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사’에서 울려퍼진 운동가요
‘응사’에서 울려퍼진 운동가요
  • 미래한국
  • 승인 2013.11.29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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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욱의 미디어워치: <응답하라 1994>
 

케이블 채널 tvN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방송한 시즌1 격인 <응답하라 1997>보다 조금 더 시청자층이 넓어지고 중독성이 강해졌다는 반응이다. 알다시피 ‘응칠’(이 드라마 시리즈를 이렇게 줄여 부른다)이 HOT 팬이었던 고교생들의 이야기라면, ‘응사’는 연령대가 높아졌다. 94학번 대학생인 나정(고아라)이 주인공이고, 연세대와 인근의 ‘신촌하숙’이 주 무대다.

전편의 흥행 코드도 강화됐다. 이상민, 문경은 등 과거 농구대잔치 시절의 연세대 농구스타들과 서태지와 아이들의 90년대 초반 인기곡이 기본 양념으로 향수를 자극하고, 디테일한 90년대 대학가 문화는 좀 더 강한 맛을 준다.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가 어우러진 하숙집 풍경이 그렇고, 가슴 설레는 첫 MT가 그렇다. 물론 드라마의 중심축은 대학생들의 풋풋한 로맨스 라인이다.

하지만 지금의 응사가 복고라는 코드와 나정의 남편 찾기라는 독특한 강점이 있지만 사실 과거 캠퍼스 드라마도 이에 못지않은 사랑을 받았다. 최재성, 최수지, 장동건 등 청춘 스타들을 배출했던 KBS TV <사랑이 꽃피는 나무>(1987)나 MBC TV <우리들의 천국>(1990, 1992)이 대표적이다.

재밌는 점은 이 캠퍼스 드라마들은 당시 지금만큼의 언론 지지를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심지어 또래인 대학생들조차 시청자라고 드러내지 못할 분위기도 있었다. 많은 대학생들이 민주화를 위해 투쟁하고 있는데 한가롭게 ‘연애질’이나 하냐는 비판이었다. 과거의 비판을 의식해서일까.

지난 11월 16일 방송한 응사의 10화에서 민중가요 그룹 꽃다지가 부른 ‘바위처럼’이 등장했다. 학생회 주관 신입생 오리엔테이션부터 시작해서 수백 번은 들어봤을 법한, 웬만한 90년대 학번에게는 익숙한 운동가요다. 이 노래를 삼천포시 주민들이 항의 집회를 하는 현장에서 대학생인 나정과 삼천포(김성균)가 능숙한 율동과 함께 선보인 것이다.

그런데 이 장면이 90년대 학번 소위 397세대에게 묘한 향수를 자극했다. 이들은 선배들인 386세대처럼 ‘혁명가’ 기질은 다소 약했을지라도 나름 그들로부터 ‘의식화 교육’은 오히려 더 체계적으로 받은 세대들이다. 활발하진 않더라도 가끔 시위에 참여하면서 심정적으로나마 지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들은 1997년 IMF의 직격탄 속에서도 생업 전선에 들어가 생활인으로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의 운동가 정신은 가끔씩 열정적으로 소환된다. 선거철뿐만이 아니다. 실제로 드라마 응사에 나오는 ‘바위처럼’을 보고 울컥했다는 게 397세대다. 심지어 ‘마침내 올 해방 세상 주춧돌이 될 바위처럼 살자꾸나’의 가사를 되새기며 돈벌이 급급한 자신을 반성하는 게 우리 주변 평범한 30대 후반, 40대 초반이다.

문제는 이들이 쓸데없는 ‘부채의식’에 시달린다는 점이다. 과거 운동권 친구들에게 가졌던 그 미안함 그대로다. 아직도 이들에겐 당시 운동권의 가치가 善이기 때문이다.

드라마 응사가 주는 추억과 향수는 흥행을 이끄는 코드의 하나다. 그냥 즐기면 된다. 다만 현실 정치의 기득권이 된 386 출신들이 아직도 민주화 운동으로 ‘추억 장사’를 하는 데에는 더 이상 397세대가 ‘소환’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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