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창극이라 쓰고 초라한 한국 기독교라 읽는다
문창극이라 쓰고 초라한 한국 기독교라 읽는다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6.20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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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조선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한 크리스천의 표현으로 우리 사회가 커다란 논쟁에 휘말렸다. 그는 목회자가 아닌 언론인이었다. 설교를 한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를 강연한 자리였다. 문제는 그가 대한민국의 총리로 내정됐다는 점에 있었다.

문창극 총리 후보가 온누리교회에서 행한 강연은 총 1시간가량이었지만 KBS는 이를 3분여 뉴스 영상으로 편집했다. 그 축약된 내용으로만 보면 문창극 총리 후보는 친일이었고 반민족적 인물로 보이기 충분했다.

인터넷으로 그의 전체 강연 동영상이 공개된 후 국민들의 의견은 반반으로 갈렸다. 여전히 그를 친일 반민족주의자로 보는 의견과 역사 발전 과정에서 시련을 극복해 낸 우리 민족의 정기를 주장한 반어적 표현이어서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문 후보 발언, 과연 문제인가?

그러한 해석의 대립은 기독교내에서도 일어났다. 일부 진보성향의 기독교 인사들은 문창극 총리 후보의 발언을 기독교 세계관과 관계없는 ‘자의적 해석’으로 공격했다. 일제강점기에 선교사들은 조선 민중들의 독립의식을 고취시켰지, 그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석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문창극 총리 후보를 지지하는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련을 준 것은 그 백성을 사랑하기에 연단을 준 것이라고 해석한다. 식민지배의 역사도 그러한 시련을 통해 오늘 대한민국이 있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문창극 총리 후보의 역사관은 크리스천 보수주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신앙 고백이다. 역사에는 주재자가 있으며 역사는 그러한 주재자의 섭리에 따라 최종 심판의 날로 향하고 있다는 고백은 그래서 ‘깨어 있는 성도’의 중요함을 강조한다. 이러한 논법은 기독교 하나님을 무신론자들의 발전 사관에 대입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즉 헤겔이 설파한 바 ‘모든 역사는 세계정신과 시대정신의 변증법적 전개에 의해 지양된다’는 것과 문창극의 주장은 사실 궤를 같이한다. 현명하고 깨어 있는 집단만이 변화에 수반한 운명을 극복할 수 있고 쇠가 담금질을 통해 더 단련되듯이 위기는 기회로 극복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렇기에 문창극이 틀렸다면 헤겔도 틀린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에 한국의 대중들과 지식인들이 반기를 든 배경에는 사실 ‘안티 기독교’라는 부인하기 어려운 흐름이 존재한다고 봐야 한다.

“한국 교회의 명암을 살펴보면 내면적 요소와 사회적 요소가 잘 조화를 이룰 때 한국교회는 사회 속에 빛을 발했고, 반대로 내면적 요소가 지나치게 강조되거나 사회적 요소가 지나치게 강조될 때는 어두웠지요.”

'개인+사회'로 시작한 한국 기독교

한국 기독교 역사의 권위자인 김홍기 전 감신대 총장의 이야기다. 그에 따르면 한국교회 120년사는 경건주의적 복음주의가 지배해 온 역사라고 볼 수 있다. 김 교수는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개항기로부터 기미독립만세의 시절까지를 건전한 복음주의시대(1907~1919)로 분류한다. 이때는 개인적 내면적 성화와 사회적 외향적 성화가 가장 잘 조화된 시대였다는 것이다.

이 시대가 한국 교회로 하여금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미국의 선교사들이 있었다. 초대 한국 개신교 형성기(1885-1906)를 볼 때 1884년 의료선교를 시작한 알렌의 선교 이후 본격적으로 한국 개신교의 신학과 신앙의 유형이 결정됐다.

“조선 기독교 민중들은 나라의 독립을 쟁취하려는 정치적 관심 때문에 교회를 찾았으나 선교사들은 비정치적 관심을 갖고 조선 교인들의 개인적 성화만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 두 다른 신앙적 관심 때문에 조선 교인과 선교사간의 갈등과 긴장이 있었지요.”

