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개조? 새누리당부터 개조하라!
국가개조? 새누리당부터 개조하라!
  • 미래한국
  • 승인 2014.06.24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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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호의 역사이야기
 

우리는 역사를 직시하기보다는 찬란함의 판타지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경우가 많다. 역사를 미화하며 위안을 얻기는 쉽다. 그러나 전진을 위해선 뼈아픈 자각이 필요하다. 역사는 뼈아픔을 삼킬 줄 아는 자에게만 미래를 위한 교훈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 국난의 대목 대목은 더 그러하다.

거슬러 올라 임진왜란 당시다. 많은 한국인들은 임진왜란 당시의 일본의 정명가도(征明假道: 명을 치기 위해 길을 빌려달라)의 요구가 단지 조선을 치기 위한 핑계로 알고 있다. 그리고 조선이 군사적으로 처지지만 전체적으로는 엇비슷한 데서 약간 처지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너무 큰 착각이다.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진짜로 명을 정벌할 생각이었으며 일본은 그럴 만한 충분한 실력을 갖고 있었다. 미국의 동양사학자 페어뱅크스 등이 쓴 <동양문화사>에 따르면 당시 일본의 인구는 3200만명에 달하는 데 비해 조선은 500만명 이하로 추정된다고 보고 있다. 그런데 한국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1590년대 조선의 인구는 180만~190만 남짓이었던 것으로까지 내려간다. 비교 자체가 불필요한 격차다.

당시 일본의 군사력도 사실상 유럽까지를 포함해서 본다 해도 세계 최강이었다. 조총 보유 대수는 유럽 전체의 소총 보유 숫자보다 많았다. 그리고 1백여 년 전국시대를 거친 만큼 병사들도 최강이었다. 만약 육전에서라면 그 어느 나라의 군대도 일본군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명(明)의 멸망 원인 중 하나가 임진왜란 당시 일본과 싸우면서 안게 된 군비부담 때문일 정도였다. 그런 군대가 15만이 쳐들어왔다.

그러나 조선의 처지는 참으로 암담했다. 임진왜란 18년 전인 1574년 율곡 이이는 상소 ‘만언봉사(萬言封事)’에서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나라가 나라가 아닙니다. 이야말로 진실로 나라가 아닙니다. 날로 심하게 썩어 하루가 다르게 붕괴돼 가는 큰 집에 불과합니다. 기둥을 바꾸면 서까래가 내려앉고 지붕을 고치면 벽이 무너지는, 어느 대목도 손을 댈 수 없는 집입니다.”

청나라의 책봉 체제에서 독립한 것을 상징하기 위해 1897년 11월에 독립문을 완공했다.

조선도 결국은 이념이 문제였다

그때만 그랬던 게 아니다. 조선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내내 그렇게 형편없이 살았다. 산업화 이전 대부분의 농업국가들이 어렵게 살았던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조선은 한중일의 3국 가운데서도 특별히 더 못살았다.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은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조선의 가옥은 청나라 일반 민가의 화장실보다도 못하다고 참담해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임란 이후 일본을 왕래한 통신사의 기록인 신유한(申維翰)의 <해유록(海遊錄)>과 김인겸(金仁謙)의 <일동장유가(日東壯遊歌)>는 일본의 놀라운 번영에 끝없는 감탄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국사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많은 한국인들은 한일합병 당시 일본 제국주의가 비록 힘은 없지만 착하고 소박하게 잘 살고 있던 멀쩡한 나라를 집어먹은 것처럼 배우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조선은 그 이전에 이미 다 망가져 나라라고 할 수도 없는 상태였다. 일본의 조선 ‘접수’는 마치 길바닥에 굴러다니던 빈 깡통을 주워간 것이나 다름없었다.

