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한국, 러시아의 소중한 이웃 될 것"
"통일 한국, 러시아의 소중한 이웃 될 것"
  • 김범수 편집인
  • 승인 2014.03.06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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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누코브 콘스탄틴 주한 러시아 대사
 

 

 

 

냉전시대 세계 양대 슈퍼파워로 통하던 소련 시절이 아니더라도 러시아는 언제나 엄청난 잠재력을 지닌 강대국으로 여겨져 왔다. 최근 막을 내린 소치 동계올림픽을 통해서는 510억달러(55조원)라는 역대 올림픽 사상 최대 규모의 예산을 투입해 세계인들의 눈길을 모으며 다시 한번 명실상부한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한 ‘몸풀기’에 나섰다.

우리는 과연 그런 러시아를 얼마나 잘 알고 있을까? 러시아는 과연 한반도 통일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혈맹’인 북한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하고 있을까? 본지 <미래한국>은 소치올림픽이 한창이던 지난 2월 14일 서울 중구 정동 아관파천의 옛터에 웅장하게 자리 잡은 러시아 대사관을 방문해 콘스탄틴 바실리에비치 브노코브(Konstantin V. Vnukov) 주한 러시아 대사를 만났다.

 

 

- 이번 소치 동계올림픽을 통해 러시아에 대한 세계인들의 관심이 급증했습니다. 러시아가 한국과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조선시대 말기부터였죠. 서울시내 한복판 정동에 위치한 러시아 대사관을 찾아오면서 조선말 역사를 떠올리기도 했는데요. 우선 양국의 관계에 대해 간략히 소개를 바랍니다.

러시아가 대한민국과 수교한 것은 올해가 24년째입니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면 러시아는 한반도와 인연을 맺은 첫 번째 서방국가 중 하나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은 올해로 130년이 됩니다.

과거 러시아제국과 조선왕실이 ‘무역 및 우정에 대한 조약’을 체결한 바 있습니다. 대단한 선견지명이 있는 조약 이름이지 않습니까!(웃음) 그래서인지 무역과 우정을 나누는 건 지금도 대사로서 저의 핵심 임무 중 하나입니다.

올해부터 무비자 방문 가능

- 현재 양국 간 주요 현안으로 경제, 외교적 어젠다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현재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는 대단히 우호적이고 탄탄합니다. 양국은 외교적으로 문제가 없습니다. 역사적 문제도 없고 영토 분쟁도 없습니다. 한반도가 통일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남한과 러시아는 인접국가가 아니지만 지리적으로 보면 아주 가깝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양국 국민이 서로 방문하려면 비자가 필요했는데 올해부터 무비자 여행이 가능해졌습니다. 60일 이상 기간 동안 상호 방문하는 경우에만 비자 발급이 필요합니다. 이건 소치 동계올림픽 관람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한 한국 분들에게 특히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극동아시아에서 러시아와 무비자 여행이 가능해진 첫 번째 국가가 바로 한국입니다.

- 양국간 경제적 교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양국은 서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러시아는 과학분야에서만 20여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 국가입니다. 다만 상업화에서는 다소 약합니다. 반면 한국은 생산 능력과 상업화에서 강점을 가진 국가입니다. 과학적 성과를 상업화시키는 데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죠. 따라서 러시아와 한국이 협력하는 건 양국 모두에게 이익입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은 천연자원이 빈약한 나라입니다. 석유도 금속도 없습니다. 그러나 인적 자원은 풍부합니다. 반면 러시아는 세계에서 자원이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입니다. 한국이 러시아에서 원유, 가스, 전기 등 자원을 수입할 수 있겠죠.

현재 우리는 남북한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송유관 건설을 추진 중입니다. 여기엔 철도까지 포함됩니다. 이건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이고 남북한 모두가 여기에 긍정적인 입장입니다. 작년 11월 박근혜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MOU에 사인한 바 있습니다.

“러시아는 한반도 통일 적극 도울 것”

- 한반도와 시베리아를 잇는 송유관과 철도 건설은 말 그대로 역사적인 사업이 될 텐데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입니까. 북한이 변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것이 과연 가능할까요.

