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라는 화려함 뒤에 숨겨진 땀과 눈물, 그리고 기도
‘최초’라는 화려함 뒤에 숨겨진 땀과 눈물, 그리고 기도
  • 이원우
  • 승인 2013.12.2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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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속기획] 여성 시대를 여는 사람들: 강신숙 수협은행 부행장
 강신숙 수협은행 부행장

1979년 5월 수협중앙회에 입사해 영업점 창구 업무부터 시작한 강신숙 수협은행 부행장의 경력은 각종 기록과 ‘여성 최초’라는 수식어로 가득 차 있다. 수협은행 3급 전환고시 전국 2등, 2000년 신지식금융인 선정, 2001년 1급 승진, 2005년 부장 승진, 2009년 서울중부기업 금융센터장, 2010년 강북지역본부장, 2012년 강남지역본부장, 2013년 수협은행 부행장.

여성의 사회생활에 유리 천장이 존재한다는 말을 할 때 그 대표적인 분야로 인식되고 있는 금융계에서 이와 같은 신기록이 연속되는 건 놀라운 일이다. 기록을 깨는 것이 생활화돼 있는 이 여성리더는 어떤 신념과 가치관의 소유자일까. 한국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여성리더들을 만나보는 본지 연속기획 ‘여성리더를 찾아서’ 두 번째 인터뷰로 강신숙 수협은행 부행장(마케팅본부장)을 만났다.

-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굉장히 바빠 보이시네요.

부행장이자 마케팅본부장으로서 고객관리와 지점관리를 동시에 진행하다 보니 말 그대로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네요. (웃음) 나무와 숲을 동시에 봐야 하는 자리이니까요.

그래도 저희 수협은행이 해양수산인들의 대표은행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산하기관이나 수산 유관단체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서 서울이든 아니든 구분하지 않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저는 이른바 ‘현장경영’을 중시하거든요.

- 수협이라는 조직은 일반 국민들에게는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낯선 조직인 것 같은데요. <미래한국> 독자들에게 수협에 대한 소개와 자랑의 말씀을 해 주신다면요?

3면이 바다인 대한민국에 해양산업은 미래 핵심성장 산업입니다. 그 해양산업에 대한 금융지원으로 해양수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 수협은행의 존재 목적이고요. 해양산업 육성을 위한 신(新)금융 사업을 펼쳐서 우리나라가 21세기 해양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일조한다는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1962년 수산중앙회가 창립된 후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 반부패 경쟁력 평가에서 최우수등급기관으로 선정되는 등 청렴과 신뢰의 금융기관으로 정착했다고 자부할 수 있어요.

- 그런 수협에 1979년 입사하셨는데요. 19세 소녀 시절에 시작된 수협에서의 사회생활은 어떠셨는지요.

제가 수협은행 부행장이 된 게 올해 4월이었습니다. 금융권에서 여성이 임원이 되는 건 드문 일입니다. 은행권 전체에서도 두 번째인데요. 1979년부터 지금까지 고속으로 달려왔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간의 여정이 결코 탄탄대로만은 아니었어요. 오히려 가시밭길이었죠.

열아홉 시절엔 그저 은행원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이 동경의 대상이었는데 그 겉모습 뒤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이 숨어 있어요. 물론 그 시절 경험했던 것들이 행원들을 이끌어야 하는 지금 입장에서 굉장한 경험이 돼 주고 있죠.

위기의 순간마다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하다

- 여성의 사회생활에 대해서는 아직도 여러 의견들이 있는데 당시는 어땠나요.

제가 어렸을 때는 여성이 임원이 되는 문제를 논하기 이전에 일단 결혼을 하면 일을 무조건 그만 둬야 되는 시절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미래를 예단할 순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적어도 제가 속해 있던 지점에서 최고가 돼야 한다는 승부욕을 유지해 왔습니다.

이게 어디서 나왔냐면 제가 딸 아홉의 딸 부잣집에서 일곱째로 태어났거든요. 어려서부터 동생들하고 예쁜 옷이나 맛있는 음식을 ‘쟁취’하지 않으면 안 됐던 거죠. (웃음) 부모님의 관심을 받으려고 공부도 더 잘 해야 했고요.

부모님께 제가 물려받은 건 낙관적이고 현실적인 사고방식이었어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고통 없이는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다(No Pain, No Gain), 어떤 고통 앞에서도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사실을 잊지 않는 것도 있고요. 늘 호시절만 있었던 건 아니고 너무 아플 때도 많았지만 그럴 때 제가 의지했던 건 오로지 긍정의 위대함을 전해준 가족의 힘, 그리고 성경책이었어요.

- 34년간의 여정에 신앙도 큰 도움이 됐던 셈이네요.

물론이죠. 어렵고 힘들 때는 눈물로 기도를 드립니다. 어려서부터의 습관인지는 몰라도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 지금도 애틋함이 있어요. 그렇게 기도하면 그 분께서는 저를 사랑해 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고통이 걷히는 것 같은 느낌, 찬란한 햇빛이 다시 보이는 듯한 느낌에 위로를 받죠.

