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취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년 어디로 가고 있나
[심층취재] 대한민국역사박물관 1년 어디로 가고 있나
  • 미래한국
  • 승인 2014.01.14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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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박물관 코너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문을 연 지 1년을 넘었다. 당초 일부 시민단체에서 역사 편향성과 졸속 개관을 우려하며 반대했지만, 벌써 관람객 100만 명을 넘어서며 국내 대표적인 역사박물관으로 자리 잡았다. 초등학생부터 60대 이상 고령층까지 다양한 세대 관람객의 발길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실질적으로 국민 대상의 역사교육센터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1년 만에 100만 명 관람객 다녀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1870년부터 현재까지의 현대사를 조명하는 역사박물관이다. 역사를 알린다는 점에서 일반 유물박물관과 다르고, 이 박물관의 대상인 현대사는 역사 중에서도 이론의 여지가 많다.

박물관의 주익종 학예연구사는 “19세기 이전을 다루는 국립중앙박물관이나 20세기 이후가 중심인 민속박물관은 주로 과거 유물을 모아 전시하는 데 주력하지만,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역사에 초점을 맞춘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면서 “특히 현대사라는 게 논쟁의 여지가 많아 세계적으로도 현대사박물관이 많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해외의 현대사박물관은 독일과 일본 정도라는 게 주 연구사의 설명이다.

이 박물관은 2008년 8월 15일 이명박 대통령이 필요성을 처음 언급한 이후 2009년 추진단이 만들어져 준비기간 3년 반 정도를 거쳐 2012년 12월 26일 개관했다. 보유 유물은 개관 후에도 꾸준히 늘어나 현재 5만2천여 점.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관련 유물을 수집, 전시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31일, 2013년의 마지막 날에도 박물관은 방학을 맞은 초중등학생들과 30,40대 부모들, 그리고 대학생과 노인, 외국인 관람객으로 붐볐다.

박물관 측에서 밝히는 건립 의도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도전과 성취, 그리고 그 과정에 녹아져 있는 고통과 노력이다. 이런 맥락이 얼마나 잘 구현됐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자원봉사자인 안내 해설사와 함께 1시간 정도의 박물관 투어를 진행했다.

박물관은 모두 네 개의 전시실로 구성된다. 개화기와 일제시대를 다루는 제1실 ‘대한민국의 태동’(1870~1940년), 1940년 이후부터 1960년까지 대한민국정부의 수립 직후를 다루는 제2실 ‘대한민국의 기초 확립’, 1960년대부터 1980년대 후반을 조명하는 제3실 ‘대한민국의 성장과 발전’, 마지막으로 8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제4실이다. 전체적으로 역사책의 한 장, 한 장을 써내려 가듯이 우리 현대사의 중요한 대목들을 순차적으로 요약해 보여준다.

개항으로 시작한 개화기의 굴곡, 상해임시정부에서 이어진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 남북 분단과 6·25전쟁, 그리고 1960년대부터 시작된 성장의 역사, 그리고 민주화 운동 등이다.

현존 최고(最古) 태극기

특히 제2실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6·25전쟁을 다루는 대목은 기존 역사학계와는 다른 진일보한 모습을 보였다. 안내하는 해설사는 설명 없이 지나쳤지만 영상물을 통해 1948년 8월 15일 남한에서 성립된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 정부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고, 별도 코너를 만들어 6·25전쟁이 남침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엔 소련의 비밀 전문과 남침 작전 계획서가 전시돼 있다.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국민들을 대상으로 대한민국의 올바른 역사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디테일한 효과에 신경 쓴 흔적도 많이 보였다. 개화기나 일제강점기, 6·25전쟁을 보여주는 1, 2 전시실은 천장이 낮고 조명도 어두웠다, 그리고 중간 중간 영상물을 볼 수 있는 디지털 영상존이 마련돼 관람객의 이해를 도왔다.

현대사에서 ‘누가’가 사라졌다

졸속 개관이라고 비난을 받았지만 그동안 유물의 질과 양도 많이 향상됐다. 현존하는 최고(最古) 태극기부터, 고종이 이탈리아 왕에게 보내는 친서, 을사조약 소식을 듣고 자결한 민영환이 명함에 친필로 쓴 유서 등 대한제국 말기 유물부터, 정부 수립 초기 유진오의 제헌헌법 초본, 6·25전쟁이 북한과 소련의 계획적인 남침이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스탈린의 암호 문서 등 역사적 의미를 가진 유물이 꼼꼼하게 모아져 당시 역사를 말하고 있었다. 최초의 국정국어교과서, 최초의 자동차인 ‘시발차’ 최초의 국산 라디오인 A-501 등 과거 생활상을 알 수 있는 전시물도 눈에 띄었다.

