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기자의 눈에 비친 세월호 참사
외국인 기자의 눈에 비친 세월호 참사
  • 미래한국
  • 승인 2014.04.2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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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과 희생, 고통과 봉사의 공존
도널드 커크 편집위원·전 뉴욕타임스 특파원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대응은 두 가지다. 바로 개인과 기업 차원이다.

개인적 차원에서 사람들은 진도에 와서 하루 동안, 혹은 밤까지 새워가며 며칠 동안 머물면서 음식배식장, 청소, 전화센터 등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한국 전역에서 온 그들 중 일부는 직장을 다니다 왔고 일부는 자기 사업을 하다가 왔다. 기업 차원에서는 삼성, 현대, SK와 같은 대기업들이 대형 크레인에서부터 플로팅 도크, 전화와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침몰된 배에 갇힌 승객들의 수백명 가족과 친구들이 시신이 발견됐다거나 생존자가 더 이상 없을 것이라는 최후통첩을 기다리며 머물고 있는 체육관에서는 무료 식사가 제공되고 있다.

절제된 슬픔의 현장 

나는 지금 자원봉사 정신과 국가적 협력이 펼쳐지고 있는 모습을 현장에서 목도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유가족 대다수를 차지하는 학부모들이 덤덤하고 침울하게 쉬면서 기다리고 또 기다리는 체육관의 한쪽 테이블에 앉아 있다. 

매우 드물게 통곡하며 우는 소리가 들리지만 분위기는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조용하다. 정부의 늑장 대응에 항의하는 시위가 있을 때만 "우리 아이들을 돌려내라" 혹은 "그들의 시신을 달라"고 분노 가득한 큰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진도에 온 다양한 자원봉사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큰 고통 가운데 하나 되는 한국인들의 열정을 존경해야 한다. 이번 참사 발생에 대한 수치스러움 뒤에는 심오한 국가적 자부심이 있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의 응원이나 IOC가 평창을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선정했을 때 전국적으로 터져나온 박수에서 본 동일한 하나됨을 완전히 다른 종류의 상황에서 보고 있다.

이 자원봉사 정신은 과장된 것이고, 감정이 복받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외국인들은 이를 한국인들의 특징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번에 보인 자원봉사가 미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이처럼 조직적이고 강력했을까? 미국은 그렇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비슷한 비극이 터지면 엄청난 지원이 사방에서 쏟아지는 것을 봤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처럼 연합되고 분명하게 집중돼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은 지리 및 인구 면에서 훨씬 크고 수많은 다른 인종들로 구성돼 있다. 

또 한국인들의 주된 대응은 많은 사람들이 모든 한국인들에게 치욕이라고 말하는 이번 참사에 대한 보상의 필요성과 관련돼 있다. 한국인들은 지나치게 긴장한 것인가? 지난 수년 동안 한국에서는 수백명의 목숨을 앗아간 많은 참사들이 있었다. 1983년 캄차카반도를 날아가던 한국 여객기가 소련 전투기에 격추당했고 2003년 약 200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구 지하철 참사, 1995년 500명이 죽은 삼풍백화점 붕괴가 있었다. 이 리스트는 계속된다.

세월호 참사가 더욱 가슴 아픈 이유

세월호 침몰에 대한 한국인들의 반응은 이 참사들 때보다 훨씬 강렬한 것 같다.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배의 승객 절반 이상이 고등학생들이었던 점이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 참사를 당했다는 사실은 더 큰 슬픔을 주고 있다.

더 나쁜 것은 그들이 배에 갇혀 가만히 객실에서 기다리라는 안내대로 했다가 탈출하지 못한 채 천천히 죽어갔다는 점이다. 오래 계속된 극심한 고통 속에서 아이들이 죽어갔다는 생각은 모두를 힘들게 한다. 잠수부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시신을 하나씩 꺼내오는 것을 기다리면서 견뎌야 하는 고통이 부모들에게는 유독 길고 힘들게 다가온다. 이번 비극의 끔찍한 면을 생각하면 한국인들의 반응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니다.

물론 이번 참사를 2011년 3월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에 일본 해안이 쓸리고 핵발전소가 침수되면서 1만8000명의 사람이 죽거나 실종, 죽은 것으로 추정된 엄청난 피해와는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이 피해는 사람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자연 재해로 발생한 것이었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논란은 계속 되고 있다. 방사능 낙진 피해에 대한 내용이 분명하지 않지만 발전소에서 나온 방사능이 수백만명의 생명을 위험하게 하고 있다고 일부 사회운동가들은 주장하고 있다.

한 가지 차이는 세월호 참사에서 발생한 수많은 인명 손실은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승객들을 갑판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구명장치나 구명조끼를 제대로 입히지 않고 구조선들이 침몰하는 배 옆으로 근접하는 것이 지연되며 선장과 대다수 승무원들이 먼저 탈출한 것은 이번 참사가 인간의 잘못과 과실 때문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인들에게 좀 더 조심하라고, 참사를 계기로 바로 잡기를 바란다며 비난만 할 수는 없다. 한국인들이 사망한 사람들의 생명을 되돌릴 수 없다면 올바른 대응은 회사와 개인이 이와 같은 비극에서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데 필요한 예방책을 찾도록 하는 것이다.

도널드 커크 편집위원
번역 / 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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