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북 감별법
종북 감별법
  • 이원우
  • 승인 2013.12.1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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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건 없다’고 말하는 사람부터 의심하라
 

※필자 주: 이 글은 <미래한국>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을 뿐 아니라 한쪽으로 심하게 편향돼 있으므로 균형 감각이 발군이신 분들은 정신 건강을 위해 읽기를 자제해 주시길 당부 드립니다.

최근 인터넷에서 ‘또라이 질량보존의 법칙’이란 게 유행한 적이 있다(지금부터는 돌+아이로 표기한다). 쉽게 말해 어떤 직장에 가든 일정 숫자의 돌+아이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법칙이다.

같은 팀에 악질 돌+아이가 있어서 다른 곳으로 옮겼다고? 옮긴 팀에도 새로운 돌+아이가 있다. 정도가 심하지 않은 돌+아이라 해도 안심할 수 없다. 레벨 낮은 놈이 여러 명 존재함으로써 돌+아이의 총량은 보존되기 때문이다.

이를 악물고 버티면 돌+아이가 팀을 나가는 일도 생길 수는 있겠으나 방심은 이르다. 그 자리에는 또 다른 돌+아이가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로써 다시 한 번 돌+아이의 총량은 보존된다.

이 법칙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이다. 이 얘기를 듣고서 아무리, 아무리, 아무리 돌이켜 생각해 봐도 우리 회사에는 돌+아이가 없는 것 같은가? 그렇다면 당신이 바로 돌+아이다.

‘보면 안다’는 말 일면 맞긴 하지만…

요즘 종북(從北)의 범위를 놓고 다시 한 번 논의가 한창이다. 박창신 신부의 연평도 포격 발언과 박근혜 대통령을 부정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종북이냐 아니냐를 놓고 논쟁에 불이 붙었다. 과연 종북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어려운 문제다. 이 질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노벨평화상 감이다.

미국 대법원 판사의 어느 판결문은 이 문제에 관해 한 가지 통찰을 준다. 포터 스튜어트 판사는 도색 영화를 판별해야 하는 어려운 재판에서 “포르노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는 없지만 보면 안다(I know it when I see it)”고 말해 전설이 됐다.

미래한국에서 2년째 글을 쓰다 보니 이젠 나도 왠지 ‘보면 알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 사람이 했던 말, 썼던 글, 속한 단체 등을 보면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지는 느낌이랄까(심지어 냄새가 날 때도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일정 부분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삶을 산다. 친구들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 꽤 유효한 것도 그래서다. 종북은 몰려다니거나, 아니면 적어도 긴밀하게 연락을 하며 지낸다.

하지만 이와 같은 ‘보면 안다’ 식의 종북 감별은 대중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다. 동네 슈퍼에서 개최한 경품 추첨 이벤트에서 탈락돼도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라”고 요구하는 게 한국인들이다. 이 방법이 혹시라도 발생할지 모를 억울한 피해자를 미연에 방지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다. 참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이 문제에는 어느 정도의 기준이 필요하다.

본질적인 고민을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가 벗어야 할 고정관념이 하나 있다. 종북의 행태가 ‘정해져’ 있다는 생각이다. 종북은 딱딱한 갑옷이 아니라 흐느적대는 천에 가깝다. 그들은 가만히 앉아 누군가의 몽둥이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상황과 상대에 따라 언행을 바꿔가며 생명력을 유지한다. 몸도 마음도 고정된 실체가 없다고 반야심경은 말했지만 종북도 그렇다. 그들의 행태를 구체적으로 정의해 봐야 그 순간 변신해버리면 그만이다.

 

소거법을 활용하라

종북을 구체적으로 정의하는 데 노력을 허비하기보다는 차라리 그 시간에 결백(?)한 사람들부터 소거해 나가는 게 낫다. 이를테면 현재의 한국 대통령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없을 것 같지만 있다), 새누리당(한나라당), 민주당, 통합진보당의 이름 자체를 모르는 사람 등 자신의 생존을 제외한 어떤 정치 현안에도 관심 없는 이들까지 종북 논의에 포함시킬 수는 없다. 이들은 낙인찍기의 대상이 아니라 설득의 대상이다.

남아 있는 이들에 대해서는 좀 더 엄밀한 잣대를 적용할 수 있다. 이번엔 반대 방향의 극단으로 가 보자. 종북 성향을 가장 먼저 의심받아 마땅한 사람들은 누굴까? “대한민국에 종북 같은 건 없다”고 떠들고 다니는 이들이다. 돌+아이가 없다고 말하는 바로 그 사람이 돌+아이인 것과 원리가 같다.

정치에 꽤 관심이 있는데도, 신문에서든 인터넷에서든 뻔히 뉴스를 읽고 있는데도 종북이며 간첩이 없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그때부터는 그 무지(無知)에 대해서도 죄(혹은 도덕적 책임)를 물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실치사도 언제나 무죄인 건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딱지 붙이기’라면서 서운해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이들은 김춘수의 명시 ‘꽃’이야말로 딱지 붙이기의 정수가 아닌지 자문해 보시길 바란다.

인간은 서로가 서로에게 이름(딱지)을 붙이며 사는 존재들이다. 그게 너무 심해서야 안 되겠지만 종북이 스스로 커밍아웃을 하리라는 생각은 비참할 정도로 순진한 것이다. 돌+아이 질량보존의 법칙에 대해 ‘농담이지만 공감된다’고 생각했다면 당신도 이미 딱지 붙이기에 일가견이 있는 셈이니 남 일처럼 얘기할 것도 아니다.

종북과 ‘소통’을 해야 한다는 건 착각에 불과하다. 의심되는 사람에게 종북이 맞냐고 질문을 던져볼 필요조차도 사실은 없다. 돌+아이더러 “당신은 돌+아이입니까?”라고 물어본들 그렇다고 얘기하겠는가? 그 사람의 행동이 그 사람을 말해줄 뿐이다. 소통은 그 다음 문제다.

미안하지만 딱지 붙이기는 필연적이다

다만 종북을 감별하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덕목이 하나 있다. 일단 딱지를 붙였더라도 향후 종북이 아닌 것으로 규명됐을 때 뒤탈 없이 사과할 수 있는 담대함과 겸허함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오해를 좀 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언제라도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언제나 틀릴 수 있다. 사과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건 괜히 똑똑해서 종북의 실체를 알아버린 이들의 숙명쯤으로 해 두자.

마지막으로 한 마디. 나는 통합진보당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종북세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라도 틀릴 수 있으니 이것도 100%의 정답은 아닐 것이다.

따라서 통진당을 대표하는 머리 짧은 국회의원들에게 요구한다. “대한민국에는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고 북한 김씨 왕조를 추종하는 세력이 존재합니다”라고 한 문장만 말해 달라. 그러면 곧바로 당신들 앞으로 달려가 무릎 꿇고 내 의심에 대해 백배 사죄하겠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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