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획] 독일 민주시민교육 현장
[특별기획] 독일 민주시민교육 현장
  • 미래한국
  • 승인 2013.12.12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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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방정치교육센터 마코 미켈 박사
“통일 후 국민통합 노력은 성공적”

1952년에 설립된 연방정치교육센터는 연방 차원에서 국민들을 대상으로 정치 교육을 하는 기관이다. 서독 국민을 대상으로 민주주의 교육을 해오다 통일 후에는 구 동독 지역 주민들을 상대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에 대한 교육을 실시했다.

연방정치교육센터는 연방 내무부를 통해 예산을 지원 받지만 독립적으로 예산을 집행하고 있다. 사실상 정부기관으로부터 정치적인 독립이 가능한 상황이다.

- 연방차원에서 민주시민 교육을 했다는 게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통일 후에는 활동에 큰 변화가 있었을텐데 동독 지역 주민들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잘 받아들였나요?

통일 후 저희 센터의 역할은 변화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했습니다. 민주주의를 교육하는 것은 그대로였으나 새롭게 구 동독 지역에 생긴 연방주 국민들을 대상으로 하게 된 것은 큰 변화였죠.

저도 초기부터 참여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동독 지역 국민들에게 통일은 삶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실업률이 높아지고 모든 정치사회경제 체제가 변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이 잘 적응하도록 하는 역할이 필요했습니다.

센터 차원에서 민주주의 교육을 실시했으나 동독 지역 출신 시민들의 반응은 회의적인 부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어쨌다는 것이냐?’ ‘우리가 왜 서독 시스템인 민주주의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등의 비판적인 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민주주의는 서독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민주주의를 실시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 통일 후 시민교육이나 통합 노력의 결과는 어떻습니까?

라이프치히의 경우를 보죠. 도시가 잘 정비돼 있고 대학 시설과 복지, 교수도 좋아 서독의 학생들도 공부하러 갑니다. 저희는 성공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정상화되지 못한 지역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정상입니다. 저희는 지금 시장경제를 하고 있습니다. 시장경제는 모든 지역이 동등하게 좋을 수는 없습니다. 비전으로 제시할 수는 있지만 잘 된 게 있고 못 된 게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 통일교육을 하는 과정에서 가장 의미가 있었다고 여기셨던 내용을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통일 후 동독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민주주의 가치’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습니다. 민주주의의 형태, 과정, 선거 및 여행의 자유 등에 대해 설명했죠.

하지만 그런 개념이 생소한 사람들은 그것이 좋은 것인지 처음에는 잘 모릅니다. 그것을 독재체제의 상황과 비교해 하나씩 설명해 나가면서 토론을 유도하면 참가한 청소년들이 스스로 민주주의가 좋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 통일 후 동독과 서독 출신 국민들 사이 갈등의 문제는 어땠습니까?

현재 동서독 출신 간의 마음의 벽이 완전히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많은 부분이 희석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통일 후 구 동독 주민들이 어려움을 겪은 게 사실입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도 슈타지 감옥에 대해서 저희 부모님은 아무렇지 않았지만 동독 출신의 여자 친구 부모님은 강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통일된 지 22년이 지난 2012년 일입니다. 그리고 2000년에 옛 동독 주민들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자신들이 2등 국민이라고 느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래도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은 통일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연대세가 2019년에 끝나기 때문에 결국 30년을 시행하게 됩니다. 그만큼 비용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독일 통일의 사례를 참고해서 가능하면 불필요한 것을 줄일 필요가 있습니다.

- 통일 전 서독에서는 통일 준비를 위해 어떤 교육을 실시했는지요?

서독에선 통일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었고 그런 교육 프로그램도 없었습니다. 독일의 통일은 갑자기 왔다고 하는 것에는 이런 이유도 있습니다. 그러나 헬무트 콜 등 보수당 정치인들은 통일을 지속적으로 추진했습니다.

반면 대 동독 유화정책을 추진했던 빌리 브란트 시절에는 오히려 통일에 대한 기대와 열의는 희석됐습니다. 그러다가 보수당 정권이 들어서며 다시 통일이 목표가 됐습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통일이 빠른 시일 안에 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통일 당시 저는 25세였는데 저의 관심사 또한 마드리드나 로마 등이었지 동독이 아니었습니다.

 

한스자이델 재단 우어줄라 맨래 부이사장
정당 소속 연구재단 舊동독 민주주의 교육에 중요한 역할


한스자이델 재단은 현재 독일 여당의 하나인 기독교사회당(CSU) 소속 재단이다. 1967년 설립돼 바이에른 주를 중심으로 하는 이 재단은 독일을 포함한 세계 여러 나라에 민주주의 교육 사업을 진행하고 있고 한국에도 지부를 갖고 있다.

