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티스버그 연설 150주년
게티스버그 연설 150주년
  • 미래한국
  • 승인 2013.12.03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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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남신우 북한인권연대 미주대표

11월 19일은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게티스버그 戰場 병사들의 묘지에서 저 유명한 게티스버그 연설문을 봉독한 지 150주년 되는 기념일이었다. 링컨 웹사이트에 있는 게티스버그 연설문에 관한 기록을 통해 그 의미를 돌아본다.

1865년 4월 9일 4년간에 걸친 골육상쟁, 피바다의 美남북전쟁은 링컨과 연방군의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 6일이 지난 4월 15일 링컨은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다가 존 윌크스 부스란 연극배우에게 암살 당했다.

6월 1일 링컨 생전 링컨과 가깝기도 하고 멀기도 했던 연방의회의 찰스 섬너 상원의원은 보스턴시에서 링컨 대통령을 기리는 조사에서 링컨의 가장 유명한 연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게티스버그 연설을 “기념비的 행사”였다고 정의하면서, 링컨이 그 연설에서 “세상은 우리가 여기에서 하는 말을 별로 주목하지도 않을 것이고 오래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링컨이 잘못 내다본 것이라고 말했다.

섬너 상원의원은 “세상은 그가 한 말을 그 즉시 주목했고 앞으로도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게티스버그 전투 그 자체조차 링컨의 연설만큼 중요하지는 않았다”고 단언했다.

링컨이 직접 쓴 게티스버그 연설문의 친필 원본은 5개가 남아 있는데 그 원본마다 링컨이 그 연설문을 전해줬던 사람들의 이름을 붙였다.

니콜라이, 헤이, 에버레트, 밴크로프트, 블리스. 이 중 2개는 링컨이 게티스버그에서 연설하기 전에 썼던 원고이고 나머지 3개는 연설을 하고 여러 달이 지난 후 병사들을 위한 기금 모집행사에 기증했던 것들이다. 그후 모르는 사람들은 링컨이 이 연설문을 게티스버그로 가는 기차 안에서 급히 준비했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는 이 중요한 연설문을 미리 적어놓았다.

게티즈버그 연설

지금부터 87년 전 우리 國父들께서는 자유에서 착상됐고 만민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대전제에 입각한 새로운 나라를 이 대륙에 건립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그 나라가 아니 그러한 착상과 대전제에 입각해서 건립된 어떤 나라든 과연 영구히 존속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크나큰 내전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전쟁의 대격전지에 모였습니다. 우리는 이 격전지의 일부를 그러한 나라가 존속하도록 생명을 바친 분들의 마지막 휴식처로 봉헌하고자 이곳에 모였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하는 것은 전적으로 합당하고 적절한 일입니다.

그러나 보다 더 큰 뜻에서 생각해보면 우리는 이 땅을 봉헌할 수도 없고 신성화할 수도 없으며 淨化할 수도 없습니다. 이 땅은 이곳에서 싸우다 전사하신 분들이나 살아남으신 모든 용감한 분들이 우리 부족한 힘으로 무엇을 더하거나 뺄 수 있는 능력과는 상관없이 이미 신성하게 만들어 놓으신 성역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여기에서 하는 말을 별로 주목하지도 않을 것이고 오래 기억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이제까지 저 분들이 그토록 숭고하게 수행해온 이 미완의 성업에 오히려 우리 살아 있는 사람들이 온 몸을 바치기로 맹세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모두가 우리 앞에 남겨진 이 크나큰 일에 온 몸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이곳에서 영예롭게 전사하신 이 분들로부터, 우리는 이 분들이 헌신하신 그 대의에, 보다 더 큰 헌신을 맹세해야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여기서 돌아가신 이 분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리고 하나님이 보우하시는 이 나라가 새로운 자유 안에서 다시 태어나고 또한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존속되도록.

에이브러햄 링컨
1863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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