물론 당장 쉽지는 않을 겁니다. 남북 양쪽이 모두 동의해야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송유관과 철도 모두 북한에 도움이 되는 일들입니다. 사람들이 돈을 벌기 시작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럼 그 상황을 유지하고 싶어지죠. 지금의 문제는 남북관계입니다.

그런데 최근 남북 대화가 시작되면서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러시아는 이 대화를 적극 지지합니다.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만이 한반도 안정화를 위한 유일한 길입니다. 한반도와 러시아는 인접해 있기 때문에 분쟁이 일어나면 우리의 안보도 위협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극동지역에 사는 러시아 국민들이 위협받게 됩니다.

-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러시아의 국책기관인 IMMEMO가 얼마 전 낸 연구 결과가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북한 정권이 수년내 붕괴될 거라는 예측이었습니다. 대사님도 연구 결과를 보셨지요?

해당 연구 결과는 러시아에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있다는 증거입니다.(웃음) 그 연구는 여러 다양한 의견 중 하나였고요. 북한 정권이 좀 더 오래 지속될 것으로 전망하는 연구도 있습니다.

러시아 정부의 공식 입장은 한반도의 안정입니다. 우리는 이 지역에서 혁명이 일어나서 인접국인 러시아 안보가 위협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6자회담에서 핵심적인 실무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평화와 안보를 유지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 북핵 문제가 외교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유럽은 과거에 세계대전이 두 번이나 일어났던 대륙입니다. 과거에 이 유럽에서 나토와 바르샤바 조약기구가 대립했지만 우리는 헬싱키 프로세스에 따라 최고의 해결책을 찾아내고 평화를 이뤄낸 바 있습니다. 지금도 유럽의 상황은 안정적입니다.

한반도에도 비슷한 모델을 적용시킬 수 있을 겁니다. 협상 외에 다른 뾰족한 대안은 없다고 봅니다. 모든 관련국들이 나서는 6자회담이 최선의 해결책입니다. 쉽지는 않지만 유일한 대안이죠.

- 러시아는 한반도 통일에 대해서 어떤 입장인가요?

러시아는 남북한의 통일을 적극 도울 국가입니다. 러시아는 민주적(democratic)이고 우호적인 통일한국의 등장을 바랍니다. 7500만명의 인구를 가진 통일한국이 우리 러시아의 파트너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통일은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 것입니다.

- 잘 아시다시피 한국에는 미군이 주둔 중입니다. 미군의 한반도 주둔에 대해 어떤 입장입니까.

그건 전적으로 한국이 선택할 일이며 저희는 별다른 입장은 없습니다. 한국은 현재 미국과 군사동맹 중이므로 한국과 미국이 따로 해결할 문제죠. 한미상호방위조약에 따라서 미군이 주둔하고 있으니까 한국 입장에서 미군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다만 전 군사동맹이라는 개념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냉전이 이미 끝났기 때문에 군사동맹 보다는 유럽처럼 평화 유지를 위한 메커니즘이 더 중요하다는 게 저희 입장입니다.

 지난해 11월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울시내에서 있었던 푸시킨 동상 제막식에 참석했다.

- 한국은 최근 일본과 역사 및 독도 문제로 심각한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그 문제는 한국과 일본 양국 간의 문제입니다. 이 역시 2차 세계대전의 결과와 연관이 있는데요. 사실 국제관계는 대부분 2차 세계대전과 연계돼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일부 일본 정치인들의 국가주의적 발언들을 주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아베 총리의 신사참배 등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주한 미군? 한국이 선택할 일”

- 방금 ‘민주적인(democratic) 통일한국’의 등장을 얘기하셨는데요. 다양하게 해석될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대단히 고무적으로 들립니다. 그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 현재 러시아는 민주주의 국가입니까?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에 대한 입장은 무엇입니까.