고종황제 비밀문서

 

하지만 한계도 명확했다. 이 현대사박물관에는 역사적 사실과 결과는 있지만 기묘하게도 현대사의 중요한 장면마다 ‘누가 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박물관 내 주요 해설판과 안내하는 해설사의 설명에서 이승만, 박정희의 이름을 의식적으로 삭제했기 때문이다. 편향성 지적을 과도하게 의식한 탓이다.

예컨대 박정희 대통령을 미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까지 받았던 제3실은 입구에 있는 경제개발 계획부터 새마을운동이나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주요 정책의 해설에서 정작 정책들을 주도해 성공한 박정희의 이름은 없다.

‘1961년에 군사 정부는 경제개발에 착수하여 경제기획원을 설립하고 경제개발5개년 계획을 추진하였다. 수출 지향 공업화 전략을 고안하여 (중략) 또 정부는 중화학 공업 육성 계획을 세우고’(경제개발 계획)

‘국내 여론이나 세계은행은 건설 계획에 부정적이었지만, 정부는 (중략) 건설 인력을 투입하여 그들의 피와 땀, 끈기로 매우 짧은 기간에 저렴한 비용으로 공사를 마쳤다.’(경부고속도로 건설)

‘1970년경부터 낙후된 농촌을 살리기 위해 새마을운동이 추진되었다. 이 운동은 마을길을 넓히거나 초가집을 양옥집으로 (중략) 새마을운동은 농민들의 잘살아 보겠다는 의욕을 자극하여’(새마을운동)

해설만 보면 어떤 정부가 이런 일을 했는지조차 알 수 없다. 이에 대해 현대사박물관의 다른 관계자는 “박물관 내 해설판에 전임 대통령 이름이 어느 정도 횟수로 적혀 있는지, 그리고 긍정적, 부정적인지 여부도 정리해서 야당에 보고해야 했다”며 “그렇기 때문에 현대사박물관에선 사람이 사라지고, 실체적 사실조차 실제보다 축소됐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 결과는 단순히 사람만 사라진 게 아니다. 주인공이 없으니 전체적으로 스토리가 연결되지 않는 게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니 박물관을 다 보고 나도 우리 현대사가 하나의 맥락으로 이해도 안 되고 기억에 남는 것이 많을 까닭도 없다.

스토리가 부족한 이유는 더 있다. 특정인의 이름을 거론하기조차 어려운 분위기이니 현대사 주요 성과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기는 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해설판의 내용을 기반으로 교육을 받고 안내하는 해설사들도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의 성과를 애써 외면하기는 마찬가지다.

실제로 1시간의 안내 투어를 마치면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나 6·25전쟁이 갖는 의미, 또는 1960년대 반공이나 한미동맹 확보의 의미, 아니면 경제 성과를 낸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을 성취해낸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단지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만 남을 뿐이다.

1970년대 문화

 

그도 그럴 것이 4·19혁명이나 1960년대 초반 한일회담, 70~80년대 민주화운동 같은 특정 대통령에 대해 부정적인 설명에서는 실명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관련된 해설판 내용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편향적 역사관 그대로

‘이승만의 독재 정치로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고 국민의 불만이 쌓였다. (중략) 학생과 시민의 시위가 계속되자 결국 이승만은 사임하였다.’(4·19혁명)

‘박정희 정부는 경제 개발에 필요한 자금을 얻기 위해 10년을 끌어온 한일 국교 정상화 회담을 서둘렀다. (중략) 야당과 대학가에서는 이를 굴욕 매국 외교라 하여 강하게 반발하였다. 박정희 정부는 군대를 동원하여 이를 억누르고’(한일회담)

‘박정희는 군을 동원하여 자신의 종신 집권과 무제한의 권력 행사를 보장한 유신 체제를 구축하였다’(유신 반대)

당시 남북관계, 국제정세 등의 상황에 대한 이해나 안보 또는 경제 성장에 대한 객관적 평가 같은 앞뒤 맥락 없이 이런 해설을 보고 비슷한 설명을 들으면 관람객들에게 비친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은 국민들에 의해 끌어내려진 독재자일 뿐이다.

