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병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윤일병 사건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 한정석 편집위원
  • 승인 2014.08.20 09: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군대 가혹행위 문제 해결 못하면 안보에도 공백 생겨

군대 내 가혹행위로 사망한 윤일병 사건의 여파가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감독과 보고체계의 문제로 참모총장이 사퇴했지만 병영 내 가혹행위는 단순히 병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군 전체의 인권문제와 군 지휘관들의 무책임과 무소신에 대한 비난, 그리고 일각에서는 모병제의 도입 논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방부가 정보공개로 제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한 해만 군대에서 117명이 사망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이 가운데 3분의2가 넘는 79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 ‘자살’이 전체 사망 원인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고의나 과실로 군인복무규율 및 국군병영 생활규정을 위반해 발생한 군기사고로 숨진 사망자는 80명(68%)으로 집계됐다. 또한 고의성이 없는 차량, 항공 등의 안전사고로 37명(31%)이 목숨을 잃었다.

‘제복을 입은 시민’

군인은 ‘제복을 입은 시민’이다. 시민에게는 헌법이 보장한 인권이 있다. 당연히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군 장병들의 인권도 기본적으로는 ‘시민의 인권’이라는 발상으로 접근해야 한다.

우리의 분단 대치 상황이 군인을 물리적 ‘전투력’으로만 보고 군 인권에 지나치게 소홀했던 점에 대해서는 솔직한 반성과 개선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싸워서 이기는 군대’라는 모토는 허상이 된다. 군대를 기피하고 싶은 나라에서 어떻게 강한 전투력이 유지될 수 있을까. 그러한 점에서 우리는 윤일병 사건이라는 비극을 군대문화 혁신의 중요 시발점으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윤일병 사망사건과 같은 케이스가 이미 군대 내의 법규와 제도를 통해서 방지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는 점이다.

병영 내 폭행과 가혹행위 문제를 연구해온 전문가들의 공통된 입장은 방지제도의 허점을 지적한다. ‘구타 및 가혹행위 근절지침’(국방부훈령 제463호) 및 ‘육군시행지침’(국방부훈령 제463호)에 따르면 폭행사고 발생 시 가해자는 물론이고 피해자도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밝혀질 경우 사법처리 되거나 징계를 받는다. 나아가 당직 근무자에서 그 부대의 최고 지휘관에 대해서도 지휘 책임을 물어 처벌한다. 더욱이 관련 사고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한 부대에 대해서는 조사 결과에 따라 장관급 지휘관에게 상당한 제재가 가해진다.

이러한 ‘집단 책임 추궁’주의는 결국 폭행사고 및 관련사고 처리에서의 ‘비밀주의’를 낳게 된다. 즉 집단적으로 책임을 추궁당할 것을 우려해 하부조직에서 자체적으로 사고를 은폐하거나 경미한 처벌로 끝내는 식으로 무마시키는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 군 인권 문제를 연구해 온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선임병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후임병은 자신의 문제를 공론화하거나 상급자에게 보고하는 것을 회피하게 된다. 가혹행위를 하는 선임병들도 그러한 점을 잘 알고 이용한다.

2011년 군인권센터에서 장병 면담조사를 통해 확인한 설문에서는 병사들의 70%가량이 ‘마음의 편지’라는 군대 소원수리 제도가 ‘소용이 없다’고 대답했다. 기명에서 무기명으로 바뀐들 부대명을 기명해야 하기 때문에 결국 집단책임을 져야 한다는 부담감이 피해자로 하여금 신고를 못하도록 자기 검열을 시키기 때문이다.

자료화면: MBN

군법제도, 이대로 문제없나

병영 내 가혹행위나 일탈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 이유로 군법을 어겼을 때 이를 처벌하는 군법제도에 문제가 있기 때문임을 지적하는 시선도 있다.

우선 군 검찰과 군법관은 법무부가 아닌 국방부 소속이다. 이들은 모두 사단장의 지휘 감독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예를 들어 군 검찰의 기소에 대해 사단장은 사실확인권을 내세워 조정행사를 할 수 있다. 또 군 재판에 자신이 임명하는 재판관을 배석시킬 수 있다.

현재의 군법제도 하에서 군대내 가혹행위와 같은 사건은 사단장의 지휘감독에 대해서도 경우에 따라 책임을 물을 수 있기 때문에 사건에 대한 축소와 은폐가 군 검찰의 조사과정에서부터 시작되기 쉽다는 지적이다.

