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의 남자, 통일을 말하다
MB의 남자, 통일을 말하다
  • 미래한국
  • 승인 2014.08.12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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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우익 前 통일부 장관 - 정권이 바뀌어도 이어지는 ‘통일생각’
 

누군가는 그를 ‘이명박 정부의 실세(實勢)’로 수식한다. 대운하와 4대강을 비롯한 정책의 밑그림을 그렸으니 그럴 만도 하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실장을 지낸 뒤 주중(駐中) 대사로 1년4개월, 2011년 가을부터 2013년 봄까지는 통일부 장관으로 1년5개월을 지냈다.

이름부터가 ‘우익’인 남자. 공직에서 퇴임한 이후에는 광화문의 아담한 사무실에서 사단법인 ‘통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통일생각)’을 이끌고 있는 그는 예의 울림 있는 목소리로 공(公)과 사(私), 그리고 남북통일에 대한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했다.

- 안부부터 묻겠습니다. 공직생활을 마무리하신 지도 어느덧 1년 반이 돼 가는데요. 어떻게 지내십니까?

2013년 3월 11일까지 통일부 장관으로 재임했어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공직자로서 일하다가 물러난다고 해서 바로 생각까지 사적 영역으로 들어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신분은 이제 공직을 벗어났지만 관심은 여전히 공적인 것에 남아 있습니다.

- 따로 눈에 띄는 역할을 하시진 않았던 것 같은데요. 일부러 피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공적인 관심을 명시적인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던 거죠. 저도 뭔가 충전이 필요한 시기라고 생각해서 1년 정도는 다른 일 하지 않고 쉬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기간 동안은 이명박 前 대통령을 가끔 보좌하는 것 이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어요. 자연 속에서 자유를 누린다고 할까요, 시골집에서 못 보던 책도 보고 텃밭도 가꾸고 산으로 들로 나다니는 정도였죠.

- 대통령실장에 주중대사에 통일부 장관을 역임하셨으면 국가의 최고정보를 다루신 건데요. 이렇게 어마어마한 정보를 갖고 계신 분이 마음대로 산으로 들로 다니셔도 되는 건가요? (웃음) 정보관리에 대한 제도나 규정이 필요해 보이기도 하는데요.

결론부터 얘기하면 그런 건 없습니다. 다만 안보에 직접 관련되는 기밀을 다루는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처신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은 당연히 갖고 있었죠. 그런 의미에서 1년간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는 무위(無爲)가 결국은 어떤 일을 ‘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겠네요. 다만 이런 걸 전임 공직자의 도덕적 판단에만 맡기는 건 어쩌면 보완돼야 할 사항인지도 모르겠어요. 경제 분야를 예로 들면 경제부처 근무한 공직자가 유관한 업체로 가는 건 일정기간 규제를 하거든요.

“통일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는’ 것”

- 금년 3월에 침묵을 깨고 사단법인 ‘통일생각’ 이사장이 되셨는데요.

거창하게 말할 건 아니고요. 퇴임 후 딱 1년이 만료된 시점에 이사장으로 선임이 돼서 4월부터 일하고 있습니다. 몇 달 됐는데도 아직 썩 잘하진 못해요. (웃음)

학이보국(學而報國)이라고 합니다만, 학문을 하면서 얻은 지식과 경험으로 공직에서 봉사했으니 감사할 일이지요. 그랬으니 이제 그야말로 나머지는 ‘다 내려놓고’ 제가 일생 동안 추구해 왔던 분단과 통일이란 주제에 다시 와 있는 거죠. 비록 작은 민간단체에서 직원 3명과 하는 일이라도 저는 충분히 보람 있게 생각하고 만족해요.

- 결국 대통령실장, 주중대사, 통일부 장관 중에서 가장 애착을 가졌던 직함을 ‘통일부 장관’이라고 봐도 될까요?

분단과 통일은 내 일생을 관통하는 주제니까요. 그 점에 있어선 어디 있으나 변함이 없었어요. 지금 하는 일도 따로 보수나 보상이 있는 일이었으면 오히려 안 했을 겁니다. (웃음) 순전히 시민단체의 일원으로서 봉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하는 거예요.

- 통일생각의 설립 취지나 구체적인 업무도 궁금합니다.

