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쩍 다가온 ‘포스트 이건희’ 시대
훌쩍 다가온 ‘포스트 이건희’ 시대
  • 이원우
  • 승인 2014.06.03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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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이었던 지난 5월 11일, 느닷없이 ‘이건희’라는 이름이 실시간 검색창에 올라왔다. 건강 악화에 따른 입원 소식이었다. 세월호 참사에 국민적 관심이 모아져 있던 상황에서 나온 이 뉴스는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보도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은 5월 10일 밤 10시56분경 서울 한남동 자택에서 심한 기침 증세를 보여 부근에 있는 순천향대 서울병원에서 심폐소생술(CPR)을 받았다. 5월 11일 0시15분쯤에는 삼성서울병원으로 옮겨 입원 치료를 받았다.
 
위독설이 빠르게 번진 이유는 입원을 둘러싼 정황이 상당히 급박한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통상 이건희 회장의 건강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치료를 담당하는 곳은 삼성병원이다.
 
이건희 회장은 2013년 여름에도 감기가 폐렴 증상으로 악화되면서 서울 일원동의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 열흘 정도 치료를 받은 바 있다. 이로 인해 이 회장과 임원들이 참석할 예정이던 ‘신경영 20주년 기념만찬’은 연기됐다. 2009년 3월에는 기관지염으로 삼성서울병원에 나흘간 입원했으며 2008년 1월에도 독감으로 1주일 이상 삼성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삼성서울병원으로 갈 겨를도 없이 순천향병원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은 점은 과거에 비해 올해의 상황이 나빠졌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순천향대 서울병원은 한남동에 위치해 이 회장의 자택과 거리가 가깝다. 즉, 일단 순천향병원에서 응급조치를 받아야 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의미다. 삼성서울병원으로 이동하는 중에도 기도 확보를 위한 기관지 삽입을 한 상태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이 에크모(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치료를 받은 사실 또한 화제가 됐다. 일종의 인공 심폐기인 이 장치는 환자의 정맥혈에 산소를 공급해 혈액을 깨끗하게 해주는 장치다. 
병세가 위중한 환자에게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이 장치는 12일 오전 8시 반경 이건희 회장의 몸에서 제거됐다. 삼성서울병원은 “(이 회장이) 에크모 제거 후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1주일 뒤인 19일 상태가 호전된 이 회장은 일반 병실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다. 
 
1942년 1월 9일 경남 의령에서 출생한 이건희 회장은 올해 72세다. 한국 남성의 평균수명이 77.6세(2011년 기준)임을 감안하면 유고(有故)를 걱정하기에는 다소 이른 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회장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걷어지지 않는 이유는 그의 가족력(家族歷) 때문이다.
 
이 회장 일가, 50대 후반 암 발병 가족력 
 
선친인 이병철 회장은 1910년 경남 의령에서 출생해 1938년 삼성그룹의 모체가 된 삼성상회를 창업했다. 다리의 힘이 약해지는 각기병을 앓은 이병철 회장은 증세가 심해져 일본 와세다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중퇴하고 귀국했다. 
 
이후에도 위암수술과 뇌수술을 받는 등 대수술이 많았고 결국 폐암이 발견돼 미국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방사선치료후유증이 악화돼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사망일은 1987년 11월 19일 향년 77세였다. 
 
故 이병철 회장은 슬하에 3남 5녀를 뒀다. 이 중에서 사망한 사람은 2남인 故 이창희 前 새한미디어 회장이다. 이건희 회장의 형이기도 한 故 이창희 회장의 사인은 혈액암. 부친이 사망한 지 4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91년 7월 19일 미국 존스홉킨스병원에서 58세라는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이건희 회장 역시 50대 후반인 1999년에 1월 림프절에 암세포가 발견돼 삼성서울병원과 미국 엠디앤더슨 암센터에서 수술을 받은 바 있어 암 발병 연령대가 일치한다. 이건희 회장의 사촌인 이동희 제일의료재단 이사장 또한 1996년 5월 28일 폐암으로 사망했다. 
 