이와 같은 문제는 비단 우리 군대의 문제만이 아니라 다른 나라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일부 선진국에서는 군사법원 제도를 아예 두지 않거나 전시(戰時)를 제외하고는 일반 법원에서 군 재판관이 사건을 담당하기도 한다. 전시가 아니라면 군 범죄는 일반 법원이 담당해야 제대로 된 인권 보호가 이뤄진다는 생각에서다.

물론 우리는 호전적 주적인 북한과 휴전상태를 이루고 있는 탓에 전면적인 군사법원 철폐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명령불복종이나 이적행위가 아닌 폭행과 가혹행위 등에 대한 군 인권 문제는 민간법원을 통해 해결하는 방법도 조금씩 논의해 볼 시점이다.

한편 일탈적 군 문화에 대해서는 군 생활 부적응자를 조기에 가려내지 못하는 ‘시스템의 모순’도 엄중하게 지적된다. 이 문제를 연구한 이계수 울산대 교수의 보고에 의하면 구타, 가혹행위 등 군대내 사고는 하급자를 괴롭히거나 구타하는 상급자와 따돌림을 당할 정도로 군 복무에 적응하지 못하는 하급자의 존재로부터 출발한다.

이런 자들을 사전에 가려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강화된 징병검사 절차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이를 위해 다른 나라의 입법례를 참고해 외국에서는 어떤 식으로 징집절차를 진행시키는지 사례연구를 정확하게 해볼 필요가 있다. 이들 연구를 바탕으로 군복무 부적격자(이상성격자, 난폭한 자, 적응력이 떨어지는 자 등)를 적극적으로 가려내 군복무로부터 배제할 수 있는 징병검사 절차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계수 교수는 현행 징병검사 절차는 병사의 신상 파악에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징병대상자의 사회 환경, 교육상태, 가정환경을 파악해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아무런 증빙자료 없이 단지 징집대상자의 진술서를 바탕으로 징병 여부 판단을 하게 돼 있어 군복무에 부적절한 사유를 가진 사람을 사전에 식별하기 어렵다.

또한 신체검사도 단순히 신체등급 판단 및 엑스선 촬영 정도로 그치고 있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신병(身柄)문제가 있거나 허약한 체력을 가진 자를 가려내지 못하고 있다. 징병절차가 부실하다는 것은 군 폭행사고를 방지할 가장 기초적인 안전장치가 빠져 있다는 뜻이다. 이 교수는 이와 관련된 법의 정비를 주문한다. 징집판정이 내려진 자에 대해 일정한 경우 증빙서류를 갖춰 자신을 군복무 부적격자로 판정해 줄 것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스템 차원으로 접근해야

한편 군대 내 보직 문제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필요가 있다. 과거에 비해서는 입대 시 사회에서의 전공 및 적성을 고려해 보직을 부여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병사의 적성에 맞는 보직 수가 제한돼 있어 모든 이에게 적절한 보직이 부여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보직에 대한 불만 혹은 갈등이 군 폭행사고의 주된 이유 중 하나라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적어도 보직 배정절차만큼은 개선해야 한다. 징집된 병사에 대해서는 세밀한 신상 파악을 근거로 정확한 병과를 부여해야 하며 병사에게는 병과 부여 과정에서 재량이 흠 없이 행사됐는지를 문의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군대 내 가혹행위나 일탈, 사고 등의 원인에 대해 군 간부들과 사병들 간에 현격한 인식의 차이가 있다는 점도 우리 병영 문화의 구조적 문제점으로 인식된다. 인권위원회가 2012년에 면밀히 조사한 군인권 상황보고서에 따르면 스스로 지원해 입대한 군 간부들은 입대 전부터 군에 대한 좋은 이미지와 군 생활에 대한 만족감이 높은 편이었다.

이들 군 간부들은 군대 내 사고와 일탈문제에 대해 사병 개인들의 인성문제, 이성문제, 금전문제, 가족문제 등으로 보는 경향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반면 사병들은 군대 생활에 대해 70% 정도가 군 생활이 ‘의미 있다’고 답하면서도 군대 내 사고와 일탈이 ‘군대 문화와 병영시스템에서 비롯된다’는 인식이 높았다.

일련의 사실은 건전한 병영 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점진적인 모병제로의 전환 논의를 촉발시킨다. 물론 현재의 상황에서 징병제를 포기하고 모병제로 전환한다는 것은 보통의 문제가 아니다. 대표적으로 한기호 새누리당 의원(국방위)은 페이스북을 통해 모병제에 대한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한 바 있다.

