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태풍 재난, 60년 우정 되살려”
“사상 최대 태풍 재난, 60년 우정 되살려”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4.01.15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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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의 대사와 함께하는 세계여행] 루이스 크루즈 주한 필리핀 대사
 

필리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마닐라, 세부, 보라카이 등의 관광지도 있지만 우선 최근엔 지난해 11월 발생한 세계 기상 관측사상 가장 강력했던 태풍 ‘하이옌’이 떠오른다. 필리핀 국민 약 1만2천여 명이 숨지거나 실종됐고 자그마치 1천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해 우리나라를 비롯 국제사회의 지원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1950년 6·25전쟁 당시 필리핀은 ‘선진국’으로서 군대를 파병해 우리와 함께 싸웠으며 전후에는 경제원조를 통해 우리가 잿더미에서 일어서는 데 도움을 줬다.

현재는 많은 한국인들이 관광객으로 필리핀을 방문하고 있다. 그 숫자가 필리핀 해외 방문자 중 1/4에 해당할 정도로 많다고 한다. 또한 수만명의 필리핀인들이 한국에 국제결혼 또는 취업을 위해 한국에 거주하고 있어 우리 사회의 다문화화에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말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위치한 주한 필리핀 대사관을 방문, 루이스 크루지 필리핀 대사를 만나 양국관계와 필리핀에 대해 궁금한 점들을 물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필리핀과 잘 몰랐던 필리핀, 어떻게 다를까? 대사와 함께하는 세계여행 제 13탄, 필리핀으로의 지면여행을 떠나보자.

루이스 크루즈 주한 필리핀 대사

- 지난 11월 발생한 태풍 하이옌으로 인한 피해가 상당히 컸지요. 먼저 위로를 드립니다. 현재 상황은 좀 어떤가요?

정말 끔찍한 비극이었습니다. 역사상 최대 규모의 태풍으로 인해 1만2천명의 필리핀인들이 죽거나 실종됐고 무려 1천만명이 이번 해일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고 이재민이 됐습니다.

그러나 사태 직후에 국제사회가 따뜻한 온정의 손길을 보내줘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히 한국은 정부 뿐 아니라 민간 기업들도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완전한 복구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1천만명 피해복구가 국제사회 경쟁? 우리에겐 한가한 생각”

- 피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도움이 절실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미국, 중국, 일본 등 강대국들이 필리핀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앞다퉈 경쟁하는 모양새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피해 규모가 워낙 엄청나기 때문에 지금도 이재민들은 식량 및 물자 부족에 크게 시달리고 있습니다. 필리핀은 무려 7천개의 섬으로 이뤄진 나라입니다. 필리핀 중부에 대부분의 섬들이 몰려 있습니다.

문제는 이 섬들 중 대부분이 지리적으로 고립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테면 한국은 반도국가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지역들을 차량이나 기차로 갈 수 있지만, 필리핀에서는 수천개의 섬에 가려면 배가 필요합니다.

특히 이런 재앙 상황에서는 더 그렇죠. 이번 태풍으로 인해 소실된 배만 해도 수만개입니다. 정부가 긴급 지원한 배는 수천개에 불과하구요. 이 정도면 저희가 얼마나 어려운 상황인지 감이 오실 겁니다. 사실 이 상황에서는 저희 입장에서 국제사회의 ‘영향력 싸움’을 논한다는 게 의미가 없습니다. 솔직히 그런 걸 생각할 겨를이 없죠.

- 많은 한국인들은 6.25전쟁 당시 필리핀이 파병을 통해 한국을 도왔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이번 태풍 피해 이후 한국의 지원은 어느 정도인지요.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이 바로 6·25 참전용사입니다. 작년에 경기도 고양시와 저희 대사관의 초청으로 ‘필리핀군참전비’를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고양시에 위치한 필리핀군참전비에서 ‘한국전쟁 정전 제60주년기념 필리핀 원정군 헌화식’이 있었죠.

현재 한국의 많은 종교인들이 현지에 와서 도움을 주고 있고 한국 군인들도 복구작업을 적극 돕고 있습니다. 그 외에 많은 NGO가 재난을 당한 필리핀 국민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접근이 쉽지 않은 필리핀 내 외딴 섬까지 와서 도움을 주시는 분들이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6‧25 때 우리가 도운 걸 한국인들이 지금 갚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한국 기업 해외 투자지역 1위 필리핀

- 현재 한국과 필리핀의 양국관계 현안에 대해 좀 얘기를 해주시죠. 우선 무역 규모와 그 내용은 어떻습니까.

작년(2012년) 양국의 무역 총액은 80억 달러에 달했습니다. 한국의 무역흑자 비율이 조금 높았습니다. 한국은 주로 전자제품과 차량을 수출하고 필리핀은 바나나, 파인애플 등 열대 과일들을 수출했습니다.

무역 뿐 아니라 투자분야에서도 한국은 동남아시아 지역에 투자를 늘리고 있는데, 작년에는 한국 기업들의 투자금액에서 필리핀이 베트남에 이어 두 번째였습니다. 다만 투자 기업들의 숫자에서는 필리핀이 1위였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동남아시아에서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3국과의 경제협력에 관심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아키노 필리핀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박 대통령의 임기 동안에 우리는 더 확대된 경제 협력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무역 역조 역시 조만간 개선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 에너지 분야에서의 협력도 특히 활발한 것으로 압니다.

그렇습니다. KEPCO(한국전력)가 필리핀에 오래 전부터 투자를 해 왔습니다. KEPCO 필리핀 현지법인이 조만간 화력발전소를 추가로 건설할 예정인데 필리핀 전체 전력에서 KEPCO의 발전소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무려 15%나 되고 계속 증가 추세입니다. 참고로 KEPCO는 90년대 초부터 일찌감치 필리핀에서 에너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 관광객 등 인적 교류는 어느 정도인가요. 한국과 필리핀에 거주하는 상대국 국민들의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요.

