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는 어디로? G20 회의가 걱정된다
세계 경제는 어디로? G20 회의가 걱정된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3.0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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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지구촌에는 기묘한 모임이 있다. 세계 각국에서 돈을 주무르는 즉 통화정책을 관리하는 재무장관들의 국제회의가 그것이다. 흔히 G20 재무장관 회의라고 불린다.

이 회의가 기묘한 이유는 ‘누가 더 김칫국을 잘 마시는가?’와 같은 문제를 토론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G20 재무장관 회의 내용을 지켜보면 마치 이들은 마술사들 같다. ‘정부가 돈 줄을 풀었다 죄었다 해서 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다’는 신기한 마법의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이제까지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그래도 이들은 각국의 통화를 떡 주무르듯 주물러 댄다. 왜 그럴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이상하기 때문일까.

성장에 초점 둔 G20

지난 24일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 어젠다는 ‘5년간 2% 더 성장’이었다. ‘각국의 경제성장률을 2% 더 올려보자는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신흥국들에게 긍정적인 비전을 주자는 의도로 해석된다.

잭 루 미 재무장관은 G20 재무장관들이 최근 수년간 회의에서 긴축을 논했던 것과 비교해 이번 회의는 성장에 초점을 맞췄다는 점에서 ‘천지개벽’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긴축을 논했던 1년 전을 고려하면 이번에는 각국이 성장하고 세계 경제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공유하고 발전시키는 데 협력하는 방법을 논의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프랑스는 성장의 필요성에 대해 좀 더 절박해 보인다. 피에르 모스코비시 프랑스 재무장관은 미국 경제방송 CNBC와 인터뷰에서 “세계가 성장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2% 더 성장은) 야심 차고, 엄청난 숫자가 아니라는 점에서 실현 가능하다”고 말했다.

모스코비시 장관은 유로존 위기에 대해서도 “명백히 끝났다”며 “우리는 다시 성장을 향해 가고 있으며 불황에서 빠져 나왔으므로 이제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더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인가 하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G20 재무장관 회의를 ‘김칫국’이라고 비웃은 쪽은 미국의 자본시장 전문지 ‘마켓워치’였다. 마켓워치는 “성장에 박차를 가하려는 G20의 과거 노력은 국내외 정세에 의해 무너져 실패하곤 했다”면서 이번 G20 회의 결과에 대해서도 “투자자들은 희망을 줄여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계 유수의 경제장관들이 무안해하고도 남을 만한 신랄한 평가였다. 국제 자본시장에서 마켓워치가 갖는 영향력은 무시하지 못한다.

사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 G20은 IMF의 긴급자금을 늘리고 신흥국 경제를 부활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지금은 사뭇 다르다.

이른바 ‘공조정신’은 사라졌다. 이러한 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바로 미국과 일본이었다. 이 두 국가 재무장관의 입장은 “신흥국 위기가 발생할 경우 각국이 알아서 대응해야 할 것”으로 요약된다. 결국 돈을 풀고 줄이고 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와 권리이지만 그로 인한 책임은 지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번 G20를 바라보는 신흥국들은 시큰둥함을 넘어서서 적극적인 불평을 말하는 상황이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회의에서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와 관련해 신흥국들의 불평이 적지 않았으나 미국이 적극 진화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잭 루 미 재무장관의 경우 “이머징 국가들은 위기에 대비해 자체 대응 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덧붙였다.

로이터는 이어 아소다로 일 재무장관의 경우도 “양적완화 효과는 분명했으며 통화위기 등과 관련해서도 이제는 각국이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이렇듯 각자도생(各自圖生)의 길을 가자는 G20 재무장관 회의는 지난 금융위기 때는 각국의 경제정책을 상호 감시하고 공유하자는 취지로 ‘G20 상호평가(MAP)’라는 거버넌스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제 위기는 끝났으니 각국은 각국의 길을 가자는 어젠다가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글로벌 경제에 보이지 않는 위험을 축적시킬 수 있다. 이미 세계의 통화는 서로 서로 연결돼 있으며 세계 금융시장에서 각국의 통화는 자유로이 매매되고 있다. 통화시장의 질서는 통화수요와 통화공급에 의해 구축되는 것이 맞다고 이 재무장관들도 학교에서는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보여준 미국과 일본의 태도는 자유주의 경제학자 하이에크가 지적한 ‘치명적 자만’, 즉 관료들이 모든 경제시장을 계획하고 설계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는 듯하다. 왜 이런 문제가 생기게 된 것일까.

