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별없는 열정’을 제어하라
‘분별없는 열정’을 제어하라
  • 이원우
  • 승인 2014.06.30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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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진실’ 펴낸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혼자서 남몰래 좋아하던 배우나 가수가 갑자기 유명해지면 약간의 상실감을 느끼게 된다. 내가 세상 사람들보다 훨씬 먼저 알아봤다 싶은 생각이 들면서 뒤늦게 ‘저작권’을 주장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요즘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의 활약을 볼 때 딱 그런 생각이 든다.

‘이 분 내가 먼저 알아봤는데….’

그런데 웬걸. 인터넷방송 ‘정규재TV’가 전국적인 히트를 하고 나니 전국 팔도에서 오랜 팬들이 줄을 선다. 한국경제신문 러시아 특파원 시절부터 좋아했다는 골수팬, 칼럼 집필이나 TV 토론 출연만으로도 충분히 좋아했다는 사람 등 계기도 다양하다. 그는 이미 스타였던 것이다. 개국 2년 만에 조회수 1300만을 돌파한 정규재TV는 그저 구심점이었을 뿐.

대선 직전 ‘착한, 너무 착한 안철수’를 출간했던 그는 여전히 꾸준한 방송을 하는 한편으로 새 책을 펴냈다. 이번 제목은 조금 더 직설적이다. ‘닥치고 진실.’ 6월의 어느 날, 한국경제신문 본사에서 정규재 논설실장을 ‘닥치고 인터뷰’ 했다.

- 갈수록 책 제목이 강력해지는데요. 나꼼수 김어준의 ‘닥치고 정치’ 패러디 같다고 싫어하는 팬들도 꽤 봤습니다. 제목은 직접 지으셨는지요.

제가 달진 않았고 출판사에서 생각한 제목입니다. 정규재TV에서 방송했던 내용 중 꼭 다시금 깊게 읽어봤으면 하는 내용들을 뽑아서 보충하고 누락된 자료를 보완하는 작업을 거쳐서 책으로 펴냈어요.

- 정규재TV 방송을 보면 서울대 조국 교수, 변형윤 교수 등에 대한 실명 비판을 종종 하시는데요. 지난 대선 직전엔 안철수 의원을 ‘저격’하는 책도 내셨습니다만 언론인으로서 상당한 부담이 따르는 일 아닌지요.

일단 안철수는 요즘 자신이 뭔가를 잘못 짚었다는 느낌을 받고 있을 겁니다.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마구 띄우는 바람에 위인이나 된 줄 알고 있었다가 지금 추락하는 중이니까요. 결국 안철수도 어떻게 보면 희생자예요.

그에 대한 책을 썼지만 (안철수는) 진지하게 논박을 하거나 주장을 분해하거나 그럴 수준에 와 있는 분이 아니에요. 그래서 개인 안철수에 대해 얘기를 하기는 민망스럽고, 안철수를 지지하거나 그가 마치 정치적으로 큰 구세주나 되는 듯이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서 부득이 책을 쓴 거죠. 미안한 얘기가 될 수도 있어요. 다만 안철수가 하나의 사회적 현상이었기에 체면불구하고 실명 비판을 한 거죠.

사회적인 허상이나 미신을 격파하는 것이야말로 ‘악마의 변호사’로서 언론인에게 주어진 숙명입니다. 단순히 부드러운 인간관계로 치환할 수 없는 의무라는 거죠. 언론인이 그 의무를 피하면 안 됩니다. 본질적으로 허상을 깨는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니까요.

물론 그렇게 실명 비판을 하고 나면 저도 속이 상해요. 기분 좋은 일이 전혀 아니지만 사명이라 생각하고, 대신 저녁 때 술을 많이 먹게 되죠. (웃음)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 정규재TV가 활동의 중심이 되면서 TV토론 출연 횟수는 많이 줄어든 것 같습니다. 단순히 물리적 이유인가요?

토론이라는 방식 자체에 대한 회의감은 없어요. 오히려 토론은 많아져야죠. 민주주의라는 게 대화의 체제인데 토론만큼 좋은 채널이 없으니까요.