한국에서 일하는 필리핀인들이 약 4만5000명입니다. 필리핀 내에도 약 15만명 이상의 한국인들이 있구요. 필리핀을 찾는 관광객 수는 더 많습니다. 매년 100만명의 한국인들이 필리핀을 다녀갑니다.

지난 7년간은 한국 관광객들이 미국이나 일본, 중국 관광객들보다 더 많았습니다. 이들 3국에 비해 인구가 훨씬 적은 한국인들이 필리핀에 이토록 많이 왔다는 건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필리핀 해외 방문객 중 25% 정도가 한국인으로 외국인 중 가장 많은 규모입니다.

한국인 관광객 매년 100만 명, 미국 중국 일본 제쳐

- 한국인 관광객이 미국 일본 중국인 보다 많다는 것은 놀라운 일인데요, 관광객 층은 주로 어떤 사람들입니까.

신혼부부들의 비중은 의외로 적습니다. 영어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이 많구요. 골프를 즐기러 오시는 분들도 꽤 됩니다. 한국 분들이 제주도에서 골프를 많이 치는데 최근에는 제주도가 워낙 비싸져서 그런지 비행기로 4시간이면 오는 필리핀을 대안으로 생각하는 분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한국인 관광객 숫자가 많은 이유는 아마도 한국인들이 필리핀에 한번 온 후에 크게 만족하고 다시 찾는 경우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입니다.

- 최근 한국 사회에서 다문화 문제가 중요한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한국에 정착한 필리핀 근로자들이나 결혼 이주 여성들의 상황은 어떻게 파악하고 계신가요.

한국에 거주하는 4만5000여명의 필리핀인 중 절반은 근로자들입니다. 한국은 우리 근로자들의 권리를 잘 보호해주는 국가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듭니다. EPS(고용허가시스템) 프로그램에 따라 한국과 필리핀은 쌍무협정을 체결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필리핀에서 한국인 근로자들이 누리는 권리를 한국 내의 필리핀 근로자들도 동일하게 누린다는 내용의 협정입니다. 따라서 필리핀 근로자들은 한국에서 꽤 좋은 보호를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약 8천명은 국제결혼을 위해 정착한 여성들입니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자녀를 두고 있고 한국 문화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물론 한국에 잘 적응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선 언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국인 남편들이 영어를 잘 하는 경우도 드물구요.

그러나 여성부와 지방자체단체 및 일부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인해 이런 상황이 개선되고 있습니다. 한국 음식, 언어 및 문화에 필리핀인들이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필리핀 여성들은 한국에 와서 결혼을 한 후에 한국말을 능숙하게 배우고 학교 교사나 간호조무사 등으로 취업을 하기도 합니다. 최근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경찰이 된 여성도 있습니다.

- 필리핀 출신의 이자스민 의원의 성공 사례가 자주 언급됩니다. 이 의원은 자주 만나시나요.

바로 지난주에도 만났습니다. 이자스민 의원은 한국.필리핀 의원친선협회에 소속돼 있습니다. 이번 태풍 사태를 맞아 모국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한국이 필리핀 태풍 피해를 돕기 위해 파병을 하려고 결정했을 때 국회에서 단 한명도 반대를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2004년 이라크 파병 때와는 좀 달랐죠. 물론 이라크는 당시에 큰 전쟁이 있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좀 있기는 합니다.

 

미군 철수 이후도 군사협력 계속

- 미군이 필리핀에서 철수한 게 90년대 초반이었지요? 이후 필리핀 안보 상황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미군 철수 이후 안보가 불안정해졌고 이에 다시 미군 주둔을 요청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요.

미군이 철수한 시기는 1992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미군이 필리핀에 사실상 주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주둔하는 기지는 더 이상 없지만 매년 합동군사훈련을 위해 필리핀에 옵니다. 한 부대가 와서 합동훈련을 끝내면 다음 부대가 와서 다시 합동훈련을 하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1992년 당시 미군이 필리핀에서 철수한 건 미군기지 사용 계약 기간이 만료됐기 때문이었습니다. 필리핀 내에서 그 계약을 갱신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진행 중이었는데 미군이 주둔하던 공군기지 및 해군기지가 1992년 화산 폭발로 인해 피해를 입었습니다.

예상치 못한 자연재해로 인해 더 이상 기지를 사용할 수 없었기에 자연스럽게 철수로 이어진 거죠. 그런데 재미 있는 사실은 미군이 떠난 그곳이 재정비가 되고 현재는 한국인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겁니다. 경제특구로 지정돼서 여러 외국 기업들이 와 있는데 대부분이 한국 법인들입니다.

- 이슬람 반군의 테러 문제는 어느 정도인가요?

최근 반군단체와 평화협정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그 단체 중 한 부류의 강경파가 협정에 동의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참고로 필리핀에서 이슬람교도의 비율은 10%로 대부분이 남부에 거주합니다.

- 마지막으로, 대사님 개인에 대해 소개를 좀 해주세요. 한국 이전에는 어디서 근무하셨나요? 다음 임지는?

한국에 오기 전에는 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에서 국장으로 있었습니다. 말레이시아와 중국에서 근무했습니다. 한국에서는 6년간 대사로 근무했고 2월초에 임기를 마치고 필리핀으로 돌아갑니다.

필리핀에 돌아가서도 계속 ASEAN에서 한국 관련 업무를 하게 될 것이고 앞으로도 한국에 자주 방문하게 될 것 같습니다. 아내는 홍콩에서 대사로 있습니다.

인터뷰 / 김범수 발행인 www.kimbumsoo.net
정리 /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사진 / 신경수 기자 icf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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