김 교수는 이 시기를 건전한 복음주의시대(1907~1919)로 구분한다. 개인적 내면적 성화와 사회적 외향적 성화가 가장 잘 조화된 시대였다는 것. 이 시대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대부분 자기 의(義)에 도취돼 있지 않고 오히려 구원의 확신과 영생의 확신을 사회 참여와 독립운동으로 표현했다는 것이 그의 평가다.

실제로 이러한 복음적 힘은 일본식민통치에 항거하는 독립운동의 모습으로 다양하게 나타났다. 1919년 독립운동의 하나의 채널은 한국교회였다.

 

이후 한국 기독교는 불건전한 복음주의 운동의 시대(1920~1944)를 맞게 된다.

“1919년 3·1운동 이후 한국교회는 심한 정치적 박해를 받게 되자 점점 비사회화되고 개인적 성화와 내면적 경건에 집중하게 돼 신비주의가 만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사참배 참여로 말미암아 기독교 신앙의 본질마저도 상실했던 것이죠.”

김 교수는 이러한 시대가 결국 암흑시대(1945~1959)에 이르고 장로교는 교회와 신학의 차이 때문에 분열을 계속해 장로교파만 32개, 개신교 교단수가 60개가 넘었다고 지적한다. 감리교회는 교회와 신학보다는 교권 다툼 때문에 분열돼 갔다.

이후 한국 기독교는 복음의 양극화시대(1960~1990)로 넘어가 한국 기독교인들은 정치적, 경제적 발전과 사회적 성화 실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산업선교, 도시빈민선교와 가톨릭 농민운동과 개신교 농민운동이 나타나기도 했고 여성운동도 등장하게 됐다.

신뢰의 위기에 빠진 한국 기독교

그렇다면 2000년대 한국의 기독교와 교회는 어떤 시대를 맞고 있을까. 지난 2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여론조사기관 글로벌리서치를 통해 발표한 한국 교회의 사회 신뢰도 조사에서 개신교는 가톨릭-불교-개신교 순으로 5년째 꼴찌를 기록했다. “전체적으로 한국 교회를 신뢰한다”는 질문에 대해 조사 대상자의 19.4%만이 신뢰한다고 응답한 반면 44.6%는 불신한다고 응답했다. 이를 5점 척도로 평가한 평균 점수는 2.62점으로 ‘보통 정도’가 3점임을 감안하면 평균 이하의 결과다. 한마디로 ‘불신의 시대’로 접었다는 평가가 나올 법하다.

충격적인 것은 응답 내용을 종교별로 분석한 결과 기독교인의 한국 교회 신뢰 비중은 47.5%로 지난 2010년 조사 결과인 59%보다 대폭 감소한 수치라는 점이다. 기독교인들 조차도 이제는 자신의 종교에 대한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는 징후였다.

이러한 기독교에 대한 불신의 원인으로 응답자들은 ‘타종교에 대한 배척’과 함께 ‘목회자들의 비윤리’를 가장 많이 꼽았다. 기독교 교리가 유일신적이라는 점에서 타종교에 대한 배척은 종교간의 경쟁이라고 치부하더라도 목회자들의 비윤리를 지적하는 빈도가 높다는 사실은 오늘 한국의 교회와 기독교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지난 2월 20일 법원은 주식거래로 교회에 131억원의 피해를 입히고 35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돼 왔던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목사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50억원을 선고했다. 공모자인 그의 장남 조희준 전 국민일보 회장은 징역 3년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됐다. 이 사건은 한국 기독교에 큰 상처를 줬다. 조용기 목사가 갖는 위상 때문이었다.

조용기 목사는 세계 최대 교회를 일군 세기적 목회자이자 한국교회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상징적인 영적 지도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기에 그의 유죄판결과 비리 혐의는 한국 교회로 하여금 커다란 우려와 절망감을 안겼다.

