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유혹에서 자신을 찾고자 했던 렘브란트
빛의 유혹에서 자신을 찾고자 했던 렘브란트
  • 미래한국
  • 승인 2014.05.21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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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암스테르담의 렘브란트 생가
필자의 손으로 그린 암스테르담 거리 스케치

암스테르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렘브란트의 생가다. 17세기 당시의 저택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으며 렘브란트가 그 유명한 ‘야경’을 그린 곳이기도 한다. 그가 17년간 머물렀던 곳으로 에칭(동판화)이 250여점 소장돼 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에서 9번, 14번 트램을 타면 된다.

렘브란트의 집. 자! 이제 400여 년이라는 시간의 여행을 떠나보자. 지하에 있는 부엌과 주거 공간, 그리고 손님 접객을 위한 거실엔 그와 제자들의 작품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벽면에 있는 초상화들을 보면 왜 사람들이 그가 빛과 어둠의 효과로 인간 내면의 깊이를 잘 표현했다고 하는지를 알 수 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만난 400년 전의 시공간

17세기 네덜란드 주택의 인테리어적인 요소도 충분히 볼 수 있는 흥미로운 경험이다. 그리고 그가 작품에 필요한 소도구를 모아놓은 창고도 재미 있는 방문 장소다. 작품 감상에 덤으로 당시 네덜란드 사람들의 생활상까지 엿볼 수 있다.

렘브란트 생가의 전경

작업실은 건물 맨 위층에 있다. 독일 작가인 잔드라르트는 암스테르담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방문해 이런 기록을 남겼다. ‘렘브란트 작업실에는 셀 수 없는 어린아이들이 몰려들어 그림 공부를 하고 있었다.’ 아틀리에와 제자들을 가르치는 공간이 건물 2, 3층에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활기찬 곳이었지만 사실 그의 삶 언저리에는 항상 죽음이 머물고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딸의 죽음. 고뇌하는 그의 초상이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졌던 것은 가슴에 묻어둔 그런 슬픔 때문이리라. 하지만 작업실에 놓여 있는 그림의 뚜렷한 원색이 주는 명쾌함은 그의 상처를 까맣게 지워버리게 만든다. 그에게 고통과 기쁨은 진정 한 배를 타고 가는 동행자인 것인가.

렘브란트가 손님을 맞이했던 거실

그의 집을 박물관처럼 관람하고 나면 작은 미술관으로 자연스럽게 동선이 유도된다. 방문 당시 성서의 이야기를 그린 판화가 전시되고 있었다. 한참을 그곳에서 머물렀다. 십자가의 죽음이 동판화로 그려진 그림은 어떤 성화보다 예수의 죽음, 그리고 부활의 극적인 순간이 그대로 재현돼 있었다. 그 동판화를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죽음과 렘브란트의 아픔이 그대도 전달된다.

렘브란트의 집, 한권의 책이 되고 인생이 되다

여행에서 돌아와서 헨리 나우웬의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책으로 또 한 번 렘브란트를 만나게 됐다. 현재 러시아 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렘브란트의 ‘탕자의 귀환’을 보고 쓴 영성 묵상이다.

렘브란트의 아틀리에

그가 그린 성화는 다른 그림들과 다르게 거창함이나 기적을 표현하려는 의도가 표현되지 않아 더 마음에 다가온다. 수수함 그대로 단순하고 담담하게 일상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렇기에 더 솔직하고 대담하게 다가오는 것 같다.

세계적으로 여러 유명한 장소를 다니게 되는 유럽여행에서 렘브란트의 생가를 방문한 것은 책에서 만난 그의 그림을 직접 보며 그 공간에서 묵상의 의미를 찾고 싶은 마음이 컸다. 조용히 연필을 들고 그림을 그리고 있노라면 주님의 사랑을 만나게 된다. 그 기회를 준 것이 ‘렘브란트의 집’이었다.

글·그림·사진/ 한유정 자유기고가 chang-ope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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