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형교회 父子 목사 이야기
美 대형교회 父子 목사 이야기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4.04.0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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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스탠리 목사

미국 개신교 교회 중 가장 큰 교회는 교인이 4만3500명 (2013년 기준)인 텍사스 휴스턴의 레이크우드교회(조엘 오스턴 목사)다. 두번째로 큰 교회는 교인 3만629명으로 조지아 알파레타에 소재한 노스포인트교회(앤디 스탠리 목사)다. 레이크우드교회는 1959년에 설립됐고 노스포인트교회는 1995년에 설립됐기 때문에 햇수만을 따지면 노스포인트교회의 성장률이 훨씬 빠르다.

다음은 일리노이에 소재한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빌 하이벨스 목사, 2만5743명)이고 잘 알려진 릭 워렌 목사의 새들백교회는 미국에서 6번째로 큰 교회다.(2만2055명)

이 가운데 노스포인트교회의 앤디 스탠리 목사는 그의 아버지 때문에 미국 교계에 더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의 아버지는 166년 역사를 가진 교인 3000여명의 조지아 애틀란타 제일침례교회를 44년째 담임하고 있는 찰스 스탠리 목사다. 82세의 찰스 스탠리 목사는 미국 개신교 최대 교단인 남침례교 총회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는 등 미국 교계에서 영향력이 크다. 그는 ‘In Touch’라는 기독교 방송조직으로 미국 및 전 세계 수백만명에게 TV와 라디오를 통해 설교를 하고 있기도 하다.

아버지 스탠리 목사가 담임하는 애틀란타제일침례교회에서 아들 스탠리 목사가 청소년담당 목사를 할 때 많은 사람들은 아들 스탠리 목사가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이들 부자도 이에 대한 ‘무언(無言)의 꿈’을 꿨다. 하지만 그렇게 믿었던 아들 스탠리 목사는 구약성경에 나오는 아버지 다윗왕을 배신한 압살롬처럼 나중에 아버지를 배신하면서 이 꿈은 깨졌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통해 노스포인트교회라는 더 큰 교회가 나오게 됐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이들 부자 목사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달라스 신학교를 졸업한 아들 스탠리 목사는 아버지가 담임하는 제일침례교회에서 학생들 대상으로 처음 목회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첫번째 설교를 들은 사람들은 그가 소질이 있다며 청중의 마음을 빨아들이는 재주가 있다고 평가했다. 익숙한 성경 구절을 새로운 각도로 풀이하는 그의 능력은 탁월했다. 아버지 스탠리 목사는 In Touch 방송을 통해 아들의 설교를 내보내기 시작했고 자신이 교회를 비우게 되면 자기 대신 설교를 하게 했다.

1992년 제일침례교회가 첫 지교회를 개척할 때 아들 스탠리 목사가 지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했다. 그리고 3주만에 지교회로 몰려오는 사람으로 자리가 부족했다. 두 달만에 지교회는 2000명으로 늘었고 부자 목사는 ‘무언의 꿈’을 본격적으로 꾸기 시작했다. 앤디 스탠리 목사는 “나는 분명한 후계자였다. 그것이 아버지가 원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깨져버린 후계자의 꿈

하지만 이 꿈은 깨지기 시작했다. 첫번째 이유는 찰스 스탠리 목사의 이혼이었다. 아들 앤디 스탠리 목사가 지교회 담임목사가 된 후 1년 뒤 부모의 결혼관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결국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의 교회 출석을 중단했고 1993년 법원에 이혼소송을 내면서 만인이 알게 됐다.

이혼을 죄로 보는 남침례교에서 목사가 이혼한다는 것은 충격이었다. 그것도 교단 총회장을 역임한 찰스 스탠리 목사가 이혼한다는 것은 그에게 치명타였다. 그가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나야 한다는 요구가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고 교회는 그를 지지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으로 두동강이 났다.

하지만 찰스 스탠리 목사는 사직을 거부했다. 자신의 사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이 내게 다른 것을 하라고 할 때까지 이곳에 있으라고 하셨다. 그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다.”

아들 스탠리 목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교인들이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가 나중에 사직서를 들고 아버지 스탠리 목사에게 갔을 때 “아버지, 교회가 당신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이혼한 후 그들이 당신을 담임목사로 수용할 것인지 선택할 기회가 필요합니다. 그들이 선택하게 하세요”라고 말했다.

아들 스탠리 목사가 말을 마치자 아버지 스탠리 목사는 눈물을 흘리며 아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너는 나의 적이 됐다.”

아들 스탠리 목사가 아버지 스탠리 목사를 떠나게 된 데는 두 사람 사이의 경쟁도 한몫했다. 아들 스탠리 목사가 담임하는 지교회 수가 아버지 스탠리 목사가 담임하는 본교회보다 능가하자 아들이 아버지 전체 교회를 접수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부자 목사 간의 목회 방식 차이도 이유였다. 앤디 스탠리 목사는 당시 시카고 윌로우크릭 커뮤니티 교회의 빌 하이벨스 목사를 목회 멘토로 삼고 있었다. 빌 하이벨스 목사는 현대적 음악과 드라마, 화려한 무대 소도구 등으로 예배를 드리는 교회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그의 핵심은 이를 통해 전통적인 교회가 사실상 저버린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교회로 인도하자는 것이었다.

