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케티 열풍, 잠재울 수 있을까?
피케티 열풍, 잠재울 수 있을까?
  • 정용승
  • 승인 2014.09.01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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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자본’에 역습 가하는 사람들

정치는 ‘프레임’싸움이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정치인의 자세한 공약보다는 이미지, 정치 슬로건으로 그 정치인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에게 ‘프레임’은 곧 자신의 정체성이자 무기가 된다.

대표적으로 박원순 서울시장은 자신을 ‘서민’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 프레임은 꽤나 잘 먹히고 있다. 2011년 10월 보궐선거에서도 ‘서민시장’이라는 프레임으로 당선됐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서민’을 강조해 재선에 성공했다. “진짜서민인가”에 대한 논란은 많지만 어쨌든 박 시장은 자신을 서민이라고 말하고 있고 실제로도 서울시민들에게 먹혀들고 있다.

이뿐 아니다. 2008년 광우병 사태 때는 ‘미국소를 먹으면 죽는다’는 프레임이 이명박 정부를 괴롭혔다. MB정부의 몇 차례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 사태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정국이 마비될 정도로 꽉 막힌 여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미국소를 먹으면 죽는다는 소문이 거짓이라는 판결이 났음에도 아직도 그 사실을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은 프레임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주고 있다.

지금도 이 프레임 싸움은 진행 중이다. 세월호 참사 후 ‘정부가 가해자’라는 프레임이 현 정부를 괴롭히고 있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정부가 가해자라는 주장은 터무니없지만 지금 이 주장은 야당에 꽤나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아직 끝나지않은 지금 이 프레임 싸움은 언제까지 갈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다. 벌써부터 다음 정권이 여당에서 야당으로 교체될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정부가 가해자’라는 프레임의 힘을 가늠할 수 있다.

다음 프레임은 ‘부익부 빈익빈’

‘정부가 가해자’라는 프레임 다음에는 어떤 프레임이 나타날까? 물론 속단하기는 힘들지만 가장 유력한 프레임은 ‘부익부 빈익빈’이다. ‘서민’이라는 수식어와 비슷하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프레임은 ‘서민’보다 강력하고 더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의 저서 ‘21세기 자본(2014, 글 항아리)’때문이다. 토마 피케티는 프랑스의 경제학자로서 현재는 파리경제학교(PSE)의 교수로 재직 중이다.

‘21세기 자본’은 올해 출간된 아직 따끈따끈한 신작이다. 하지만 출간되자마자 독자들의 폭발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이미 미국에서는 아마존 베스트셀러 목록에 등록돼 있고 중국 언론들도 ‘21세기 자본’에 대해 대서특필을 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또 미국 하버드대 출판부의 101년 역사상 ‘한 해 동안 가장많은 수가 팔린 베스트셀러’로 등록되기도 했다. 이뿐 아니다. 번역돼 한국에 상륙하기도 전에 이와 관련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고‘21세기 자본’을 연구하는 세미나도 개최됐다.

지난 6월 16일에는 영국의 런던정경대 피콕 극장에서 열린 피케티 강연에 수백명의 인파가 몰려 그의 인기를 실감나게 했다. 피케티의 강연을 듣기 위해 건물 밖으로 줄을 설 정도였다.

이 정도로 세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있는‘21세기 자본’은 어떤 책일까. 우선 방대한 자료가 눈길을 끈다. 847페이지에달하는 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피케티 교수는 1700년대부터 약 300년에 이르는 20여개 국가들의 자본수익률과 경제성장률을 비교했다. 이 때문에 자료를 수집 분석하는 데만 15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핵심은 간단하다. ‘부익부 빈익빈’이다. 돈이 돈을 버는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항상 앞지르기 때문에 불평등이 심화된다는 것이 이 책을 관통하는 중심 근거다. 즉 돈이 많은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돈이 생기고 반대로 돈이 없는 사람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피케티의 주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불평등의 심화를 해소하기 위해서 상위 1% 계층에 최고 한계세율 80%의 누진 소득세율과 10%의 누진부유세를 적용해야 한다고 피케티는 말한다. 이때 전제되는 조건은 모든 국가가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전 세계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같은 경제정책을 적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일각에서는 피케티의 이러한 주장에 “피케티와 마르크스의 차이점은 마르크스는 불평등을 혁명으로 바꾸려 했고 피케티는 세금으로 바꾸려 한다”고 꼬집는다. 피케티는 이런 비판에 “자신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며 자본주의는 정치로 해결해야 한다”는 말로 응수한다.

 

좌파 지식인들에게 환영받는 피케티

‘21세기 마르크스’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급진적인 주장을 하고 있는 피케티지만 한국의 일부 지식인들은 그의 등장을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증세 특히 ‘부자 증세’를 지속적으로 주장해오고 있던 지식인들과 좌파세력들이 그렇다. 그의 등장으로 인해 그들의 주장이 강화됐고 세계적인 흐름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29일 오전 10시부터 저녁 6시반까지 고려대 정경대에서 ‘<21세기 자본>과 한국 경제’라는 제목으로 여름정기학술대회를 개최했다. 한국사회경제학회(회장 강신준 동아대 교수) 주최로 열린 이 학
술대회는 ‘21세기 자본’을 분석하고 새로운 경제모형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21세기 자본’에 대한 반응은 민간부문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국회 민생정치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는 이한성 새누리당 의원이 지난 20일 ‘피케티 21세기 자본론,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눈길을 끄는 점은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참석했다는 점이다. 김 대표는 “피케티의 주장은 개인적으로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이어 “지난 전당대회에서 수차 강조했지만 요즘 우리의 시대정신은 격차 해소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에 열린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 자리에서도 “이명박 정부 시절 감세가 옳았는지 회의적이다”라며 우리나라의 낮은 조세부담률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됐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러한 피케티 열풍에 불구하고 문제는 있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오류가 많다는 것이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는 7가지 근거를 들며 피케티의 오류를 지적했다.

