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물결’ 기독교마저 삼키나
‘왼쪽 물결’ 기독교마저 삼키나
  • 이원우
  • 승인 2014.01.13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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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1월 하순 정의구현사제단(정구사)의 시국미사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다. 특히 박창신 신부의 연평도 포격 발언은 종교가 과연 현실문제에 대해 어디까지 발언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격렬한 토론을 야기했다.

모든 천주교 성직자와 신자들이 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겠으나 정구사로 대표되는 천주교 일부의 좌편향은 여전히 커다란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1974년 발족돼 올해로 창립 40년을 맞는 정구사는 이미 오랫동안 국가보안법 폐지, 주한미군 철수, 제주해군기지 반대 등의 주장을 해 오고 있으며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런 한편 불교 역시 작년 말과 올해 초 정치 논쟁에 휘말렸다. 파업을 결행한 철도노조가 조계사로 피신했기 때문이다. 백성곤 철도노조 홍보팀장은 “경찰이 민주노총까지 침탈하는 상황에서 사회적 약자를 돌보고 우리 사회의 양심을 지켜오신 종교계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조계사와 조계종 총무원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게 종교계 의무”라고 천명하며 이들을 두둔했다. 철도노조를 ‘사회적 약자’로 본 조계사의 판단에 대해 설왕설래가 오간 가운데 종교가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범위가 어디까지여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에는 다시 한 번 불이 붙었다.

이런 가운데 급기야는 기독교에서조차 反정부 기조가 고개를 들고 있다. 천주교나 불교에 비하면 보수적인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짙었던 기독교이기 때문에 이와 같은 변화는 신도들이나 국민들에게 상당히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 기독교 내부의 좌편향 움직임을 심층적으로 들여다본다.

‘MB-박근혜 OUT’ 개신교 1만인 시국선언 추진

최근 뉴스부터 살펴보자. 2013년 12월 30일 서울 서초구 청계재단 앞에서는 ‘이명박 구속-박근혜 사퇴’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내건 일군의 기독인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체의 이름은 ‘이명박 구속과 박근혜 사퇴를 위한 기독인 1만인’이며 목회자들과 평신도들로 구성돼 있다. 이름처럼 1만 명의 사람들이 실제로 모인 것은 아니나 1차로 모인 2000여명의 이름으로 1월 초부터 시국선언 내용을 일간지 광고로 낼 계획을 추진 중이다. 이제 시작인 셈이다.

이들은 시국선언문에서 자신들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성경을 인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뱀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심판을 피하겠느냐?”(마태 23:33)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일의 책임은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갈 것이다.”(마태 23:36)

시위 현장에 참여한 최헌국 촛불교회 목사는 이명박 前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을 ‘범죄자’로 묘사하는 것도 망설이지 않았다.

“지난 5년간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은 (그가) 구속될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줬고, 무엇보다 지난 대선의 불법과 부정을 당시 대통령으로 방치, 자행한 게 명백해졌다. (…) 지난 독재정권보다 더 큰 희생이 발생하지 않을까 싶다. 그 마음을 담아 사퇴 선언을 외칠 수밖에 없다.”(12월 30일 오마이뉴스 보도)

‘촛불교회’라는 이름은 기독교 내부에서 번지고 있는 시위문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미FTA 반대를 위한 촛불시위 현장에서부터 조금씩 시작된 촛불교회는 정해진 형태의 교회가 아니라 매주 목요일 거리에서 드리는 현장예배 기도회를 의미하는 명칭이다.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 현장이나 2009년 용산 희생자 합동분향소 등에서 치러진 이 예배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방식으로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현 정부와 반대되는 성향의 논조가 반드시 거리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10년 좌우 교단이 평화통일을 염원하며 연합한다는 취지로 창립된 초교파단체 창립된 ‘평화와 통일을 위한 기독인 연대’(평통기연)는 온오프라인에서 포럼 개최, 책자 발간, 유관단체 협력사업 등을 이어가며 활동 중이다.

김명혁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이만열 前 국사편찬위원장, 이승만 미국장로교 前 총회장 등이 상임고문으로 돼 있는 평통기연은 현재 길자연(서울 왕성교회) 박종화(서울 경동교회) 손인웅(서울 덕수교회) 이영훈(여의도순복음교회) 이종복(인천 은혜감리교회) 홍정길(남서울은혜교회) 목사 등이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평통기연은 특히 통일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작년 11월에는 ‘세계 인권의 날 기념 북한인권포럼’을 개최하기도 했다. 좌파성향의 단체들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고무적인 움직임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평화’와 ‘통일’이라는 단어의 뉘앙스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북한 정권에 대한 평통기연의 입장은 매우 유화적(?)이다. 이들이 말하는 ‘평화통일’이 과연 북한 주민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보수적 인권 의식과 공존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는 지적이 생기는 것도 그래서다.