왜 그랬을까? 문제는 이념이었다. 사회주의의 실패는 국가의 운명에 있어서 잘못된 이념이 얼마나 큰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현대 이전 그에 못지않은 적나라한 사례가 바로 조선의 경우였다. 성리학의 공리공담이 조선을 완전히 망가뜨렸다. 숭문(崇文)에 중독돼 무(武)와 상(商)을 천시하고, 제 나라보다도 중국을 더 우러러봤다. 선조는 임란 당시 명(明) 황제에게 “부모의 나라 품에 안겨 죽고 싶다”는 편지를 보냈다. 제대로 된 나라일 수가 없었다.

임란 발발 2년 뒤인 1594년 유성룡(柳成龍)은 군국기무(軍國機務) 10개조의 개혁안을 올렸다. 군국기무란 “군사가 국가정책의 근본이며, 군사를 국가정책의 중심으로 삼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로 치면 군사독재에 의한 개혁 추진과도 같은 의미를 지닌 것이었다.

문덕(文德)으로 나라를 다스린다는 숭문(崇文)과 문치주의(文治主義)의 나라 조선이었다. 임란이 아니었다면 말도 꺼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해 그것은 흐지부지 폐기되고 조선은 예의 그 문덕의 나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

건국, 그리고 5·16이라는 군국기무

그로부터 300년만이자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1894년 군국기무처(軍國機務處)가 설치됐다. 그 주도 하에 갑오경장(甲午更張)이 단행됐다. 우리 역사상 최초의 근대적 개혁이었다.

청일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한 덕분이었다. 그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중국의 속방 상태에서도 벗어나 독립국이 됐다. 당시 유림들은 천자국으로부터의 독립이 웬 말이냐며 반발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군국기무의 개혁도 무위로 돌아가고 조선은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건국됐다. 1274년 몽골에 완전 복속돼 조종(祖宗)의 호칭을 포기하고 충성의 뜻으로 충(忠)자를 왕의 칭호 앞에 쓰기 시작한 이래 674년 만의, 그리고 명(明)에 사대를 맹세하며 건국한 조선 개국 이래 556년 만의, 완전한 자주독립국의 건설이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가 이념적 바탕이었다. 이후 대한민국의 번영은 그것을 지켜냄으로써 가능했다. 1948년의 건국은 올바른 이념의 선택이 국가에 성공을 가져다준 극적인 사례였다.

5·16 혁명은 1948년 건국의 이념을 수호하고 체제를 정비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정변이 아니라 군국기무의 혁명이었다. 국가재건최고회의는 바로 군국기무처였다. 1594년 유성룡의 군국기무와 1894년 갑오년의 군국기무의 개혁은 무위로 끝났지만 이번에는 성공했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1948년 건국과 1961년 5·16이 있음으로써 가능했다.

생존 전제되지 않은 주장은 헛소리다

1987년의 민주화가 무가치했던 건 아니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지정학적 조건과 기나긴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가장 중요한 것은 단지 민주화가 아니다. 우리가 한반도에서 나라를 일구고 사는 한 반드시 직시하고 각오해야 할 숙명이 있다. 중국은 너무 크고 일본은 너무 강하다는 사실이다. 그들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지킬 만한 능력을 갖추지 못하면 반드시 참혹한 대가를 치르게 돼 있다. 전쟁이 아니면 사대, 급기야는 병합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이미 겪었다.

만약 우리가 그들에게(중국이든 일본이든) 복속되지 않고 독립된 문명을 유지하고 싶으면 그만한 실력을 갖추고 합당한 국제적 조건을 만들어내야 한다. 강력한 국방력을 갖춰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그것을 뒷받침할 경제력이 충분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안 된다. 단독으로 맞서기에는 그들은 여전히 우리보다 크고 강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동맹이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그 동맹을 갖고 있고, 만만찮은 경제력과 국방력도 갖추고 있다.