러시아는 한국과 공통점이 많습니다. 우리는 수십년전에 공산주의 국가였고 한국도 군사독재 하에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민주화가 됐습니다. 쉽지는 않았죠. 피도 흘리고 시위도 많았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많은 걸 이뤄냈습니다. 정치적 구조를 바꿨고 이제 러시아의 민주주의도 대단히 발전했습니다.

러시아는 아주 현대적인 헌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년 12월이 헌법 제정 20년째였는데 전문가들은 러시아 헌법을 세계적으로도 가장 현대적인 헌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년엔 2차 세계대전 종전 70년이 됩니다. 당시엔 러시아가 아니라 소련이었지만 소련은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핵심적 국가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소련은 초강대국이 됐고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게 됐습니다.

물론 공산국가였던 소련이 부정적인 유산도 많이 남기긴 했지만 우리 조상들의 업적 중에도 존중할 부분이 많습니다. 소련 붕괴 이후에도 러시아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국토 면적이 큰 나라라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체첸 등 분리주의자들은 ‘자유전사’가 아니다”

- 또 다시 좀 민감한 질문이 될텐데요. 방금 얘기하신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 체첸 등 러시아로부터 독립을 원하는 분리주의자들로 갈등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어떤 입장인가요?

전쟁도 있었고 테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른바 독립을 부르짖는 이들이 절대 ‘자유전사(freedom fighter)’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들은 알 카에다 등 테러단체들과도 연계돼 있습니다. 이 상황은 지역 분쟁이 아니라 세계 전체를 위협하는 테러리스트들과의 대립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들은 국적도 없는 테러리스트들입니다.

- 그렇다면 그들 분리주의자들이 원하는 건 무엇입니까.

러시아 영토에서 자신들의 이상을 실현시키려고 하는 것이죠. 인권을 존중하지 않는 자신들의 시스템을 적용시키려는 것입니다. 그들은 종교가 다른 사람들을 탄압하고 다른 인종들도 탄압합니다. 자유라는 단어와는 아주 거리가 먼 사람들이죠. 반면 러시아는 헌법에 따라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국가입니다.

현재 우리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해당 지역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하는 것입니다. 일단 직업이 생기고 경제적으로 윤택해지면 사람들은 그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않을 테니까요.

 

- 논의가 상당히 뜨거워졌는데요. 조금 부드러운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사실 러시아 하면 또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톨스토이, 푸시킨 등 대문호들의 고향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만해도 톨스토이의 작품이라면 무조건 다 찾아 읽곤 했습니다.

지난해 롯데호텔에서 열린 푸시킨 기념행사에 푸틴 대통령이 방문한 바 있습니다. 푸시킨의 시가 한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어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번역 수준도 아주 좋구요. 참고로 모스크바에도 푸시킨 스퀘어가 있습니다.

그곳은 연애하는 젊은이들에게 인기이며 젊은이들이 주로 만나는 장소입니다. 서울에서도 그런 명소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조만간 톨스토이 스퀘어도 만들 예정입니다.

- 대사님 개인에 대한 소개를 좀 부탁드립니다. 동아시아 전문가이시죠.

전 모스크바 출신으로 졸업 직후엔 기자가 됐습니다. 대학에서는 국제관계를 공부했죠. 처음에는 인도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제가 다니던 학교에서 힌두어를 배우기가 쉽지 않아 대신 중국어를 공부했습니다.

그때는 러시아와 중국의 관계가 좋지 않아 다소 걱정도 했지만 제 부모님은 ‘지금은 중국이 문화혁명으로 인해 부조리가 많은 나라이지만 그런 문제들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고 하시면서 제게 중국어 공부를 적극 추천하셨습니다.

전 외교관이 됐고 30여년간 외교관으로 일하는 중입니다. 한국에 부임하기 전엔 러시아 외교부에서 아시아 총괄담당으로 남북한, 일본, 몽골 등 인접국들과의 외교를 담당했습니다.


인터뷰/김범수 발행인 www.kimbumsoo.net
정리/김주년 기자 anubis00@naver.com
사진/이승재 기자 fotolsj@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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