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위선양과 ‘신성한 의무’ 사이
국위선양과 ‘신성한 의무’ 사이
  • 정용승
  • 승인 2014.08.26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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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면 윤 일병 터지면 임 병장”
군대 문제가 잇달아 터지자 나온 말이다. 임 병장은 동료들이 자신에게 한 인격모독적인 표현을 참지 못하고 총기로 동료들을 사살했고 윤 일병은 선임들의 폭행을 참다가 구타로 사망했다. 물론 두 사례로 군대 문제를 압축할 수는 없겠지만 두 사건이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일련의 사건들이 터지자 군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징병제냐 모병제냐 하는 문제부터 군대개혁의 방향까지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불똥은 ‘체육인 병역혜택’으로 튀고 있다. 인천 아시안게임이 다음 달 19일부터 10월 4일까지 16일간 개최되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과 지금 벌어지고 있는 군대 문제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는지 의문이 생길 수도 있다. 군대 문제와 아시안게임의 접점이 되는 부분은 ‘아시안게임의 메달리스트는 군대를 면제 받는다’는 혜택 때문이다. 물론 모든 메달리스트가 면제를 받는 것은 아니다. 또 정확하게 말하자면 ‘면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체육요원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체육요원으로 편입되는 조건에 대해 병역법 시행령 제68조의11(예술·체육요원의 추천 등) 4항은 올림픽대회에서 3위 이상으로 입상한 사람(단체경기종목의 경우에는 실제로 출전한 사람만 해당) 5항은 아시아경기대회에서 1위로 입상한 사람(단체경기종목의 경우에는 실제로 출전한 사람만 해당)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런던 올림필 3-4위 결정전에서 슛을 하는 박주영

논란거리가 된 병역특례

여기서 말하는 체육요원은 병역법 제33조의8(예술·체육요원의 의무종사기간 등) 1항과 4항에 정의돼 있다. 1항은 ‘예술·체육요원의 의무종사기간은 2년10개월로 하며, 그 기간을 마치면 사회복무요원의 복무를 마친 것으로 본다’고 4항은 ‘예술·체육요원은 해당 분야의 특기계발 및 의무종사에 관하여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지휘·감독을 받아야 한다’다.

즉 다시 정리해서 말하자면 올림픽대회에서는 동메달까지,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한 선수에게 체육요원으로 편입되는 특례를 준다는 것이다. 그러나 체육요원은 4주간의 군사훈련을 받은 후 해당 분야에서 34개월간 의무종사를 해야 한다.

그러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고 해서 군 면제를 받는 것이 아니고 체육요원으로 편입되는 것이다. 물론 체육요원으로의 편입이라는 것이 면제의 다른 말이라고 해도 완전히 틀린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체육인 병역특례를 폐지해야 한다고 몇 가지 근거를 들며 주장한다. 첫째는 이미 군인신분으로 체육생활을 이어갈 수 있는 상무라는 곳이 존재하고 상무 자체가 특혜라는 것이다. 둘째는 메달리스트가 된다는 것이 병역면제를 위한 합법적 탈출구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는 스포츠로 국가위상을 높인다는 취지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비판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종목은 축구와 야구다. 축구의 경우 2012년 런던올림픽 때 축구 올림픽대표로 선발됐던 김기희 선수는 마지막 4분을 뛰고 병역특례를 받았다. 또 박주영 선수는 당시 병역특례를 받은 후 국가대표팀에 선발되는 것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 태도로 이른바 ‘먹튀’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야구의 경우에는 이런 비판이 현재진행형이다. 이번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야구는 금메달을 획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프로리그가 존재하는 국가는 아시아에서 대만, 일본, 한국 정도인데 일본과 대만은 이번 대회에 프로선수가 거의 출전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국가대표팀에 차출되는 것만으로도 특례를 받은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같은 이유로 엔트리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일었다. 미필 선수를 과도하게 배려한다는 지적이었다. 이번 대회를 위해 류중일 야구 국가대표 감독은 총 24명의 선수를 선발했다.

이 중 미필자는 13명이다. 절반 이상이다. 게다가 실력 면에서 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삼성 우완 윤성환(군필)을 탈락시킨 대신 이태양을 선발했다. 내야에서도 안정적인 기량을 선보이고 있는 2루수 정근우, 3루수 최정 대신 김민성 황재균 김상수가 포함됐다. 이런 상황이 병역특례에 대한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좋은 성적을 내는 체육인에게 병역특례를 주는 ‘체육병역특례법’은 1973년 국위선양을 하는 체육인과 예술인에게 혜택을 주고자 만들어졌다. 이후 매년 20명 정도가 이 혜택을 받고 있다.

스포츠로 ‘국위선양’ 가능할까?

그러나 스포츠로 국위선양을 할 수 있느냐에 대한 논란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누구나 인정하는 축구 강국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선진국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육상부문에서도 아프리카 국가들은 두각을 보이고 있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을 보는 시각은 예전과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낸다고 해서 한국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고 속단하기는 어려운 구석이 있다.

이런 비판이 지속되자 병무청이 병역특례 개정안을 내놓았다. 기존의 메달리스트에게 특례를 주는 방식을 ‘누적 점수제’로 바꾸겠다는 것이 골자다. 각 메달마다 점수를 부여하고 기준 점수인 100점이 넘으면 특례를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에 체육계는 선수들의 사기를 떨어뜨린다며 반발하고 있다.

흔히 “국방의 의무는 가장 신성한 의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가장 신성한 곳에서 가장 많은 잡음이 들려오고 있는 형국이다. 가장 신성한 의무라면 오히려 메달을 목에 걸고 당당하게 입대를 해야 맞는다는 지적에 대해 스포츠계는 어떤 대답을 내놓을 수 있을까.


정용승 기자 jeong_f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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