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인 북한인권 선언 초안(全文)
문학인 북한인권 선언 초안(全文)
  • 미래한국
  • 승인 2014.07.15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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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글은 지난 7월 1일 서울 삼청동 소재의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정산홀에서 열린 ‘탈북 문학 세미나 및 남북 문인 시 낭송회’ 현장에서 발표된 ‘문학인 북한인권 선언 초안’의 전문이다. 사안의 중차대함과 상징성을 고려, <미래한국>은 그 전문을 다음과 같이 게재한다.

우리는 마침내 문학인들이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해 더 이상은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 이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말의 존재로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가야 하는 문학인의 의무를 무참히 저버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또, 왜냐하면 가장 고상하고 아름다운 이상을 추구한다고 말해지는 문학인들이 지상에서 가장 추하고 악한 일이 자행되고 있는 현실에 절대로 눈 감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이미 글 쓰는 사람들은 저 세계의 진실을 말하는데 너무 게을렀고 또 너무 늦었다. 지금 당장 우리는 북한에서 벌어지는 일들, 그곳에서 나날이 자행되고 있는 권력에 의한 인권 말살, 특권 계급의 ‘인민’에 대한 항상적인 착취, 숨통을 죄는 감시와 억압, 무단적인 강제 구금, 잔인한 처형, 말하고 표현할 권리의 말살, 거주와 이전과 여행의 권리 박탈, 사적 생활의 가능성을 박탈하는 상시적 동원, 눈과 귀를 가리는 일방적인 선전과 진실 왜곡, 세계 최장기의 병영 감옥화, 사유하고 상상할 수 있는 자유의 소거, 그밖에 사람으로 살면서 지키고 누려야 할 최소한의 존엄성조차 해치고 훼손시키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전제주의적 상황을 즉각, 무조건적으로 중단할 것을 북한의 권력 담당자들에게 요구해야 한다.

북한의 현 체제는 조지 오웰의 ‘1984’

우리 문학인들은 북한의 현 체제가 조지 오웰의 ‘1984’에 등장하는 ‘오세아니아’가 현실 속에서 가장 완벽하게 구현된 지상의 지옥임을 이미 알고 있다. 지금의 북한이 바로 오세아니아다. 오세아니아보다 더 지독한 오세아니아다.

그곳에서는 지금 3대째 ‘빅 브라더’가 철권을 휘두르고 있다. 원형 감시 감옥의 한가운데에 놓인 감시대 위에서 빅 브라더와 그의 친애하는 형제들은 그들이 사육하는 인민들을, 안방 속까지, 안방 장롱의 서랍 속까지 감시하고 있다. 그곳에서 당은 인민들에게 가르친다. “전쟁은 평화, 자유는 속박, 무지는 힘”이라는 것이다. 의심하지 말고 믿고 따르라는 것이다. 그곳에서 사상 범죄는 곧 죽음이라는 것이다. 그곳에서 당은 인민들에게 “너희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명령한다. “너희는 그것을 해서는 안 된다”가 아니라, “너희는 그렇게 해야만 한다”도 아니고, “너희는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주입한다. 그곳에서 생각과 상상이라는 것은 당이 인민에게 주사기로 투입해 주어야 하는 약물이 되었다.

지금 북한은 공포와 불신과 기아의 땅이다. 공포는 인민을 얼어붙게 만들고, 불신은 인민들을 서로로부터 모래알처럼 흩어지게 하고, 기아는 인민들에게 최후까지 살아남기 위한 기술을 가르친다. 그곳에서 인간이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안정과 사랑과 꿈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 체제의 얼굴에 침을 뱉어라!”

지금 이 사실을 믿지 않는 문학인들이 있을까. 지금 이 진실을 두 눈 똑바로 뜨고 쳐다보는 것보다 더 중대한 민주주의의 일이 또 있다고 믿는 문학인들이 있을까. 우리는 저 고통스러운 현실에 관해 지금 당장 아무 말도 하지 않는 문학인이 가까운 장래에 진실을 누설하는 용기를 발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오늘 저 북한에서 거짓과 기만으로 가득찬 선전문을 쓰고 있는 가짜 문학인들이 내일 진실을 말하고 쓸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버려야 한다. 또한 우리는 통제와 착취에 익숙해진 저 전제주의자들이 오늘의 사고를 바꿔 북한의 주민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선사할 것이라고 상상하지 말아야 한다.

지금 우리 문학인들이 해야 할 일은 저 1960년대의 어느 시인이 말했듯이 즉각 자유를 이행하는 것이다. 당장 저 체제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이다. 어떤 두려움에도 현혹되지 않고, 어떤 주저함에도 미련을 품지 않고, 우리의 동포들이 강제와 감시 속에서 우울하고 고통에 찬 삶을 이어가고 있는 북한 지역에서, 모든 정치적 자유와 평등이 무조건적으로 보장되어야 함을 선언해야 한다.

모든 주민이 생존의 권리, 기아에서 벗어날 권리, 말하고 행동할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어떤 유보 조항도 없이, 어떤 부대조건도 없이, 다른 어떤 문제와도 연동시키지 않고, 즉각적으로 요구해야 한다.
문학인은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문학인은 말해야 하는 문제와 침묵해야 하는 문제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무한과 우주와 생명 본연의 차원까지 자기 문제로 인식해야 할 문학인들이 지금 당장 두 눈 크게 뜨고 직시해야 하는 세속의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도 저 북녘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야만적인 일들이다.

사람들이 지금 이곳에서 누리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모든 권리를 저 북녘의 동포들이 똑같이 누리게 되는 그 날까지 우리 문학인들은 양심과 양식을 걸고 말하고 써나가야 한다. 이것이 지난 수십 년간 이곳의 부조리한 현실을 갈아 엎어온 우리 문학인들의, 지연되고 유보된 크디큰 과제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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