장관으로 있을 때 통일준비가 통일정책의 핵심이라는 걸 여러 차례 강조했어요. 그리고 통일준비에는 몇 가지 중요한 과제가 있다고 규정을 했습니다. 그 중에서 일반 국민들이 동참할 수 있으면서 통일의 당사자들한테 파급효과가 크고 시급한 액션 프로그램은 ‘통일기금 조성’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국민 개개인은 형편껏 성금을 내고, 정부는 남북정책 관련 예산 중 불용액 일부를 넣어 기금을 조성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정부입법안을 만들었습니다(남북협력기금법 개정안, 현재 국회 계류 중). 그러면서 통일기금의 취지를 널리 알리기 위해서 만든 게 ‘통일항아리’예요. 백자 무형문화재 1호인 백산 김정옥 선생하고 문경새재에 있는 영남요로 가서 둘이 약 3~4개월에 거쳐 만든 겁니다. 통일항아리에 돈을 모금하는 일을 통일기금조성이라고 본 거죠. 통일생각은 그 일을 맡아 하도록 만들어진 민간단체입니다. 통일부 산하단체로 안전행정부와 기획재정부의 기부금 모금 승인을 받아서 현재 일반인으로부터 기금모금 중입니다.

- 그런데 사실 통일비용이라는 건 어마어마한 비용 아닌가요? 국민들이 내는 게 어느 정도나 도움이 될까요.

그런 의문을 갖는 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 활동은 어차피 필요한 돈을 다 모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하는 건 아니에요. 기금을 10원이든 100원이든 모으면 그만큼 비용이 충당될 수 있는 거죠. 하나도 안 모은 것보단 낫지 않나요? 물론 많이 모으면 더 좋겠지만 실제로 더 중요한 건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이 염원에서 그치지 않고 행동으로 이어지고 결집된다는 거예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국민적인 관심이 생기면 그 관심이 미국이나 중국으로까지 확산될 수 있고, 나아가 북한 주민들에게까지도 전달되는 시그널 이펙트(signal effect)가 나온다는 거죠. 액수와 관계없이 정성어린 손길들이 모이면 그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많이, 한국 통일은 지지를 받게 되고 빨라지고 안전해집니다.

“어려울수록 정부에 힘 실어줘야”

- 맞는 말씀이지만 새 정부 들어서면서 기금법 개정안도 표류하고 있는 느낌은 분명 있습니다.

정권이 바뀌면 이전 정부가 하던 사업에 적극적이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폐습이라고 봐요. 다른 건 몰라도 통일은 정권이나 정부의 교체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합니다. 특히 현 정부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통일준비위원회를 만들 만큼 통일준비에 적극적입니다. 비용을 마련하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통일준비의 핵심이기 때문에 현 정부가 이 일을 함께 잘해 나갈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 통일은 언제쯤 될까요?

글쎄요. 일단 저는 그 질문의 구성을 달리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통일이 되겠냐’고 묻기보다는 ‘통일을 할 거냐’를 물어야 합니다. ‘통일국가는 어떤 나라가 될까’ 하는 궁금증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이냐’를 물어야죠. 우리는 객체이기 이전에 통일의 주체예요. 지금처럼 수동적으로 앉아 있으면서 될 거냐, 어떨 거냐는 ‘말’만 하고 있으면 언제까지라도 통일은 되지 않습니다. 통일은 되는 게 아니라 하는 거니까요.

- 남들 다 미국으로 유학 갈 때 미래한국 故 김상철 회장님과 함께 독일로 유학가신 건 꽤 유명한 얘긴데요.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으론 어떤 게 있겠습니까?

많죠. 독일 정치인들은 동서독이 통일이 되기 바로 전날까지도 통일을 예견하고 국민에게 준비하도록 제안한 단 한 명의 정치인도 없었다는 사실을 ‘정치인으로서 가장 수치스러운 일’로 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독일이 통일을 오래 전부터 준비한 것처럼 말합니다. 프라이카우프(Freikauf, 서독이 동독 내 정치범을 송환할 때 대가로 현금과 현물을 지급한 제도)도 하고 그러지 않았냐는 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정치인 중에서 단 한 명도 ‘동서독 주민이 곧 함께 살게 될 것’이라는 예고는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통일이 엄청난 충격과 함께 경착륙으로 다가온 거죠.

- 화제를 현 정국으로 바꿔보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집토끼’를 잃지는 않았던 현 정부가 인사 문제로 상당히 많이 흔들리고 있습니다. 요즘 정국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전 정부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이런 얘기는 삼가는 것이 옳습니다. 사실 정부가 일을 하다 보면 때로 예견하지 못한 일이나 의도하지 않은 부작용이 불거질 때가 있습니다. 언론이나 야당은 당연히 그 부분을 지적하고 비판하는 것이고 또 정부는 귀담아 들어 국정에 반영하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어려울 때일수록 정부는 의연하게 할 일을 해나가야 한다고 봅니다. 국민은 그러한 정부의 노력에 기본적으로 힘을 실어줘야 하고요. 왜냐하면 정부가 하는 일은 그 자체로 국가적 차원의 일이거든요. 잘잘못을 가리는 것은 또 그것대로 해야 하지만 정부와 국민이 공유하는 가치의 지향점은 흔들림 없이 추구돼야 하거든요. 지나치게 여론에 일희일비하며 현안을 따라다닐 필요도 없겠고요.

