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6일 세월호가 전남 진도군 조도면 부근에서 침몰해 7월 18일 기준으로 294명이 사망하고 10명이 실종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고가 터진 후 한국정치는 세월호 사고를 일으킨 맹골수도(孟骨水道) 같은 격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의 수많은 목숨이 희생되는 사고가 다시는 없게끔 하려는 목적으로 진상규명과 피해보상을 주목적으로 각 정당이 만든 세월호특별법안, 대한변협이 유족들과 만들었다는 세월호특별법안을 둘러싸고 팽팽한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는 ‘유민 아빠’로 알려진 김영오 씨가 단식 투쟁에 나서고 문재인 의원 등이 동조 단식을 하면서 열기가 고조된 바있다.
세월호특별법이라 통칭하고 있지만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법안은 다양하다. 새누리당이 제안한 법안만 해도 3건이다. 전해철 의원 등이 제안한 안을 비롯해 새정치민주연합(새민련)이 4건, 통진당 이상규 의원 등이 제안한 1건까지 도합 8건이 계류 중이며 대한변협이 만들었다는 법안도 1건 있다.
위헌 소지 다분한‘세월호특별법’
일반적인 해상교통사고처럼 취급해 피해자가 개별 소송으로 피해를 보상받으려고하면 시간과 경비가 너무나 많이 들고 청해진해운이 파산할 것이 분명해 피해회복이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가 먼저 유족이나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하고 청해진해운 등을 상대로 구상권(求償權)을 행사하게 해 주자는 취지라면 법리상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새누리당 법안이 주로 이런 흐름이다).
정부가 유족에게 보상금을 준 후 청해진해운이나 대주주인 유병언 일가로부터 회수하지 못하는 금액이 있어 예산상 결손이 발생한다 해도 대다수 국민들은 흔쾌히 용인했을 것이다. 그러나 새민련의 박영선 원내대표는 5월 11일 세월호 피해자 전원을 의사상자로 지정하자고 제의하고 5월 29일 특별법 준비위 보도 자료에서도 같은 요구를 반복하면서 “피해자 전원을 의사상자로 지정하는 것은 유가족의 강력한 요구”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요구는 ‘타인의 생명, 신체 또는 재산의 급박한 위해를 구제하다가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자’라는 의사상자(義死傷者)의 개념 자체에 맞지 않아 많은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새민련의 법안 내용 중에는 재산적 피해보상 이외에 생활지원금, 수도료, 전기료, 텔레비전 수신료 감면, 상속세 및 양도세 감면, 교육비 지원, 금융부채 감면을 위한 협조 요청 등 수많은 특혜조치가 포함돼 있어 여론의 심한 반발을 야기했다.
여론이 악화되자 새민련은 의사상자 지정을 유가족이 요구한 바 없다고 밝혀 종전에자신들이 한 주장이 허위였다는 것을 인정하는 촌극을 벌였다.
이런 모든 사정보다 훨씬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수사권, 기소권의 요구이다. 새민련안, 통진당안, 대한변협안은 모두수사권 또는 기소권을 규정하고 있고 이를 위해 동행명령제도를 규정하고 있다. 동행명령제도는 2008년 1월 10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결정이 난 바 있는 제도다. 당시 동행명령은특별검사가 발부하는 것이고 불응시벌금에 처하는 것일 뿐임에도 헌법재판관 전원이 영장주의 위반, 침해최소화, 과잉금지 법리 위반을 이유로 재판관 8명의 의견으로 위헌결정이 난 바 있다.
새민련의 법안은 불응시 과태료 부과를 규정하고 있어 위헌이 아니라고 하는 의견이 있으나 과잉금지 위반, 침해최소화의 법리 등 당시 결정 이유를 보면 이번 동행명령안도 위헌이라 생각할 근거가 충분하다(벌금형이니 위헌이고 과태료이니 위헌이 아니라는 형식논리는 설득력이 없다). 대한변협안은 위원회 직원으로 하여금 강제로 집행하는 것을 규정하고 있어 영장주의에 정면으로 위반되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입법부 독재’로 갈 것인가
보다 근본적으로 국가의 수사, 기소 및 재판권은 입헌주의 헌법원리 중 하나인 권력분립의 원칙에 따라 위제도에 관한 입법권은 의회에, 기소 및 수사권은 행정부에, 재판권은 사법부에 각각 귀속시켜 견제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새민련의 안이나 대한변협의 안과 같이 특정 사안에 대한 법률을 만들면서 수사권 또는 기소권까지 의회가 행사한다는 것은 삼권분립의 원칙에 위배돼 민주주의를 명목으로 ‘입법부 독재’를 출현시킬 위험이 크다.
이러한 교훈은 근대 영국 및 프랑스의 역사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위 삼권분립의 원칙을 변함없이 잘 지킨 영국은 17세기 이후 지속적으로 발전해 왔지만 프랑스는 프랑스혁명 당시 국민공회에서 특정 사안과 인물을 대상으로 수사, 기소 및 재판권을 모두 행사하는 시도를 감행해 입헌주의 원리를 짓밟고 공포정치로 치달았던 바 있다. 기소된 자의 재산을 박탈하는 방토즈 법, 심증만으로 처벌하고 변호인 조력이나 물증 없이 처벌하는 ‘프레리알 22일 법’같은 만행까지 저지른 결과는 참혹했다.
혁명 이전 유럽 최강이었던 프랑스는 그 후 100년간이나 혁명, 반혁명을 반복하면서 영국에 뒤처졌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요구하면서 대한민국 호(號)를 맹골수도로 끌고 가려는 세력들로부터 구해낼 책임은 1차적으로는 정부와 여당에게, 궁극적으로는 깨어 있는 시민들에게 있음을 명심해야 할 시점이다.
차기환 편집위원·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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