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방공식별구역 선포의 불편한 진실
中 방공식별구역 선포의 불편한 진실
  • 미래한국
  • 승인 2013.12.18 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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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대부터 논의된 개념 … 역사적 맥락 올바르게 봐야
 

지난 11월 23일 중국 공산당 정부가 주변국과의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CADIZ)’을 선포한 뒤 한국, 미국, 일본과 계속 갈등을 빚고 있다.

미국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 이후 대놓고 B-52 전략폭격기를 해당 지역으로 보내는 등 노골적으로 무시하고 있고, 우리나라는 기존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이어도와 남쪽 해상까지 확장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일본 또한 중국 방공식별구역을 지나는 민간 항공기들에게 “신경 쓸 것 없다. 무시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이에 중국 인민해방군은 주변국 항공기가 근접할 때마다 전투기를 발진시키는 등 소란을 피우고 있다. 대체 방공식별구역이 뭐길래 이 난리를 피우는 걸까.

방공식별구역(防空識別區域.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ADIZ)은 자국 영공의 방어를 위해 영공 바깥쪽 공해 하늘에 설정하는 구역이다. 이 구역을 설정하는 데 참고할 국제법이나 규약은 없다. 여기서 먼저 봐야 할 것이 영공과 영해다. 영공은 영해를 기준으로 한다. 영해가 해안선 직선 기준 12해리(약 22.2km)까지가 정식 영해이고 그 상공까지가 영공이다.

하지만 항공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적 전투기나 폭격기가 마하의 속도로 접근할 때 영공에 진입한 뒤 요격을 실시하려 하면 대응 시간이 5분 미만이다. 이 때문에 생긴 것이 방공식별구역이다.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이 아니기 때문에 강제성은 희박하다. 하지만 이를 선포한 나라가 어디냐, 접근하는 항공기가 민항기냐 군용기냐에 따라 영공에 준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1940년 미국이 처음 선포

방공식별구역의 역사는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미국이 처음 선포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미국은 적의 공습을 미리 방어하기 위해 해안선 주변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1941년 12월 하와이 진주만 공습을 계기로 공식화됐다.

이후로도 한동안 몇몇 국가 외에는 방공식별구역을 지정하지 않았다. 적이 원거리에서 접근하는 것을 미리 알 수 있는 장거리 레이더를 갖춘 나라가 미국, 영국, 독일 등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후 미·소 냉전 시기를 거치면서 세계 대부분의 나라들이 자국 영공 방어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하는 나라들도 늘어났다.

우리나라의 방공식별구역은 KADIZ (Korea 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라고 부른다. 그 시작은 1951년 6·25전쟁 중 미군이 설정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한반도 영공은 한국군과 미군 등 유엔군이 장악하고 있었다. 북한군과 소련군, 중국군의 항공기는 한반도 인근에 근접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이렇게 설정된 KADIZ는 처음에는 미군이 주도적으로 관리하다 우리 군의 현대화에 따라 점차 한국군으로 관할권이 넘어왔다.

1969년 일본이 방공식별구역(JADIZ)을 설정하자 한국 정부는 국제항공기구(ICAO)가 설정해 준 비행정보구역(FIR)에 맞게 한국 방공식별구역을 넓히겠다고 미국에 요청했지만 미국은 ‘동맹’인 양국이 알아서 처리할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의 방공식별구역 조정 협상을 거절하면서 지금 상태에 이르고 있다.

2008년 7월 국방부가 홈페이지를 통해 밝힌 방공식별구역 범위는 이렇다.

북위 39°00′ 동경 123°30′ - 북위 39°00′동경 133°00′
북위 37°17′ 동경 133°00′ - 북위 36°00′동경 130°30′
북위 35°13′ 동경 129°48′ - 북위 33°00′동경 127°00′
북위 33°00′동경 124°00′- 북위 37°00′ 동경 124°00'

이 범위 내의 지표면부터 무한대 고도까지도 우리나라 방공식별구역이다. 이 구역에 진입하거나 운항하는 모든 항공기는 우리나라 국방 장관에게 위치를 보고해야 하는 게 원칙이다. 사전에 비행계획을 제출하면 보고할 필요가 없다.

최근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CADIZ) 선포 이후 우리 정부는 방공식별구역(KADIZ) 확장을 추진하고 있는데 여기서 논의되는 것 중 가장 유력한 것이 방공식별구역과 비행정보구역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방공식별구역, 국력의 바로미터

우리나라의 비행정보구역은 방공식별구역보다 훨씬 넓은 48만㎢ 수준이다. 여기에는 이어도와 독도 등이 모두 포함돼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은 남해안과 동해 지역에서 서로 중첩되는 부분이 있다. 반면 비행정보구역은 국제항공기구(ICAO)가 설정한 탓에 서로 중첩되는 부분이 거의 없다.

중국의 비행정보구역 또한 우리나라나 일본의 그것과 중첩되는 부분이 없다. 여기에 맞춰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면 될 것을 왜 중국과 일본은 주변국의 신경을 거스르면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일까.

방공식별구역을 대하는 태도는 그 나라가 얼마나 제국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는가에 따라 다르다. 가장 비근한 예가 배타적 경제수역(EEZ)을 대하는 태도다.

