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져 가는 과학기술 강국의 꿈
무너져 가는 과학기술 강국의 꿈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8.18 10:2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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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의 정상화’

현 정부가 표방한 국책 슬로건이다. 하지만 역으로 ‘정상의 비정상화’가 국책으로 추진되는 분야도 있다. 바로 대한민국 과학기술정책이 그렇다.

과학강국을 내걸고 ‘드림팀’으로 화려하게 탄생한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는 지난 1년간 ‘삽질부’라는 오명 속에서 수모를 당해야 했다. 창조경제의 이름으로 통신과 게임에서 창조된 것은 ‘규제’들이었다. ICT정보통신 기반산업의 야심찬 출발은 용두사미가 돼 인터넷 비즈니스의 문제아 액티브X와 공인인증서 문제 하나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하고 유야무야 돼 버렸다.

이 와중에 가장 황당한 ‘비정상화’의 유탄은 과학기술계가 맞았다.

지난 7월 25일 미래부 1차관에는 단 한번도 과학기술분야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없는 이석준 기획재정부 2차관이 임명됐다. 과학기술계가 반발한 것은 단지 그가 과학정책에 문외한이라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래부가 기초과학연구부문 예산을 대폭 줄이면서 실적 내기를 중심으로 하는 융합과 사업화 쪽으로 과학기술정책 방향을 잡았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많은 국책 연구소들이 도매금으로 부정한 혹은 무능한 집단으로 몰려 구조조정의 도마에 올랐다는 점 때문이다. 과학기술계의 여러 인사들은 그나마 여기까지도 참을 수 있지만 파행으로 가는 과학교육만큼은 참기 어렵다는 입장을 피력
한다.

‘파행’으로 가는 과학교육

현재 대학입시 수학능력시험은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 중 두 과목을 선택해 시험을 치르게 하고 있다. 그 결과 고교 물리 과목은 내신에서 불리하다는 이유로 학생들이 기피해 가히 전멸하다시피 했다. 실제로 2013년 대학입시 수험생 60만6818명 중에 0.9%인 5758명만이 물리Ⅱ 시험을 선택했다.

물리Ⅱ를 선택하는 학생이 적다보니 아예 물리과목을 개설하지 않는 학교도 많아졌다. 공대 지망학생임에도 학교에 물리과목이 없어 생물과목을 선택해 대학입시를 치는 황당한 일들이 오늘날 대한민국 학교의 과학교육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다. 고등학교에서 문과를 선택하고 ‘교차 지원’ 제도를 통해 이공계 대학으로 진학하는 경우도 있다. 이 역시 부실이공대생을 양산하는 비정상의 제도다.

여기에 최근 정부가 ‘교육과정 개정연구위원회’를 발족하며 문과 교육학자들만 참여시키자 500만 회원의 과학기술계는 결국 ‘폭발’해 버렸다. 지난 7월 21일 과학기술인총연합회를 비롯한 유관단체들은 이 문제와 관련해 성명을 내고 ‘원점 논의’를 정부에 요구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과학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과학교육 축소는 현 정부가 과학기술에 대해 관심 없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 라며 “투자를 늘리지 않고 관리체계를 제대로 정비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과학기술정책이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표류했던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정보통신부를 폐지한 가운데 과학기술계는 컨트롤 타워 없이 표류하거나 정책 부재 상황에 속절없이 말려들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 시절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했고 과학기술정책의 재건과 부흥을 약속했다. “과학기술을 국정운영의 중심에 두겠다”는 발언이 바로 그 표상이었다. 하지만 당선 후 그 약속은 의미조차 모호한 ‘창조경제’에서부터 안개 속에 빠져버렸다. 그리고 급기야 ‘슈퍼갑’으로 불리는 기획재정부의 예산담당 관료가 단기 실적을 위해 미래부의 과학정책을 주물러야 하는 상황에까지 오고 말았던 것이다.

지난 6월 중국의 경제사령관 리커창(李克强) 국무원 총리는 중국 과학원대회에서 의미심장한 이야기를 꺼냈다. 한 외국인 정상이 자국의 비행기를 세일즈하면서 선물한 비행기 모형에 ‘메이드 인 차이나’라고 쓰여 있었다는 것. 리 총리는 “모형은 우리가 만들고 비행기는 그들이 판다. 우리가 도대체 얼마나 많은 비행기 모형을 만들어야 그들의 비행기 한 대와 바꿀 수 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수지가안 맞는다”고 말했다.

 

과학에 ‘배수진’치는 중국

리커창의 지적은 중국 과학기술을 책임지고 있는 과학원 입장에서는 상당히 뼈아픈 것이었다. 리 총리는 중국 과학기술 엘리트들에게 ‘배수진’을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물론 중국 정부가 과학기술자들을 닦달만 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은 엄청난 재정을 과학기술 투자에 퍼붓는다. 미국 바텔연구소의 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중국의 R&D 투자는 2840억달러(약 301조466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됐다. 2012년보다 22%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미국의 R&D 투자비용 증가율은 4%에 불과했다. LG경제연구원이 지난해보고한한·중과학기술경쟁력분석에 따르면 중국의 과학 경쟁력은 1997년 28위에서 2012년 8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한국과의 경쟁력 차이도 같은 기간 8단계에서3단계가줄어5단계로축소됐다.