찰스 스탠리 목사

대형교회 후게자 자리를 사양하고 나온 앤디 스탠리 목사

앤디 스탠리 목사는 “하이벨스 목사의 이야기를 듣고 생애 처음으로 교회가 어떤 곳인지 이해했다”며 “전통을 유지하는 대신 전진에 집중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앤디 스탠리 목사는 아버지의 지교회에 이를 접목시켰다. 상징적인 변화로 그는 아버지와 달리 설교단에 양복 정장을 입고 오르는 것을 중단했다. 지교회는 더 커갔다. 하지만 아버지와의 긴장도 더 커갔다. 결국 앤디 스탠리 목사는 사직했다. 출산 예정인 아내, 안정적인 보수, 건강보험을 뒤로하고 그는 아버지와 가졌던 후계자라는 ‘무언의 꿈’을 접었다.

당시 앤디 스탠리 목사는 구약 성경의 사울, 다윗, 압살롬을 다룬 책 ‘세왕 이야기’를 읽다가 시기와 편집증에 붙잡힌 사울 왕의 위협에 다윗이 사울의 왕국을 떠나는 장면에서 나온 한 줄에 큰 위안을 받았다. “빈손, 그리고 혼자서 시작하는 것은 최고의 남자들을 겁먹게 한다. 동시에 하나님이 함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아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빈손으로, 교회도 없고, 봉급도 없고, 건강보험도 없이 그는 아버지가 담임하는 교회를 떠났다. 사람들은 사실상 후계자라 가만히 있으면 다 물려받는데 이 유명한 대형 교회를 그만두고 떠나는 그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버지 스탠리 목사의 결혼은 2000년 이혼으로 최종 결정이 났고 애틀란타 제일침례교회는 그를 담임목사로 유임하기로 표결했다.
아버지를 떠난 앤디 스탠리 목사는 1995년 5명의 친구들과 노스포인트 커뮤니티 교회를 개척했다. 노스포인트 커뮤니티 교회는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자라도록 인도하고 교회를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가고 싶은 교회를 만들기 원하는 리더들을 훈련시키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그는 설교단에서 양복을 입거나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그의 교회에는 앤디 스탠리 담임목사를 위해 특별히 정해진 주차공간이 없다. 모든 사람들은 그를 “앤디”라고 부른다. 교인들도 청바지에 셔츠를 입고 편하게 교회에 온다.

아버지 스탠리 목사의 애틀란타 제일침례교회는 그렇지 않다. 아버지 스탠리 담임목사는 항상 정장을 입고 설교대에 오르고 교인들도 정장을 입고 교회에 출석한다. 어린이도 예외가 아니다. 예배 스타일도 다르다. 노스포인트 커뮤니티 교회는 드럼, 키보드, 전자기타 등 현대적 악기로 예배를 드리지만 제일침례교회는 오케스트라와 성가대로 예배를 드린다.

앤디 스탠리 목사는 아버지 스탠리 목사와 같은 이른바 기독교 우파를 지향하지 않는다. 아버지 스탠리 목사는 고(故) 제리 파월 목사, 팻 로벗슨 목사와 같이 낙태, 동성애 등을 반대하기 위해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했던 기독교 우파의 대표적인 사람이다. 앤디 목사는 동성애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비난하는 말을 하지 않아 비판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이혼하고 재혼 사람들은 간음한 것이라는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우리가 함께 있었으면 그저 교회가 크기만 했을 것”

교회 개척 후 20년이 지난 지금 노스포인트교회는 일요일이면 3만명이 앤디 스탠리 목사의 7개 교회에 출석한다. 지교회들은 고화질 화면으로 앤디 스탠리 목사의 설교를 듣는다. 팬들은 그를 TV로 보거나 그의 리더십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몰려들고 있고 목사들은 앤디의 DVD를 보며 설교를 공부하고 있다. 그의 웹사이트는 매월 100만번의 다운로드가 이뤄지고 있다.

아버지의 적으로 애틀란타 제일침례교회를 떠난 후 12년만에 아들 스탠리 목사는 아버지 스탠리 목사의 초청으로 그 교회로 돌아와 설교를 했다. 아버지 스탠리 목사 역시 아들의 초청으로 노스포인트 커뮤니티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이때 아들은 청바지에 양복 상의를 입었고 아버지는 넥타이를 하지 않은 채 양복 상의를 입었다.

아버지 스탠리 목사는 아직도 아들 스탠리 목사가 후계자가 되는 ‘무언의 꿈’을 꾸고 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있었다. 우리가 함께 있었으면 그저 교회가 크기만 했을 것이다.” 아들 앤디 목사는 “아버지는 사람들에게 나를 자랑스러워한다고 늘 말한다”고 말했다.


애틀란타=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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