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 북한인권을 말하다
한국문학, 북한인권을 말하다
  • 이원우
  • 승인 2014.07.15 11:13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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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인 북한인권 선언문 초안’ 발표 … 분위기 바뀔까

베스트셀러 차트를 보자. 여기에서 한국 문학가의 작품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동명의 영화가 개봉하면서 관심을 받게 된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은 스웨덴 작가 요나스 요나손, 유럽을 휩쓴 베스트셀러 ‘미 비포 유’ 역시 영국 작가 조조 모예스의 작품이다.

한국 문학가들의 작품은 문학 베스트셀러 차트로 카테고리를 좁혀서도 10위 권 밖에서야 등장한다. 여전히 가장 상단에 보이는 것은 중국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피력했던 조정래의 ‘정글만리’다. 그리고 지난 6월 신간을 내놓은 성석제의 이름을 확인하고 나면 다시금 기나긴 외국작가들의 행렬. “지금 한국문학을 읽는 사람들은 한국문학인들밖에 없다”고 단언한다면 너무 매정한 일일까.

독자들과 유리된 만큼이나 한국 작가들의 작품은 현실과도 동떨어진 느낌을 준다. 지상 최악의 정권인 북한 정권에 대해 한국의 작가들이 단 한 번도 소신 있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그 아픈 ‘현실’을 엿볼 수 있다. 인간 소외에 대한, 비정규직에 대한, 최저임금에 대한, 자본주의의 부조리에 대한 담론의 1/10이라도 북한인권에 대해 말하는 데 사용했더라면 현실이 적어도 지금처럼 절망적이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이 적어도 지금처럼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무지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오히려 한국의 작가들은 그 반대 방향으로 움직여 왔다. 2005년 7월 20일 북한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는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가 열렸다. 대한민국 쪽에서는 시인 고은 신경림 신세훈, 소설가 송기숙 황석영 김원일 현기영, 평론가 백낙청 등 문인 98명이 참여했고 북한 쪽에서는 시인 오영재 동기춘, 소설가 홍석중 남대현, 김정 4·15창작단 단장 등 100여명이 참가한 대규모 행사였다.

“이 대회는 분단에 길들여졌던 문학적 상상력을 복원하고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며 통일의 시대 우리 문학의 새로운 성취를 향한 중요한 자리”라고 백낙청은 말했지만 이 행사가 바꿔놓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애초에 북한 작가들을 진정한 의미에서의 개인(個人)이며 작가(作家)라고 부를 수 있는지조차 의문이었다.

 

너무나 느린, 너무나 무심한

그나마 이 부조리해 보이는 남북의 연결점조차도 2010년 MB정부의 5·24조치 이후 끊어졌다. 북한 작가(?)들은 계속 해서 김정일에서 김정은으로 계승된 위대한 혈통을 찬양하는 작품들을 써내기 시작했다. 남한 작가들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외면과 축소의 습성을 반복했다. 등 뒤에선 여전히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한국 문학가들에게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던 걸까.

지난 7월 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 위치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에서 시문학 전문지 ‘서정시학’ 주최로 개최된 ‘탈북 문학 세미나 및 남북문인 시 낭송회’는 바로 이런 맥락을 고려할 때 더 그 존재감이 부각되는 행사였다. 기이하리만치 길게 지속된 북한인권에 대한 한국 문학계의 침묵을 단호하게 끝낼 것을 제안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 최유찬 연세대 교수의 사회로 시작된 행사는 이호철 작가의 기조강연 ‘나의 문학과 남북 문학의 미래’로 본격적인 서막을 열었다. 이호철 작가 자신이 1950년 흥남철수 당시 19세의 나이로 혈혈단신 남쪽으로 내려온 몸이다. 그는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남한 작가들의 기이한 침묵에 대해 “말이 안 되죠”라고 잘라 말했다.

여전한 양비론 … “북한은 國家”

지난 3월에는 ‘남과 북, 문 열리나’라는 장편소설을 발표하기도 했던 이 작가는 자신의 저서에 대해 “우리네 근현대사의 참고서 삼아서 한 번씩 읽어 주시도록 권고도 해 주었으면 한다”고 말을 이었다. 한편 강연자로 단상에 오르지는 않았지만 오세영 전 한국시인협회장, 최동호 서정시학 편집인·고려대 국문과 명예교수, ‘우리가 물이 되어’라는 시로도 유명한 강은교 동아대 명예교수 등도 이번 행사에 뜻을 같이 했다.

이호철 작가의 기조강연이 끝나고 나서부터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됐다. 1부 세미나와 2부 시낭송회로 나뉘어 계획된 이날 행사에서 1부 세미나는 다시 세 부분으로 나뉠 수 있었다. ①탈북문제에 대한 한국 문학평론가의 발표 ②북한인권 선언문 초안 발표 ③탈북문인들의 증언과 분석 등이다. 세 가지 분위기가 미묘한 공존과 반전을 거듭하면서 한국문학의 한계와 새로운 도약의 모색점을 동시에 노출하는 자리였던 셈이다. 현장에는 다수의 탈북문인들도 청중과 낭독자로 참석했다.