유엔 산하 세계지식재산권기구(WIPO)의 PCT 특허출원에서 나온 중국의 2012년 특허출원 건수는 1만8627건으로 전체 19만4400건의 9.6%를 점유해 4위를 차지했다. 미국 일본 독일에 이은 4위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0년 중국에 4위 자리를 내준 이후 중국과의 국제특허 출원 격차가 계속 벌어지고 있다.

물론 고민도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 엘리트들은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와 노하우를 현재와 같은 중앙관치 모델로 지속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과학기술의 미래는 단지 하드웨어를 개발하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 하이테크나 감성기계와 같은 소프트파워에 달려 있다는 점을 잘 아는 까닭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미국은 역시 첨단 과학기술의 미래를 독보적으로 걸어가고 있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다. 그 비밀은 다름 아닌 군사-민간 기술의 상호 리사이클링(recycling)이다. 

미국 정부에는 미친 과학자 부서(The Department of Mad Scientists)라는 별명을 가진 기이한 부서가 하나있다. DARPA(국방고등기술연구소)라고 불리는 이 부서에는 그야말로 말도 안 되는 연구를 하는 과학기술자들이 넘쳐난다. 최근 이 연구소에서는 인간의 뇌를 스캔해 기억을 정보 처리한 후 그 정보를 담은 새로운 인조 뇌를 인간에 이식하는 ‘브레인임 플란트’ 계획을 발표했다. 이걸로 치매를 고치겠다는 의도다.

누구도 이들의 연구에 대해 ‘미쳤다’고 단언하지 않는다. 황당한 이 프로젝트에 오바마 대통령은 1억달러의 투자예산을 승인했다. 이 ‘미친’ 연구소가 보여준 그동안의 실적은 충분히 놀라웠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비롯해 GPS, 내비게이션, 3D 프린터, 음성인식 기술(SIRI), 무인자동차, 인공혈액과 뇌파 컴퓨터 등 오늘날 우리의 ‘미래’를 열어간다는 기술의 대부분이 이 DARPA에서 비롯됐다.

DARPA라는 이름의 ‘미친’ 혁신

DARPA는 미국이 1958년에 설립한 국방기술개발 착수 전담기관이다. 1957년에 구(舊) 소련의 스푸트니크 인공위성 발사가 설립의 직접적 배경이었다. 이후 DARPA는 시대적 환경에 따라 임무와 역할을 변경하며 조직과 연구개발 시스템을 발전시켜 왔다.

DARPA는 ①소규모의 유연성 있는 조직 ②계층 관료제를 거부하는 평면조직 ③실질적인 자치권과 관료주의로부터 자유로운 조직이라는 세 가지 원칙을 중시한다. 연구개발 사업선정에 있어서는 고위험 고성과(high risk high return), 혁신적 아이디어, 가교 기술 등의 기준을 원칙으로 한다.

DARPA의 핵심은 프로그램 매니저다. 우리와 같은 관료가 아니라 대단히 자유분방한 ‘열중자’의 면모를 띠고 있다. 프로그램 매니저는 오로지 목표 달성을 위해 연구개발 전 과정에 대한 강력한 권한과 자율권을 부여받는다. 임기는 보통 4~6년이며 학계, 산업계, 연구소 등 각 분야로부터 기술적 우수성과 기업가정신 등의 기준으로 검증받아 선발된다.

DARPA는 국방기술과 민간기술을 동시에 목표로 한다. 이를 듀얼 유즈(dualuse)라고 부른다. 과학기술이 군사와 민간에 동시에 쓰이거나 군사기술이 민간산업에 제공되고 시장에서 진화된 민간기술이 다시 군사기술에 응용되는 식이다. 이렇게 진화된 과학기술은 치열한 시장경쟁을 통해 검증됐기에 소위 와해성기술(Disruptive Technologies)이라고도 불린다. 기존의 제품들을 무력화 시킨다는 의미다.

미국 DARPA에 비하면 한국의 국가주도 과학기술의 성적표는 차라리 내밀지않는 편이 나아 보인다. 우리나라의 국가주도 연구개발은 실패가 거의 없다.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청이 지원했던 R&D 프로젝트의 성공률은 90%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어떻게된것일까. ‘실적’을 위해쓸데 없거나 쉬운 기술만 개발하기 때문이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이공계 출연연구기관이 출원한 특허 중 약 67%는 휴면특허인 것으로 밝혀졌다. 국가주도 R&D 성과물의 사업화 비율은 20%대를 맴돌고 있다.

