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은 자충수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은 자충수
  • 이춘근 박사
  • 승인 2013.12.31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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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근박사의 전략이야기
 

11월 23일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동지나해 상공에 방공식별구역(Air Defense Identification Zone, ADIZ)을 선포하고 이곳을 지나가는 모든 비행기는 중국 당국에 사전 통보하고 중국 항공관제사의 지시를 받아야 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모든 주권국가는 자국의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ADIZ를 선포할 권리가 있지만 이번 경우처럼 그야말로 느닷없이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것은 예외적인 일이다.

특히 한국, 일본과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섬 또는 환초들이 존재하는 바다의 상공에 중국이 일방적으로 ADIZ를 선포했다는 사실은 중국의 국제 행태(International Behavior)가 정상적인 국가의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노골적으로 보여 줬다.

중국의 이 같은 막가파식 행동을 이코노미스트는 ‘10대의 테스토스테론’(Teenage testosterone) 즉 성숙하지 못한 10대 소년이 흥분해서 생각 없이 저지른 일이라는 식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잡지는 경제력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국가는 이웃 국가들에 대해 우쭐한 태도와 공격성을 나타내 보이는 일이 왕왕 있는데 이 같은 일은 국제규범(international norm) 의 범위 안에서 이뤄지는 한 크게 문제 될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중국의 이번 방공식별구역 선포는 국제규범을 크게 벗어나는 행동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국제규범 크게 벗어난 횡포

세계 모든 나라들은 하늘과 바다의 자유로운 통항을 중요한 권리요 반드시 지켜야 할 국제규범으로 생각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60년 동안 동아시아의 바다와 하늘에서 자유로운 통항 보장을 미국의 대 아시아 정책의 원칙으로 삼고 이를 지키기 위해서 노력해 왔다.

바다와 하늘의 자유로운 통항은 자유주의 국제정치 및 경제체제 유지를 위한 근본이다. 바닷길과 하늘길이 막히거나 훼손되는 경우 자유무역을 기본으로 하는 세계경제 체제는 혼란의 도가니 속에 빠져들게 될 것이며 경제적 번영과 세계평화도 없어지게 된다.

자국의 영토를 향해 날아오는 비행기에 사전 비행계획의 통보를 요구하는 것은 국제관례상 크게 문제 될 일은 없다. 그러나 중국은 중국 본토의 상공을 향해 날아오는 비행기는 물론 단순히 이 구역을 통과하는 비행기에 대해서도 모두 사전 통보하라고 요구했다.

만약 중국의 요구를 다른 나라가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 이 경우 중국은 아무 일 없다는 듯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대단히 힘들 것이다.

결국 중국은 이웃 나라에 대해 그리고 미국을 향해 전쟁의 원인(casus belli)이 될 수 있는 조건을 스스로 선포해 버린 상황이 된 것이다.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한 직후 북경을 방문한 조 바이든 미 부통령은 중국에 이의 철회를 요구했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이를 철회한다는 것은 시진핑 주석이 자신의 정치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한 불가능한 일이다.

중국은 지난 60년 동안 동아시아에 형성된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를 이제는 중국 주도의 국제 질서로 변화 시키고 싶었을 것이다. 스스로 막강해졌다고 생각하고 이 같은 조치를 기습적으로 발표하면 이웃 나라가 할 수 없이 따라 줄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중국의 이번 조치는 일본은 물론 대한민국 역시 중국의 조치에 머리 조아리며 따라 갈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특히 미국의 분노를 사게 됐다는 사실은 중국의 결정적인 패착이 될 것이다.

중국이 ADIZ를 발표한 지 3일째 되는 날, 미국은 두 대의 B-52 폭격기를 중국이 발표한 방공식별구역에 투입시키는 조치를 취했다. 스텔스 기능도 없어 레이더에 현저하게 나타나는 구식 대형 폭격기를 보낸 미국의 의도가 무엇인지 중국은 잘 알 것이다.

한국 정부는 중국이 방공식별구역이 이어도 상공을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에 분노, 한국 여객기들에 사전 통보를 하지 말라고 지시했고, 일본 정부는 먼저 중국에 통보를 했던 일본 항공기들에 대해 앞으로는 통보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중국이 마음먹고 발표한 방공식별구역에 미국은 폭격기를 날리고, 한국과 일본의 여객기들은 이를 무시해 버리는 상황에 당면한 것이다.

중국의 일방적인 방공식별구역 설정은 역풍을 맞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안보 구조는 더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 들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한국은 며칠간의 심사숙고 끝에 중국이 발표한 방공식별구역과 이어도 상공 부분에서 겹치며 일본의 방공식별구역과도 겹치는 방공식별구역을 선포했다. 중국의 경우와는 달리 사전에 주변국과 협의도 했고 통보도 했던 조치였다. 12월 8일 일요일 낮에 발표한 한국의 조치에 대한 주변국의 반응이 재미 있다.

우리가 발표한 시간이 워싱턴 시간으로 새벽 2시 경이었는데 미국은 즉각 이를 “환영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한국의 방공식별구역은 중국의 경우와 다르다”고 발표했다.

일본의 발표는 일본은 한국과 ‘여러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있는 상황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과의 문제는 ‘안보(安保)문제’는 아니라는 일본의 인식을 표현한다. 즉각 코멘트를 하지 않은 중국은 얼마 후 “유감”이라고 발표했다.

미국이 한국의 조치를 즉각적으로 환영한 이유는 한국의 방공식별구역 발표는 중국의 방공식별구역을 사실상 무력화 시키는 조치가 될 것이며 중국이 앞으로 남지나해 및 서해의 하늘에도 방공식별구역을 설정하고 발표하는 것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도 낼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일부 지식인들이 한국 정부의 이번 조치에 대해 방공식별구역을 “통제할 수 있는 공군력도 없으면서…” 혹은 “앞으로 더 큰 손해를 볼지도 모르는데…” 운운하며 비판을 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은 ‘주권’의 문제요 ‘국가안보’의 문제에 대한 당당하고 올바른 조치였다. 우리가 그럴 힘이 없다고? 그래서 동맹이 있는 것이다.

미국의 즉각적인 환영

한국 사람들 중 중국과 미국의 힘이 비슷해진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렇지 않다. 미국 해군이 2015년 배치할 신형 항공모함 제랄드 포드호가 진수되는 날 CNN은 오늘부터 미국 해군은 22세기를 맞이했다고 보도했다.

역시 2015년 실전 배치될 스텔스 구축함 줌월트(ZumWalt)호는 사실상 무적의 전함이다. 미국이 아직은 다른 나라에 절대 팔지 않는 스텔스 전투기 F-22는 바로 아래 급 전투기들과의 모의 공중전에서 144:0 이라는 놀라운 스코어를 기록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가 중국의 방공식별구역 선포를 ‘Teenage testosterone’이라는 용어를 사용해서 비판한 것은 ‘중국은 아직 그럴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나라는 아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최근 간행한 책 ‘Asian Maritime Strategies: Navigating Troubled Waters(Naval Institute Press, 2013)’에서 세계적 해군 전문가 버나드 콜 교수는 중국 해군은 앞으로 한동안 미국은 커녕 일본 해군도 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이춘근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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