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주의자의 소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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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4.02.06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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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고전 읽기: 키케로 <수사학>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이 설득의 대상인 인간의 이성과 감성 등 제반 증거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논증의 전제로 기술하고 있는 데 반해, 키케로의 <수사학 : 말하기의 규칙과 체계>는 상대적으로 연설과 변론에서의 기술적 측면과 이론적 측면을 함께 강조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키케로의 ‘수사학’은 그의 특장인 연설과 변론에 대한 전문적 식견과 통찰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는 연설가(orator)가 갖춰야 할 고유한 역량을 기술하고 연설의 기법, 특히 칭찬 연설, 정책 연설, 법정 연설의 핵심 요소들과 쟁점, 각 연설들의 효과적인 전개 방식을 제시하고 있다.

연설가에게 필요한 핵심 역량은 다섯 가지다. 발견(inventio), 배치(dispositio), 표현(elocutio), 연기(actio), 기억(memoria)이 그것이다. 키케로는 이것들을 연설가의 ‘고유한 힘’이라고 불렀다. 연설가의 설득력이 바로 이런 능력에서 나올 수 있다고 여긴 것이다. 최고의 연설가가 되기 위해 함양해야 할 덕목과 기량을 제시한 셈이다.

먼저 사람들의 마음을 어떻게 움직일 것인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신뢰를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방법을 ‘발견(inventio)’해내야 한다. 사람들을 어떻게 감동시킬 것인가의 문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청자(聽者)의 다양한 파토스(pathos, 감성과 정념)에 부응하는 수사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배치(dispositio)’의 문제에서는 연설에서 감동과 논증을 겨냥하되 연설의 목적에 따라 배열 방식이나 우선순위를 달리 구성해야 된다는 것이 핵심이다. 연설에서 단어의 선택과 단어의 연결 구성, 문법적 일치 등에 유의하고 전반적으로 ‘표현(elocutio)’이 명확하고 간결해야 한다.

또 연설가가 사안과 단어에 맞게 적정한 목소리, 몸짓, 표정을 짓는 ‘연기(actio)’를 통해서 설득력을 높일 수 있다. 아울러 연설가는 화제와 관련된 기록이나 기억을 잘 저장해 놓고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연설은 서론, 사실 기술과 논증, 결론 등 네 단계로 전개된다. 연설의 시작 단계에서 청중의 호감을 얻고 주의를 끌어오기 위한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사실 기술 부분에서는 명확하고 납득이 가도록 해명하는 ‘선명성의 규칙’이 적용돼야 한다.

키케로는 논증 단계에서 입증하고자 하는 주장을 관철시키는 방법과, 반박해야 할 경우 상대방의 주장을 무력화하는 방법을 다양하게 제시한다. 연설의 마무리 단계에서는 입증하거나 반박한 논지를 명쾌하게 재강조하고, 사안의 결론이 사람들에게 어떠한 이익을 주거나 해악을 끼치는 지를 분명하게 제시해 청중의 도덕적 감성을 불러 일으킬 수 있어야 한다.

키케로는 보편적 연설의 기법 이외에도 연설의 유형별로 적합한 연설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정책 연설에서는 정책의 유용성과 실현 가능성에 초점을 맞출 것을 강조한다.

이는 현대 정책학에서 정책 제안시 ‘소망성(social desirability)’과 실현가능성(feasibility)을 중시하고 있는 맥락과 그대로 일치된다. 키케로는 정부 정책이 입안될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잘 간파하고 있었던 것 같다.

키케로의 수사학은 매우 구체적인 연설의 기법을 담고 있다. 하지만 그가 제시하는 연설의 규칙은 말의 기교만으로 수행될 수 없는 것들이다.

서구 인문학(studia humanitatis)의 창시자답게, 인본주의(humanismus)를 실천하고자 애쓴 사람답게 그의 수사학은 인간의 본성을 잘 통찰하고 있다. 키케로는 인간 본연의 본성과 감성에 대한 깊은 이해와 논리로 설득될 수 있는 인간 이성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간파한 변론가이자 철학자였다. 이런 관점이 그가 제시하는 수사학에 관통해 스며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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