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고난을 넘어 新유럽의 선두로
폴란드, 고난을 넘어 新유럽의 선두로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4.02.11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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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의 대사와 함께하는 세계여행⑮ 크쉬슈토프 이그나치 마이카 주한 폴란드 대사
크쉬슈토프 이그나치 마이카 주한 폴란드 대사

폴란드의 역사는 종종 한국의 역사와 비교된다. 근접한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수많은 침략을 당해왔던 우리와 마찬가지로 폴란드는 이웃한 독일, 러시아로부터 오랜 수난을 겪어 왔으며 120여 년간 지도상에서 아예 이름이 사라지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을 전후해서는 소련에 점령당하면서 공산화가 됐고 장교 수만명이 한꺼번에 학살당하는 ‘카틴 숲의 비극’을 겪기도 했다.

한편 1989년 ‘동구공산권’에서 벗어나 선거에 의해 민주정부를 출범시킨 폴란드는 현재 1인당 GDP가 1만3000달러에 달할 정도로 유럽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다.

EU 전체 대학생들의 11%가 폴란드 학생일 정도로 높은 교육열로도 각광받고 있다. 본지는 지난 1월말 서울 종로구 사간동에 위치한 폴란드 대사관을 찾아 폴란드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낸 크쉬슈토프 마이카 주한 폴란드 대사를 만났다. 자, 그럼 폴란드로의 지면 여행을 떠나보자.

작년 정상회담, 전략적 동반자 관계 체결

- 한국과 폴란드가 외교관계를 수립한 지가 올해로 25년째입니다. 과거 공산권 적국에서 친구가 된 건데요, 우선 양국의 정치, 외교적 이슈와 현황을 좀 설명해주시죠.

양국 간에는 어떤 정치적인 갈등(conflict)도 없습니다. 인접국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 문제도 걸리는 게 없고 국제적으로도 충돌할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폴란드는 한국전쟁 이후 지난 60여년간 판문점 중립국위원회의 일원으로서 한반도 문제에 관여해 왔습니다.

스위스, 스웨덴, 체코와 함께요. 과거 ‘저쪽’(공산권) 편에 있었지만 그때에도 한국과는 비교적 껄끄럽지 않은 관계를 유지했죠. 현재는 판문점에 상주하지 않지만 휴전 상황 점검을 위해 작년에 폴란드 측 고문이 판문점에 3번 다녀간 바 있습니다.

- 작년 말에는 폴란드 대통령이 한국을 방한했지요. 주요 의제가 무엇이었나요.

작년 10월 브로니스와프 코모로프스키 폴란드 대통령이 경제부총리와 함께 방한해서 박근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성공적인 정상회담 이후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체결했습니다. 이건 지금까지 양국 관계가 이만큼 좋았다고 양국 정상들이 동의했다는 걸 의미합니다.

- 양국 간에는 군사협력도 진행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정 군사분야에서 한국의 기술 수준이 대단히 높습니다. 폴란드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양국이 협력을 한다면 서로 간에 이익이 될 겁니다. 폴란드는 나토 회원국이며 예전에는 바르샤바 조약 가입국이었습니다. 이젠 군사 장비들을 교체할 때가 됐습니다. 일부는 아직도 수십년전에 구매한 러시아 장비들인데, 이젠 더 고급화된 장비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 양국의 경제협력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습니까.

동구권이 붕괴되면서 1989년에 수교가 이뤄졌기 때문에 그리 긴 수교 역사는 아니지만 그간 양국이 손잡고 해낸 일들은 많습니다. 무역량만 봐도 35배나 증가했습니다. 수교 당시 무역 규모가 1억2500만달러에 불과하던 것이 지금은 2013년 기준으로 53억달러입니다.

유럽에서 가장 높은 교육열

한국 제품들이 폴란드에서 인기가 좋기도 하지만 한국 기업들이 폴란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습니다. 폴란드가 EU 가입국이기 때문에 EU시장, 특히 인접국인 독일 시장 공략을 위해서도 폴란드에 직접투자를 하는 기업들이 삼성, LG, SK종합화학 등 많습니다.

- 한국 기업들이 유독 폴란드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보십니까.