독일은 기사당 외에도 기독교민주당(CDU)이 콘라드 아데나워 재단, 사회민주당(SPD)이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재단을 운영하는 식으로 5개 정당이 재단을 갖고 있다. 이들 재단은 연방의회로부터 예산을 받아 각각 민주주의 시민교육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도 각 재단은 민주시민 교육을 진행하고 있는데 한스자이델 재단의 경우 연간 만 명 이상이 여기서 교육을 받고 있다. 독일은 민주시민 교육을 받는 기간에는 유급휴가를 주도록 돼 있다. 맨래 부이사장은 연방의회 의원과 바이에른 주 연방관계 장관을 역임한 정치인 출신이다.

- 독일은 연방제를 택하고 있는데 독일 정치체제에 대해 대략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연방주의는 독일의 오랜 전통입니다. 1871년 당시 여러 왕국들이 하나로 통일 된 이후 히틀러 시절인 1933~1945년까지 단절됐다가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49년에 다시 연방제로 복귀했고 1990년 통일 이후 구 동독 지역에 6개주가 새롭게 설립돼 연방에 포함됐습니다.

현재 16개 주이고 베를린은 도시이면서 주입니다. 연방은 주로 외교나 국방을 담당하고 교육이나 치안, 지자체 행정은 각 주에서 담당합니다. 겹치는 부분은 경제, 노동, 의료, 보건 분야인데 연방은 큰 틀을 잡고 각 주에서 수행을 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 독일 연방제의 장점은 무엇일까요?

연방주의는 ‘보충의 원리’를 따릅니다. 현장의 문제가 해결 안 되면 계속 윗단계로 올라가는 식이죠. 이 보충성 원리는 EU에도 적용되고, 권력의 상호 견제를 위한 ‘수평적 3권분립의 원리’도 따릅니다.

연방의회에서 결정된 사항은 각주에서 파견한 대표로 구성되는 연방심의회에서 통과돼야 합니다. 경제적 면은 사회적 다양성과 분산된 자원을 인정한다면 연방주의가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 한스자이델 재단 정치 정당 소속으로서 민주시민 교육에 주력해온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통일 이후 재단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우리 재단은 구 동독 지역 신 연방주에 들어가서 민주주의 교육을 했습니다. 새로운 정치 시스템과 법률, 기타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교육했습니다. 여기에는 사회보장제와 연금, 보험제도 같은 사항도 포함되죠. 전체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구 동독 주민들이 적응하고 통합되도록 하는 데 역점을 뒀습니다.

- 연방 차원에서도 구 동독 지역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한 것으로 아는데 결과적으로 성공을 거뒀나요?

통일 이후 구 서독에서 동독으로 막대한 자금이 투입됐습니다. 동독 지역을 경제 성장시켜야 하는 것은 그 지역 주민들이 서독으로 이주하는 것을 막는 정책 효과도 있습니다.

지금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으로 오지 않습니다. 특히 구 동독의 작센주는 독일 전체적으로 봐서도 우월성을 보입니다. 교육면에서는 독일 최고의 부자 주인 바이에른과 경쟁할 정도입니다. 그리고 서독의 각 주가 인접한 동독 신설 주에 2~3년 동안 행정 인력을 파견하는 식으로 도움을 줬습니다.

- 재정 문제는 어떤 식으로 해결했나요? 이와 관련 동서 간 갈등도 있을 것 같습니다.

각 주간 재정을 조정하는 제도가 있는데, 부유한 주에서 가난한 주에 지원을 하는 것입니다. 통독 후에는 주로 신설주들을 지원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자금을 제공하는 주는 3개인데 반해 받는 주는 13개주입니다. 여기에서 바이에른 주가 50%를 차지합니다. 그리고 이 지원 액수와 관련해 헌법재판소에 가기도 합니다. 지원하는 주에서 ‘우리가 주는 돈으로 놀고먹는다’는 식으로 불만을 표시하죠.

사실 받는 주에서 지원하는 주로 바뀐 곳은 바이에른 밖에 없습니다. 연방 헌법재판소는 연방과 주 사이의 역할 문제를 조정합니다. 그리고 개인들은 통일 직후 도입된 통일 비용 세금인 연대세를 내고 있습니다.

통일은 비쌉니다. 한국의 경우 북한은 경제를 포함한 모든 것이 바닥 수준이기 때문에 막대한 자금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은 전쟁 경험도 있어서 남북 간 적대감도 높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연대세와 비슷한 통일비용 부담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이 클 것입니다.