올해 84세인 장남 이맹희 前 제일비료 회장도 현재 폐암 투병 중이다. 휠체어에 의지해 생활하고 있으며 의사소통만 겨우 가능한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맹희 회장도 어릴 적부터 다리를 절었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삼성가의 또 다른 가족력인 샤르코 마리 투스 질환(Charcot Marie Tooth desease, CMT)으로 연결된다. 이 병은 뇌에서 척추를 통해 근육으로 이어지는 말초신경의 장애로 인해 팔다리의 근육이 약화되는 질환이다. 보행에 어려움을 겪는 일종의 유전병이며 현재 삼성가의 장손인 CJ 이재현 회장도 이 병을 앓고 있다. 
 
안정 찾은 시장  … 시선 쏠리는 후계 구도 
 
이건희 회장이 일반 병실로 옮겨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에 삼성전자의 주가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병세호전 뉴스가 전달된 5월 20일 삼성전자 주가는 올해 최고치인 145만4000원까지 상승했다. 그 뒤 다소 조정을 받았으나 140만원 전후의 주가를 유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입원은 이건희 회장 유고 이후의 일들에 대한 담론을 충분히 많이 형성시켰다. 후계 구도와 관련해 가장 많은 주목을 받는 건 역시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2012년 12월 초 대규모 인사를 단행하는 과정에서 승진한 이재용 부회장은 2001년 5월 삼성그룹 경영기획팀 상무보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경영 수업에 나섰다. 그가 13년이 지난 지금 이건희 이후의 삼성그룹을 이끌어 갈 수 있을지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지분 이전은 상당 부분 완료된 상태다. 이재용 부회장은 현재 삼성에버랜드의 최대주주(25.1%)다. 에버랜드는 현재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역할을 담당하고 있으며 이 회사를 통해 삼성전자, 삼성생명에 대한 경영권이 발생한다. 삼성전자 지분은 0.57% 획득하고 있으며 올해 내로 상장될 예정인 삼성SDS의 지분 11.3%를 갖고 있다. 
 
장녀 이부진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에 대해서도 관심이 뜨겁다. 삼성에버랜드 지분 8.37%, 삼성SDS 지분 3.9%, 삼성종합화학 지분 4.91%를 보유하고 있는 이 사장은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이자 삼성물산의 고문이기도 하다. 2002년 4000억원 규모의 호텔신라 매출액을 2009년 1조원 이상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은 이부진 사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고평가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3월에는 신라호텔의 회전문을 들이받는 사고를 낸 80대 택시기사에 대해 4억원 상당의 변상 의무를 면제 조치해줌으로써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삼성물산 평사원 출신의 임우재 現삼성전기 부사장과 결혼한 이야기도 세간의 호의를 자아낸 부분이다. 
 
여기에 비하면 이재용 부회장에 꽂히는 시선에는 걱정과 우려가 뒤섞여 있다. 부친 이건희 회장이 1978년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취임해 9년 뒤인 1987년 삼성그룹 회장이 됐음을 감안하면 2012년 말 승진한 이재용 부회장에게는 아직 충분한 시간이 확보되지 않았다는 점이 지적된다. 
 
경영능력에 대한 회의적 시선도 있다. 2000년 5월 ‘e삼성프로젝트’에 도전했다가 실패한 경험은 이 부회장의 경영능력에 대한 부정적 평가에 꼬리표처럼 따라붙는다. 작년 1월에는 이 부회장의 아들이 영훈국제중학교 사회적 배려대상자(한부모 가정) 전형으로 합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큰 질타를 받았다. 이 문제는 국제중학교 입시비리 문제로까지 번지며 큰 파문을 만들었다. 
 
이건희 회장의 건강이 위기 상황을 넘기면서 병실을 지켜오던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차녀 이서현 삼성에버랜드 패션부문 사장은 지난 22일부터 출근을 재개했다. 이건희 회장은 계속 수면상태에서 진정치료를 받고 있다. 
 
‘이건희 사망설’ 해프닝 … 아직도 
 
한편 이건희 회장의 위중설은 다시 한 번 한국사회에 만연한 음모론적(的) 사고방식을 자극하며 씁쓸한 뒷맛을 남기기도 했다. 
 
