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 8일 노무현 정부는 ‘국방개혁 2020 계획’을 발표했다. 핵심 기조는 ‘협력적 자주국방’. 앞뒤 뜻도 모순되는 정체불명의 용어 앞에서 대부분의 군사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했다.
2014년 3월 10일 박근혜 정부는 ‘국방개혁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핵심 기조는 ‘소수정예화를 통한 능동적 대북 억지력 강화’였다. 역시 군사 문제에 관심이 많은 이들 대부분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군사전문가와 언론 등은 두 정권이 내놓은 ‘국방개혁안’에 대해 반응 시간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왜 그럴까? 언론 등에서는 ‘짧은 기간 내의 대규모 병력 감축 문제’를 꼽고 있지만 실은 그 계획 자체가 희망 사항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과 ‘대동소이’
박근혜 정부의 ‘국방개혁 기본계획’을 말하면서 盧정권의 ‘국방개혁 2020’을 언급하는 다른 이유는 주요 목표가 대동소이 해서다. 이번 ‘국방개혁 기본계획’을 보면 2018년부터 매년 육군 2만 명을 줄인다고 한다. 사단은 현재의 42개에서 31개(기계화 보병사단 3개 포함)로 줄어든다.
사라지는 사단은 대부분 동원 및 향토사단이지만 육군 핵심전력인 기갑여단과 기계화 보병사단도 있다. 장기적으로 더 증편해야 할 기갑여단, 기계화 보병여단 수는 기존 23개에서 16개로 줄어든다.
실질적인 전투는 군단이 맡게 될 것이라고 한다. 군단 수는 8개에서 6개로 줄어든다. 각 군단은 UAV(무인기), 차기 MLRS, 신형 통신·지휘체계, 소형무장헬기, 대(對)포병 탐지레이더 등을 보강해 폭 60km, 길이 120km의 작전 지역을 맡을 것이라고 한다.
장군 수도 대폭 줄어든다. 육군 1, 2야전군 사령부를 지상작전사령부로 통합하고 후방에는 2작전사령부를 둔다. 2015년 말 연합사 해체 이후 생기는 한미전구사령부는 한국군 4성 장군이 사령관을 맡는다. 그리고 합참의장이 2명의 차장을 두고 전군을 실질적으로 지휘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육군 병력이 11만 명 줄어든다고 해군이나 해병대, 공군 병력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해군과 해병대, 공군 병력은 동결하기로 했다. 이 때문인지 병력 감축에 대한 반발을 의식해 내놓은 것으로 보이는 계획도 있다. 먼저 장교와 부사관 등 간부 비중은 기존의 29.5%에서 42.5%로 높이겠다고 한다. 장교는 1000여 명을 줄이고 부사관은 3만6000여 명을 늘릴 계획이다. 급여도 높인다.
북한의 비대칭 전력 중 가장 위협적인 특수부대에 대비해 각 군단에 있는 특공연대, 후방에서 타격부대 역할을 하는 기동대대, 기동중대를 정예화하고 동부 산악지역에는 ‘산악여단’을 창설하겠다고 한다. 육군과 해병대가 맡고 있는 전국 해안 경계는 해양경찰이 맡는다.
이와 함께 전력 증강을 위해 2014년부터 2018년까지 70조2000억 원을 쓰겠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가 ‘국방개혁 기본계획’에 쓰게 될 비용은 모두 214조5000억 원. 5년으로 나누면 연 평균 42조9000억 원이다. 이는 2014년 국방비 35조7700억 원보다 7조 원 가량 많다.
대충 봐도 박근혜 정부의 ‘국방개혁 기본계획’은 ‘노무현식 국방개혁’과 너무도 닮아 있다.
노무현 정부는 국방개혁 2020을 내놓은 뒤 2020년까지 15년 동안 700조 원이 넘는 국방예산을 쓰겠다고 해놓고선 실제로는 그에 훨씬 못 미치는 국방예산만 지출했다.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 2020은 2004년 1월 盧대통령이 프랑스 국방장관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윤광웅 당시 국방장관과 함께 적극 추진한 계획이라고 한다.
당시 盧대통령과 親盧세력은 ‘통일지상주의’에 빠져 미국과의 동맹 대신 중국과 미국 사이의 등거리 외교관계를 맺고 러시아·중국을 움직여 일본을 제어하고 통일을 앞당긴다는 안보전략을 내놨다. 이것이 바로 동북아 균형자와 협력적 자주국방으로 나타난 것이다.
근본 원인은 ‘예산 확보 불가능’
노무현 정부는 이런 국가안보전략을 수립한 뒤 ‘통일을 하려면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한다’며 군사력 감축을 추진한다. 2020년까지 군 병력을 50만 명 선으로-대부분 육군-줄이고 첨단 장비를 들인다는 게 골자였다. 심지어 전방 GOP에도 군인 대신 무인감시장비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전력투자비 250조 원 등 모두 630조 원을 투입한다고 밝혔다.
주요 전투 장비를 모두 국산화한다는 계획도 추진했다. 실전 배치가 4년째 미뤄지고 있는 K2 흑표 전차, K21 보병 전투차, 지그재그로 운행해 논란이 됐던 윤영하급 미사일 고속함, 불량 부품으로 논란이 된 차기 호위함 등의 국산화가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다. 10년이 흐른 지금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을 다시 되짚어 보면 계획대로 된 게 없다.
군 병력은 억지로 줄이지 않아도 온갖 특례와 고령화 때문에 갈수록 줄고 있고 전군의 전투장비 노후화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북한이 연평도에 포격을 퍼부어도 이를 막거나 미리 탐지할 수 있는 수단이 없다. 북한이 미사일과 방사포를 쏴대도 이를 막지 못하는 건 물론 무슨 종류인지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방법도 없는 현실이다.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예산 확보 불가능’이다. 현 야당은 자신들이 여당일 때조차도 국방예산 증액에 부정적이었다. 이명박 정부가 2011년 3월 내놓은 307계획도 국방개혁을 내세워 거액의 예산을 확보하려 했지만 야당의 반대로 실패했다. 박근혜 정부가 야당의 반대를 뚫을 것이라는 보장도 없는데 무슨 수로 예산을 확보한다는 말일까?
다른 문제도 있다. 군 병력을 줄이는 대신 첨단화, 소수정예화를 통해 ‘능동적 대북 억지력’을 갖추려면 해군과 해병대, 공군, 특수전 병력도 늘어야 한다. 하지만 ‘박근혜 식 국방개혁’에서는 이들의 정원도 동결했다. 지금도 3000여 명의 인력이 모자라 배를 놀리는 해군, 2만9000여 명의 병력으로 육군 5개 사단이 지키는 지역을 맡고 있는 해병대는 ‘돌아버리기 직전’이다. 군사전문가들은 이런 모순점을 지적하며 박근혜 정부의 국방개혁과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 2020이 닮아 있다고 말한다.
국방개혁은 문민정부가 들어선 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나오는 단골 메뉴다. 여기에 맞춰 군이 내놓는 목표라는 것도 ‘소수정예화를 통한 첨단화’ ‘C4ISR 능력 강화’나 ‘NCW 능력 강화’ 등 대동소이한 레퍼토리가 대부분이다.
한 마디로 줄이면 “돈만 많이 주시면, 군인을 많이 줄여도 안보에는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다. 과연 그럴까.
전경웅 객원기자 enoch205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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