 

SED독재청산재단 안나 카민스키 사무총장
“독재정권 가해자라도 처벌은 민주 절차를 따라야”

SED독재청산재단은 과거 동독의 공산당인 사회주의통일당(SED) 독재 체제의 원리와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고 교육하는 한편, 독일의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동독 사회주의 독재체제의 실체에 대해 교육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 통일 후 구 동독지역 시민들에게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교육하는 것도 중요한 몫이었다.

재단은 1998년 연방의회의 법률 제정으로 설립됐는데 앞서 1992년부터 1998년까지 연방의회에서 조사위원회를 설치해 구 동독 독재에 대한 작동 원리에 대해 조사활동을 벌인 후 독재청산재단이라는 전담기구를 만들었다. 이 재단은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 정당에서 파견한 대표로 구성된 독자적인 운영위원회가 있다.

- 먼저 독재청산재단이 하는 업무를 간단하게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통일이 갑자기 왔기 때문에 독일 국민이 변화된 세상에서 살아나간다는 것은 매우 생소한 일이었습니다. 특히 구 동독 국민들은 시장경제에서 나타나는 실업률도 겪어보지 못했고 새로운 법률과 규정들도 접해보지 못했습니다. 국가가 알아서 공급해주는 데 익숙해져 있다가 스스로 결정해서 한다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사람들입니다.

북한도 통일이 되면 이 부분에서 큰 혼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구 동독 국민들이 통일 이후에 2등 국민이라는 비하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것과 관련해 학교에서 교육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희 재단은 최근에는 학생들에 대한 과거 동독의 공산주의 독재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저희 재단의 이런 시도는 정치적, 사회적 지지를 얻고 있는데, 특히 주요 임무는 독재에 관한 원인에 대한 규명, 학술적 청산 작업입니다.

- 독재정치를 청산하려면 가해자 처벌이 필요한데 독일의 경우는 어땠나요?

전쟁이나 독재 같은 커다란 사건 이후 다음 단계에서 제일 복잡한 문제가 사법 처리입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또 독재가 온다면 관계가 없지만 정상적인 사회가 왔을 때 그 사회를 지속해 나가기 위해서는 민주적인 방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대목이 굉장히 간단치 않은 일입니다.

사실 이전 사건에 대해 피해자의 감정이 시원해질 정도로 처리할 방법은 없습니다. 복수하는 마음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이죠. 또 하나의 원칙은 사회를 통합시키는 데 도움이 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가해자의 행위가 당시에도 범죄였는가를 따져야 하고, 공소시효의 문제, 증명의 문제 등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 규명과 명예회복이 사법적 처리 못지않게 중요하게 됐습니다. 사법 처리는 2004년에 종료됐지만 우리는 구 동독에 존재했던 공산독재의 구조나 원인을 밝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통일 후 동독 독재정권 가해자를 처벌할 때 그 사람의 행위가 동독 법률상으로 범죄였는지도 고려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처벌의 범위가 너무 협소해지지 않습니까?

중요한 기준은 기본적인 인권과 관계된 부분입니다. 기본 인권에 위배되는 행위는 그것 자체로 사법 처리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입으로 북한에서 사람을 죽였다고 말하는 것은 인권 헌장을 위배한 것이기 때문에 헤이그 사법재판소에서 처벌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우엔 자기들도 잘못한 것을 알고 있는데, 자기 방어를 위해서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소시효에 대해 언급했습니다만 살인은 공소시효가 없었습니다. 물론 이 부분도 어려운 선택의 영역, 즉 증명의 문제가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동서독의 경계선을 넘다 총에 맞아 죽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경비병들이 이들에 대해 사격을 가했는데 해당 군인을 어떻게 처벌 할 것인가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명령한 사람을 찾고 또 경비병의 실질적 행위를 증명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 한국은 아직 통일 전입니다. 한국이 무엇을 준비하면 좋겠는지 조언을 부탁합니다.

독일은 비록 내독성이 소극적이나마 통일 준비를 했지만 서독 국민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통일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서독의 고위 정치인은 통일에 대한 신념과 목표를 버린 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잘츠기터 중앙조사처가 동독의 인권 침해사례를 수집을 했습니다만, 인권을 제외한 서독이 수집한 동독에 관한 정보들은 부정확하고 틀린 정보들이 많았습니다.

왜냐하면 동독에서 허위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입니다. 동독이 전 세계 10대 공업국가라고 생각한 게 그런 예입니다.

베를린=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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