한국은 이제 작은 나라가 아니다. 5천만 이상의 인구에 2만달러 이상의 국민소득을 구가하는 나라는 지구상에 7개밖에 없다. 우리도 그중 하나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위험한 시대에 우범지대를 살고 있다. 주변국은 여전히 우리보다 현저히 강한 국력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우리 국토의 절반에는 북한 정권이라는 희대의 야만집단이 핵으로 무장까지 한 채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생존을 지키고 번영을 지속해야 한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국가든 일단은 생존이다. 그것을 우습게 아는 모든 주의주장은 다 헛소리다. 특히 우리의 처지에선 더 그러하다.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실적이어야 하며 늘 긴장과 각오 속에서 살아가는 게 불가피하다. 다시는 조선조 때와 같은 헛된 공리공담의 무리가 날뛰게 해선 안 된다.

그런데 지금 이 나라에선 한편의 가당찮은 난장(亂場)이 펼쳐지고 있다. 바로 문창극 총리 후보를 놓고 벌어지는 일이다. 위선의 무리들이 정의를 참칭하며 사위를 어지럽히고, 사악한 무리들이 진실을 모욕하고 모리배가 애국자들 핍박하고 있다.

문창극 후보를 둘러싼 소극(笑劇)

가히 조선조의 당쟁의 모략을 방불케 한다. 그런데 소극(笑劇)이다! 이 모리배들은 어찌된 셈인지 당파를 달리하면서도 그 일사불란함은 하나의 무리요 본색에도 구분이 없다. 모두가 각양의 사연으로 구린내를 자랑한다. 새민련의 박지원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새누리의 서청원 김무성도 다 마찬가지다. 모두 뇌물 범죄 전과자들이다. 이런 자들이 자신들은 죽었다 깨나도 못 따라갈 멀쩡한 총리 후보에게 물러나라며 파상공세다.

자유민주적 신념을 ‘꼴통’으로 매도하고, 애국을 말하는데 매국이라 욕을 퍼붓고 있다. 왜곡이 사실을 비웃고, 거짓이 진실을 농락하고 있다. 어디를 따질 것도 없다. 언론 자신이 시시비비의 올바름을 포기하고 중상모략에 오히려 앞장섰다. 여야를 따질 것도 없다. 모두 한 통속이다. ‘저들 패거리’의 어깃장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그런데 ‘새누리’라는 것도 이름 그대로 그저 ‘누리기만 하려는’ 자들의 잡탕에 지나지 않음이 드러나고 있다.

‘어떤 자’가 우리의 현대사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매도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는 우리 역사 뿐 아니라 세계사에도 유례가 없는 위대한 성취의 역사였으며 오히려 민주화 이후 20여년의 역사야말로 “애국은 모욕당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가 됐다. 협잡을 소통이라 우기고, 법치를 우롱하는 자들이 민주주의를 강변하고 있다.

한국의 어린 민주주의가 좌익 선동 세력과 모리배들에 의해 농단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애국자와 양식 있는 시민의 손에 있을 때는 자유의 활력을 꽃피우게 하지만 양아치들의 손아귀에 들어가면 나라를 해치는 흉기가 된다. 지금 이 나라의 민주주의는 선순환에서 이탈했다. 야당 탓만이 아니다. 새누리당 또한 한통속이다. 아니 어쩌면 지금 이 지경에 가장 큰 책임은 새누리당에 있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 융합의 파산

1990년, YS가 3당 합당에 참여한 것은 그 내면의 동기가 ‘대통령 병’이었든 말든 올바른 선택이었다. 1987년 대선의 결과는 민주화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에도 불구하고 ‘구세력’을 결코 일방적으로 퇴장시킬 수 없는 것임도 보여주었다. YS와 DJ가 단일화했다면 ‘민주진영’의 승리 가능성이 컸음은 분명했다. 그러나 역사는 주장하는 자들의 희망을 아랑곳하는 게 아니다.

YS DJ의 표가 그대로 산술적으로 결합했을 것이라고 보는 건 선언적 주장에 지나지 않으며 민정당이 설사 패배했다고 하더라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표를 획득했을 가능성이 분명했다.