근데 왜 요즘 TV토론에 안 나가느냐 하면, 대단히 죄송스런 얘깁니다만 요즘은 TV토론에 저처럼 시장자유를 중요시하는 사람들이 나오는 분위기가 전혀 아니에요. 그렇다 보니 제 옆에 앉아 있는 분과 사회자까지 포함해서 3:1, 5:1로 토론해야 되는 상황이 발생하죠. 그 짜증을 견디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좀 건방진 얘기지만 억지로 나가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차라리 안 나가고 고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괜히 나가서 굉장히 열띤 토론이 있는 것처럼 분위기를 만드는 것보다 그냥 그 논쟁 자체를 ‘재미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게 낫겠다 싶었던 겁니다. (웃음)

- 사람들이 시장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뭘까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대부분의 순진한 사람들이 좌익적 슬로건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도 그겁니다. 골목에 SSM(기업형 슈퍼마켓)이 들어오면 골목 구멍가게가 망하는 게 눈에 보이죠. 그래서 SSM 다 없애고 파리바게뜨 규제하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원초적이죠. 눈에 보이는 대로만 말하는 거예요.

 

아침에 보면 하늘에 해가 떴지만 정말 해가 떴나요? 사실은 지구가 돈 거죠. 그런데도 눈에 보이는 대로 천동설을 주장하는 걸 ‘자연주의적 오류’라 부릅니다. 이걸 타파하기 위해서는 공부가 필요해요. 눈에 보이는 것 배후에 어떤 규칙과 법칙이 있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거죠.

시장경제도 마찬가집니다. 경쟁심이라는 메커니즘이 인간을 이타적으로 협력하게 만든다는 걸 이해해야 진짜 이해하는 거거든요. 그걸 깨닫지 못하면 치열한 경쟁만 보이니까 삭막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사실은 인간이 창조적으로 협력하게 만드는 프로세스에 불과해요. 치열한 경쟁만이 자본주의의 진면목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거든요.

- 공부를 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할 텐데요. 좋은 책을 소개해 주는 게 또 정규재TV의 매력이기도 합니다. 좋은 ‘독서법’까지 소개해 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책 읽는 방법은 ‘닥치고 아무 책이나’ 읽는 겁니다. 특히 청년들의 경우 더 그래요. 가능하면 하나의 학문적 방향성에 따라서 처음에는 넓게 읽다가 깊이 알고 싶은 부분으로 빨려가게 되는 거죠.

물론 ‘아류’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골라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미 학문적으로 완전히 용도 폐기된 마르크스를 읽더라도 원전을 읽는 건 좋지만 그 아류들, 막시즘을 슬로건화(化) 해놓은 레닌이즘을 볼 필요는 없다는 거죠.

이른바 ‘멘토’라는 사람들이 떠들고 다니는 그런 책들도 사실은 쓰레기에 가까워요. ‘세상을 살아가는 00가지 지혜’라든지 이성을 유혹할 때 뭘 어떻게 하라는 식의 접근도 마찬가지죠.

인생을 아주 도식화된 하나의 주의주장으로 접근하는 책들은 피해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가려 읽기도 해야 하지만 일단은 넓게 읽겠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고전의 경우엔 젊었을 땐 잘 안 읽히니까 커서 또 읽고 노년에 또 읽고 하다보면 새로운 맛이 우러나오죠. 그러니까 ‘닥치고’ 읽으세요. (웃음)

“사회주의, 젊을 때조차도 빠질 이유 없어”

- 학부에서 철학을 전공하셨는데요. 확실히 인문학에 대한 식견을 피력하실 때 각도가 남다르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저도 학교 다닐 때 사회주의 책 많이 읽었어요. 유행이기도 했고요. 종속이론이니 로마클럽이니 그런 거 안 읽으면 지적으로 바보 취급을 받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사실 시간 낭비였어요. 지금 로마클럽이 어디 있습니까.

뭣도 모르는 사람들은 ‘그래도 젊은 때 사회주의적인 생각이 도움 되는 부분도 있지 않느냐’고 하는데 그런 건 안 해본 사람이 하는 얘기고 말 그대로 시간 낭비예요. 다른 쪽 생각도 알아야 된다고 말할 때의 ‘다른 쪽’에도 안 들어간다는 얘기죠.

특히 저는 모스크바 특파원으로 일하면서 인간의 환상으로 만들어 놓은 시스템이 어떻게 망가지는지를 눈앞에서 완전히 체득을 했어요. 애초부터 철저한 사회주의적 인간도 아니었지만 완전히 전향을 한 것이죠. 현대 자본주의를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해 대학원에선 재무론을 공부했고요.

- 요즘엔 방송에서 ‘좌빨’이라는 단어 잘 안 쓰시던데요. 대신 ‘좌익’이나 ‘좌파’ 같은 용어를 사용하고 계십니다. 여기에 ‘보수’며 ‘진보’까지 더하면 정말 헷갈리게 되는데 이런 용어들에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보수/진보 기준하고 좌익/우익 기준은 사실 달라요. 구(舊)소련, 그러니까 러시아에 갔다고 해 보죠. 스탈린주의자 아직 많습니다. 그들은 좌익이지만 수구 꼴통이죠. 좌익보수인 거예요.

