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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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3.12.05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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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규모 5년 사이 2배 성장
 

지난 11월 15일 서울시 특별사법경찰은 유명 백화점 등에 납품하는 커피 업체 11곳을 적발해 형사입건했다. 기준치의 260배가 넘는 세균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업체들이 만든 커피의 이름은 ‘더치(Dutch) 커피’. 현재 백화점 등에서 500ml 한 병에 3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세균 덩어리 커피’ 소식 보다는 이렇게 비싼 커피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에 더 놀라는 눈치였다. 하지만 이는 빙산의 일각이다.

지금은 전국에 커피전문점이 없는 곳이 없지만 불과 5년 전만 해도 커피전문점은 대부분 프랜차이즈 커피 매장이거나 영세한 전문점이 대부분이었다.

천지개벽한 대한민국 커피시장

당시 국내 커피 시장 규모는 1조7800억 원 규모. 2004년 말 기준 1조6000억 원 규모에서 큰 차이가 없는 수준이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커피 믹스 시장이 약 1조 원대였고 나머지 7800억 원 시장의 대부분도 스타벅스, 커피빈, 파스쿠치, 투썸 플레이스, 엔젤리너스 등 대기업이 운용하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이었다. 하지만 불과 4년 사이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2009년 2조3000억 원, 2010년 2조7000억 원, 2011년 3조6900억 원, 2012년에는 4조1300억 원으로 4년 사이에 시장이 두 배로 커진 것이다. 세계 커피 원두 가격이 상승한 원인도 있지만 시장이 급성장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커피 믹스 시장은 정체상태인 반면 커피전문점 시장이 급격히 성장했다. 커피전문점 가운데도 가장 큰 성장을 한 곳은 ‘동네 커피숍’이 아니라 ‘핸드드립 커피’를 파는 전문 매장들의 성장이었다.

핸드드립 커피란 말 그대로 손으로 걸러내 만드는 커피다. 스타벅스나 커피빈 등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커피전문점에서는 커피 원두를 갈아 압착한 뒤 기계에 넣어 커피 원액을 추출해 물과 섞어서 판매한다.

반면 핸드드립 커피는 잘 볶은 커피 원두를 사람이 직접 갈아 플라스크 위에 놓은 거름 장치에 적정량의 커피 가루를 올린 뒤 뜨거운 물을 부어 천천히 흘러내린 커피를 모은 것이다. 거름 장치로는 보통 커피용 거름종이를 사용하지만 개중에는 융(絨)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더치 커피 메이커

이때 뜨거운 물은 커피 가루 사이를 지나면서 특유의 향과 맛을 자연스럽게 만들어내게 된다. 중력만 이용하기 때문에 지나치게 압착하는 일이 거의 없어 기름기가 뜨거나 맛이 이상해지는 경우가 별로 없다. 이런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의 무기는 고급 커피다.

스타벅스나 커피빈 등 프랜차이즈 커피숍에서 판매하는 아메리카노가 한 잔에 4000~5000원 정도인데 반해 핸드드립 커피 전문점에서 판매하는 아메리카노 스타일의 커피는 품종에 따라 보통 6000원부터 최고 3만 원에 이르는 수준이다.

이 핸드드립 커피의 주 소비층도 2030세대들이 아니라 30대 이상의 중산층들이 주를 이뤘다. 특히 서울 강남과 여의도의 고소득층, 전국 곳곳의 부유층들이 많이 찾았다.

이를 노려서인지 2008년 신라호텔은 세계 최고급 커피 중 하나인 인도네시아 코피 루왁을 소량 수입해 판매하는 이벤트를 하기도 했다. 당시 코피 루왁 한 잔은 세금을 제외하고 4만 원대였다.

커피 시장 폭발 따라 들어온 최고급 커피들

이 같은 커피 시장의 ‘폭발’에 따라 국내에 소개된 커피들 중 하나가 이번에 논란이 된 ‘더치 커피’다. 더치 커피란 사실 귀족들의 커피가 아니라 제국주의 첨병이었던 상선 선원들이 만들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세기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를 경영하던 시절 인도네시아도 식민지 중 하나였다. 이때 네덜란드는 로부스타 커피를 재배했다. 귀족과 부르주아를 위해 커피를 유럽으로 수송하던 동인도회사 소속 선원들은 자신들이 커피를 즐기는 방법으로 찬물로 만드는 드립커피 제조법을 고안해 냈다.