첫번째 발표자는 문학평론가 박덕규 단국대 교수였다. 주제는 ‘한국문학에서의 탈북의 의미.’ 이 발표는 한국 작가/평론가들이 탈북문제를 바라보는 미묘한 관점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일말의 의미를 획득하는 자리였다.

박 교수는 이명준의 소설 ‘광장’과 이응준의 소설 ‘국가의 사생활’에서 일부를 인용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두 내용의 공통점은 남과 북 모두에 회의적인 시선을 던진다는 점. 쉽게 말해 박 교수는 탈북자들이 북한의 폭압을 피해 한국으로 왔지만 한국도 불완전하기는 마찬가지라는 포인트에서 탈북문제를 읽고 있었다.

이 관점은 박덕규 개인의 관점이 아니라 대다수 한국 평론가들의 관점이기도 하다. 즉, 무결점·무오류의 체제를 머릿속에 상정해 놓고 북한이나 남한이나 거기에서 한참 부족하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라는 논리로 담론을 귀결시키는 것이다. 이 지점이야말로 한국 문학계가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서 기이하리만치 침묵하고도 스스로 모순을 느끼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라 할 수 있다.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국가로, 그 체제가 먼 미래까지 존속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2000년대 들어 급증한 탈북자들이 이를 대변해 준다. 그런데, 그들이 찾아온 남한은 어떠한가.” (박덕규 교수 발표문 中)

북한을 국가로 호명하는 지점 또한 북한문제를 기본적으로 ‘그들의 문제’로 바라보는 한국 문인들의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밝힘으로써 북한 정권의 불법성을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다. 이후 오랜 세월이 흐름으로써 북한을 하나의 정권이자 협상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보편화됐지만 과연 그들을 정상적인 국가로 대할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서 한국 작가들은 제대로 된 토론조차 해본 일이 없다.

이어진 한원균 한국교통대 교수와의 토론은 탈북문학을 분단문학으로 볼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논의가 이어졌다. 이에 대해 답변한 뒤 박덕규 교수는 탈북문제 및 탈북자들을 소재로 한 다수의 작품들이 다루고 있는 소수자(小數者)로서의 소외 문제를 다루며 발표를 마감했다. “탈북문학은 통일을 전제한 문학”이라고 거론했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획득할 수 있는 발표였다.

방민호 “문학의 의무 무참히 저버리는 일”

문학평론가이자 서울대 국문과 교수인 방민호의 등장은 1부 행사를 명백한 ‘현실’의 영역으로 근접시켰다. ‘문학인 북한인권 선언문 초안’을 읽기 전에 우선 방 교수는 제목에 왜 초안(草案)이라는 단어가 들어갔는지부터 설명했다. “(글의 내용 자체는) 당초 경인일보 칼럼(2014년 3월 7일자)에 썼던 내용이지만 개인의 생각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므로 감히 그것을 선언문이라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는 방 교수는 앞으로 더 많은 담론이 이어져야 할 것임을 요청했다.
“저 자신이 84학번인지라 민주화운동 과정에도 어떤 식으로든 연루되지 않을 수 없는 세대였습니다. 그런데 이제 우리 사회는 조금의 진통이 있기는 하지만 자유로운 비판이 가능하고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북한체제의 문제는 진보와 보수로 갈라져서 판단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우리 세계의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인식하고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방 교수는 자신의 견해를 주변 사람들에게 표출할 경우 직면하게 되는 반론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북한문제에 대한 언급 그 자체가 민주화 문제에 대한 인식의 초점을 흐린다’ ‘얘기해 봐야 변하는 건 없을 것이고 결국 자기 만족에 불과하다’는 등의 반론들이다. 북한문제에 대한 한국 문인들의 현재 인식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간접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선언문 낭독 이후 이어진 박현수 경북대 교수와의 토론은 이와 같은 담론의 난맥상을 상징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박 교수는 방민호 교수에 대해 “상당히 정치적인 선언이기 때문에 순수성이 유지될지 의문”이라고 말하며 직격탄을 날렸다.

이 문제가 거론되는 즉시 좌파와 우파의 담론 지형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기존 문인들의 위기의식이 그대로 투사된 반문이었던 셈. 박 교수는 또한 “우리가 수많은 선언들을 할 때 생기는 무력감과도 연결된다. 과연 누가 들을 것인가의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방 교수는 이에 대해 “(이 문제는) 보수·진보를 초월한 문제가 돼야 한다”고 원칙적인 답변을 하면서도 “우리에게 왜 문학이 충분치 않은가? 불합리적이고 압제적인 상황을 깊이 있게 묘파하는 작가가 나오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작가가 이제 등장해야 하고 우리 사회가 요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을 이었다. “요즘 한국문단을 보면 문학도 전부 정치적”이라는 진솔한 진단도 잊지 않았다.

