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북한인권 최종보고서는 北에 대한 최후통첩이다
UN 북한인권 최종보고서는 北에 대한 최후통첩이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3.04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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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30만이 학살된 유고 내전, 그리고 1년만에 100만이 희생된 르완다. 이 두 사건의 책임자들은 모두 ‘인간 백정’이라는 국제사회의 지탄을 받으며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됐다. 이제 북한 김정은이 유엔에 의해 ICC에 회부될 상황에 놓였다.

지난 2월 17일 발표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최종보고서는 북한에서 일어나는 각종 인권 탄압 사례를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이 문제에 책임이 있는 김정은을 ICC에 회부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미국의 CNN, 뉴욕타임스와 영국의 BBC, 가디언 등 주요 매체는 이 문제를 심도 있게 보도했다.

유엔 인권이사회는 3월 회의에서 북한을 대상으로 한 강력한 결의를 채택해 COI의 권고를 지지해야 하고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북한인권보고서를 UN 안보리와 총회에 즉시 전달해 행동을 취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국제사회가 북한인권 문제를 유고와 르완다 사태에 준하는 성격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다.

북한인권 문제가 국제사회에 주요 어젠다로 등장한 것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다. 김정은을 ICC에 회부하라는 주장이 등장하기까지 유엔 인권이사회는 이 문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해 왔다. 다만 무심한 한국 언론들과 정치권만이 이 문제를 회피해 왔을 뿐이다.

지난해 3월 유엔 인권이사회가 COI 설립을 골자로 한 결의안을 채택했을 때만 해도 과연 유엔이 북한인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있었다. 중국의 반대가 강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5월에는 마이클 커비 전 호주 대법관, 마르주키 다루스만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 소냐 비세르코 세르비아 인권운동가 등 3명이 COI 위원으로 임명됐고 커비 전 대법관이 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북한의 조직적이고 심각한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한 조사가 진행됐다.

COI는 북한의 인권 침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세분해 조사하도록 위임을 받았다. 식량권 유린과 정치범수용소와 관련한 전반적인 인권 침해, 고문과 비인도적 처우, 임의적 체포와 구금, 기본적인 인권과 근본적인 자유에 대한 조직적인 거부와 침해 등의 차별, 표현의 자유 침해, 생명권 침해, 이동의 자유 침해, 강제 실종 등 모두 9개 분야에서 조사가 이뤄졌다.

그후 COI는 지난해 8월 서울과 도쿄, 10월에 런던과 워싱턴 등에서 4차례 공청회를 열었다. 그 자리에서 80명 이상의 피해자와 전문가들이 북한인권 유린 상황에 대해 증언했다.

인공위성 통한 北 수용소 자료 검토

인공위성을 통해 북한 정치범수용소에 대한 자료가 위원회에 접수되면서 북한의 인권실태에 관한 수많은 증거자료들이 위원회에 제출됐다. 유엔의 북한인권보고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작성됐다.

400페이지 가까운 방대한 분량의 유엔 북한인권보고서에는 북한의 인권 유린 실태에 대한 구체적인 증언과 증거 자료들이 담겨 있어 지금까지 나온 북한인권에 관한 보고서 중 가장 권위 있는 국제기구 보고서로 평가된다.

이 보고서는 북한에서 사상과 표현, 종교의 자유 침해, 차별, 이동과 거주의 자유 침해, 생명권과 생활권 침해, 자의적 구금과 고문, 처형과 정치범수용소, 외국인 납치와 강제 실종의 사례들을 자세히 적시했다. 그러면서 이런 반인도적 범죄들이 체제 유지와 지도층 보호 등 정치적 목적에 따라 조직적으로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가장 주목을 끄는 부분은 커비 위원장이 북한 김정은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이다. 커비 위원장은 지난 1월 20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북한의 반인도 범죄에 대한 책임을 묻도록 유엔에 북한을 ICC에 회부할 것을 권고할 예정이라며 이 편지와 보고서에서 거론되는 반인도 범죄에 대한 책임을 질 사람 중 김정은 제1위원장도 포함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렇듯 유엔의 북한인권보고서가 구체적이고 행동을 포함한 결론을 내리자 미국을 비롯한 각국의 정계와 시민단체, 여론도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에드 로이스 미 하원 외교위원장은 보고서가 발표되자 즉각 성명을 내고 김정은에 대한 ICC 회부 문제를 환영했다. 미 대표단을 이끌고 한국을 방문했던 로이스 위원장은 “COI 보고서는 북한의 끔찍한 인권 실태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 냈다”며 “그동안 단 한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김정은 정권의 잔인함을 낱낱이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로이스 위원장이 “미국은 대북정책과 인권 문제에 보다 적극적으로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던 부분은 의미가 깊다.

