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에 내재된 보수 DNA
호남에 내재된 보수 DNA
  • 미래한국
  • 승인 2014.04.1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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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호남 표심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당명을 바꾼 새정치민주연합에 변함없는 지지를 보내리라는 것은 예상되지만 그것이 어느 수준일 것이냐가 문제가 되고 있다. 정치적으로 호남은 특수지역이 되어 왔다.

1963년과 1967년 대선에서 호남은 충청도의 윤보선 후보보다 경상도의 박정희 대통령을 지지했다. 호남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목포 출신 김대중 대통령 후보가 등장한 1971년 대선 때부터다. 그때부터 시작된 특정 정당에 대한 90% 전후의 지지는 지금까지 변치 않고 있다. 호남에 사는 외지 출신을 제외하면 모두가 일사불란한 지지를 보냈다는 얘기다.

되돌아보면 이런 현상은 예외적인 것이다. 고래로 호남은 근대문명을 흡수하는 최전선에 있었다. 인천과 함께 군산과 목포 등의 항구는 근대 문물이 교류되는 중심지였다. 근대 은행과 주식회사의 설립이나 상업과 무역시설에 대한 역사만 보아도 호남은 근대의 선두주자였다. 서양 종교였던 기독교의 전파 수준을 봐도 알 수 있다.

1934년 기준으로 서울 경기나 충청의 기독교인이 각각 5천 명대 수준에 머물렀을 때 호남은 이미 4만 명을 훨씬 넘어선 기독교인과 수많은 교회가 있었다. 대한민국의 근현대를 만드는 선두에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경상도에는 불교도가 많고 호남에는 기독교도가 많은 것이 근대문물의 흡수와 관련된 역사의 산물이기도 하다.

더구나 광복 이후 호남은 대한민국 건국에 중심적 역할을 했었다. 김성수와 동아일보로 상징되던 한국민주당은 좌익에 의해 나라가 흔들릴 때 자유민주체제를 만들어내는 간성이었다. 소련 공산주의가 한반도 전체를 흡수하는 것을 막아냈던 ‘신탁통치 반대’ 관철이나 이승만 정부를 도와 혁명이 아닌 법에 의거해 근면하게 농사지어 갚을 수 있는 농민에게 농지를 부여한 유상분배적 토지개혁을 만든 것도 한국민주당이었다.

나아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확립시키고 근대제도를 도입 정착시키며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데 기여한 신익희와 조병옥 선생은 나라의 또 다른 상징이었다. 특히 제주 4·3사건 때 공산좌익 폭도들을 온몸으로 막아내며 대한민국을 건국시키고6·25전쟁에서 대구를 근거지로 삼아 낙동강 방어선을 목숨 걸고 지켜낸 조병옥은 대구의 영웅이자 대한민국의 영웅이었다.

분명 호남에 대한민국 정통보수의 DNA가 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지역감정이나 진보좌파의 친북선동조차 백여 년 이상 만들어진 DNA를 없앨 수는 없다. 한국을 초일류 번영국가 반열로 이끌며 북에 있는 공산전체주의를 종식시켜 민족 전체에 자유와 민주를 가져다 줄 역사의 돌파구는 호남의 정통보수 DNA가 살아나면서 시작될 것이다. 이번 6·4선거는 호남의 정통보수 DNA가 살아나며 호남보수가 주도하는 비약과 번영의 새역사로 가는 서광이 비춰지길 기대해본다.

 

김광동 편집위원
나라정책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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