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에서 상대를 이기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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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래한국
  • 승인 2014.05.0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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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귀의 고전 읽기] 쇼펜하우어 著 <토론의 법칙>
 

요즘 우리 사회에 토론의 기회가 넘친다. 언론매체가 만드는 각종 찬반 토론의 자리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대부분 토론의 장을 이분법적 구도로 설정해 특정 주제에 대한 다양하고 자유로운 사고를 제약한다. 오히려 갈등과 대립을 더 조장하고 증폭시키는 경우도 적지 않다. 논쟁은 넘치지만 합의와 조정을 이끌어내는 진지한 토론이 드물기 때문이다.

19세기 초반 의지의 철학을 주창한 철학자 쇼펜하우어가 토론의 방법론을 저술한 것은 이채롭다. 그의 토론술(Dialektik)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수사학을 전개하고자 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지향을 닮았다. 오히려 한발 더 나아가 인간의 사악한 욕망과 심리까지 역이용하는 공격적인 논박의 기술을 제시하고 있다.

쇼펜하우어는 객관적 진리를 추구하기보다 논쟁에서 이기기 위한 꼼수와 잔꾀를 모두 열거한다. 그는 역설적으로 현실의 토론이 얼마나 냉혹한지, 토론의 이면에 얼마나 많은 왜곡이 내재할 수 있는지, 결국 인간이 왜곡과 꼼수의 현혹에 얼마나 취약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해 주려 한 것 같다.

쇼펜하우어가 제시하는 상대를 공격하는 기술은 논쟁에서 무조건 승리하려는 사람에게 금과옥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논증이 안 된 내용을 기정사실화해 전제로 삼는다”, “내용이 없는 말을 심오하고 학술적인 말로 둔갑시킨다”, “불합리한 주장을 함께 제시해 양자택일하게 한다” 등이다.

반격하는 기술 역시 구체적이고 효과적이다. 요즘 방송매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궤변론자들의 행태가 바로 쇼펜하우어의 기법을 숙달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이 들 정도다. “틀린 증거를 빌미삼아 정당한 명제까지도 반박한다”, “상대방의 궤변에 궤변으로 맞선다” 등이 그렇다.

승리에 몰두하는 토론자가 주장하는 모든 논거는 객관적 사실과 합리적 근거와는 거리가 멀다. 승리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결론을 이끌어 내는 기술이나 위기에서 탈출하는 기술 역시 무릎을 칠 정도로 정곡을 치른다.

쇼펜하우어가 제시한 논쟁의 방법은 윤리적 접근과는 거리가 멀다. 객관적 진리의 접근법은 더 아니다. 오로지 승리를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온갖 억지와 왜곡, 모순으로 가득한 ‘논쟁적 토론술’이다. 쇼펜하우어가 이런 사악한 승리의 비법을 교사(敎唆)(?)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이런 토론술을 모든 토론의 이상적 모습으로 제시한 것일까? 아니면 비정하고 불합리한 현실의 토론 실태를 냉정하게 폭로한 것인가?

쇼펜하우어는 토론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인간의 사악한 기교를 망라해서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의 토론가들이 이 기법을 숙달하기 위해 몰두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씁쓸하다. 하지만 쇼펜하우어의 통찰은 토론을 관찰하는 청중에게 토론에서 격돌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논리에 은닉된 왜곡과 꼼수를 간파해 낼 지혜를 준다.

토론자는 쇼펜하우어의 토론의 법칙으로 상대와 청중을 기만하려 할 것이다. 현명한 청중은 쇼펜하우어가 적시한 왜곡과 기만에 더 이상 속지 않는 토론 관찰의 매뉴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알게 된 ‘천기(天機)’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그렇다면 왜곡과 꼼수에 능숙한 궤변론자들의 입지가 더 좁아질까? 아니면 늘 그래왔듯 왜곡과 기만에 속아온 인간의 어리석음이 여전히 반복될 것인가?


박경귀 한국정책평가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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