더욱이 사실관계에 논란이 있는 5·18의 시민 살상 등 현대사 이슈에 대한 설명이나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등의 반미 운동을 민주화 운동으로 호도하는 대목은 좌편향적 역사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기도 하다.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 조치 다음날인 5월 18일부터 광주에서는 계엄 해제와 김대중 석방을 요구하는 학생·시민을 계엄군이 무자비하게 살상하였고’(5·18)

‘제5공화국 전두환 정부의 철권통치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의 반정부 시위는 계속 일어났다. (중략) 급진 학생운동 세력은 노동운동을 지원하는 노·학 연대 투쟁과 더불어 서울 미국문화원 점거 농성, 대학생 전방 입소 거부 투쟁 등의 반미 자주화 운동에 힘을 기울였다.’(1980년대 민주화운동)

관람객 투어를 이끄는 해설사는 5·18에 대한 설명에서 친절하게도 “전두환 정권이 시민들을 총으로 죽여서 시민들이 저항했다”고 친절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국내 최초의 자동차 - 시발자동차

 

같은 맥락에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남북 분단의 원인이나 현실, 북한의 도발에는 무관심하다. 남북 분단의 원인을 별다른 설명 없이 단순히 미소 냉전의 결과로 국한한다든지 1960년대 이후 반공 정책을 ‘반정부인사를 용공으로 몰아 탄압하는 데 악용되기도 하였다’고 설명하는 수준이다.

남북, 누구도 잘못은 없다? 

특히 박물관에서 거의 유일하게 남북관계를 다룬 ‘대립과 화해를 거듭한 남북 관계’ 코너조차 ‘휴전 후 남북관계는 대립과 화해가 얽히며 펼쳐져 왔다. 무장 공비 남파, 잠수함 침투, 포격 등 북한의 군사 도발 (중략) 김대중·노무현의 정부의 정상 회담을 통한 공동 성명과 합의서 발표, 남북한 UN 동시 가입, 금강산 관광, 개성 공업 단지 입주 등과 같은 남북 화해의 노력도 펼쳐졌다’라는 해설이 전부다. 천안함, 연평해전, 연평도 포격은 잘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인 남북 관계를 외면하다 보니 1980년대 후반부터 현재를 다루고 있는 ‘대한민국의 선진화, 세계로의 도약’ 관은 현실과 동떨어지고 유명무실해졌다.

이 박물관의 관계자는 “대한민국의 역사이기 때문에 북한 부분은 축소된 면이 있고 공간적으로도 한계가 있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북한의 위협이 엄중한 현실이기 때문에 박물관 내에서 비중이 미미한 것은 사실”이라고 해명했다.

결국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대한민국의 정체성과 성과를 바로 세우는 첫발은 내디뎠지만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당초 목표가 흔들리고 있는 형국이다.

전시실의 비중이나 이름이 문제가 아니다. 실질적인 해설판의 문구 하나하나와 해설자들의 설명, 또는 해설 대상의 취사선택은 여전히 대한민국 역사에 대해 비판적인 역사학계의 편향된 시각이 남아 있다.

박물관을 둘러본 관람객은 아마 자동적으로 주어진 경제 성공의 기반 위에 민주화운동이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몰아낸 정도로 대한민국 현대사를 이해하지 않을까. 그리고 건국 초기부터 꿋꿋이 지켜온 반공 정책이 조롱당할 뿐 아니라 남북관계에서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정상회담만 강조되는 것도 박물관의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2014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이제 우편향이 아니라고 항변할 게 아니라 사실에 맞는 역사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어찌 보면 2013년을 뒤흔든 역사교과서 논쟁의 또 다른 한 단면이 남은 모습이다.

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독일 라이프치히 현대사포럼박물관

백 마디 말보다는 현장 유물로 보여주기

 

독일의 현대사박물관은 서독의 발전, 동독 공산주의의 실패와 인권 탄압이라는 기획이 명확하다. 물론 이 박물관을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사적 사건의 원인부터 결과까지, 모든 스토리를 보여주는 디테일한 유물과 해설사의 꼼꼼한 설명이다.

우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해설사 투어가 140여 년의 역사를 1시간 동안 요점만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이라면 독일 현대사박물관은 충분한 시간을 갖고 질의응답 식으로 진행된다.

라이프치히 현대사포럼박물관은 본에 있는 독일역사박물관의 부속 기관이다. 본에 있는 박물관이 독일 근대사를 좀 더 전체적으로 다룬다면, 라이프치히 박물관은 주로 동독의 공산주의 정권의 독재성과 국민에 대한 억압, 그리고 시민들의 저항을 위주로 보여준다.

이 박물관은 동독 정부의 성립과 분단 과정뿐만 아니라 동독 주민의 생활상, 인권 탄압, 민주화 운동을 매우 자세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이런 부분들은 모두 동독의 산업시설, 선전 포스터, 전화기, 자동차 등 디테일한 전시품과 해설사의 자세한 설명으로 가능해진다.

예컨대 동베를린에 있는 형제를 구해오기 위해 타고 갔다 온 경비행기나 동독 정권에 저항하는 시위대의 유인물이나 플래카드 등은 당시 역사적인 현실을 잘 표현해 준다.

라이프치히=정재욱 기자 jujung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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