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神이 주신 질서다
기업은 神이 주신 질서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4.04 0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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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을 뜻하는 영어에는 몇 가지가 있다. Company, corporation, enterprise가 그것이다. Company라는 단어는 중세 라틴어 compania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 꼼빠니아는 ‘함께 빵을 나누는 자들’이라는 의미다. 중세 프랑스에서는 기사단을 의미하는 용어로 쓰였다.

Corporation의 어원은 라틴어 corporare에서 왔다. 그 뜻은 ‘한 몸을 이루다’의 의미라고 웹스터 사전은 설명한다. Enterprise는 ‘담대하다’는 의미의 어원을 갖는다.

이처럼 서구에서 기업의 의미는 ‘동반자’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반면 企業이라는 한자어의 의미는 조직적이고 계획된 ‘일’에 방점이 있다. 아울러 會社라는 말의 본래 의미는 조상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모인 친척들의 의미다.

기업에 대한 이런 동서양의 어원차는 현실적으로 기업의 형태와 윤리에서도 차이를 보여준다. 즉 서구에서 기업은 타인들간의 결합이라는 맥락이 강한 반면 동양에서는 가업(家業)이나 친족끼리 공동과업의 의미가 강하다. 그렇기에 서구에서는 회사법과 상법이 발달한 반면 동양에서는 가족기업과 승계 개념이 발달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기업을 세상의 한 질서로 놓고 심도 있게 연구한 이는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였다. 그는 기업에 대해 매우 독특한 철학적 성찰을 구축했는데 그 바탕은 의외로 성경에 있었다. 아담 스미스가 자신의 윤리학의 테제를 구현하는 방법론으로 경제학을 낳았다면 드러커는 하늘의 도성(都城)과 세속을 연결하는 중간 다리로서 ‘기업’의 역할을 연구하며 경영학을 수립했다.

다시 말해 기업이란 악한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에게 주신 축복의 선물이라고 드러커는 생각했다. 그의 출발점은 바로 창세기에 나오는 ‘생육하고 번성하라’라는 구절에 대한 믿음이었다. 드러커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자유를 주셨다면 그 자유에 합당한 질서도 주셨다는 보수주의의 사회철학을 ‘기업윤리’로 구현했던 것이다.

드러커는 시장의 자유를 주장한 자유주의자인 반면에 기업의 CEO에게는 함께 빵을 나누는 ‘꼼빠니아’의 리더로서 갖춰야 하는 덕목을 엄중하게 요구했다. 그것이 없다면 기업은 실패한다. 그에게 종업원은 양떼고 CEO는 양들을 돌보는 목자였다.

목자가 잃어 버린 양을 찾아 헤매듯이 기업의 CEO는 종업원들의 행복에 책임 있는 존재라는 것이 드러커의 CEO론이다. 그러한 기업은 세속의 질서가 천국의 질서를 향해 나아가는 다리가 된다.

드러커의 생각은 일반인과 경영자 모두에게 성찰을 준다. 경영자의 덕목은 담대한 도전으로 얻은 富를 함께 일한 이들과 나누는 것이다. 그러한 경영윤리가 기업을 더 번영하게 한다. 이러한 생각은 드러커가 강의를 하던 1차 세계대전 직후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드러커의 성찰은 그가 컨설팅한 미국의 많은 기업들에 의해 채택되면서 놀라운 성과를 보여줬다.

오늘 한국의 기업인들에게 기업이란 무엇일까. 단지 자신들의 가족과 자녀들만을 위한 부의 축적 수단은 아닌가.

지난 1년간 재벌 대기업 총수들에 대한 법의 심판을 보면서 다시 피터 드러커를 생각해 본다. 그리고 자신의 전 재산에 대해 사회 환원 서약을 하는 미국의 CEO들을 보면서 결국 피터 드러커의 생각이 옳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다.

기업이란 ‘하늘의 뜻이 이 땅에 이뤄지도록’ 하는 축복의 질서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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