대부분의 서방 국가들은 다른 국가의 선박이 배타적 경제수역에 들어왔다 해도 군사적 목적이 아닐 경우에는 경고 정도만 하고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 반면, 호전적인 국가에서는 이를 영해로 간주해 난리를 피우고 심할 경우 나포까지 한다.

통상적으로 항공기가 다른 나라의 방공식별구역으로 들어가려면 24시간 전에 해당 국가 군 당국의 사전 허가를 받거나 비행계획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방공식별구역 인근 18km까지 접근하면 4~5번의 무선 경고를 보내고 10km 이내로 접근하면 ‘침범 경고방송’과 함께 공군기가 출격해 상황을 파악한다.

그 이후부터는 나라마다 반응이 다르다. 미국을 포함, 우리나라와 서방 국가들에서는 정체불명의 항공기가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해 공군 전투기가 출격했다 하더라도 육안으로 해당 항공기가 안보에 위협이 되는지를 확인한 뒤 ‘요격 절차’에 들어간다.

 

미국의 경우 북미방공사령부(NORAD)가 북미 지역의 방공식별구역을 관리하는데 알래스카와 워싱턴 DC 일대에서만 공군기들이 정체불명의 항공기 접근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냉전 경험과 2001년 9·11테러의 경험 때문이다.

반면 호전적인 국가들은 해당 항공기가 적성국의 것이라면 한두 차례의 경고방송 이후 응답이 없으면 곧바로 ‘요격 절차’를 시작한다. 격추한다는 말이다. 이런 대표적인 사례가 美알래스카 방공식별구역을 지나서 舊소련의 해군기지 인근에서 격추된 KAL 007기 격추 사건이다.

이는 사실 방공식별구역의 문제라기보다는 당시가 동서 냉전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였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 이 일이 한국과 소련의 문제가 아니라 한미동맹과 서방국가 대 북한, 소련과 동구권 국가들 간의 갈등으로 비화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이런 ‘호전적이고 배타적인 방공식별구역’ 정책은 냉전 질서가 붕괴하면서 대부분의 세계에서 사라졌다.

현재는 이란이나 북한, 시리아 등과 같은 국가들만 방공식별구역을 침범했을 때 곧바로 공격하는 행태를 보인다. 하지만 여기에 중국이 끼지 말라는 법이 없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지 사흘 뒤인 지난 11월 26일 美공군은 중국 인민해방군에 통보도 하지 않고 핵폭탄 탑재가 가능한 B-52H 전략 폭격기 2대를 출격시켜 이 지역을 지나갔다.

11월 29일 美해군의 P-3C 대잠초계기와 日항공자위대의 F-15J 전투기가 중국 방공식별구역 인근에 접근하자 중국 인민해방군은 J-10 전투기를 긴급 출격 시키기도 했다. 이로 인해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중국 인민해방군이 방공식별구역을 영공 수준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사례다.

이 같은 사례에서 보듯 방공식별구역은 사실상 공해 영공인 탓에 정체불명의 항공기가 접근한다고 해서 바로 무력을 사용하지는 않는 게 국제적 관례다. 하지만 무력 과시를 좋아하고 국제적 관례를 무시하는 국가들은 다르게 행동한다.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은?

아무튼 중국의 일방적인 태도로 방공식별구역 논란이 일자 언론 등에서는 ‘왜 한국 정부는 방공식별구역에 이어도 등을 넣지 않았느냐’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한반도 방공식별구역의 역사를 봐야 이해할 수 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우리나라 방공식별구역(KADIZ)은 1951년 美태평양 공군사령부가 설정한 것이다. 그 목적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극동 지역에서의 동맹국 방위를 위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설정 범위도 남쪽보다는 북쪽과 동쪽에 더 집중해 설정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제대로 한반도 주변 하늘을 감시·관제할 능력을 갖춘 뒤에야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에 이어도를 포함시킨 것을 알게 됐다.

이어도 문제도 방공식별구역과 이어도의 역사를 생각한다면 우리 정부 탓을 할 필요가 없다. 일본의 방공식별구역은 1969년 선포된 것이고 이후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의 구역조정 요구를 계속 거절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이어도를 우리 땅이라고 선포한 것도 1987년이다.

이어도의 정확한 위치를 공식적으로 파악한 것은 1984년 제주대와 KBS 파랑도 학술탐사팀에 의해서였다.

이후 1986년 舊 수로국(現 국립해양조사원) 소속 조사선이 이어도의 수심이 4.6m인 것을 측량한 뒤 1987년에야 해운항만청이 이어도에 등부표(선박이 항해하기 위험한 곳임을 알리는 표지 부표)를 띄우고 국제적으로 우리 땅임을 공표했다. 이어도 해상기지는 2003년에야 완공됐다. 그것조차 현재 무인 시설이다.

방공식별구역을 일방적으로 선포해 물의를 빚은 건 중국 정부와 일본 정부인데 언론은 우리 정부를 비난하고 있다. 방공식별구역의 역사와 함께 중국과 일본을 가해자로, 우리나라를 피해자로 보면 방공식별구역 문제를 바라보는 시야도 더 선명해질 것이다.

전경웅 객원기자 enoch20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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