하지만 찬물로는 볶은 커피의 맛을 제대로 배어나오게 하기 어려워 매우 천천히 물이 통과하도록 만들었다. 때문에 더치 커피 한 잔을 얻으려면 최소한 10시간 이상이 소요된다. 대신 쓴 맛이 적고 담백하고 향이 풍부해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를 무척 좋아한다.

재미 있는 것은 최근 이 더치 커피의 유래가 실은 일본에서 만들어진, 일종의 ‘도시전설’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유럽이나 미국, 영국 등에서 더치 커피라고 말하면 마리화나로 알아듣는 경우가 태반이다. 네덜란드에서도 이 커피를 만들어 마셨다는 증거가 없다고 한다. 이 더치 커피는 만드는 방법 때문에 최고급 커피로 불리는 반면, 국내에서 큰 인기를 얻는 진짜 세계 최고급 커피들도 있다.

세계 커피 애호가들이 인정하는 3대 커피도 국내에서 판매 중이다. 바로 자메이카 블루마운틴, 예멘 모카, 하와이안 코나다.

블루마운틴은 자메이카에 있는 산 이름이다. 해발 2256m인 이 산에 있는 커피 재배지는 카리브해 연안임에도 선선하고 안개가 많아 햇볕이 적다고 한다. 여기서 나는 커피는 향이 풍부하고 쓴 맛이 덜하다. 한때는 영국 왕실의 공식 커피로 지정돼 직접 관리를 받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는 자메이카 커피산업위원회가 이 블루마운틴 품종을 직접 인증해 판매한다. 이 커피는 수확량이 한정돼 있어 세계적으로도 가격이 비싼 편이다. 이 때문에 일부 커피 수입업자들은 블루마운틴 커피를 약간 섞은 뒤 블루마운틴 블렌드 등으로 변칙 판매를 하기도 한다.

세계 3대 커피 중 하나인 예멘 모카는 현재 시중에서 통용되는 예멘 모카(모카항에서 선적한 아라비카 커피를 통칭)가 아니라 예멘 모카 마타리를 뜻한다. 모카 마타리는 적당한 신맛에다 흙냄새와 초콜릿 맛이 살짝 더해진 독특한 향을 풍긴다.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가장 즐겨 마셨다는 예멘 모카 마타리는 수도 사나 서쪽에 있는 작은 항구 도시 배니 마타리 지역에서 재배한 커피를 뜻한다. 이 마타리 지역에서 수확한 최고급 커피를 15세기부터 유명한 커피 집산지 및 수출항이었던 모카항에서 판매하면서 ‘모카 마타리’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이다.

배니 마타리 지역은 해발 1300~1800m의 남북으로 길게 뻗은 고원지대로 비도 많아 아라비아 반도에서는 기후가 가장 좋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보통 10월부터 12월 사이에 수확하는 모카 마타리는 지금도 사람이 직접 커피콩을 따서 과육을 맷돌로 갈아 없애는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10%만 섞어도 하와이안 코나?

하와이안 코나는 하와이 제도 중 가장 큰 섬-일명 빅 아일랜드-에서 재배하는 품종이다. 빅 아일랜드에는 해발 4260m의 마우나 케아, 해발 4170m의 마우나 로아라는 산이 있다. 이 산들을 중심으로 서쪽 지역이 바로 코나다.

햇볕이 많지만 한낮에는 구름이 직사광선을 막아주고 비옥한 화산토양이 대부분인 코나 지역에서 커피를 재배하기 시작한 건 19세기 초부터. 설탕 재배업자였던 존 윌킨슨이 브라질에서 커피 종자를 들여와 재배하면서부터 나온 커피다.

하와이안 코나는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수확한다. 사람이 일일이 커피 열매를 수확해 물로 과육을 벗겨낸 다음 강렬한 햇볕에서 말린다. 하와이안 콘나 커피는 커피 특유의 단맛과 쓴맛, 신맛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면서 향이 풍부하고 실제 마시면 그 맛이 부드러워 인기가 높다.

최근에는 이 커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코나 커피를 10%만 섞어도 하와이안 코나라고 불리게 됐다. 제대로 된 하와이안 코나를 마시고 싶다면 하와이 주정부가 인증한 제품을 구해야 한다.

이 3가지 커피가 전통적인 최고의 커피라면 최근 들어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품종들도 있다. 파나마 에스메랄다 지역에서 나오는 게이샤 커피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지역이 원산지인 코피 루왁, 그리고 태국과 미얀마 접경지역에서 만들어내는 블랙 아이보리다.

