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자리
대통령의 자리
  • 미래한국
  • 승인 2003.03.21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창극 文昌克중앙일보 논설위원실장
세상이 바뀌었다. 대통령이 평검사와 1대1의 토론을 벌였다. 대화와 토론문화가 만개되고 있으니 우리의 민주주의는 절정의 길로 들어선 것일까. 그러나 나는 이 토론을 보면서 이율배반을 느꼈다. 한편으로는 젊은 검사들의 당당한 기백을 보면서 우리 민주주의와 검찰에 미래가 있다는 뿌듯함을 느낀 반면 이들이 신통하면 할수록 그로 인해 우리가 지키고 아껴야할 나라의 상징인 대통령직은 훼손돼간다는 모순을 깨달았다.제대로 된 나라가 되려면 지켜야할 가치가 여러 가지다. 민주주의의 가치도 지켜져야 하고, 반면 나라다운 체신도 지켜져야 한다. 특정세력 대변자가 아닌데민주주의를 한다고 나라의 구심점이자 상징인 대통령직이 훼손된다면 이 사회를 결속시켜갈 제도로서의 권위는 무너지는 것이다. 대통령이 권위주의적이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품격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토론을 한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자리에 합당한 토론이었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대통령의 자리는 중립적인 자리다. 대통령은 결심을 하기 전에 다양한 사람을 만나 여러 의견을 청취해 정확한 판단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토론같이 대통령이 이해의 당사자로 나서는 모양은 좋지 않았다. 대통령은 어느 특정 세력의 대변자가 아니고 모든 국민의 상징적 대표자이기 때문에 한쪽 진영에 가담하는 토론은 문제가 있다. 대통령직은 젊은 검사들의 주장도 수렴해야할 자리다. 이번 일도 장관과의 토론을 지켜본 후에 중립자로서 대통령이 결심을 했으면 보기 좋았을 것이다.대통령의 자리는 정부 결정에서 최종의 자리다. 평검사들의 입장을 알기 위한 것이었다면 장관이나 책임있는 검찰 간부들과 중간 과정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 옳았다. 만일 대통령과 토론을 해서도 해결할 수 없다면 누가 그 문제를 풀 수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대통령은 항상 최종적인 위치라는 인식 아래 처신해야한다. 행정부가 계장부터 장관에 이르는 다양한 계급을 둔 이유는 그에 합당한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할 일과 과장이 나서야할 일이 있다. 이번처럼 대통령이 중간 단계를 생략하고 직접 나선다면 정부의 그 많은 직책은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 사태가 있을 때마다 대통령이 나서야되기 때문이다.대통령의 자리는 상징의 자리다.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이 훼손되면 결국은 국가 체통이 훼손되는 것이다. 이번 경우처럼 문제의 화급성으로 인해 대통령이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공개 중계한 것은 잘못된 일이다.대통령이 불필요한 상처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젊은 검사들과 일일이 말싸움하는 모습이나 적절치 못한 어휘를 사용하는 모습이 눈에 거슬렸다. 대통령이 상처를 받아가며 꼭 이런 방식 밖에는 쓸 수 없었는가라는 아쉬움이 남는다.이런 모든 점에서 볼 때 결코 유리할 것이 없는 토론을 왜 벌였을까. 이는 새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하나의 문화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토론문화에 익숙했다. 대통령은 그것을 자랑으로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좋게 보면 가장 민주적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나쁘게 보면 하나의 목표를 향한 이념화의 과정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 이념화 과정 오해받는 토론이번 토론도 문제 해결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직접 중계를 한 이유가 대통령의 의도를 국민에게 알리고 국민의 지원을 바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번 토론은 토론을 통한 해결이 아니라 국민의 압력을 동원할 목적이 있었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 바로 이 점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 대중동원을 통한 문제 해결은 민주적 절차를 생략시킨다. 지도자와 대중의 직접 연결은 항상 초법적인 형태로 발전될 위험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런 식의 토론은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기보다 침식할 수 있는 아이러니를 안고 있는 것이다.대통령의 자리는 멋지게 토론하고 사회를 보는 자리이기보다는 고뇌에 찬 외로운 결정을 하는 자리다. 재야 시절처럼 토론을 잘해 대중의 박수를 받겠다는 유혹을 버려야한다. 말을 잘하기보다 결정을 잘해 나라를 바른 길로 끌고가야한다.제휴 3/11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