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미국이 참전하다
드디어… 미국이 참전하다
  • 이춘근 박사
  • 승인 2014.08.08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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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기획] 1차 세계대전 발발 100주년 ⑧
 

1차 세계대전을 ‘세계대전’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는 유럽 강대국들 외에 미국, 일본 등 유럽 외부의 강대국들이 참전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1차 세계대전이라는 이름은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으로써 비로소 붙여질 수 있는 것이었다. 어떻든 미국의 참전은 1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결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고 차후 세계 정치의 중심축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놓는 계기가 됐다. 

1914년 7월 전쟁을 도발한 독일은 1916년 12월 12일 아직 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상태인 미국에 대해 연합국 측과 평화교섭을 시도할 용의가 있다는 각서를 전달했다. 그러나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12월 18일 각 교전국들에게 전쟁의 목적을 발표해 줄 것을 요청하며 독일의 제안을 거부했다.

1917년 1월 29일 독일은 다시 평화교섭 조건을 비밀리에 윌슨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독일이 제시한 조건에는 △독일이 점령한 알자스 지역을 반환한다 △독일은 폴란드와 러시아 사이에 위치한 전략적·경제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획득한다 △연합국 측은 독일 식민지를 다시 반환한다 △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독일에 보상한다 △공해 자유의 원칙을 준수한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물론 미국은 독일의 요구를 수락할 수 없었다. 다만 미국 주재 독일대사를 통한 독일과 미국의 교섭은 지속할 생각이었다.

연합국들도 역시 윌슨 대통령이 요구한 전쟁의 목적을 밝혔지만 그 내용들은 차후 윌슨이 제안한 14개 항목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애초부터 전쟁 당사자들의 평화교섭은 성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미국 원정군(American Expeditionary Force)의 모습

애초부터 성립 불가능했던 평화교섭

그러던 중 미국이 연합국 편에 서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전개됐다. 1917년이 되면서 독일이 시작한 무제한 잠수함 작전이 그 시작이었다. 독일은 매달 60만 톤의 선박을 격침해 6개월 후에는 영국을 굴복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독일 군부는 미국의 참전을 우려했지만 미국이 유럽에 도착하기 이전에 승리를 이룩하겠다는 발상으로 작전을 밀어붙였다.

미국 참전의 또 다른 결정적 계기는 멕시코에 대한 독일의 동맹 제안이었다. 미국의 참전을 우려한 독일은 미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멕시코와 동맹을 구상하게 된다. 독일 외무장관 짐머만은 1917년 1월 19일 멕시코 주재 독일대사에게 전보를 보냈는데 미국이 그 전보를 가로채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전보의 내용은 ‘2월 1일부터 무제한 잠수함 작전을 시행한다. 미국이 계속 중립을 유지하도록 노력한다. 그러나 이 노력이 실패하는 경우 멕시코에 동맹을 제의한다. 독일은 멕시코에 재정 지원을 하며 멕시코가 70년 전 미국과의 전쟁에서 미국에게 빼앗겼던 뉴멕시코, 텍사스, 애리조나 등 영토를 회복케 한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미국 정부는 가로챈 짐머만 전보 내용을 국민들에게 공개했다.

사실 1915년 5월 7일 영국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독일 잠수함의 공격으로 침몰했을 당시부터 미국에는 독일에 대한 선전포고 여론이 들끓었다. 루시타니아호 격침으로 인해 숨진 1198명의 민간인중 미국 국민이 128명이나 됐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 영토의 적지 않은 부분을 멕시코에게 돌려주겠다는 독일 외무장관 짐머만의 비밀 전보는 미국의 여론을 완전히 참전 쪽으로 돌려놓았다.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으로 상선 보호문제, 무역 위축 등 참전의 불가피성을 인식하고 있던 미국 정부는 1917년 4월 6일 독일에 대해 선전을 포고했다. 미국의 참전으로 전쟁의 대세는 연합국의 승리로 결정적으로 기울어지게 됐다.