특히 제가 결혼해서 아이를 가졌을 때 유산 위기가 온 적이 있었거든요. 병원장님이 아이를 선택하거나 수협을 선택하거나 둘 중 하나를 고를 수밖에 없겠다고 했을 때 매일 매일 하나님께 매달렸어요. 그 이후엔 저희 수협 승진고시가 굉장히 어려운 것으로 유명한데, 거기 제가 합격한 것도 하나님께 받은 은혜라고 생각해요.

감히 신앙이 깊다고 말씀드리긴 부끄럽지만 수협에서 하는 기독신우회 모임도 늘 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지점장 시절부터 기도가 충분하지 않으면 마케팅을 제대로 못 하겠더라고요.

“금융은 여성에게 딱 맞는 분야”

-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오금동 지점장을 하셨는데요. 폐쇄 위기에 놓여 있었던 오금동지점이 강신숙 당시 지점장님 부임 이후 8분기 연속 전국 영업점 평가 1위를 달성한 일은 ‘오금동의 기적’으로 회자되더군요. 이때 수협 광고모델도 하셨죠?

네. 그때가 마침 수협 40주년이기도 했거든요. 그건 저의 실력이 출중해서는 아니고요. 사실 금융업이 여성들에게 특히 아주 잘 맞는 부분이 있어요. 숫자를 다루는 딱딱한 분야 같지만 그 안에는 감성적인 측면이 분명히 존재하거든요. 고객님들의 세심한 자산관리를 해 드림으로써 그 분들의 감성을 터치하는 데 온 지점이 주력했던 게 주효하지 않았나 싶어요.

저 뿐만이 아니라 여성 지점장들이 다 90% 이상 성공적인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 덕에 제 밑에도 여성 부장들이 탄생하고 지점장도 6명이나 나왔어요. 지금도 저는 금융업이 여성에게 딱 맞는 분야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남성처럼 추진력과 박력을 앞세워 진행할 때도 있지만 고객들의 눈높이에서 포용력을 가지고 일을 해야 하는 부분도 많으니까요.

“선후배들 이끌어주는 견인차 역할 하고파”

- 한편 사회생활을 하는 많은 여성들은 고객들에게 신경을 쏟는 만큼 가족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많이 고뇌하고 힘들어 하는 것 같습니다.

그건 저도 마찬가지예요. 마케팅은 꼭 업무시간에만 진행된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주말을 반납하는 경우도 적지 않거든요. 시어머님과 남편의 외조에 도움을 굉장히 많이 받았어요. 가족들의 이해와 헌신이 없으면 버티기 힘들었을 거예요.

아이들이 고3일 땐 진로상담을 전화로 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어요. 다른 엄마들처럼 해 주지 못한 게 정말 너무 미안했죠. 그래서인지 이날까지 아이들을 엉덩이 한 번 때려본 적 없답니다. 집에 가면 껴 안아주고 스킨십을 하려고 노력하고요.

기업들이 어느 정도 안정되고 나면 사회봉사 활동을 많이 하듯이 저도 이제 많은 부분을 가정에 ‘환원’ 해야겠죠. 가정과 일의 양립은 정말로 힘든 일입니다.

- 화려한 신기록 뒤에 정말로 많은 사연들이 있었네요. 앞으로 또 수립하고 싶으신 신기록이나 계획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마케팅 담당 임원으로서 고객에 대한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고객역사 만들기 프로젝트’를 최근 진행 중이에요. 수협이 작지만 강한 은행으로서 완벽하게 기능하기 위해서 시스템에 의한 고객맞춤형 고객관리를 강화할 방침입니다.

2016년부터는 휴대폰 번호이동을 하듯이 다른 은행으로 계좌를 이동시킬 수 있는 계좌이동제가 금융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행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이를 위해 고객관리가 보다 더 중요해지고 있는 시점입니다.

예전엔 자동화기기로 고객들을 안내하는 것만을 선진적인 것이라 했지만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고객과 종합적인 관계를 구축하려면 대면 접촉으로 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거든요. 자동화시스템 이용 고객들이 수협의 매력도를 발견하도록 유도해서 창구로 오시게 할 수 있는 로드맵을 수립 중입니다.

- 또 다른 ‘여성 최초’로서의 계획은 없으신가요?

큰 틀에서 여성 금융인 후배들을 위해서 제가 할 역할을 찾고 있습니다. 기업은행에서 은행권 첫 여성 임원이 되신 권선주 부행장이 많이 이끌고 조언해 주셔서 든든하고 힘이 됩니다.

지금은 금융인으로서 선후배들을 이끌어주는 견인차 역할에 더 몰입해야 할 시점이에요. 아주 먼 미래에는 정치행정을 공부한 경험을 살려서 송파구 주민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찾아보는 것도 소망하고 있고요.

저는 제가 속해 있는 이 자리도 정말 과분하다고 여기기기 때문에 아침마다 늘 “제가 저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합당한 능력을 주시옵시고…”라고 기도해요. 그러면 수협이 대한민국에서 우뚝 서는 은행이 될 수 있는 길을 보여주시는 것 같아서 힘이 나죠.

인터뷰 /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사진 / 신경수 기자 icf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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