우리 사회는 좌파라는 말을 많이 쓰죠. 좌익이란 말이 사람들의 거부감을 자극하니까 좌파라고 표현합니다만 사실 그건 옳지 않아요. 좌익 안에 우파가 있고 좌파가 있는 거거든요.

우익 안에 마치 매파/비둘기파처럼 좌파가 있고 우파가 있는 거고요. ‘파’는 같은 진영 안에서 급진이냐 온건이냐를 따지기 위한 겁니다. 따라서 좌파라는 단어보단 좌익이란 단어가 사상적으로 정리된 용어예요.

- 사상에 대해 관심이 없는 많은 사람들은 ‘시장을 맹신하면 우익’으로 단순하게 보는 경향이 있기도 한데요.

자유시장경제는 원칙이요 원리인 것이지 구체적인 케이스에 대해서 세세한 판단 기준을 주는 형식 규정은 아니에요. 철학입니다. 겉으로 거칠어 보일지라도 가능하면 공개적이고 투명한 경쟁시스템으로 가는 게 만인들의 필요를 그나마 충족시키는 차선책이라 보는 거죠.

자유시장 원칙대로 하면 세상이 잘 돌아가느냐. 그렇죠.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자유시장 원칙에 입각한 구체적인 규정이 있는 것은 아니고 케이스마다 담고 있는 맥락과 구조가 있어요. 그 맥락과 구조에서 판단할 문제지 시장이 완벽하다는 주장은 아무도 하지 않습니다.

간혹 시장경제의 원칙을 역설하면 “가난한 사람은 다 죽으란 말이냐”는 식의 반론이 나오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자본주의는 천국이 아니므로 지옥이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천국의 오류’를 범하는 거죠. 천국이 아니면 다 지옥이라는 게 좌익의 논리입니다.

시장주의자들은 다만 현실을 끊임없는 문제 해결의 과정으로 볼 뿐이에요. 수많은 거래관계나 수많은 계약관계·인간관계를 가능하면 그 원리에 맞게 푸는 것이 결국 가능한 한 모든 자에게 이롭다는 거죠.

“좌파·우파보단 좌익·우익이 더 정확한 표현”

- 여하튼 ‘유명한 우익’이 되셨습니다. 혹시 구체적인 꿈이나 목표 같은 게 있으신지요.

할 만큼 하지 않았나 싶어요. 꿈이 뭐 있겠어요. (웃음) 그저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분별없는 열정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있길 바랄 뿐이죠. 사회주의적 열정은 대개 목적론적이고 논리적 모순을 추구해요. 마치 어떤 교사가 자기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모두가 평균 이상의 성적을 올리기 바랍니다”라고 하는 것과 같죠.

그런 논리적 모순이 우리 가슴 속에 뜨거운 열정으로 존재해요. 그 자체를 누구도 부정할 수는 없겠죠. 그런데 설령 그것이 사회주의적 열정이라 할지라도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방법론은 시장경제적 방법이어야 할 겁니다. 그게 아니고 전체의 복지를 단 조금이라도 올리는 방법은 없다는 거예요.

이런 부분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그 방법론에 대해서 열심히 공부하게 되고 사회 개선의 희망이 생기는 것이죠. 슬로건만 외치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분별없는 열정(reckless passion)에 불과해요.

- 청년 팬들이 실장님에게 ‘고단 선생’이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습니다만 젊은 세대로부터의 인기를 체감하신 적은 없으신지요.

젊은 친구들이 지하철에서 쭈뼛쭈뼛 사진 찍자고 다가오는 경우엔 고마움을 느끼죠. 한 번은 춘천에서 기차를 타고 오는데 내 앞에 앉은 젊은 친구가 가방에 넣은 두꺼운 책이 보이더군요. 그런데 제목이 ‘해방 전…’까지만 보입디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좌익서적)’일 수도 있고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우익서적)’일 수도 있는 그 순간에 잘생긴 그 친구가 과연 둘 중에서 무슨 책을 읽고 있을지 우려가 되더라고요.

결국 열차에서 내린 뒤에 그 친구가 ‘재인식’을 읽는다는 것, 정규재TV를 자주 시청한다는 것을 알았죠. 그럴 때 약간의 보람을 느낍니다. 어떤 부분에서는 약간의 셀파(sherpa), 그러니까 안내자가 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면 기분이 아주 좋아져요.

인터뷰 /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사진 / 김동수 객원기자 dskimk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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