 

세미나에 생기 불어넣은 탈북 작가들

이어진 순서는 탈북 문인들의 증언과 견해를 들어보는 자리였다. 단상에 오른 것은 북한망명센터 이사장이기도 한 탈북 시인 장해성과 소설가 이지명이었다. 이들의 잇따른 발표와 호소는 한국 문인들의 무사안일과 묘한 대비를 이루며 이 문제에 대한 남북의 온도차가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를 방증했다.

1976년부터 20년간 북한 조선중앙방송에서 기자를 역임한 장해성 시인은 우선 자신의 경험에 대해서 얘기했다.

“하고 있는 일의 특성상 남쪽 작가들의 글을 볼 기회가 많았습니다. ‘장길산’ ‘상도’ ‘허준’ 같은 작품들은 감동적이더군요. 감동받은 시로는 김지하의 ‘오적’이 있었습니다. ‘고행 1974’라는 시도 있었고요. (…) 한편으로는 ‘이런 시 쓰고 몇 대 맞을 정도면 누가 못 쓰나, 정말 여기(북한)가 그 정도면 100번이라도 그런 시를 쓰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북한 작가로서 남한 학생들이 계속 데모를 하는 게 민족을 위하는 일이라고 독려하는 글을 썼지만 속으로는 ‘남한이 독재는 무슨…’이라고 생각했죠. 남한에 있는 분들 지금은 말할 것도 없고 북한에 비하면 독재도 아닙니다. 민주주의가 보장된다면 북한 사람들 하나같이 들고 일어날 거예요.” 본격적인 발표에 돌입해서 장 시인은 겉으로 김씨 부자의 위대함을 찬양하는 북한 작가들의 실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북한에 있는 작가들 전부 가짜 작가 맞습니다. 근데 그거, 하고 싶어서 하는 거 아닙니다. (일동 웃음) 쓰다 보면 속으론 얼마나 부글부글 끓는지 몰라요. 그래도 내 아이들 살려야 된다는 생각에 쓰는 겁니다. 1994년 7월 김일성이 죽었을 때 일반 사람들은 통곡했지만 저희 작가들은 “이제 한 놈(김정일)만 더 죽으면 된다”고 구시렁거렸죠. 한 가지 희한한 건 뒤에서 김정일 욕 심하게 하는 작가들이 찬양시도 더 잘 쓰더군요. (웃음)”

이어진 이지명 소설가의 발표는 좀 더 뜨거웠다. 아직까지도 북에 있는 딸에게서 변절자 취급을 받고 있다는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 강토 절반 위쪽에 사람들이 굶어죽고 얼어 죽고… 구둣발 밑에서 마지 못해 살고 있는 이 현실을 외면한다면 어떻게 작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는 시대적인 물음을 던지고 싶을 뿐입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문인 단체로는 통상 두 곳이 거론된다. 좌익 성향의 한국작가회의와 우익 성향의 한국문인협회다. 이 두 단체 모두 이번 행사에 대해서는 특별한 코멘트를 하지 않았다. 이념과 성향을 가로질러 서로의 활동을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힌 두 단체의 ‘신사협정’을 깨고 싶지 않다는 의도가 읽히는 대목이다.

스스로 금기(禁忌)를 설정해 ‘북한인권’ 문제에 접근하길 거부하고 있는 한국문단의 현실을 이번 선언이 바꿔놓을 수 있을까. 탈북문학을 분단문학으로 놓을지 말지 품격 있는 고민을 지속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북쪽에서는 수많은 비극들이 실시간으로 펼쳐지고 있다.

이와 같은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한 일말의 노력마저 동료들의 외면을 받는 상황 속에서 더 이상 한국작가회의를 좌성향으로, 한국문인협회를 우성향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을까? 북한인권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유필무언(有筆無言)으로 외면하고 있는 그들 전부가 수구(守舊)일 뿐인 것은 아닌가? 이번 행사는 한국 문학계에서 진정으로 진보(進步)를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묻게 만드는 준엄한 촉발의 장이었다.


글·사진/ 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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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tva 2016-05-19 18:46:56
국가보안법에 대해서는 왜 말을 하지 않지? 작가들이 북한의 국가성에 대해 굳이 얘기해야되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럴려면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어야지. 북한이 이적단체가 아니라 국가라고 말하면 한국에서 안전하다고 생각하는가? 유엔헌장에 따르면 북한은 국가 그것도 평화애호국(peace loving state)이지. 가입조건이 그것이니까. 영토조항의 내용해석은 기자 당신부터 먼저 점검해보시길...헌재결정문이나 비판논문들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