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로 가는 전통문화의 길 - 전주 태조로(?祖路)
미래로 가는 전통문화의 길 - 전주 태조로(?祖路)
  • 미래한국
  • 승인 2003.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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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열장 박차고 나와 생동하는 문화박물관
넓은 들 가운데로 곧게 쭉 뻗어 난 도로가 시원하다. 천년 고도(古都)의 진입로답게 울창한 숲을 지나거나 나이든 가로수에 옹위될 법도 하다는 아쉬운 생각이 든다. 허전한 심정은 그러나 오래지 않아 보상을 받는다. 대로를 가로질러 선 고풍스런 관문이 위풍당당하다. 호남제일문(湖南第一門). 까치말(鵲村)이 짓고 강암(剛菴)이 썼다는 현액이 뜻만큼이나 힘이 좋다. 호남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라는 뜻인데 낙후한 고장을 ‘제일’이라는 말로 고무하려했다니, 대가들의 청고한 뜻과 운필의 역량이 생전에 그토록 아낀 고을에 부디 활력과 품격을 불어넣기를!자, 이제 길을 택할 차례이다. 연꽃은 말랐고 창포 속의 뜸부기도 날아가 버렸지만, 덕진(德?)에 가서 한숨돌리고, 국립국악원으로, 소리문화의 전당으로, 전주예술회관으로 한바퀴 도는 것이 좋은 시작이다. 전주천 뚝방을 따라 가면서 흐르는 냇물과 스치는 바람에 여인네 빨래방망이 소리를 상상해 보는 것도 여유 있는 길이다. 이리 저리 돌지 않을 양이면 곧장 도심을 통과하는 길이 있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여느 도시와 구별될 만한 경관상의 특별한 징표는 없다. 비단 전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몇몇 신도시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가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지만, 도시경관에 자연이 살아나고 역사가 되비치는 경우가 드물다. 그건 아주 애석한 일이다. 서울에서 보던 것과 다르지 않은 간판들 사이로 그나마 호남, 전북, 전주가 붙은 상호들이 섞여있고, 태극선을 응용한 전주비빔밥 표지가 눈에 띄는 것으로 위안을 삼아 본다. 그러고 보니 서울에서도 비빔밥은 전주비빔밥이라야 통한다. 요새 세상에 서울에 분점 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큰 자랑인가? 비빔밥과 함께 시·서·화(詩書畵)에 가·무·금(歌舞琴)까지 전주문화가 ‘몽땅’ 세계로 나아가기를 기대해본다. 사실 전주를 찾는 나그네의 큰 즐거움은 음식점이나 다방, 사무실과 여염집 할 것 없이 어디나 사람이 머무는 곳이면 아무리 누추하고 비좁더라도 여백을 찾아 걸려 있는 액자들이다. 그 풍아한 멋은 정갈한 음식맛, 자지러지게 감고 돌아가는 사투리와 함께 자연의 소여와 역사의 영욕이 교직되어 나온 전주 문화의 정수일 게다. 내가 지금 달려가는 곳은 한옥보전지구이다. 거기 어디쯤에서 전주가 가장 전주다울 거라는 생각에서다. 여기서 전주답다는 말은, 고상한 문화경관과 거기서 느껴지는 전통의 향기를 일컫는다. 그렇다고 전주를 후백제나 조선시대에 붙들어 두고 싶다는 말은 아니다. 도시는 그 자체가 박물관이기는 하지만, 진열장 속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생동하는 것이기 때문이다.태조로(?祖路)는 오목대(梧木臺) 가기 직전에 오른쪽으로 난 내리막길이다. 좌우로 늘어선 한옥들이 한눈에 전혀 다른 분위기를 드러낸다. 입구에 세워진 큼직한 비석도 멋쟁이다. 인도가 따로 확보된 것이 고맙고, 가로등의 디자인도 고풍스럽다. 들머리 전주명품관에는 선자청과 한지관, 오목대특산관이 들어 있고, 민속장터를 건너 이어진 전주공예품전시관은 생활공예점, 명장공예관, 체험관, 기획관, 공예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합죽선과 태극선, 밥상보랑 한복, 갖가지 전통서린 특산품이 보기에도 좋고 사도 좋다. 이런 기회에 갖가지 한지를 구해두는 것도 잊지 말아야지. 도자기 빚기, 옷감 물들이기, 연 만들기와 같은 체험도 직접 해보면 바라보기보다 훨씬 재미있다. 어쩐지 사람을 포근히 안아들이지 않는 것은 한식 건물이 우람해서라기보다 사람이 사는 집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의 때가 묻지 않아 이름에 덜 어울리고, 솔직히 뭔가 덜 익은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게 어딘가? 길 건너에 예스러운 이름을 가진 찻집과 한식집들이 있어 쉬어갈 수도 있겠다. 잘 하면 그럭저럭 사람의 체취를 모아갈 수 있겠거니, 자위하면서 몇 발짝을 더 나가 본다. 웬걸, 좁은 골목 안에는 살림 사는 진짜 한옥들이 줄줄이 섰다. 그 속을 헤매다 보면 동학기념관과 전통술박물관에 전여고 생활관을 개조한 한옥생활체험관을 만날 수 있다. 전주 한옥 중 명가라고 할 학인당(學忍堂)은 건축의 양식도 훌륭하지만 효자의 집으로 더 유명하다. 다시 태조로 큰 길로 나오면 잘 정돈된 기와 담장 너머로 경기전(慶基殿) 내정이 훤하다. 몇 겹의 문을 지나면 하나밖에 안 남았다는 태조 이성계의 초상화가 보관된 본전(本殿)에 이른다. 어용(御容)은 익선관을 쓰고 곤룡포를 입었는데 근엄한 표정에 위엄이 넘친다.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의자에 반듯이 앉아 온종일 대왕의 이름을 붙인 백성들의 길을 내다보고 있다. 어진의 뒤편에는 사당이고, 왼쪽으로 두둥실 전주사고(全州史庫)가 자랑스럽다. 관민이 합심하여 전화(戰禍)를 뿌리치고 조선왕조실록을 오롯이 이었으니, 빈집이라도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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