16일 오후 3시15분 인터넷 매체 ‘아시아엔’은 ‘이건희 삼성회장, 16일 오전 별세’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삼성은 장례절차 등에 대한 구체적인 결정이 이뤄진 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고 밝힌 이 기사는 이건희 회장의 사망소식이 “16일 오후 청와대, 국정원 등 정부기관에 통보된 것으로 전해졌다”고도 보도했다. 어떤 경로를 거쳐 이 정보를 입수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사가 “윤순봉 삼성서울병원 사장이 16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이건희 회장 위독설을 부인했다”는 내용을 같은 기사에서 함께 보도했다는 것이다. 즉, 삼성 측이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담아 보도문을 작성한 셈이다. 이날 아시아엔의 페이스북 계정은 “아시아엔은 앞으로도 빠르고 정확하게 후속보도를 이어갈 것”이라고 밝히며 정정보도 의사가 없음을 명확히 했다. 19일 오전에도 “삼성전자 측이 19일 본지(아시아엔)에 정정 보도를 요청해왔다”는 내용을 보도했을 뿐 정정 보도를 하지는 않았다. 
 
‘이건희 회장 별세’ 기사는 23일 현재까지도 아시아엔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 올라와 있다. 기사 하단에는 “사망 숨겨놓고 지들끼리 서류 조작하겠지?” “무슨 김일성 사망 같은 것도 아닌데 왜 거짓말을 하고 그래 이 사람들 참 웃기는 자들” “누가 진실인가?” 등의 댓글이 달려 있다. 인터넷에는 이건희 회장이 이미 사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주장이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  웬만큼 파급력이 큰 사건에 음모론이 따라붙는 것은 이제 정해진 공식처럼 굳어져가고 있다. 
 
다시 보는 ‘이건희 경영론’ 
 
1978년 삼성그룹 부회장으로 취임하며 경영 일선에 나선 이건희 회장은 ‘제2의 창업’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국내 최고 수준의 삼성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는 평가다. 그 비결에 대해 숱하게 많은 분석이 나와 있지만 정작 이건희 회장이 직접 저술한 책은 1997년 11월 출간된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한 권 밖에 없다. 그나마 동아일보에 연재한 칼럼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 책을 보면 최근으로 올수록 대중 앞에서 명시적인 발언을 거의 하지 않았던 이건희 회장의 ‘직설화법’을 접할 수 있다. 선친 이병철 회장과 장인 홍진기 前 중앙일보 회장을 ‘스승’으로 꼽는 그는 시종일관 변화와 혁신을 강조한다. 대기업 총수답지 않게 ‘작은 조직’의 이점에 대해 역설하는 면모도 보여준다. 
“기업 간의 경쟁도 몸집이 크다고 이길 수 있는 게 아니다. 승패는 몸집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주변 환경의 변화에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 수 있도록 단련되어 있는가에 따라 좌우된다.” 
 
“우리도 과감하게 ‘도마뱀 꼬리 자르기’를 해야 한다. 이제는 사치와 허영, 낭비의 거품을 빼고 근면과 성실이 미덕인 사회로 돌아가야 한다.” 
 
보수주의적 철학에 가까운 견해를 피력하는 일면도 보인다. 
 
“모든 변화는 ‘나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 한꺼번에 모든 변화를 이루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보아도 혁명이 성공한 예는 거의 없다.” 
 
이건희 회장의 최고 유행어인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말의 경우 “일본에선 이미 나온 지 오래된 말”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발언의 진정한 취지와 의도는 덮어둔 채 마치 김영삼 정부를 비판하고 정치권을 매도하는 내용으로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어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 발언에 대해 김영삼 前 대통령이 매우 불편해 했다는 이야기가 널리 파급된 무렵부터 ‘말할 때 외교적 수사를 동원하거나 세련되게 하기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편’인 이건희 회장의 발언을 듣기는 힘들어졌다. 그의 견해와 ‘경영 유전자’는 지금 얼마나 계승돼 있을까. ‘이건희 이후의 삼성’이 점점 가깝게 다가오고 있다.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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