삼성은 폴란드에 R&D 센터를 3개나 운영하고 있습니다. 약 두 달 전에 크라코프에 신설한 센터를 포함해서요. R&D 센터의 규모도 중국 다음으로 크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바르샤바에 있는 삼성 R&D 센터에는 수천명의 폴란드인 연구원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물론 삼성이 자선사업을 하러 폴란드에 온건 아니겠죠.(웃음) 폴란드 정부와 국민들이 매력적인 투자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외국 기업들이 투자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앙정부의 지원 뿐 아니라 각각 지방정부들도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를 위해 추가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합니다.

이에 덧붙여 폴란드의 교육열에 대해서도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폴란드인들의 절반 이상이 35세 이하이며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은 우수한 인재들입니다. EU 내에서 평균연령이 이렇게 젊은 나라를 찾기 힘들기 때문인지, EU 전체의 대학생들 중 11%가 폴란드 학생들일 정도입니다. 폴란드인들이 교육에 얼마나 많은 투자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 스위스 같은 다른 유럽 국가들은 대학생 진학률이 낮은 것을 특징으로 하던데, 교육열이 높다는 것이 우리 한국과 비슷한 부분이군요.

그렇습니다. 폴란드인들도 한국인들처럼 좋은 교육을 받는 데 우선순위를 둡니다. 국립대학 뿐 아니라 고급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립학교들도 많이 있습니다. 매년 250만명의 폴란드인들이 대학에 진학합니다.

 

- 폴란드가 지난 25년간 이뤄낸 경제성장도 놀라운 수준입니다. 유럽경제가 어려울 때도 꾸준한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대단히 안정적인 금융·경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지난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와 최근 유럽 재정위기로부터 큰 영향을 받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우리는 이 두 번의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단 한 번도 마이너스 성장을 하지 않았습니다.

지난 5년간 폴란드의 경제성장률 누적치를 합산하면 약 18%로, 한국(15%)과 비슷합니다. 이로 인해 폴란드는 유럽의 녹색 섬(Green Island in Europe)이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불경기에도 타격을 입지 않은 경제성장 때문입니다.

유럽의 ‘녹색섬’ 5년간 경제성장률 18%

- 폴란드인들은 미래에 대해 대단히 긍정적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의 고성장 시대가 떠오르기도 하는데요.

폴란드인들은 미래에 대해 낙관적입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폴란드에서 낙관론자들의 비율이 80%에 달합니다. 다른 국가들은 평균 50% 정도인 걸 감안하면 꽤 높은 수치죠. 이만큼 사람들이 긍정적이고 행복해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걸 보면 왜 한국 기업들이 폴란드에 투자하는 걸 선호하는지도 답이 나오지요.

- 그런데 의문이 생깁니다. 높은 교육열과 미래와 경제 발전에 대한 긍정적 시각, 그 원동력은 과연 어디에서 비롯된 건가요. 어떤 특별한 정치적 리더십이나 정부 프로그램의 영향이 있었던 겁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정치에서의 일관성을 우선 꼽고 싶습니다. 어떤 정당이 집권하더라도 그대로 유지되는 로드맵과 기본 전략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개혁입니다. 공산당이 무너진 지난 89년 이후로 우리는 엄청난 개혁을 했습니다.

모든 것들이 변했습니다. 저는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의회에 있었는데 당시 폴란드 정치인들은 전체 국가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기 위해 맹렬하게 노력했습니다. 유럽 수준에 맞추도록 한 겁니다. 그렇게 엄청난 개혁을 추진했고 충격적인 치료법들을 썼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긍정적 시각이 만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또 국가가 개방되면서 젊은 세대가 서유럽의 선진화를 접하게 됐고 이런 과정에서 외국어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교육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너지 효과까지 있었던 거죠.

- 폴란드의 역사는 한국과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양국 모두 강대국들을 인근에 두고 있으며 이 때문에 역사적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이에 양국이 서로 공감하며 국제사회에서 협력해 나갈 수 있는 부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습니다. 서울과 바르샤바는 지리적으로 보면 엄청나게 먼 거리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보면 우린 실제로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동질감으로 인해 양국 관계가 갈수록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속담 중에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이 있죠. 강력한 인접국들과의 문제를 시사하는 속담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엔 중국과 일본, 폴란드는 독일과 러시아라는 강대국을 주변에 두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폴란드는 무려 123년간이나 나라를 뺏긴 적이 있습니다. 우린 1차 세계대전 후에 지도에 나타나서 다시 2차 세계대전 때 점령을 당했습니다. 이런 고통스러운 경험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양국은 잘 연계가 되는 듯합니다.