11월의 북한인권포럼에 참가해 발언했던 정 베드로 북한정의연대 대표는 “북한인권 문제를 주민의 입장이 아닌 정권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현재의 체제를 인정한다는 전제는 다소 논의가 힘든 것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최대교단 예장통합도 정부비판 성명 … ‘충격’

담론의 방향이 왼쪽으로 치우친 한국의 상황을 감안하면 기독교인 중에서 좌파성향을 가진 신자들이 존재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중요한 시기마다 막말 파문을 일으켜 이제는 ‘애국 보수’라는 칭찬(?)까지 듣고 있는 나꼼수의 김용민도 목사의 아들이자 기독교 신자로서 기독교 문제에 대한 책을 쓰기도 한다. 사회 곳곳에 빠르게 퍼지고 있는 반정부 시국선언이 기독교만 피해가라는 법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최대의 교단인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예장통합)이 반정부 기조를 드러냈다면 그때는 얘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다. 작년 12월 12일 대림절에 맞춰 김동엽 예장통합 총회장은 국가정보원과 국방부사이버사령부의 대선 개입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내용의 목회 서신을 발표해 좌파성향 언론들을 열광시켰다.

김 회장은 “국정원 대선 개입으로 인한 국론분열”을 거론하면서 “민주주의 원칙과 국민의 주권을 무시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 시국 상황에 대해 책임 있는 당국자들의 사과와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예장통합총회 회장의 목회 서신은 신학을 공부하는 대학생들이 잇따라 시국선언문을 발표하는 데 물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진작부터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 있는 행동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던 장신대 학생 440여 명 이외에도 부산장신대와 호남신대 등 지역 신학교 학생들이 작년 말 연이어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것이다.

나아가 예장통합은 작년 12월 19일 ‘오늘의 시국 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시국토론회 및 기도회를 개최했다. 총회 사무총장인 이홍정 목사는 “냉전의식이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다 (…) 참으로 안타깝다”며 마치 민주당의 성명과도 비슷한 격려사를 전했다. 그러면서도 “정치 이데올로기를 논하는 자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강연자로 표창원 前 경찰대 교수를 섭외함으로써 기독교 본연의 취지를 탈색시켰다는 지적을 받았다.

좌우로 분열돼버린 예장통합 신년하례회

표 前 교수는 “현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가 잘못된 일에 대해 인정하고 엄중조사해서 책임자 처벌과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면 이미 끝났을 일”이라며 국정원 문제에 대한 예의 주장을 반복했다.

표 前 교수의 시국진단에 이어서는 김형민 호남신학대 기독교윤리학 교수가 ‘인권회복을 위한 교회의 공적 책임’에 대해 강연했다. 기독교 최대 교단이 주최한 토론회라고 하기에는 충분히 정치 이데올로기적인 자리였다는 비판이 뒤따를 수 밖에 없었다.

예장통합이 결국 12월 20일 개최하기로 했던 비상시국 금식기도회를 연기한 것은 이들에게 쏟아진 신도들의 성토와 실망감이 얼마나 컸는지를 방증한다. 2014년 1월 2일의 신년하례회에 금식기도회를 겸하겠다고 밝힘으로써 예장통합의 2일 행사에는 평소보다 더 많은 시선이 꽂혔다.

지난 1월 2일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린 예장통합의 신년하례회 및 나라와 민족을 위한 금식기도회는 목회자, 장로, 평신도 등이 대강당 1·2층을 가득 메운 가운데 진행됐다.

김동엽 총회장의 신년사가 이 날 행사의 논조를 대변할 것으로 예상된 가운데 김 회장은 “특별히 어려운 이때 나라를 이끄는 대통령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고, 국민들의 목소리에 겸손히 귀를 기울이는 가운데 국정을 잘 운영해가는 복된 한 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 대신 ‘덕담’을 건넨 이 표현에 대해 미디어오늘을 비롯한 좌파성향 매체들은 “결국 보수 기득권이 지배하고 있는 기독교 집단은 별 수 없다는 비판을 피하기 힘들게 됐다”며 비아냥거렸다.

또한 김 회장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공의와 정의를 외쳤던 옛 선지자들의 뒤를 따라 부정과 불의가 어둠 속에 스며들지 못하도록 진리의 횃불을 높이 들어야 한다”고 말한 부분에 대해서도 “어떤 부정과 불의인지를 지목하지 않았다”며 비판했다.

비록 정부에 비판적이던 입장에서는 한 걸음 물러선 모습을 보였으나 이날 행사는 김 회장의 12월 목회 서신이 어떤 파급효과를 불러왔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기도 했다. 예장통합 내 개혁그룹에 속한 목사들은 행사장에서 그들이 스스로 작성한 시국선언문을 참석자들에게 배포했으며 단상 위에서 선언문 낭독을 시도하다 끌려 내려오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주최 측이 배포된 시국선언문을 회수하려는 과정에서는 약간의 마찰이 일어나기도 했다. 급기야 김 회장의 신년사에 불만을 가진 일부 목사들이 본부 사무총장을 집단 항의 방문하는 일도 일어났다. 거리로 나선 신도들과 예장통합의 흔들림은 한국 기독교계에 둔중한 파열음을 울리며 잔뜩 꼬여있는 정국의 ‘복음’을 더 멀게 느껴지도록 만들고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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