 

전세계 인권단체들의 반응들

나비 필레이 유엔 최고 인권대표도 성명에서 COI 보고서를 환영하면서 “그동안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부족했던 가운데 끔찍한 반인권 범죄가 이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김정은에 대한 ICC 회부를 비롯해 범죄 책임자들을 제재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보다 구체적이고 강력한 행동을 요구하며 나선 것은 역시 국제 인권단체들이었다. ‘국제 엠네스티’의 피터 스플린터 제네바 지부장은 유엔 보고서를 계기로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 실태 개선을 위해 책임자를 ICC에 회부하는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국제 인권단체인 휴먼라이츠워치도 유엔 안보리를 통해 북한을 ICC에 회부하는 것은 적절한 조치라고 환영한 바 있다. 이 단체는 ICC가 르완다와 옛 유고슬라비아 제소 건과 같이 반인권 범죄에 대한 해결책을 수립해 왔다며 북한 특별법정 설립 검토를 촉구해 눈길을 끌었다.

주요 외신들도 북한인권보고서의 내용을 비중 있게 다뤘다. 미국의 CNN은 북한의 반인권 범죄에 대한 많은 증거가 나왔다는 보고서 내용을 자세히 전하는 가운데 마이클 커비 COI 위원장의 말을 인용해 “북한 주민들의 고통과 눈물은 국제사회의 행동을 필요로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은 북한을 ICC에 회부하는 방안이 유엔 안보리에서 의결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북한의 동맹인 중국이 거부권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영국의 BBC는 보고서에 포함된 북한인권 침해의 실상과 함께 탈북자들이 북한의 강제 수용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문 장면을 그린 그림 여러 장 등을 보도했다.

영국의 가디언 신문은 북한의 인권 탄압은 나치 시대와 비슷하다며 보고서 내용을 바탕으로 북한의 정치범수용소 위치를 나타낸 지도와 위성사진 등을 보도했다. 이 기사에는 18일 현재까지 북한과 북한을 옹호하는 중국 정부를 비판하는 댓글 등 2600여개의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국제 사회의 이 같은 여론은 워싱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지난 26일 미국 MS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모두가 엄청나게 걱정해야 하는 사악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던 부분은 미국이 북한인권 문제를 회피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그는 “북한의 부패와 인권 침해 정도는 의문의 여지가 없으며 122밀리미터 대공화기로 사람들을 제거하면서 주민들에게 이를 보도록 강요한다”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특히 “북한을 사악한 곳으로 규정한 뒤 책임을 물을 수 있도록 전 세계의 큰 관심이 필요하다며 적용할 수 있는 모든 법 규정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부분은 미국이 북한인권 문제를 계기로 북핵 이슈를 국제적 어젠다로 격상할 수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북한인권 문제로 가장 곤란을 느낀 쪽은 역시 중국이었다. 중국은 COI가 재중 탈북자 인권 문제를 조사하는 것에 반대해 왔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베이징에서 중국 정부 고위 당국자들과 북한 문제를 비롯한 양국 간 주요 현안들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는 중국으로서는 그야말로 거북함 그 자체였다.

케리 장관은 북한 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역할이 “독특하고 중요하다”며 중국이 좀 더 많은 역할을 해줄 것을 촉구했지만 중국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지난 2월 14일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 브리핑을 통해 “중국은 이미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있다”며 오히려 미국 등 다른 6자회담 참가국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했다.

미·중간의 북한인권에 대한 입장 차이는 이 문제가 양국간의 군사적 문제에서 벌어지는 갈등의 기폭제가 될 잠재성을 갖고 있다. 이미 북한을 ‘사악한 곳’으로 지목한 미국으로서는 그러한 악의 제국을 혈맹으로 삼는 중국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이 많기 때문이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중국은 각종 채널을 통해 6자회담 관련 국가들과 함께 노력하고 있고 각 국가와 밀접한 소통을 유지하고 있다”며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거듭 요구했던 배경도 북한인권 문제 등이 북핵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사전에 조기차단하려는 의지로 읽혀진다.

북한의 반응은?

