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두 얼굴
지식인의 두 얼굴
  • 이원우
  • 승인 2014.05.15 11:2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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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그들의 지식(知識)을 참아야[忍] 하는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도올 김용옥 선생이 한 마디를 얹었다. 이 모든 것은 박근혜 한 사람의 책임이니 하야하라는 주장이다. 국민들 보고는 다들 애도만 하지 말고 거리로 뛰쳐나오라고 등을 떠민다. 왜 아니겠는가. 이제 오셨나 싶었다.

그동안 도올이 한 순간이라도 박근혜를 지지하는 기색을 보였다면 혹시 모르겠다. 그러나 김용옥은 어떻게든 박근혜를 끌어내리려는 캐릭터에 가까웠다. 기회만 보고 있다가 이번 참사를 지렛대로 활용한다는 몹쓸 상상이 진실이라면 그 얼마나 잔혹한 일인가. 누군가의 참사요 비극이 다른 누군가에겐 ‘기회’가 된다니 말이다. 세상에 이런 법은 없다.

김용옥이 선동문을 발표한 건 처음이 아니다. 시계를 2012년 12월 17일로 돌려보자. 대선을 이틀 앞둔 시점에서 도올은 혁세격문(革世檄文)이란 걸 발표했다. 이 맥락에서의 ‘혁세’란 투표를 의미한다. 공백 포함 5000자 분량의 장문을 쓰고 읽으며 그가 전한 메시지는 결국 “반드시 18대 대선에 참여하자”는 얘기였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투표하러 가자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근데 뉘앙스가 좀 이상하다. 이승만을 ‘권력찬탈과 무능한 6·25전쟁 대처’를 한 인물로 묘사하고 ‘일제 만군 출신’ 박정희를 폭군으로 묘사하는 순간 그의 의중이 어느 후보를 향하고 있는지 짐작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는 공개적으로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

그의 선동문이 먹혔는지 18대 대선 투표율은 상당히 높았다(75.8%). 대신 당선은 박근혜가 됐다. 참 이상한 선동이었다. 그에게 기억력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이번 선동 또한 역효과로 치달을 가능성이 낮지 않다는 걸 알았어야 하지 않을까.

 

대한민국 대신 ‘조선’… 이상한 지식인

혁세격문에서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본문에 ‘대한민국’이라는 단어보다 ‘조선’이라는 단어가 더 많이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그의 안티 이승만 성향을 감안하면 결국 그의 포커스는 대한민국이라는 체제 그 자체에 맞춰져 있음을 추정할 수 있다. 대한민국이 그에게 부와 명성을 가져다 줬을지언정 고매하신 그의 품격에 이 나라는 한없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조선이라니. 조선의 삶이 어땠는지를 한 번 볼까?

“여름에 야외를 걸으면 곳곳에 가마니를 가지고 둘러서 벽을 만들어 반 칸 사방의 작은 집에 짚을 깔고 마르고 수척한 사람이 고통스럽게 누워 있는 것을 본다. 이것은 구걸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전염병에 괴로워하는 사람이다. 조선에서는 역병을 죽을병이라고 부르고, 이 병에 걸린 사람이 있으면 가족을 전염시키는 것을 걱정하여 야외의 작은 집에 옮겨놓는다. 물론 약을 주는 일이 없으며 대개 버려서 죽이는 것과 같다. 아아, 무정하다.”

1893년 조선을 정탐하러 온 일본인 혼마 규스케의 관찰기 ‘조선잡기’의 일부다. 김용옥은 MB정부에 대해 “서민대중의 삶을 노예 이하의 나락으로 추락시키고 있다”고 말했지만 노예 이하의 삶이란 건 이런 걸 지칭하는 게 아닐는지. 하기야 북한 서민대중의 인권에 대해 그 똑똑한 입으로 한 번도 비판한 적이 없는 김용옥의 눈에는 모든 게 거짓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더 나가볼까? 김용옥은 캄보디아에서 일어난 인류 최악의 학살사건인 폴 포트의 킬링필드(Killing Field)에 대해 ‘조작설’을 주장한 바 있다.

“아무리 빨갱이라 할지라도 어려서 스님 노릇을 했고, 선각자로서 프랑스 유학을 했으며 귀국해서 학교 선생님으로서 훌륭한 교육자의 모습을 지녔던 인물이 자국민을 200만 명이나 학살하는 무자비하고 파렴치한 흡혈귀로 변신할 수 있을까?” (김용옥 ‘앙코르와트·월남 가다’ 中)

 

새로운 코너를 시작하는 이유

그리고는 킬링필드 그 자체가 미국의 조작이며 허구라는 주장을 펼친다. 폴 포트 정권 때 죽은 사람은 30만 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을 뿐인데 그나마도 기아와 질병 때문에 죽었다는 얘기. 더욱이 그 책임은 미국 쪽으로 귀결된다는 얘기….

지금 당장 뇌에서 암세포가 자라나는 느낌이다.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 최고, 아니 조선 최고의 지식인 대접을 받고 있는 게 우리의 현주소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걸까. 사람들이 책을 너무 안 읽어서 지력(知力)이 떨어진 거라는 추정이 있다. 지난 4월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2인 이상 가계가 책을 사는 데 지출한 비용은 월평균 1만8690원이다. 11년째 최저기록 갱신 중이다. 그런데도 페이스북과 트위터에는 ‘깨어 있는 시민’들이 24시간 내내 시국을 걱정 중이니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

고민 끝에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롤모델은 폴 존슨이다. 그는 ‘지식인들(Intellectuals)’이라는 책을 써서 루소, 마르크스, 헤밍웨이, 브레히트, 사르트르 등의 위선을 통렬하게 폭로한 바 있다.

이 작업을 ‘한국판’으로 진행해 보려 한다. 한국 상황에서 이런 컨셉은 나처럼 무식한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신념을 가지고 시작해 보려 한다.

도올 선생 역시 언젠가 좀 더 낱낱이 다루게 될 것이며 북한을 찬양한 유명 소설가, 중국 문화혁명을 칭송한 학자, 터무니없는 무용담을 늘어놓은 유명 여행가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배운 무식자들(learned ignoramus)에게 속다 지쳐버려 책마저 놓아버린 가녀린 영혼의 한국인들에게 한 마리 검은 백조가 될 수 있다면 더없는 기쁨이겠다.

시작은 되도록 거물로, 분야는 경제로 해보려 한다. 김대중 前 대통령의 경제정책에도 영향을 준 빨치산 출신의 大경제학자 박현채 정도라면 ‘지식인의 두 얼굴’ 첫 주자로 다뤄볼만 하지 않을까. 다음 호 원고에서 뵙겠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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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진 2014-05-20 01:27:58
하겠습니다. 아들에게 읽히기 위해 계속 모아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