팻 핑거(fat finger·단순한 실수), 수치잡아 늘리기(tweaks), 엉터리 평균치(averaging), 가공 데이터 만들기(constructed data), 엉뚱한 연도 비교하기, 제멋대로의 잣대(definition), 입맛에 맞는 수치 고르기(cherry-picking) 등이다. 예를 들어 정확한 자료가 없는 부분은 임의대로 수정을 하거나 다른 자료를 삽입하는 등의 ‘조작’을 했다는 것이다.

한국의 자유주의자(Libertarian)들도 피케티의 주장은 전제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한다. 이미 피케티 열풍이 불기 시작했던 지난 6월 23일 자유경제원은 ‘피케티열풍에 자유주의자가 답하다’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었다. 프레스센터 매화홀에서 개최된 토론회에서 안재욱 경희대 경제학과 교수는 “피케티는 자본(capital)과 부(wealth)를 동일 선에서 보고 있다”며 “자본에 비인적 자산을 모두 포함시키고 있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에 부동산, 금융자산, 공장, 인프라, 기계 등의 물적 자본과 기업 이윤, 특허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각각의 특성을 무시하고 양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도 피케티의 해석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피케티는 경제를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으로 보고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 원장은 “경제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포지티브섬 게임(positive-sum game)이기 때문에 다른 계층의 희생이 없어도 전체 계층의 절대적 소득 크기는 동시에 증가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또 피케티가 주장한 ‘세금을 통한 부의 분배’에 대해 “상위 1%의 소득을 세금으로 징수해서 소득불평등을 개선하는 방법보다 빈곤층 소득을 높이는 정책을 통해 소득구조를 개선하는 방법이 효율적이다”라고 강조했다.

 

자유주의자들의 반격

이밖에도 여러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지만 쉽게 피케티 열풍은 가라앉을 생각이 없는 듯하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슬로건 자체가 갖는 강력한 이미지 때문이다. 특히나 한국 사회는 ‘분배’, ‘복지’와 같은 좌익적 슬로건이 한 차례 휩쓸고 간 바 있다. 아직 그 후유증이 끝나지 않은 이 시점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갖는 이미지는 배가될 수밖에 없다. 내용은 차치하고서라도 말이다.

그래서 이를 우려하는 보수 및 자유주의자들은 이를 막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에 맞서는 책을 발간하기로 한 것이다. 그 첫 번째 도서는 안재욱 경희대 교수와 현진권 자유경제원 원장 등이 함께 저술한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바로읽기’다.

이 책은 피케티의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며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제시하고있다. ‘21세기자본’에대한여러관점을 소개하기 위해 7명의 석학이 참여했다. 이 도서는 9월 1일 출간됐다. ‘21세기 자본’이 다음달 11일 한국에 상륙하는 것과 비슷한 시기에 등장한 셈.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 대학 교수가 쓴 ‘위대한 탈출’도 9월 초 한국에서 발간됐다. 이 책 또한 ‘21세기 자본’에 맞서는 ‘댐’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위대한 탈출’은 피케티의“부자는 갈수록 부자가 되고 가난한 자는 더 가난해진다”는 주장과 정반대의 주장을 하고 있다.

피케티 물결 빨리 막아야

이 책의 핵심은 ‘세상은 시간이 지날수록 평등해졌고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가난한 자가 적다, 그리고 수명도 길어지는 등 행복해지는 요소가 많다’는 것이다. 피케티가 ‘부익부 빈익빈’을 주장했다면 디턴의
주장은 ‘부익부 빈익부’라고 할 수 있다.

도서뿐만 아니라 인터넷 방송도 피케티 열풍 조절에 한 몫하고 있다. ‘정규재TV’가 그렇다. 이미 정규재 TV는 자유주의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2년 만에 1300만 조회수가 넘었다는 사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런 정규재 TV는 이미 피케티에 관해 3번 정도 방송한 바 있다.

‘21세기 자본’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그리고 그의 주장이 얼마나 터무니없는지에 대해 정규재 한국경제 논설실장이 강의했다. ‘21세기 자본’에 대한 이런 적극적인 대응이 나오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부익부 빈익빈’같은 좌익적 프레임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리게 되면 한국 사회도 그 프레임에 갇혀 버리기 때문이다. 이미 우리는 프레임에 갇혔던 경험이 있다. 18대 대선 때다. 그 때는 ‘복지’, ‘분배’, ‘평등’이라는 프레임에 사로잡혀 사회 전체가 들썩인 바 있다. 그래서 보수정당이라고 하는 새누리당 조차 ‘복지’카드를 꺼내들 수밖에 없었다. 결국 보수적 가치보다 ‘좌향좌’해버린 보수정당이 여당으로 된 지금 한국 사회는 아직도 ‘복지’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초반 복지를 위해 증세하겠다는 발표 후 반발이 심하자 한발 물러선 정책을 발표한 것도 ‘복지’의 후유증이라고 볼 수 있다. 또 무상급식 후 급식의 질이 떨어지고 급식에서 농약이 검출되는 등의 믿지 못할 사건들은 얼마나 한국 사회가 좌익적 슬로건에 의해 후퇴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이러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피케티 열풍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잠재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도서와 인터넷 방송으로 피케티 열풍을 잠재울 수 있을까? 혹시 ‘우리는 99%다’ 운동에 맞섰던 ‘우리는 53%다’ 운동처럼 더 적극적인 활동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의문은 아직도 남아 있다.


정용승 기자 jeongys@future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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