물론 항소심을 통해 이 문제가 어떻게 변화할지는 모르나 지난 1월 20일 법정 최후진술에서 조용기 목사는 배임과 탈세 혐의를 인정하면서 “물의를 일으켜 마음 깊이 뉘우친다. 어떠한 판결을 받더라도 하나님의 판결로 알고 순종하겠다”고 진술한 바 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하나만의 문제라면 한국 기독교에는 희망이 있다고 하겠지만 평가는 그렇지 못하다.

개신교 교단들에서 교단대표의 선출을 둘러싼 잡음과 금금수수 의혹, 개교회 중심의 성공주의와 물질주의, 개교회 담임목사와 부교역자들 사이의 권위주의적 관계, 당회 구성원들 사이의 알력, 여성 교인들의 폄하와 의사결정 과정으로부터의 체계적인 배제, 다른 종교에 대한 무모한 공격, 비록 소수 교역자에 국한된 현상이기는 하지만 교역자 청빙, 교회 헌금과 재산, 교회매각, 성문제 등을 둘러싼 추문은 차라리 한국 개신교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음을 보여주는 긴 목록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 오랫동안 활동해 온 선교사이자 탈북여성들의 자녀를 보호하는 NGO 활동을 해 온 팀 피터스(Tim Peters)는 본지 <미래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독교의 현재 모습을 이렇게 진단했다.

“내가 보기에 한국 개신교는 중대한 기로에 있는 것 같다. 지난 수십년 간의 폭발적인 성장이 둔화되고 있다. 농업사회에서 가난에 찌들었던 한국이 급속하게 현대화, 도시화되면서 물질주의가 한국 개신교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또한 많은 대형 한국 교회의 리더십 구조가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겸손한 종의 모델이 아닌 회사와 상당히 흡사하다. 담임목사들은 맡겨진 교인들을 섬기는 자가 되려 하기보다 교회를 ‘기업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참된 영적인 스승을 찾는 젊은 목사들에게 큰 실망이 됐다.”

팀 피터스의 이러한 평가는 그가 국내 여러 교단과 교회의 입장으로부터 독립적이고 자유롭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권위주의적인 한국 교회 지도자들과 지구 반대편의 좀 더 겸손한 교회 리더들 간의 차이를 보며 괴리감을 느꼈다”고 이야기한다. 피터스는 목회자들의 지나치게 권위주의적인 면들이 젊은이들로 하여금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한 요소라고 말했다.

보수,진보로 갈리는 한국 교회의 분열

2000년대 한국 교회의 분열에는 신학적 갈등도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문제는 특히 교회의 사회 참여를 놓고 날카롭게 대립하는 경향을 보인다. 김명용 장신대 교수는 이 문제를 교계의 진보와 보수의 문제로 제시한다.

즉 보수적 근본주의 신학 전통에 서 있는 교회는 성서를 사랑하고 성서의 권위에 복종하려 한다는 점이 장점이나 정치 문제에서 교회의 중립은 바른 신학적 결단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반면에 진보적 급진주의(사회 참여) 신학 전통에 서 있는 교회는 한국 장로교회 내에서 성서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본격적으로 열게 했다는 점에 장점이 있다. 그러나 사회 참여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복음을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지적이다. 그는 “진보적 교회들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에 대한 인식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실제로 진보성을 띤 교회들은 전반적으로 좌파적인 경향이 강하다. 사회학적 분석과 해답에 너무 많이 의존하며 역사 발전에 있어서의 민중주체이론 등은 한국 교회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다시 문창극으로 돌아가 보자. 무엇이 문제인가. 그의 역사관과 신앙관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다. 그가 조선민족을 멸시하거나 일제 식민사관을 옹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의 전체 강연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한국의 정치 상황이다. 그리고 한국 교회들이 그렇게 타락한 한국 정치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이라면 세속의 문제에 성경을 들이댈 것이 아니라 성경이 말하는 세계를 들이대야 한다. 그것이 진리이자 생명의 원리가 아니던가 말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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