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팀 승리가 흥행에 미치는 영향 연구하겠다”
“홈팀 승리가 흥행에 미치는 영향 연구하겠다”
  • 김주년 기자
  • 승인 2013.11.22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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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상일 총재특보
KBO 이상일 총재특보

국내 최고 인기의 프로스포츠를 뽑자면 단연 야구와 축구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대표팀이 금메달을 획득한 이후 국내 프로야구 열기는 점점 더 강해지는 추세다. 특히 한국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가는 명승부가 벌어지면서 스토브리그 및 내년 시즌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본지는 11월 8일 오후에 서울 도곡동에 위치한 한국야구위원회(KBO)를 방문해 이상일 총재 특보를 인터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상일 특보는 야구계에서 31년간 근무했으며 한국 야구계의 산 증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 프로야구 시즌이 끝났는데 근황은 어떠신지요.

제가 2011년 사무총장에서 총재특보로 보직을 옮긴 후 지금은 실질적으로는 박물관 일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1983년 입사해서 2011년 사무총장을 끝으로 올해로 KBO에만 만 31년째 근무하고 있습니다.

- 프로야구 원년 시즌 후에 바로 입사를 하셨군요.

그렇습니다. 제가 1983년 2월에 입사를 했으니까요. 그런데 운명이었는지, 전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 그 역사적인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날 삼성 라이온즈가 초반에 리드를 하다가 MBC 청룡의 이종도 선수가 굿바이 만루홈런을 쳐서 역전승이 나왔는데 초반에 점수차가 나는 걸 보고 관중의 3/4은 나갔습니다.

그래서 그날 굿바이 만루홈런을 직접 보신 분들은 유료 관객 2만5000명 중에서 500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때 그 출발이 지금 프로야구의 청신호였습니다. 그 경기가 그렇게 재미 있게 끝나지 않았다면 프로야구 초창기 인기가 기대에 못 미쳤을지도 모릅니다.

- 저도 기억이 납니다. 만루홈런으로 시작해서 만루홈런으로 끝난 시즌이었죠?

그렇습니다. 개막전에서 이종도 선수가 만루홈런, 올스타전에서는 김용희 선수가 만루홈런, 한국시리즈에서는 OB 김유동 선수의 만루홈런으로 승부가 갈렸습니다. 그때 만루홈런을 허용한 삼성 투수 이선희를 비롯해서 이종도-김유동 선수 모두 최근에 만난 바 있습니다.

야구장 관람으로 끝나지 않는 야구 경제효과

- 저희 미래한국에서는 프로스포츠가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특집 기사를 준비했는데요, 특보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정확하게 계량화시키기는 어려울 겁니다. 다만 이번에 한국시리즈 7차전의 시청률이 13%라고 집계가 됐는데요. 실제로는 그보다 더 높았으리라고 봅니다. 일단 제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7차전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야구를 평소에 잘 안보시는 분들도 금년에는 포스트시즌에서 명승부가 속출하면서 시청률과 관심이 점점 높아진 듯합니다. 특히 지나가다가 잠깐 본 사람까지 포함하면 전 아마도 국민 10명 중 9명은 그 경기를 봤거나 관심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야구는 시청률 외에도 실제로 경제에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칩니다. 토요일 경기가 오후 5시에 시작하는데요, 보통 가족 단위로 점심을 먹고 천천히 출발해서 4시쯤 야구장에 도착을 합니다. 그런데 야구장에 와서 야구만 보지는 않잖아요? 치킨도 먹고 기념품도 사고 다양한 소비를 합니다.

또 야구경기가 끝나면 8시반에서 9시쯤 되는데 근처에서 저녁을 먹고 나서 집에 갈 확률이 높죠. 실제로 롯데 자이언츠의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부산에서 닭이 1만마리가 소비된다고 합니다.

- 특보님은 돔구장 건설 방안과 관련해서 석사논문도 쓰신 적이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프로야구 관중 증가 마케팅과 관련해서도 뭔가 연구를 해보실 계획이 있으실 것 같은데요.

실제로 있습니다. (웃음) 요즘 제가 구상하고 있는 연구는 정규시즌 3연전의 승패와 관중 숫자의 상관관계입니다. 일반적으로 홈팀이 원정팀을 상대로 2승 1패 정도의 좋은 성적을 거둬야 관중들이 많이 온다는 건 상식인데요, 그 2승 1패의 순서에 대해서 연구를 해보려고 합니다.

즉 첫 경기를 먼저 이기고 나서 두 번째 경기를 지고 마지막 경기를 잡는 게 좋을지, 아니면 1,2차전을 이겨 놓아야 3차전에 관중이 많이 올지, 또는 1차전을 지고 2,3차전에서 연승을 거두는 게 좋을지에 대해 다양한 의견들이 있는 걸로 압니다. 이걸 깊이 연구해서 계량화를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 프로야구가 국내 최고의 인기 스포츠가 된 비결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요.

지역연고제의 정착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1982년 프로 출범 이후 각 지역별로 구단들이 생겼습니다. 이걸 비난하는 사람들은 야구가 지역감정을 부추겼다고 하지만 사실 이건 지역감정이 아니라 향토애입니다. 누구나 자기 고장과 출신학교를 사랑하는 건 당연하죠.