미군 참전 포스터

미국은 1917년 4월 6일 참전한 이후 1918년 11월 11일 전쟁이 끝날 때까지 1년7개월 동안 전쟁을 치렀다. 미국은 1914년 7월 전쟁이 시작된 후 연합국들에 물자를 지원하기는 했지만 2년9개월 간 공식적으로 중립을 견지했다. 영국과 프랑스 입장에서 미국의 참전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1800년대 말 경제적으로 세계 1위가 된 미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가담한 것은 경제대국 미국이 ‘군사대국’으로 발돋움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미국의 병사들은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 독일군과 전쟁을 치르기 시작했다. 건국 이래 단 한 번도 타국과 동맹관계를 설정한 적이 없었던 미국이 그동안의 전통을 완전히 포기하고 새로운 형태의 강대국이 되는 순간이었다.

물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할 당시 미국의 군사력은 별 볼일 없는 미미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민주주의의 동원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를 잘 보여줬다. 미국은 우선 병력동원 법안(Selective Service Act)을 통과시킨 후 280만명을 미군으로 징병했다.

미국, 경제대국에서 군사대국으로

이에 힘입어 1918년 여름 미국은 매일 1만명의 새로운 병력을 프랑스 전선에 투입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미국이 유럽전선에 개입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며 잠수함을 통해 미국의 개입을 차단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독일의 계산은 형편없는 오산이었음이 밝혀졌다.

미 해군은 유럽으로 파견되는 미군 병력을 성공적으로 호송했다. 당시 유럽으로 파견된 미군은 미국 원정군(American Expeditionary Force)이라 불렸으며 존 퍼싱(John Pershing) 장군이 사령관이었다. 영국과 프랑스는 미군이 자국 병사들에 추가되는 방식을 원했지만 퍼싱 장군은 미군이 영국 및 프랑스 제국군에 추가되는 방식을 거부, 단독작전을 전개했다.

1918년 프랑스 전역(戰域)에서 미군은 연합군으로부터는 물론 프랑스 시민들로부터도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미 전쟁에 지쳐 있는 연합국 병사들과는 달리 미국의 병사들은 문자 그대로 프레시(fresh)한 병력이었던 것이다. 적대국 독일이 병사를 더 이상 충원하지 못하고 지리멸렬하는 동안 매일 1만명에 이르는 싱싱한 미군이 프랑스 전선에 투입됐던 것이다.

존 퍼싱 장군

독일군의 마지막 공세였던 1918년 춘계 공세를 막아낸 미군은 연합국의 마지막 공격작전인 ‘100일 공격작전’(Hundred Days Offensive)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물론 미군이 탁월하게 전쟁을 치른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양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사기를 북돋웠다는 측면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미국 참전이 초래한 국제체제의 변화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400만명의 병력을 동원했고 전쟁이 끝나는 1918년 11월 200만명의 미군이 프랑스에 주둔하고 있었다. 미군은 1차 세계대전 동안 32만명의 인명 피해를 입었는데 전사자는 5만3402명, 비전투 전사자는 6만3114명이었고 부상자는 20만4000명이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병력 손실과는 비교될 수 없겠지만 미국 역시 승리의 대가를 치르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이 얻은 승리의 대가는 유럽 연합국의 승리의 대가와는 그 성격이 달랐다.

1차 세계대전은 국제체제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다 준 대(大) 전쟁이었다. 대제국 3개가 붕괴됐고 전승국 영국과 프랑스는 겨우 제국을 유지할 수 있는 수준이었으며 새로운 제국이 부상했다. 1차 세계대전을 통해 무너진 제국들은 독일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러시아제국 등 3개였다. 전승국의 편에서 참전했던 일본은 제국으로 성장하는 기틀을 마련했다. 곧 붕괴할 예정이었지만 대영제국과 프랑스제국은 겨우 제국의 체면을 유지하는 데 성공했을 뿐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초래한 가장 극적인 국제체제의 변화는 경제대국 미국을 군사대국화 시킴으로써 미국의 시대가 도래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이다. 그러나 미국은 이상주의자인 윌슨 대통령의 참전 명분인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전쟁’에서 승리한 후 패권국처럼 행동하는 것을 거부했다. 결국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의 세계는 ‘리더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다. 전쟁이 정치적으로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은 채 끝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은 결국 20년 후 또 다른 세계대전을 불러 일으키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이춘근 한국해양전략연구소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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