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맹 등지는 오바마의 냉혹 외교
동맹 등지는 오바마의 냉혹 외교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4.01.03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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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정권의 화학가스 사용에 대한 응징을 시리아 보유 화학무기 폐기로 대신하기로 타협한 미국과 러시아

사우디 아라비아는 요즘 미국에 대한 배신감으로 큰 충격에 빠져 있다. 1930년대부터 미국의 동맹으로 중동에서 미국 편을 들었는데 오바마 행정부가 시리아, 이란 문제에서 자기들의 입장과 반대되는 결정을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투르키 알 파이잘 사우디 아라비아 왕자는 지난 12월 15일 미국이 사우디 아라비아의 동맹국이라면 자신들이 말한 것을 행동으로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정보부 국장을 역임하는 등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영향력이 큰 파이잘 왕자는 오바마 행정부의 시리아와 이란에 대한 정책을 그 이유로 들었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슬람 시아파인 이란과 시리아의 부상은 수니파 중심의 현 중동 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며 미국이 이들을 억지해야 하는 데 도움을 줘야 한다는 입장이다.

파이잘 왕자가 문제를 삼은 오바마 행정부의 시리아 정책은 지난 8월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정권이 화학가스를 사용해 어린이 400여명을 비롯, 1400여명의 자국민을 살해했음에도 오바마 행정부가 말과 달리 시리아 공습을 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화학가스 사용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시리아 정권을 향해 절대 넘어서는 안 되는 이른바 ‘레드라인’(red line)으로 공표한 것이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2012년 8월 20일 시리아 내전과 관련 “우리는 분명한 한계선이 있다는 것을 이 지역의 모든 당사자들에게 분명히 말해왔다. 그것은 화학 무기의 이동이 있거나 화학무기를 실제 사용한다면 엄중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는 점”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변화하는 레드라인’

이 말에도 불구하고 시리아 아사드 정권은 화학가스를 사용했다. 당시 오바마 대통령과 존 케리 국무장관 등은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밝혔다. 전 세계는 미국의 시리아 공습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시리아의 후견국인 러시아와 중국은 미국의 시리아 공습을 반대했고 미 국내 여론도 또 다른 전쟁을 불러올 수 있다며 반대가 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오바마 대통령은 돌연 의회 승인을 받으면 시리아 공습을 감행하겠다는 예상 밖의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러시아가 시리아 정권이 자신들이 보유한 화학무기 전체를 폐기하는 것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자 오바마 행정부는 이를 수용함으로써 아사드 정권의 화학무기 사용 문제를 얼버무렸다.

파이잘 왕자는 “우리는 오바마 대통령이 제시한 붉은 한계선(red line)을 보았다. 하지만 그 선은 점차 분홍색으로 바뀌더니 결국 흰색이 되었다”고 지적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수십 년 간 적으로 본 이란과 핵협상을 잠정 타결한 것은 사우디 아라비아, 이스라엘 등 중동의 동맹국들에게는 큰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스라엘 등은 이란의 핵개발은 핵무기 개발을 위한 것이라며 공습을 비롯, 강력한 제재를 통해 완전히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수차례의 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도 이란의 모든 핵 완전 폐기를 주장했고 UN 회원국들은 이를 위해 이란에 경제제재를 해왔다.

하지만 이번 핵협상은 이란의 핵개발 활동을 동결하는 대신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것으로 우라늄 농축 활동 등 기존 핵개발 활동을 사실상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 등 행정부 관리들은 이번 핵협정은 외교를 통해 이란 핵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번 핵협정이 미국과 이란 간 비밀 협상의 산출물이라는 데 배신감을 갖고 있다. 파이잘 왕자는 “미국이 이란과 협상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 양자 협상이 미국의 동맹인 우리가 모르는 상태에서 했다는 것이 불신을 낳았다”고 밝혔다.

워싱턴포스트의 데이빗 이그나티우스 외교전문기자는 “오바마 행정부는 가차 없는 실용적 외교를 펼치고 있다”며 “성과를 내기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던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 당시를 떠오르게 한다”고 평가했다.

오바마 행정부가 동맹국도 없는 현실주의 외교정책을 펼치고 있는데는 웬디 셔먼 국무부 정무담당 차관의 영향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웬디 셔먼은 누구인가

뉴욕타임스는 지난 2일 국무부 서열 3위인 웬디 셔먼이 지난 2년 동안 이란과의 협상을 이끌어 왔다고 보도했다. 셔먼 차관은 클린턴 행정부 당시 대북정책 조정관으로 1994년 북핵협정을 체결하는 데 견인차 역할을 한 사람이다.

당시 북핵 협정은 북한이 영변 핵시설 등 핵개발 활동을 동결하는 대신 경제적 지원을 받는 것으로 이란 핵협정과 내용이 비슷하다. 셔먼 차관은 2001년 김정일과 비밀협상을 통해 북한이 사정거리 300마일 이상의 미사일을 생산, 실험, 배치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기도 했다.

그녀는 당시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북한이 핵능력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유일한 길은 외교”라며 “김정일도 그렇게 동의한 것처럼 보인다”고 밝혔다. 그녀는 당시 김정일에 대해 “위트와 유머기 있는 사람’, ‘관념적인 사상가’ ‘빨리 문제를 푸는 사람’, ‘영리하고 지적이며 자신감이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비밀리에 우라늄 농축 활동으로 핵개발을 계속했고 그후 셔먼의 대북정책은 실패한 유화정책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이런 이유로 이란 핵협정이 실패한 북핵협정과 유사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하지만 셔먼 차관은 북한과 이란은 다르다며 반박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외 정책에서 가차 없는 현실주의 기조가 강화되자 장성택 숙청 후 북한에서 급변사태가 발생하면 미국이 동맹인 한국의 입장은 고려하지 않고 근시안적 이해만 생각하며 중국 등과 거래해 자유민주통일이 요원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애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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