그렇다면 정작 북한의 입장은 어떨까. 북한은 COI의 방북을 허가해 오지 않았다. 하지만 유엔의 북한인권에 대한 지속적인 이슈 제기에는 분명히 영향력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 북한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하지만 북한이 유엔인권보고서에 반응해 즉각적인 인권 개선에 나설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COI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북한에는 현재 14호(개천), 15호(요덕), 16호(화성), 25호(청진) 등 네 개의 대규모 정치범수용소에 15만명에서 20만 명이 수감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보고서는 아직 적발되지 않은 또 다른 정치범수용소가 더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공개한 북한 수용소 관련 동영상에는 수용소 감금생활을 했던 탈북자들의 생생한 증언들이 담겨 있다. 이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이 북한체제에 저항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에 대한 처벌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3대를 수용소에 가둬 짐승처럼 다루는 반인륜적인 권력의 횡포 때문인 것으로 밝혀진다.

북한 김정은 정권은 그러한 공포탄압 통치를 위해 수용소의 주민들을 공개처형하고 그 과정에서 처형자의 가족이나 친지가 눈물을 흘리면 그 자리에서 체포해 역시 공개처형한다고 탈북자들은 증언하고 있다.

 

북 인권 문제에 태평한 국내 정치권

하지만 이러한 북한인권 문제를 대하는 국내 정치권은 오히려 태평하다는 평가를 듣기에 충분하다.

북한인권법은 여전히 제정이 미뤄지고 있고 반인륜적 북한 정권체제와 연합해 내란을 획책한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은 이석기 RO와 그들의 정치적 세력인 통합진보당을 비호하는 민주당 정치인들 그리고 언론들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단 한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인권을 강조하는 진보좌파 단체들의 침묵은 한국 진보운동의 본질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대표적인 진보 성향의 계간지 창작과비평(이하 창비)이 2014년 봄호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글을 실으며 그동안 진보진영에서 북한인권이 ‘뜨거운 감자’였음을 고백한 사실이 이를 반증한다. 창비는 봄호 특집으로 ‘박근혜 1년, 이제 우리가 말해야 할 것’이라는 주제를 다루면서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서보혁 HK연구교수가 쓴 ‘진보진영은 북한인권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글을 실었다.

서 교수는 “우리 사회는 물론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문제가 공론화된 지 10여 년이 됐지만 이에 대한 남한 진보진영의 인식과 대응은 걸음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시대착오적이고 낡은 민족 공산주의 이념의 자장 안에 사로잡힌 대한민국 진보가 과연 북한인권 문제에 눈을 뜨는 날이 올지는 미지수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 : Commission of Inquiry)

북한의 인권 침해 문제를 조사하기 위해 2013년 3월 21일 1년 기한으로 출범한 유엔의 공식기구로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유엔 인권이사회(UNHRC : 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 제22차 회의에서 47개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신설됐다.

위원장에는 마이클 커비 전 호주 대법관이 활동했으며, 마르주키 다루스만 북한인권특별보좌관과 세르비아 출신의 인권운동가 비세르코 씨가 위원으로 참여했다. 1년간 조사활동을 벌인 이 위원회는 지난 2월 17일 살인, 강제구금, 폭행, 부녀자 강간 등 북한 정권의 광범위하고 조직적인 인권 탄압 행위를 반인도적범죄로 규정하는 최종보고서를 발표하고 오는 3월 17일로 예정된 제네바 유엔 인권이사회에서 최종 보고를 할 계획이다.

국제형사재판소(ICC : International Criminal Court)

집단살해, 반인도 범죄, 전쟁범죄 등 중대한 국제 인도법 위반 범죄를 저지른 개인을 처벌하기 위해 2003년 유엔이 설립한 상설 국제형사사법기관. 1990년대 옛 유고연방과 아프리카 르완다 내전 이후 필요성이 부각돼 유엔에서 1998년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관한 로마규정’이 채택됐고 2002년 네덜란드 헤이그에 법정이 설치됐다.

지난 2012년 3월 콩고민주공화국의 군벌지도자 토마스 루방가에 대해 설립 이후 처음으로 유죄판결을 내렸다. 우리나라의 송상현 국제형사재판소장이 지난 2012년에 재선에 성공해 임기를 이어가고 있다.

보호책임(R2P: Resposibility to protect)

특정국가가 반인도 범죄, 집단살해, 인종청소 등으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지 못할 경우 유엔이 나서야 한다는 원칙이며 지난 2005년 유엔 정상회의에서 결의, 2006년 안전보장이사회 재확인을 거쳐 국제규범으로 확립됐다.

이번 COI 보고서에서 북한의 인권침해 가해자들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하도록 권고하는 법적인 근거가 되고 있다. 실제 유엔 안보리는 지난 2011년 리비아 사태 때 무아마르 카다피의 학살로부터 리비아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이를 처음 적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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