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풍에 돛단 듯 왼쪽으로 가는 대학 캠퍼스
순풍에 돛단 듯 왼쪽으로 가는 대학 캠퍼스
  • 이원우
  • 승인 2014.04.01 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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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학기 첫날에는 새 학기 첫날에만 느낄 수 있는 설렘이 있다. 새싹들이 움트는 봄에 개강하는 1학기는 더 그렇다. 취업난이 고착화되면서 “1학년들도 입학과 함께 취업전선에 합류한다”는 말이 들려오는 요즘이지만 이런저런 경우의 수를 대조해 가며 시간표를 짜고 강의시간에 맞춰 캠퍼스를 뛰어다니는 청춘의 새 학기에는 역시 그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인생의 한 순간이 녹아 있다.

문제는 강의실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학생과 교수의 만남은 곧 신세대와 구세대의 접점이 도출되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세상이 정신없이 돌아가는 만큼 대학 강의실도 빠르게 변하는 신세대들의 취향에 맞추기 위한 진화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 동국대학교에 개설된 교양강좌 ‘결혼과 가족’은 한 학기 동안 임의로 맺어진 남학생과 여학생의 ‘가상 커플’이 한 학기 동안 남녀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해본다는 유쾌한 발상으로 화제가 됐다. MBC 예능 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를 연상시키는 이 강좌는 ‘우결 수업’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모든 수업이 이렇게 유쾌하지는 않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올바르게 통찰하지 못하고 이미 오래 전에 철저히 논파된 구시대의 유물을 인생의 진리인양 설파하는 강의들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일정기간 동안 수강 철회를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추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는 사정이 있어 철회를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렇게 되면 ‘별에서 온’ 것처럼 느껴지는 교수의 수업을 꼼짝없이 들으면서 고문 같은 강의시간을 버텨내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성공회대는 학교 전체의 학풍을 한쪽으로 몰아가는 데 성공했다지만, 다양한 교수들의 다양한 학풍이 공존하는 일선 대학교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 그 당혹스러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본지에 제보된 사례를 중심으로 새 학기를 맞아 자행되고 있는 ‘수업 고문’의 한 단면을 추적해본다.

동아시아 문화수업에서 국보법 폐지 주장?

2014년 1학기 서울 소재의 A대학교에는 동아시아 문화를 다루는 교양수업이 있다. 3명의 교수들이 함께 이끌어가는 이 수업을 담당하는 B교수는 매 수업 내용을 5줄 내외로 요약해 기말에 제출하는 과제를 냈다.

문제는 담당 교수 자신이 담당한 세 번의 강의가 동아시아의 문화와 관계없는 ‘정치 얘기’로 상당 부분 채워졌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꼼짝없이 그의 말을 유심히 듣고 요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B교수의 강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이다.

“국가보안법은 폐지돼야 한다. 헌법에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돼 있으나 사실 한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를 허용하지 않고 국보법이 있는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반값등록금 투쟁은 잘못됐다. 유럽은 등록금이 없다. 무료등록금 투쟁을 해야 한다.”

“박정희는 한 게 없다. 경제발전은 소위 공돌이 공순이들과 특정지역, 즉 전라도의 희생으로 이뤄낸 것이다.”
“북한은 아나키즘과의 경쟁에서 이긴 사회주의를 통해 사회주의적 근대화를 이루었다. (…) 북한에게 퍼준 것은 별로 없다. 1인당 짜장면 한 그릇 값밖에 주지 않았고 독일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독일도 종북인가?”

과제를 위해 위 내용을 꼼꼼하게 정리한 한 학생은 “암세포가 자라는 느낌”이라고 착잡한 심경을 표현했다. 문제는 이 사례가 그다지 극단적인 케이스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학교에서도 비슷한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강의실 안에서 얼마든지 대한민국 건국과 산업화, 박근혜 대통령을 비난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향의 교수들은 종종 현 정부를 ‘독재 정부’로 규정한다.

 

전남대에 개설된 ‘김대중 사상과 리더십’

이번엔 전남으로 내려가 보자. 광주광역시 북구 용봉로에는 국립 전남대학교가 위치해 있다. 올해 초 전남대학교는 ‘김대중의 사상과 리더십’이라는 교양과목(3학점)을 새롭게 개설하며 화제가 됐다. 김대중 대통령의 삶과 업적, 사상을 학문적으로 체계화시키고 리더십을 반추해 보자는 의도로 개설된 수업이다.

객원교수로 초빙된 사람은 김 前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를 지낸 최경환 김대중평화센터 공보실장 겸 대변인이다. 그는 “김대중 前 대통령의 생애와 민주주의, 평화통일, 리더십 등 4개 부분으로 나눠 한 학기 동안 수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김대중 수업’이 개설된 것은 처음이다. 전남대는 2006년 10월 김대중에게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수여하기도 했다.

대한민국 15대 대통령을 지내고 200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의 영향력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다만 한국 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워낙 큰 인물이었던 만큼 ‘DJ의 시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김대중식(式) 평화가 결국 ‘북핵’으로 형상화되지 않았느냐는 문제 의식 또한 여전히 뜨거운 논쟁거리다. 이런 상황에서 최측근으로부터 김대중의 생애와 민주주의, 평화통일과 리더십에 대한 강의를 듣는 것은 결과적으로 편향적인 교육이 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있다.

최경환 前 비서관의 다음 블로그 ‘최경환 이야기’에 방문해 보면 ‘김대중의 사상과 리더십’ 수업이 대략 어떻게 진행될지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올해 1월 22일에 게재한 글에서 그는 ‘박정희는 김대중의 납치 살해를 지시했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1월 20일에는 “광주가 역사의 자산인 김대중 정신의 계승을 실천함으로써 호남 정치의 위기를 이겨내고 실의에 빠진 호남인들에게 용기와 자부심을 주길 바란다”고 썼다. 1월 6일에는 ‘김대중 대통령 90번째 생신’을 축하하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전남대에서 강의를 맡게 된 것에 대해 들뜬 심정을 표현한 그는 “임동원 前 통일부 장관, 박지원 비서실장의 초청 특강도 진행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이 수업이 과연 김대중의 공과 과를 균형 있게 다루면서 건전한 담론을 형성시킬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만약 어떤 국립대학교가 ‘이승만의 사상과 리더십’이라는 수업을 개설해 이승만의 업적을 긍정 일변도로만 조명한다면 한국 사회에는 어떤 풍파가 일게 될까. 김대중은 되는데 이승만은 안 되는 것. 그런 것이 대한민국 대학가에는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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