공공부문의 연구개발 활동이 경제적 수요뿐 아니라 사회적 수요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은 그래서 나온다. 과학기술계 내에 뿌리내린 관료주의와 실적주의가 실패를 통한 재발견의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DARPA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기술들이 더 많다. 하지만 실패작으로부터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지식이 발견되거나 부산물이 나오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어차피 모험적 연구개발이란 실패를 전제로 추진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위스의 세계적인 제약회사 노바티스(Novartis)의 R&D 프로젝트 성공률은 5%에 불과하다. 그러나 성공한 5%가 창출하는 수익은 전체 연구개발투자를 상회할 뿐 아니라 실패한 95%의 연구에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는 새로운 기술의 밑거름이 된다. 이는 과학기술계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얘기다.

우리 사회에도 이와 같은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문화’를 만드는 것이 진정한 창조경제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정치인과 관료들은 거의 없다. 인문계 지식인들조차 과학적 교양의 소양이 부족해 이 지점을 깊게 이해하지 못한다.

과학기술 중시 ‘문화’ 생겨나야

이 문제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과학기술교육의 시스템과 문화부터 혁신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미국의 MIT랩의 성공은 우리의 부러움을 살 만하다.

“10년 후 미래가 궁금하면 실리콘 밸리를 가고, 20년 후 미래가 궁금하면 MIT랩을 주목하라.”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MIT랩 이야기를 다룬 서적 ‘디지털시대의 마법사들’의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MIT랩에서 다루는 기술은 20년 후 미래의 인간의 생활양식을 이끌어나가는 연구소라는 평가를 듣는다.

TV, 음반, 신문, 도서, 컴퓨터 등 모든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결국은 융합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니콜라스 네그로폰테 교수와 MIT 前총장 제롬 와이즈너에 의해서 1985년에 설립됐다. MIT 미디어랩의 목표는 “혁신적 디지털 기술을 창의적으로 적용함으로써 보다 나은 미래를 창조한다”는 것이다. 심지어 이 연구소는 벤처기업의 형태로 운영된다.

MIT 미디어랩은 미래에 대비하는 다양한 전공 분야의 인재들이 모여 미래기술과 인간 사회의 생활방식과 가치를 담론을 진행시키고 있다. 매년 300억원 가량의 연구예산을 운용하면서 약 300여명의 인재가 연구를 수행한다. 인재들은 교수 30여명, 석·박사 150여명, 학부생 100여명, 그리고 산업체에서 보내는 방문연구원(affiliates) 등으로 구성된다.

표준화된 시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나 MIT 미디어랩에 입학하고 싶어 하는 세계의 수재들은 엄청난 경쟁률을 형성시키며 입학을 위해 문을 두드린다. 미디어랩에 입학한 학생들은 전액 무료로 교육을 받는 동시에 연구수당도 지급받는다. MIT 미디어랩에서 학생들에게 이와같은 지원을 할 수 있는 것은 연구를 후원해 주는 기업들과 특허 사용을 고리로 한 새로운 형태의 산학협력이 맺어져 있기때문이다.

MIT 미디어랩의 한 가지 특징은 학문간 배타적 경계를 뛰어넘어 문제 해결 중심의 접근법을 지향하는 태도를 지닌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추구하는 ‘학제적 융합’과 ‘통섭’과는 또 다른 개념이다. 전문가들은 이를 반학제적(anti-disciplinary) 연구방식이라고 부른다. 21세기가 직면한 복잡하고 다차원적인 도전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넓은 시각과 새로운 통찰력이 필요하다는 생각, 그리고 그것은 이론이 아닌 현실로 구현돼야 한다는 생각이 바로 반학제적 접근법이다.

MIT 미디어랩에서는 ‘시연이냐 아니면 죽음이냐(demo or die)’ 라는 말이 있다. 다시 말해 이곳은 ‘시연을 할 수 없다면 곧 죽음이다’ 라는 철학이 지배하는 세계다. 학생들은 논문이나 이론을 발표하고 토론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아이디어를 구현하거나 생산적인 발명가가 되는 것을 중요시 한다. 그러한 자세야말로 참된 창조적 과학기술 교육이고 창조경제의 핵심일 것이다.

창조는 와해와 파괴를 수반한다. 한국의 과학기술이 창조경제를 이끌어 가려면 창조적인 파괴가 더 많이 일어나야 한다. 그 과정은 누가 뭐라 하더라도 과학기술계의 관료주의 타파와 시장경제의 접목에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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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씨 2014-10-26 23:20:21
국군은 건국후 60년간 수많은 절ㅁ은이들의 시간과 국방비를 소모해왔다. 그 자원들을 현대중공업, 삼성전자, 포스코 등의 민간기업의 반의 반의 효율로만 소모했어도, 국군은 왠만한 첨단 무기를 직접 생산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수도 있지 않았을까? 세계 최고의 스마트폰을 만드는 나라에서 군용 수송기 하나 못만드는것은 누구 책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