독일·러시아와 화해

- 최근 한국과 일본이 역사문제 등으로 외교적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그건 양국 간 문제로 어느 누구도 대신 해결해줄 수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보면 저는 긍정적으로 보는 편입니다. 유럽의 사례를 보면 역사적 문제들의 해결이 가능했습니다. 독일 통일만 봐도 그렇고 폴란드와 독일이 다시 신뢰를 회복한 것만 봐도 그렇습니다.

2년 전 우리는 독일대사관, 그리고 한국의 한 연구원과 함께 흥미로운 세미나를 진행했습니다. ‘폴란드와 독일의 화해 - 한국과 일본은?’이라는 주제였습니다.

중요한 인사들이 패널로 초청됐는데 폴란드에선 전직 총리가 오셨습니다. 독일과의 화해 문서에 사인한 장본인이었습니다. 폴란드의 한 성직자는 독일에 대해 이런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We forgive and ask for forgiveness.(우리는 당신들을 용서하고 동시에 용서를 구한다)”

또한 아시다시피 우린 러시아와도 힘든 시기를 겪었습니다. ‘카틴 숲의 비극’은 2차 세계대전 중에 1만명의 장교들을 러시아군이 죽인 사건인데요. 이젠 유가족들을 위해서 당시에 사망한 사람들의 이름을 공표하는 단계까지 왔습니다. 폴란드의 역사는 화해가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걸 보여줍니다.

- 폴란드인들이 보는 한국은 어떤 이미지입니까.

저를 포함해서 폴란드인들이 한국을 본격적으로 알게 된 건 88 서울올림픽 이후입니다. 서울올림픽은 대단히 중요한 이벤트였습니다. 그 이후로 동구권에서 한국의 인지도가 급상승했으니까요.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은 활력(dynamism)의 상징입니다. 그 짧은 시간에 그렇게 많은 변화와 발전을 이뤄냈다는 건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한국이 이뤄낸 ‘한강의 기적’은 폴란드에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폴란드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대단히 다이내믹한 경제성장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폴란드가 89년 이후 이뤄낸 경제성장도 ‘기적’으로 손꼽힌다고 합니다.

이것이 제가 개인적으로 공부하면서 한국에 대해 느끼게 된 점이구요. 아시아를 직접 경험하고 나서는 한국을 더 편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물론 한국에서의 생활은 대단히 바쁘지만 말입니다.

노벨문학상 5명 배출 저력

- 대사님 개인에 대한 소개를 좀 부탁드립니다.

저는 2011년에 주한 폴란드 대사로 부임했고 오는 3월이면 만 3년이 됩니다. 젊은 시절에는 공대를 나온 과학자였습니다. 과학기술분야의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인도에 위치한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적도 있습니다.

이후 외교관이 되고 인도, 스리랑카, 몰디브, 부탄 등의 대사를 지냈습니다. 폴란드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면서는 외교 및 유럽통합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고 한국에 오기 직전에는 외교부 아시아태평양 책임자였습니다.

- 폴란드의 유명한 인물로 마리 퀴리 부인이 있지요. 그런데 그 외 폴란드에 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소개를 좀 해주세요.

퀴리는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방사선을 발견한 것으로 첫 번째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고, 8년 후에는 폴로늄과 라듐을 발견하면서 노벨 화학상을 받았습니다. 퀴리의 큰딸 역시 남편과 공동으로 노벨상을 수상했습니다. 둘째 역시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그 외에 폴란드엔 노벨문학상 수상자들도 5명 배출했습니다.

- 폴란드에 대해 더 많은 걸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 어떤 교류 프로그램이 있나요?

대학들 간 교환학생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습니다. 주로 젊은 과학자들 사이에 교류가 많고 수많은 MOU들이 체결되고 있습니다. 또 양국 문화를 서로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주로 폴란드에 투자하는 한국 기업들이 폴란드어와 문화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물론 폴란드 내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도 뜨겁습니다. 주요 대학들에 한국문화와 한국을 배우는 학과들이 있습니다.

인터뷰 / 김범수 발행인 www.kimbumsoo.net
정리 / 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사진 / 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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