“한국 외교의 근본적인 축은 당연히 韓美관계”

- ‘정부 흔들기’라면 MB정부도 현 정부 못지않은 난타를 견뎌야 했었는데요. 지나오신 입장에서 ‘그래도 이 정부가 이거 하난 잘 했다’고 얘기할 수 있는 것으론 어떤 게 있을까요.

그건 제가 얘기할 몫이 아닌 것 같은데요. 국민들과 역사가들이 평가하실 몫이죠. 저는 전 정부에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당사자이기 때문에 제가 스스로 무슨 업적을 이뤘다고 말하는 건 도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 그래도 전 정부에 깊게 관여하신 당사자만이 할 수 있는 얘기도 있을 텐데요. 예를 들어 MB정부가 경제위기는 잘 넘겼다고 평가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국가위상과 관련된 부분이라면 나중에 좋게 평가받을 만한 일 들을 많이 했죠. 국제사회에서 국민들에게 자부심을 가지도록 해주지 않았나 하는 부분인데요. 그 당시 경제위기라는 게 세계적인 충격이었지만 외신들은 ‘가장 모범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한 나라’로 한국을 꼽는 게 사실입니다. G20정상회의, 핵안보정상회의, 국가신용도를 높이고 올림픽을 유치한 일 등이에요. 전체적으로 국가위상을 높이고 국민들이 공항에서 대한민국 여권 제출할 때 자신감을 갖게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웃음)

- 반면 보수정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념적인 부분에서 지나치게 몸을 사렸다는 측면을 지적하는 관점도 있습니다. 이른바 ‘중도실용’을 표방한 것에 대한 서운함인데요.

실용주의를 한다고 했을 때 ‘MB정부는 이익만 좇는다’는 식의 시선이 있었는데 사실 실용주의라는 건 그런 뜻이 아닙니다. 다른 걸 다 떠나서 하나의 정권, 한 사람의 대통령은 그의 ‘재임 시’ 정책으로 평가를 해야 해요. 대통령 개인의 한 단면이 아니고요. 대통령이 어떤 역사적 상황에서 어떤 정책을 폈는지를 놓고 평가해야 한다는 거고, 그래서 역사가의 몫이라고 본다는 거죠.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가 펼친 ‘친기업정책’이나 ‘친서민정책, 또는 ‘4대강살리기’, ‘녹색성장’을 생각해 봅시다. 정치적 시비가 있지만 대통령으로서는 당시 그 시점에서 국가미래를 고려할 때 꼭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한 것 아니겠어요?

이념의 문제도 마찬가집니다. 이념적인 측면에서 ‘선명한 싸움’을 벌이면 당장 속이야 시원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다른 많은 일을 접어야 해요. 어떻게 하는 것이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하느냐는 거지요. 경쟁 상대는 밖에도 있거든요. 정권 초기에 제가 ‘잃어버린 10년 아니다’라고 말했던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됐으면 합니다.

- 마지막으론 중국에 대해 질문하겠습니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 이후 한중관계, 한미관계에 대한 우려 섞인 관점들이 많이 보이는데요. 일련의 상황 어떻게 보셨습니까.

한국 외교의 근본적인 축은 물론 한미관계입니다. 한미동맹이 굳건한 토대 위에 있어야 한중관계가 마음 놓고 발전할 수 있다는 거예요. 대미관계를 불안하게 하고 한중관계를 발전시킨다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외교로 위태롭습니다. 이 말이 한편으론 패러독스 같지만 사실 미국과 중국은 ‘선택’이 아닙니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미국에 더 가까이 갈까, 중국에 더 가까이 갈까’가 아니에요. 일부에서 그런 식으로 보는 것 같은데 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MB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대미관계를 튼튼히 굳히고 다지는 데 중점을 뒀어요. 그래서 미국 정권이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뀌었어도 부시든 오바마든 ‘가장 가까운 동맹’으로 한국을 꼽는 데 주저함이 없었던 겁니다. 대통령실장을 지낸 제가 주중대사로 가는 파격이 있었어도 미국이 한미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정도였거든요.

얼마 전 KBS 대담에 나가서도 “한중관계가 크게 발전하고 있다. 앞으로도 한미동맹의 튼튼한 토대 위에서 한중관계를 발전시킬 잠재력은 얼마든지 있다고 본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문제를 국제관계의 복합중층적이고 역동적인 틀 속에서 ‘우리의 장단기 국익이 어디에 있나’를 냉철히 봐야 한다는 겁니다. ‘통일생각’은 그런 사고의 결과로 통일준비에 나선 것입니다.


인터뷰/김범수 편집위원 www.kimbumsoo.net
정리/이원우 기자 m_bishop@naver.com
사진/정연호 객원기자 mychunsha@naver.com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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