더욱이 1987년 대선은 이미 민정당이 승리했다. YS는 선택의 기로에 섰다. YS DJ가 분열돼 있는 한 단독으로는 집권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나 그들의 재결합은 이미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단순히 정치적 욕심의 문제가 아니었다. YS는 민주화를 제외하고는 DJ로 대표되는 급진세력과 공통점이 없었다.

상도동당이 돼가는 새누리당

YS는 결국 산업화 세력과의 결합을 택했다. 그것은 사적 욕심의 차원에서도 현명했지만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옳은 결단이었다. 민주화 세력과 산업화 세력이 서로를 인정하고 하나로 융합된 새로운 주도 세력으로 재탄생된다면 대한민국은 장기적 안정 속에서 더 한 층의 도약을 할 것임에 분명했다.

그러나 산업화 세력은 민주화 세력을 인정했지만 민주화 세력은 산업화 세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YS는 자신을 점령군으로 간주했다. YS는 당선된 뒤 하나회 척결을 앞세워 군부 엘리트 세력을 무력화시키고 전두환 노태우를 감옥에 보냈다. 그리고 JP도 쫓아냈다. 산업화 세력을 대표하는 양대 축이 무너지고 쫓겨났다. 남은 것은 상도동 패거리의 주도에 의한 기계적 결합뿐이었다. DJ는 쫓겨난 JP와 손잡고 당선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노무현이 당선됐다. 10년의 좌익 정권! 산업화와 민주화의 융합을 외면한 대가였다.

이명박의 당선은 거의 전적으로 노무현의 실패 덕분이었다. 박근혜의 당선도 그 개인의 힘과 급진세력에 대두에 대한 위기 의식이 큰 역할을 했다. 그 어느 경우도 ‘당’ 덕분은 아니었다. 지금 새누리당은 박근혜의 개인적 지지 기반과 별도로 국민적 여망을 결집시킬 수 있는 정치세력이 전혀 아니다. 일대 갱신이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새누리당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다. 서청원과 김무성이라는 구 상도동 세력의 핵심 인물들이 새누리당 대표 경선 레이스의 양대 주자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결합을 파산시키고 급진세력에 정권을 헌납한 상도동 패거리의 당이 돼 가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에는 관료 엘리트 출신들도 주요 집단을 이루고 있다.

그런데 관료란 본시 정치적 영혼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관료 출신 정치인들은 또 다른 정치 리더십에 의해 정치적 영혼을 제공받지 않으면 웰빙족 이상이 될 수가 없다. 그러나 예의 상도동류 패거리들은 결코 그런 역할을 할 수 없다. 패거리 정치에 능한 만큼 자리를 잡는 데는 언제나 능하다. 그러나 거기까지다. 정쟁에는 능하지만 국가적 비전이 없다. 협잡에는 능하지만 건설을 이끌 능력은 없었다. 이념적 원칙이 없는 자들, 칭하여 단지 ‘꾼’들일 뿐이다.

관료 엘리트들의 눈에 그들은 결국 일종의 정치건달이다. 그래서 관료 엘리트 출신들은 한편으로는 대세를 추종해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들을 경멸한다. 이런 상태에서 이들을 묶어내 정치적 전투력을 발휘하게 만드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이다. 이념 없는 정치건달과 영혼 없는 공무원 무리들, 이런 당으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투항 아니면 협잡밖에 없다.

지금 서청원 김무성 이재오 등은 그렇게 여야를 넘나드는 투항과 협잡으로 박지원 등과 한통속 4인방이 돼 문창극 총리 후보를 몰아내려 협공을 펼치고 있다. 이런 자들이 새누리당의 대표가 된다? 그런 당과 더불어 국가개조를 한다? 진정 국가개조를 제대로 수행하려면 새누리부터 갈아엎어야 할 것이다.


이강호 편집위원·역사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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