 

중앙은행의 등장과 관치 금융

여기에는 국가가 통화를 독점 발권(發券)하고 중앙은행이라는 관치성의 금융기구를 통해 통화시장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원래 ‘돈’이라는 통화는 정부가 발행하지 않았다.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유럽에서 금화를 만드는 직업을 가진 ‘골드 스미스’들이 통화를 만들어 민간에 물물교환 형태로 공급했고 상업의 발달에 따라 은행들이 자기 신용으로 통화를 공급했다. 이러한 상업은행제도는 근대 프랑스에서 중앙은행이라는 집단주의 제도를 통해 ‘은행의 은행’이라는 개념으로 발전했다.

문제는 이 중앙은행제도가 정부의 통제 하에 놓이면서 본격적인 ‘관치금융’이 각국에 자리 잡았다는 역사적 사실이다. G20의 재무장관들은 그러한 관치금융의 수장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제는 2008년 국제 금융위기의 책임론에서도 잘 드러난다. 미 연준위(FED)의장을 역임했던 앨런 그린스펀은 2000년부터 추진했던 초저금리 정책이 자산 버블을 불러오게 될 줄은 몰랐다고 고백한 바 있다.

당시 그린스펀을 비롯해 연준위는 미국의 제로금리에도 불구하고 인플레 상승률이 완만했다는 점에만 주목한 결과였다. 하지만 인위적으로 낮춘 금리는 이미 주택과 같은 자산에 흘러들어가 주택가격에 거품을 만들고 있었으며 각 주의 부동산 공급 억제 정책은 이 거품을 더 키워냈다.

일본 역시 1990년대 초반 경기 불황이 찾아오자 적극적인 공적자금 투여로 돈을 풀었다. 돈을 풀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케인즈 경제학의 모순은 이미 구축효과(공적투자가 민간투자를 상쇄시킴)와 합리적 기대가설에 의해 드러났음에도 일본 경제관료, 특히 재무장관들의 돈 풀기는 집요하게 이뤄졌다.

그 결과 일본의 국가부채는 GDP의 250%에 이르고 엔화는 끊임없이 추락했다. 이러한 일본의 장기 불황을 극복하고자 등장한 아베노믹스는 한마디로 ‘와인 알콜중독자의 금단 현상’을 알콜 도수 높은 보드카로 치료해 보겠다는 발상과 같다. 아베노믹스의 재정확대정책은 예상대로 그 효과가 신뢰할 수 없음을 넘어 실패에 접근하고 있음을 세계적으로 유력한 경제연구소들은 지적한다.

이번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가장 주목을 끈 국가는 역시 중국이었다.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회의에 참석한 저우샤오촨 중국 인민은행 총재는 국내외 우려가 커지고 있는 ‘그림자금융’위기설에 대해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중국의 그림자 금융이란 금융기관이 아니면서 금융기관의 역할을 하는 부분들을 말한다.

 

그림자금융, 中 경제 뇌관

지난해 10월 중국 사회과학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의 그림자금융은 지난 2012년말기준 중국 전체 국내총생산액(GDP)의 40%까지 늘어났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그림자 금융이 통계에 잡히지 않은 것까지 포함하면 실제 규모가 더 클 것으로 예상하며 중국 경제의 ‘뇌관’으로 지목하고 있다.

저우샤오촨 총재는 “중국 그림자금융은 전체적으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최근 들어 비교적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며 “현재 이를 신중하게 주시하고 있으며 효율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해 나갈 것”이라고 고백했다.