또 하나 중요한 부분은 야구가 국내에 도입되면서부터 한국인들과는 묘한 인연이 있었다는 겁니다. 우리나라에 야구가 들어온 게 1905년인데 냉철하게 분석하는 걸 즐기는 우리 국민들의 성격이나 취향에 부합하는 운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 일제강점기 당시 한일전을 하면 국민들이 애국운동이라 생각하고 특히 몰입을 많이 했다는 기록들이 많이 있습니다.

야구와 한국 독립운동과의 미묘한 인연

- 역사적 배경마저도 야구는 한국인들과 인연이 깊었군요.

그렇습니다. 국내에 야구를 처음 도입했던 분이 YMCA 소속의 질레트 선교사였는데요, 그분이 선교 목적으로 야구를 보급하신 겁니다. 제가 지금도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만약 질레트 선교사가 친일파였다면 어땠을까요? 저 같은 야구 종사자들로서는 대단히 난감했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 그분은 한국의 독립운동을 도우려고 하신 분입니다. 테라우치 총독 암살 직후 영국에 보고하는 과정에서 질레트가 일본 측을 비난하는 내용의 보고를 했고 그게 발각되면서 중국으로 추방을 당하시기까지 했죠.

- 그건 전혀 몰랐던 내용인데요. 야구팬들로서는 자긍심을 가질 만하겠는데요?

당연합니다. 그래서 제가 2005년 우리 직원한테 “금년이 야구가 한국에 도입된 지 100주년째인데, 기념할 만한 이벤트로 질레트 선교사의 후손을 찾아보자”고 제안을 했습니다. 어려운 일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직원이 끝내 그분의 손자를 실제로 섭외해서 한국에 초청을 하더군요.

나중에 알게 된 일인데 그분의 할아버지인 질레트가 우리 독립운동과도 연관이 있어서 이승만 대통령이 추후에 그 따님을 초청을 시도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분이 그걸 증명하는 관련 서신도 가지고 오셨습니다. 전 한국에 야구를 보급한 분이 독립운동에 도움을 주셨다는 게 몹시 자랑스럽습니다.

- 뜨거운 프로야구 열기에 힘입어서 제10구단 창단도 확정됐는데요,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KT의 1군 진입 시기를 2014년으로 1년 앞당기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목소리들이 나옵니다.

제가 아는 바로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지금 KT의 홈구장인 수원구장이 개보수중이고, 내년 중반이나 돼야 마무리가 됩니다. 당초 계획대로 2015년부터 1군에 진입할 것 같습니다.

지금도 못 잊을 2003년 아시아예선

- 스포츠 선수들에 대한 병역혜택 제도가 대폭 축소될 방침인데요, 프로야구 선수들에겐 큰 타격일 듯합니다. 야구인들을 중심으로 대책이 있으신지요.

야구만의 문제는 아니고, 우리 스포츠 전체에 관한 문제일 겁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한번만으로 혜택을 주는 건 지나치다는 게 정부의 방침인데요, 스포츠계 전체 차원에서 대응할 문제입니다. 제 개인적 생각으로는 이걸 추진하는 분들이 스포츠를 잘 이해 못하는 것 같습니다. 선수들이 금메달을 그냥 따는 게 아닙니다.

요즘엔 어떤 종목이든 대표선수가 되려면 아주 어려서부터 운동을 시작해서 적어도 10년 이상 피나는 노력을 해야 가능합니다. 그런 노력과 희생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구요, 심사숙고를 해서 스포츠인 전체의 사기를 꺾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리리라고 생각합니다.

- 30년 넘게 야구계에 종사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아 주신다면?

우선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과 2009년 WBC 준우승은 저 뿐만이 아니라 야구계에 종사하시는 모든 분들이 영원히 잊지 못할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가장 괴로웠던 순간이 기억에 남아 있는데요, 지금부터 정확하게 10년 전에 있었던 2003년 11월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입니다. 그때 첫 경기에서 대만에게 역전패를 했는데요, 그날을 생각하면 지금도 쓴웃음이 납니다.

사실 대만전은 우리가 무조건 이길 거라고 생각하고 한국 기자들이 꽤 많이 현지에 갔습니다. 삿포로에서 유명한 세가지가 맥주와 게요리와 라멘인데요, 당시 제가 사무차장이었고 큰 식당을 빌려서 기자들과의 회식자리를 미리 준비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길 거라고 생각한 경기에서 져버린 겁니다.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저는 그 먹고 싶었던 삿포로 게를 단 한점도 먹지 않았습니다. 너무 속이 상해서 계속 맥주만 마셨죠. 그리고 나서 다다음날 한일전에서 3-0으로 지니까 올림픽 본선 탈락이 확정됐습니다. 더 속이 상해서 술을 약간 마시고는 제가 묵던 호텔로 오니까 마침 대만 선수들이 묵고 있더군요.

자신들이 올림픽 본선 진출이 확정됐다고 축하파티를 열고 있는데, 그걸 보니까 속이 더 뒤집어졌습니다. 10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뼈에 사무칠 정도로 힘들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인터뷰 /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사진 / 신경수 기자 icf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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