한 의원은 “대만은 모병제로 전환해 지원을 받았는데 2만8000명 모집에 8000명만이 지원해서 불가피하게 시행시기를 연기했다”고 말한다. 아울러 “국가의 백년대계에 영향을 미치는 제도의 발상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도 부족하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실제로 독일도 통일 전에는 징병제였으며 스위스는 지금도 징병제를 시행 중이다. 징병제와 모병제는 어느 제도가 더 낫다고 말할 수는 없는 문제다. 한 국가가 처한 현실에 더 적합한 제도를 선택하면 된다는 차원으로 접근하면 될 뿐이다.

과거와 달리 개인의 자유로운 개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통제 중심의 강제적 징병제 병영 생활에 원활히 적응하게 하려면 일찍부터 국방의 의무와 군 생활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갖도록 유도하는 게 관건이다. 특히 학창 시절에 인간에 대한 존중,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의 윤리의식을 갖지 못한 채 군대에 징집되는 것은 아무리 좋은 제도로 군을 개혁한다고 해도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전쟁이 멈춘 오랜 ‘유사 평화(pseudo-peace)’ 시절의 영향으로 군 문화는 이미 관료주의 성향이 지배하고 있어서 군 문화 개혁의 주체마저 부재하는 상황이다. 학교에서 일진의 폭력성을 일상으로 여겼던 청년들이 군대에서 폭력과 가혹행위를 바꾸려고 할지도 의문이다. 그렇다면 교육을 통해 인성을 함양하고 도덕을 가르쳐야 군 문화의 개선이 이뤄진다는 결론이 도출되지만 교육계 역시 백년하청의 상황임을 생각해 보면 답이 없다는 것이 차라리 솔직한 대답일 것이다.

이렇듯 ‘닭 먼저, 달걀 먼저’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법은 역시 자원입대자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것뿐이다. 군대에 가서 성실히 근무하면 그것이 자신의 꿈으로 여겨질 수 있는 제도가 왜 우리에게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일까.

모병제, 정말로 가능한가

모병제를 실시하는 나라들은 군대가 중요한 ‘경제 활동’의 무대가 된다. 군대에서 자신의 병과를 담당하며 기술과 지식을 습득해 전문가로 거듭나 사회로 재진출하거나 사회에서 근무하다가 군에서 필요한 인력으로 채용되는 제도는 결코 국방력을 약화시키는 제도라 할 수 없다.

한 국가의 병력이 그 나라의 안보에 관건이 된다면 우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미래의 가상적(假想敵)일 수도 있는 중국으로부터 안보를 지켜낼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징병제를 지속하려면 확고한 통합의 사회가치관을 세우든지 교육과정에서부터 개혁을 이뤄내든지 조치가 따라야 한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렇게 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인다. 그 과정 속에서 군대는 점점 더 국민의 신뢰를 잃어갈 것이고 끝내 군이 ‘사회의 어둠’이 되는 시기가 올 것이라고 우려한다면 기우일까.

만일 점진적인 모병제의 전환이 불가하다면 군은 징병제 하에서 외부로부터의 개혁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런 제도로서 살펴 볼만한 것이 독일의 ‘중개위원 제도’다.

독일 연방군대에는 군인 참여가 제도화돼 있다. 하사관과 병사 그리고 장교는 각각의 직역에서 각 1명의 중개위원(Vertrauensmann)을 선출한다. 이들 중개위원들은 부대 내 일상적인 부대 운영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들의 권한 혹은 역할 중 특히 중요한 부분은 자신들을 중개위원으로 선발해준 장병들과 상급자 사이에서 중개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독일 군인법 제35조 4항). 예를 들어 부대의 장은 장병에게 상훈(賞勳)을 수여하거나 징계조치를 취하려면 반드시 그 전에 중개위원의 의견을 듣도록 돼 있다. 중개위원 제도는 중대급 이상의 모든 단위부대에서 실시되고 있다. 네덜란드에도 이와 유사한 제도가 있다.

아울러 이스라엘과 같은 나라는 병영 내 일탈과 비리를 조사하는 시민 옴부즈만제도를 시행한다. 물론 이러한 제도들은 성숙한 시민의식을 전제로 한다. 우리 군에 도입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더 깊은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윤일병 사건과 같은 병리적 병영 문화를 개선하는 것이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안보 문제’가 됐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점이다.

언제까지 군대가 때리고 맞고 자살하는 사회로 남아야 하는가.


한정석 편집위원 kalito7@futurekorea.co.kr

본 기사는 시사주간지 <미래한국>의 고유 콘텐츠입니다.
외부게재시 개인은 출처와 링크를 밝혀주시고, 언론사는 전문게재의 경우 본사와 협의 바랍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