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이라는 거짓말
‘공영방송’이라는 거짓말
  • 정용승
  • 승인 2014.08.16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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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공사, 이대로 좋은가

KBS는 공영방송일까? 그렇다면 그 책무를 다 하고 있는 것일까? KBS에 대해 이와 같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최근 KBS가 국민들을 실망시키는 수준의 실수를 연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에서 KBS로 향하는 질타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바른사회시민회의가 지난 23일 프레스센터에서 KBS 문제와 관련한 토론회를 열었다. 바른사회시민회의 공동대표인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의 주제는 ‘KBS의 현주소를 묻는다 :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길’이었다.

이 자리에서 황근 선문대 교수는 “KBS를 공영방송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공영방송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우리나라 방송법에 ‘공영방송’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보통의 공영방송이 ‘일반전송체 방식’을 운영하고 있는 반면에 KBS는 사실상 ‘공공수탁 방식’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혜는 있고 의무는 저버리는 KBS

‘공공수탁 방식’은 공적자원인 주파수를 민간에 넘기는 대신 방송사가 벌어들이는 이익의 대가로써 방송사에 어느 정도의 공적 책무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미국 방송사들이 보통 사용하는 방식이다. ‘일반전송체 방식’은 주파수를 국가가 운영하는 방식이다.
공공수탁 방식과 다른 점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공적 서비스 책무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영국의 BBC와 독일의 ZDF, ARD 그리고 일본의 NHK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KBS가 대표적인 공영방송 BBC와는 다른 공공수탁 방식을 채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으로는 일반전송체 방식으로 보호받는 공기업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적으로 공적 독점구조를 보호받으면서 시장에서의 이익을 종사자들이 나눠 갖는 ‘이상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KBS는 세금으로 운영됨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벌어들이는 이익을 따로 챙기고 있다. BBC의 경우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시장에서의 수익이 없다. 대부분 시장에서 경쟁이 되지 않는 방송을 내보내는 등 철저히 공익에 중점이 되는 방송을 하고 있다. 즉 KBS는 다른 방송사들에 비해 높은 특권을 갖고 있지만 책무는 비슷한 수준으로만 이행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황근 교수는 “KBS의 책무를 공영방송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민간 방송과는 차별화된 공적 책무, 경영과 회계의 투명성과 국민감시기능을 강화할 수 있는 별도의 ‘공영방송 규정’ 혹은 ‘공영방송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감시기능 또한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대표적인 해외사례를 들면서 언급된 것이 바로 영국의 BBC트러스트와 독일의 KEF(수신료 위원회)다. BBC트러스트는 2007년 토니 블레어 총리 때 BBC를 규제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제기구다. 이 기구는 집권당이 임명하는 12명의 위원으로 구성된다. 집권당이 12명 모두를 임명하는 만큼 정치적 편향성을 우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다양성을 원칙으로 하는 만큼 사회 각계대표, 지역대표 등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로 정치적 성향을 다양화하고 있다.

BBC트러스트는 BBC의 경영, 편성, 예산 등 모든 영역을 평가하고 5년에 한 번씩 채널별 허가장을 부여한다. 허가장은 ‘각 채널이 방송을 할 수 있는 예산을 부여하는 계약서 형식’으로 돼 있다. 매년 각 채널 편성계획서를 평가해 ‘국민의 세금’인 수신료를 배정해주는 이른바 ‘수신료의 가치’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독일의 KEF는 공영방송의 수신료를 결정하는 곳이다. KEF는 공영방송사의 경영실태, 제작여건, 미래비전 등을 모두 평가해 수신료인상수준을 결정하기 때문에 사실상 공영방송 규제기구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별도규정 시급하지만…‘말없는 KBS’

한국도 이런 공영방송 규제기구를 도입하고자 시도한 적이 있었다. 2004년 당시 한나라당이 발의한 ‘국가기간방송법’과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제정하려고 했던 ‘공영방송법’이 그것이다. 그러나 당시 KBS노조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한정석 본지 편집위원은 ‘수신료’에 대해 지적했다. 현재 우리 방송법은 수신료를 ‘TV 수상기에 대한 특별 부담금’으로 해석하고 있다. 누구나 TV 수상기를 갖고 있으면 방송을 수신하기에 수신료를 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개념은 수신료를 전기료에 합산해 징수할 수 있도록 하는 현행 방송법 조항에 대한 위헌심판 청구 소송에서 2008년 헌법재판관들이 청구소를 기각하며 해석한 것이다. 이 해석에 따를 경우 발생되는 문제는 시청자가 공영방송의 ‘서비스’에 대한 저항권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수신료가 공영방송의 서비스에 대한 대가가 아니라 ‘TV 수상기의 보유’에 대한 대가로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는 파쇼(fascio)국가에서나 가능한 것이라고 한 위원은 강조했다.

이와 같은 KBS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정도의 방안이 지적된다. KBS 채널을 보는 만큼 수신료를 내게 하든지, 국가가 KBS 방송의 질적 수준을 보증하고 책임지는 것이다. 그러나 KBS는 그 어느 쪽도 선택하려고 하지 않은 채 침묵한다. 그 어떤 내·외부 인사가 사장으로 임명된다고 해서 KBS 문제가 쉽게 해결될 거라고 속단하기 힘든 이유다.


정용승 기자 jeong_f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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