 수준의 노동력 덕에 엄청난 고속 성장을 이뤘다는 게 코웬 교수의 논리다. 그러나 1970년대부터 성장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낮게 달린 과실을 다 따먹었기 때문이다.

이제 ‘경제적 富’는 여간해서는 손에 닿지 않는 높은 나뭇가지들에 열려 있다.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키가 크거나 장대를 가진 이들만이 그 열매를 따먹는다. 그 결과 소득의 불평등은 심화되고 경제성장은 매우 더디다.

언뜻 비현실적인 이솝 우화 같은 이야기지만 이 주장이 만만치 않은 것은 저자 코웬 교수의 면모 때문이다.

15세 때 ‘뉴저지 오픈 체스 챔피언’ 대회에서 우승한 수재, 당시로서는 최연소 기록이다. 전문가들은 지금도 그가 ‘미국의 100대 체스 선수’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코웬은 1987년 하버드대에서 경제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하버드 재학 당시 2005년 노벨경제학 수상자인 게임이론가 토머스 셸링 교수 밑에서 배웠다.

2011년 이코노미스트가 ‘2000년대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선정했고 같은 해 포린폴리시는 코웬을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선정했다. 코웬 교수는 지난 10월 16일 한국에서 열린 세계지식포럼에서 삼성전자의 위기를 경고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인도, 인도네시아, 중국의 성장 비결은 값싼 노동력에 기반한 제조업 수출 성장”이라며 “하지만 이런 공급 체계는 곧 해체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3차원(3D) 프린터, 로봇 등의 발달로 제조업 생산비용이 낮아져 제품 가격이 거의 공짜나 다름없게 되는 ‘제조업 구글화’가 이뤄진다면 신흥국 경제구조가 흔들릴 것이라는 경고다. 코웬은 “사실 가장 취약한 국가는 한국”이라며 “삼성 휴대폰을 분해해 보면 95%가 해외의 값싼 노동력에 의존해 생산되고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코웬의 이러한 지적은 낮은 나뭇가지에 열리는 열매는 모두가 쉽게 딸 수 있기에 성장의 비결은 더 높은 기술과 지식기반의 산업 경로를 택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인적자본에 대한 올바른 접근

코웬 교수는 2008년 금융위기와 관련해 “스스로 실제보다 부자라고 착각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코웬은 시장경제론자들의 주장대로 소득불평등에 따른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정치권에서 가계대출을 완화한데다 신용평가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한마디로 빚잔치 과정에서 경제의 기본이 무너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문제의 회복에 있어 코웬 교수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 다시 말해 규제, 구제금융, 감세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지적했다. 이미 현재 기술로 더 이상 부를 창출할 수 없는 높은 가지의 열매를 따기에는 근본적으로 기술혁명, 지식혁명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코웬의 지적은 다시 시장의 문제로 돌아온다. 기술과 지식혁명을 하려면 규제가 제거되고 기술과 지식기반 기업에 대한 감세가 이뤄지는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그렇다.

결국 코웬의 ‘높은 가지 열매’는 시장이라는 사다리가 유일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다만 그 시장은 이제까지 우리가 이해해 온 전통적인 ‘부의 창출’이라는 요소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조건을 단다. 그 조건은 ‘노동’이 더 이상 노동이 아니라는 것이다. 무슨 이야기일까.

최근 오스트리아 경제학파의 이론을 경제학원론으로 정리한 배진영 인제대 교수(경제학)는 고전학파 경제이론에서 주장하는 부의 원천으로서의 토지, 노동, 자본의 개념에서 ‘노동’을 ‘자본’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배진영 교수의 설명에 의하면 생산에 투여되는 모든 재화가 바로 자본재다. 그런 점에서 인간의 노동도 일종의 자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결국 경제사회에서 재화란 소비자입장의 소비재와 생산자입장의 자본재 두 가지로만 구분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기업이 노동자에게 부여하는 훈련과 교육은 무엇이라 해야 할까. 이 점에서 배진영 교수는 ‘노동이 곧 자본’이라는 설명이다.

이러한 오스트리아 경제학의 설명을 수용할 수 있다면 이제 우리는 ‘인적자본’에 대한 올바른 접근을 기할 수 있다. 즉 이제까지 노동 對 자본이라는 구도는 의미가 없다는 이야기다. 노동자가 곧 자본이라는 이 오스트리아 학파의 주장은 우리가 어떻게 높은 가지의 성장 열매를 딸 수 있는지 방향을 알려준다.

지식과 교육과 기술에 투자해야 하며 교육혁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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