게이샤 커피는 일본의 게이샤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이 커피의 본산지인 에티오피아 카파 지역에 있는 숲의 이름이다. 여기서 나온 커피 품종을 자메이카 에스메랄다 지역에서 재배한 것이 게이샤 커피다.

게이샤 커피가 자메이카로 흘러들어간 때는 1953년. 하지만 국제무대에 처음 등장한 것은 2004년 파나마 커피 경진대회에 출품하면서부터다.

게이샤 커피는 특이하게도 커피에서 과일향과 꽃향기가 난다. 맛은 귤과 같은 신맛이 살짝 난다. 이런 독특한 점 때문에 커피 애호가들은 이 커피에 열광했다고 한다. 이후 이 커피는 세계 곳곳에서 블루 마운틴 이상의 가격에 팔리고 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인근 지역에서 처음 생산하기 시작한 코피 루왁은 ‘루왁 사향고양이 커피’라는 뜻이다.

시벳이라고도 하는 인도네시아 사향고양이가 로부스타 또는 아라비카 커피 열매를 먹은 뒤 과육은 모두 소화하고 원두만 배설한 것을 다시 깨끗이 씻고 가공해 만든 커피다. 사향고양이의 소화기관 속에서 ‘숙성’된 탓에 독특한 향과 맛을 낸다. 쓴 맛이 덜하고 커피향을 입 안 가득히 느낄 수 있다.

이 코피 루왁은 국내는 물론 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지만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때문에 인도네시아 현지에서는 사향고양이를 대규모로 사육하며 이 커피를 만들어 내는 공장이 등장해 동물 애호가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코피 루왁은 사향고양이의 똥이지만 이보다 더 비싼 커피는 코끼리 똥이다. 태국과 미얀마 접경지역에서 생산하는 블랙 아이보리가 그것으로, 블랙 아이보리 농장에서는 코끼리에게 바나나, 쌀밥, 쌀겨, 커피를 섞은 사료를 먹인다. 이후 코끼리 배설물을 물로 씻어 사람 손으로 일일이 커피콩을 골라낸 뒤 음지에서 두 달 가량 말려 가공한다.

블랙 아이보리는 맛이 매우 부드럽고 커피 특유의 맛과 향에 체리향, 초콜릿향도 살짝 배어나온다고 한다. 한해 생산량이 수백 킬로그램 수준이어서 해외 수출은 하지 않고 전량 태국 내에서만 소비된다고 한다. 현지 가격은 6잔 분량의 원두 1봉지에 약 4만 원으로 세계 최고가다.

국내 고급 커피 시장의 팽창 원인을 분석한 마케팅 자료들은 다양하다. 이들이 주장하는 시장 성장 원인 또한 제각각이다. 하지만 고급 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보는 원인은 하나, 바로 ‘유행’이다.

블루마운틴 커피

최고급 커피, 와인, 막걸리 이은 유행

2000년 초반 금융권과 벤처기업 CEO들 사이에서 와인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낯설어 하던 사람들은 물론 와인으로 ‘사치’가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된 ‘졸부들’까지 합세해 와인 시장은 나날이 커갔다.

2006년 이후에는 전 국민이 와인에 빠졌다. 매년 수확하는 포도로 만드는 보졸레 누보는 한때 와인의 대명사처럼 불리기도 했다. 와인은 그 자체로는 물론 심지어 삼겹살에까지 등장했다. 한 병에 100만 원을 훌쩍 넘기는 ‘샤토 무통 로쉴트’ 같은 고급 와인들이 강남의 와인바에서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2007년 무렵에는 웰빙 열풍이 불면서 유행의 축이 와인에서 쌀 막걸리로 옮겨붙기 시작했다. 이후 막걸리는 반주는 물론 회식자리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다. 그러던 것이 이제는 커피로 옮겨간 것이라는 게 커피 애호가들의 주장이다.

한 잔에 2만~3만 원을 훌쩍 넘기는 커피가 불티나게 팔리는 데 대해 커피 판매업자는 즐겁게 보고 있지만 커피 애호가들 눈에는 그리 탐탁지 않은 듯하다.

커피 맛도 제대로 구별하지 못하면서 이름만 듣고 ‘비싼 커피 순례’나 다니는 부류들이 크게 늘고 이들이 커피 시장을 주도하면서 더치 커피와 짝퉁 최고급 커피가 시중에 넘쳐나게 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보통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이상이 되면 커피 시장이 급성장하다 성숙한다는 해외 마케팅 업체들의 설명이 있다. 그들 말 대로라면 지금의 커피 광풍 또한 시간이 흐르면 서서히 사그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경웅 객원기자 enoch20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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