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일본 소개서
서양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일본 소개서
  • 미래한국
  • 승인 2014.05.16 0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서평] 니토베 이나조 著, 청어람, 2005
 

과거사를 둘러싼 한일간 갈등이 심화되던 작년 하반기부터 일본을 알기 위한 책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일환으로 읽게 된 게 이 책, <무사도>다.

이 책은 19세기 말 20세기 초 활약한 일본 지식인인 저자가 서양인들에게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소개하기 위해 쓴 것이다. 저자는 기독교정신이나 기사도정신을 간직해 온 서양인들을 의식하면서 일본인들에게도 그에 못지않은 ‘무사도(武士道)’의 전통이 있음을 역설한다.

사실 이 책에서 저자가 역설하는 무사도의 가치라는 것들은, 아름다운 말로 다듬고 일본적 전통을 덧씌우기는 했지만,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인(仁), 의(義), 예(禮), 지(智), 신(信), 충(忠), 성(誠) 등의 가치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오히려 감탄스러운 것은 그러한 전래의 가치들을 포장해서 내놓은 솜씨다. 저자는 플라톤,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세익스피어 등을 비롯해, 당시 서양의 지식인들이던 마르크스, 스펜서, 에머슨, 르낭, 니체 등을 자유자재로 인용하면서 무사도를 설명한다.

저자가, 내가 얼마 전에 읽은 <혁명의 심리학>의 저자인 귀스타브 르 봉의 <대중의 심리학>까지 인용하는 것을 보고는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대중의 심리학은 당시로서는 따끈따끈한 최신간이었을 텐데 말이다.

저자는 이러한 노력을 통해 무사도의 가치가 일본만의 특이한 가치가 아니라 서양 문명의 관점에서 보아도 충분히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 가치를 가진 것임을 열심히 설명한다. 예컨대 할복(割腹)에 대해 설명할 때에는 자살을 죄악시하는 서양인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해 브루투스에 비견하는 식이다. 그 인용이나 책의 흐름이 자연스럽다.

그리고 저자의 노력은 저자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결실을 이룬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의 강력한 후원자였던 시어도어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 이 책의 애독자였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아마 ‘마초’ 기질이 강하고 사회진화론의 신봉자였던 루즈벨트는 이 책을 읽으며 일본을 구미 열강과 비교해도 부족할 것이 없는 가치를 가진 문명세계의 일원으로 생각하면서, 야만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조선이나 중국을 지배할 만한 역량을 가진 나라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다가 이보다 5년쯤 후에 쓰인 이승만의 <독립정신>을 떠올렸다. 이승만의 독립정신도 참 훌륭한 저작이지만, 서양의 근대역사와 제도, 현황을 설명하기에 급급해 한다는 한계가 있다. 물론 독립정신은 무지한 조선 백성을 상대로 한 것이고, 무사도는 서양의 엘리트들을 상대로 한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그 차이는 바로 당시 일본과 조선의 차이이기도 했다.

지금 우리는 종군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 독도 문제, 동해 표기 문제 등을 놓고 일본과 갈등을 벌이고 있다. 과거의 논란이 한일 양국간의 문제였다면, 이제는 전 세계를 무대로 펼쳐지고 있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는 정의(正義)가 우리에게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를 얼마나 설득력 있게 미국이나 유럽 각국에 설명할 수 있을까? 그리고 미국이나 유럽의 엘리트, 오피니언 리더들, 국민들이 기본적으로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중 어느 나라에 대해 더 호의를 갖고 대할까?

우리는 한일 간 현안과 관련한 논란에서 밀릴 때마다, 일본의 로비 능력을 얘기하고, 일본의 돈 장난에 넘어간 구미(歐美) 국가들을 탓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그런 문제에 관한 한, 일본은 이미 100년 이상의 노하우를 축적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의 로비 이전에 니토베 이나조와 같은 지성들이 일본이라고 하는 나라에 대해 호감을 가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놓았다. 화나고 속상하지만, 이 차이부터 이해하는 것이 극일(克日)의 시작이 될 것이다.

배진영 월간조선 기자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