주목을 끄는 것은 러우 중국 재정부장의 ‘중국에 대한 기대를 접으라’는 메시지다. 그는 “세계 각국은 중국이 글로벌 경제성장의 엔진 역할을 하길 기대하고 있지만 한 가지 확실하게 할 점은 지난 2009년과 같이 중국이 대대적인 투자 위주 경기부양책으로 전 세계 경제성장의 절반에 기여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러우 중국 재정부장은 기후변화, 대기오염, 생산과잉, 자원부족 등과 같은 상황 속에서 중국은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해야 하며 현재 30% 가까이에 달하는 중국의 세계 경제성장에 대한 기여도 역시 더 낮아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렇듯 세계 경제 강국들의 입장은 세계화라는 방향에 무색하게 자국 중심의 금융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문제는 그러한 금융정책이 미국이든, 일본이든, 중국이든 시장이 결정하는 금융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는 과연 어떤 위험이 보이고 또 어떤 위험은 보이지 않는지 알 수 없게 만든다. 정부 관료들이 시장의 모든 질서와 조건들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관료들의 금융정책은 예상치 못한 2차, 3차 효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G20 재무장관 회의와 더불어 박근혜 대통령도 지난 25일 경제혁신 3개년 계획을 발표했다. 2017년에 3%대 초반까지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잠재성장률을 4%대로 끌어올리고 고용률 70%를 달성하며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어 4만 달러 시대로 가는 기초를 닦겠다는 ‘474 비전’의 이 혁신안은 성장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국회의 규제입법 상황은 정부의 경제활성화를 무색케 할 만큼 악화되고 있다.

남윤인순 민주당 의원이 지난 21일 발의하겠다고 밝힌 ‘성형광고 전면금지 법안’이 대표적인 사례다. 성형의료 의사들은 이 법안을 ‘뷰티 산업을 사형시키는 제도’라고 비판하고 있다. 지금은 식품의약품안전처 산하 광고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치는 것을 전제로 광고할 수 있지만 이 법안이 통과되면 마케팅을 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재영 전 새누리당 의원(경기 평택을)은 성형 부위별로 연령 기준을 정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 제출했다. 성형 부위 연령 기준을 위반하는 의사에게 2년 이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의료 업계에서는 성형 기준을 특정 연령에 맞추고 법으로 규제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형마트의 영업규제로 전통시장이 살아나고 있기는 커녕 백화점과 편의점 매출이 늘고 정작 마트의 중소 납품업자들과 직원들이 소득과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지만 정치권의 유통시장 규제는 우이독경 수준이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말 대표 발의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지방자치단체장이 대형마트에 특정품목 판매 제한을 권고할 수 있도록 했다. 대형마트가 이 권고에 따르지 않으면 이행 명령을 받고 과태료까지 내야 한다.

 

속출하는 각종 규제 조치들

국회를 통과해 오는 9월 시행되는 선행학습금지법(강은희 새누리당 의원, 이상민 민주당 의원 발의)은 초·중·고 교육과정에서 선행학습을 시키거나 고입·대입 등 입시에서 교육과정을 벗어나 출제하면 재정적 불이익을 주도록 했다. 정상적인 사교육 업체들이 급속히 위축되고 숨어서 선행교육을 하는 ‘지하 사교육’을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게임 산업을 ‘도박’으로 간주한 입법안들은 한국의 게임 산업을 고사시킬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요지부동이다. 손인춘 새누리당 의원이 발의한 ‘인터넷게임 중독 치유 지원에 관한 법률안’은 인터넷 게임 사업자로부터 매출의 1% 이하를 중독 치유 부담금으로 징수하도록 했다.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한발 더 나아가 ‘중독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안’을 발의, 게임 산업을 술·마약·도박과 함께 4대 중독 물질로 규정하고 국가가 나서 이를 통제하도록 했다.

G20 재무장관들과 한국 국회의원들 모두 자신들이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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