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개방 어떻게 할 것인가
쌀개방 어떻게 할 것인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3.31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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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문제로 나라가 또 다시 소용돌이에 빠질 조짐이다. 그동안 미뤄왔던 쌀개방 문제가 본격적인 논의를 타야하는 시점에 왔기 때문.
쌀시장을 개방하면 개방하는 대로, 닫아걸면 닫아거는 대로 문제는 불거지게 돼 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대한민국의 농업은 ‘쌀이 원수’가 된 상황이다.

올해 우리나라는 쌀시장과 관련해서 개방이냐 관세화냐 입장을 정해야 한다. 쌀시장 개방 유예기간이 올해로 만료되기 때문에 정부는 입장을 6월까지 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6·4 지방선거를 코앞에 둔 정부가 쌀문제를 지방선거 이전에 결정할 리는 만무하다. 그러는 사이에 시간은 흐르고 농민들 사이에서는 불안과 개방중단 압력이 높아져 간다.

금년 9월까지 결정, 통보해야

1994년 최종타결된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때 우리나라는 20년간 쌀시장을 전면개방하는 대신 외국 쌀을 의무수입하는 쪽을 선택했다. 2014년에는 이를 계속 할지 말지를 오는 9월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 통보해야 한다.

쌀은 여전히 우리 국민의 주식이고 300만 농민들의 수익이 걸린 문제다. 섣불리 개방과 관세유예를 입에 담는다는 것은 정치권으로서는 여간 어렵지 않다. 하지만 9월에 WTO에 결정 통보해야 하는 내용이라면 사실 이제부터 그 논의를 시작해도 국민적 합의를 이루기에는 빠듯하다. 어느 쪽으로 결정되더라도 농민들의 불만은 잠재울 수 없거니와 이를 정치쟁점화하려는 정파간의 부추김은 다시 우리 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갈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회피할 수만도 없는 문제다.

정치권은 쌀관세화 보다는 쌀시장 개방에 무게를 두는 모습이다. 지난해 9월 심재권 민주당 의원은 “국회 입법조사처 자료를 보면 정부는 국내 쌀 자급률과 소비량 등을 고려해 쌀시장 개방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최근 국내외 쌀값 차이는 줄고 매년 쌀 의무 수입량에 따른 부담이 늘기 때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민주당이 그런 입장이라면 새누리당으로서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쌀시장 개방보다는 300~500%에 달하는 관세화를 택하고 국제 시장에서 의무적으로 국내 생산량의 쌀을 구매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럴 경우 내년에 우리나라는 총 43만 톤의 쌀을 최소시장접근(MMA) 형태로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하고 관세화를 미룰 경우 통상보복의 대상이 될 수 있다. 43만 톤의 물량은 현재 우리나라 쌀 소비량의 12%에 해당하는 것으로 일부 전문가들은 금년 중에라도 서둘러 관세화를 선언하고 의무물량을 줄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일부 농업단체들과 좌파계열 정치세력들의 선동이다. 이들은 WTO의 조항을 왜곡 해석해서 개방화나 관세화가 의무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쌀 관세유예를 2014년까지 허용한다는 것은 현행 WTO 협정에서 합의한 내용”이라며 “이는 예외조항인데 올해 이후에도 관세를 유예할 수 있는 방안은 현행 WTO 협정의 모든 규정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 참여한 국가들은 농산물을 포함한 전 품목에 대한 시장개방과 관세화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즉, 다자무역체제는 관세 수준만을 유일한 무역장벽으로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쌀시장 개방에 대한 정치경제적 부담이 컸던 3개 국가(한국, 일본, 필리핀)와 2002년 WTO에 가입한 대만은 관세화를 일정 기간 유예하는 대가로 정해진 물량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하기로 합의했다.

관세화의 원칙을 강조했던 국제사회는 관세화 유예가 무한정 연장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예기간과 의무수입물량 수준을 비례적으로 연계시켰고 한번 정해진 의무수입물량은 관세화를 실시하더라도 항구적인 의무사항으로 설정했다.

2004년 관세화 유예를 연장하면서도 추가연장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던 것도 관세화 원칙에 대한 예외는 일시적인 기간에 한정해야 한다는 점이 작용한 결과이다. 농업협정 부속서에 명시적인 구절이 없는 것은 맞지만 더 이상 관세화 의무를 질 필요가 없다는 일부의 주장은 근거 없는 억측에 불과하다.

쌀관세화 보다는 개방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국내 쌀 소비량이 줄고 있어서 시장을 열어도 큰 피해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농림부 자료를 보면 국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지난 1982년 130kg에서 1992년 112.9㎏, 2001년 88.9㎏, 지난해 67.2㎏으로 매년 감소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쌀개방보다는 관세화가 합리적이라는 입장이다. 실제로 일본과 대만 모두 전면 개방보다는 관세화로 방향을 결정했다.

이 문제를 연구해 온 정인교 인하대 교수(경제학)는 일본의 통상정책적 낙후성에 대한 지적이 많으나 쌀 관세화 만큼은 우리나라가 배워야 할 사안이라고 말한다. 정인교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관세화 유예 5년차였던 1999년 일본은 매년 늘어나는 의무수입 물량을 더 이상 방치하는 것은 농업계는 물론이고 국가적으로 심각한 부담을 주는 것으로 판단하고 관세화를 단행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 농업계의 정치적 영향력은 막강하고, 의회 내에서도 농수산족이라는 농업 보호를 주장하는 국회의원이 포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표적인 농업단체의 주장을 받아들여 관세화 유예 입장을 고수하고 있을 때 일본 정부는 합리적인 결정을 한 것이다.

대만 역시 국익 차원의 합리적인 결정을 단행했다 WTO 가입 이듬해인 2003년 의무수입 부담이 더 늘기 전에 관세화를 실시하는 것이 국익과 부합한다는 점을 인식하고 농업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 차원의 관세화 추진을 결정하게 됐다.

일부에서는 일본과 대만의 쌀 관세화 전환 이후 농업 피해를 주장하고 있다. 관세화 직후 쌀 생산량이 줄어든 점을 강조하는 것인데 몇 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보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관세상당치(TE)를 인정받아 관세화를 실시했지만 관세화만이 아니라 복합적인 이유로 관세화 직후 쌀 생산 규모가 조정됐고 수입량이 증가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당초 예상 수준으로 생산량이 수렴되고 안정된 농업 기반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내 일부 언론에서는 쌀 관세화로 대만의 쌀 산업이 붕괴한 것으로 보도한 경우도 있다. 관세화 실시 이전 대만의 쌀 재배면적은 272헥타르였고 관세화 직후 237헥타르로 크게 줄어들었으나 이후 조정기를 거쳐 2011년 쌀 재배면적은 254헥타르로 증가해 상당히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관세화 이후 향미 등이 소ㅏ량으로 수입될 뿐 관세화가 쌀 수입을 초래했다는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정교수의 설명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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