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수당한 미국 기자, 의연한 미국 사회
참수당한 미국 기자, 의연한 미국 사회
  • 이상민 기자
  • 승인 2014.09.04 10: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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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죽음 앞에 폴리 부부는 의연했다. 그들의 장남인 제임스 폴리(James Foley, 40)는 2년 전 시리아에서 이슬람 무장단체에 납치됐다. 당시 제임스는 자유계약직 기자로 시리아 내전을 취재하고 있었다. 내란 가운데 고통당하는 시리아 주민들을 취재하기 위해 터키 국경 쪽으로 가던 제임스 폴리는 2012년 11월 22일 북부 시리아에서 이슬람 무장단체에 납치된 이후 소식이 끊겼다.

아들이 중동 취재 중 억류되는 것은 폴리 부부에게는 처음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제임스는 2011년 리비아에서 취재를 하던 중에도 리비아 카다피 정권에 붙잡혀 47일 간 억류됐다 풀려난 바 있었다. 그 이후에도 제임스는 분쟁 가운데 있는 중동 국가들에 대한 취재를 지속했다.

30대 중반에 언론인의 길에 들어선 제임스에게 분쟁 취재는 사명(calling)이었다. 그는 “분쟁의 현장 가까이에서 그 안의 사람들을 보지 못하면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며 헬멧과 방탄조끼, 카메라를 들고 이라크와 시리아로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이 사라진 지 1년이 지난 2013년 11월, 폴리 부부는 이슬람 무장단체로부터 제임스의 몸값을 요구하는 이메일을 받았다. 물경 1억2300만달러. 천문학적인 몸값이었다. 연방수사국(FBI)은 테러리스트에게 붙잡힌 인질을 빼내기 위해 몸값을 주면 또 다른 납치가 이뤄진다며 몸값을 주지 말라고 했다.

제임스 폴리의 부모인 존, 다이앤 폴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을 하며 눈물을 닦고 있다.

사람들의 염원 저버린 IS의 극악무도함

이는 미국 정부의 일관된 정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폴리 부부와 제임스가 기사와 사진을 주로 기고했던 보스턴 소재 언론사 ‘글로벌 포스트’는 500만달러를 목표로 그를 풀어낼 몸값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제임스의 고향이자 폴리 부부가 살고 있는 뉴햄프셔 로체스터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제임스의 무사 귀환을 염원하며 노란색 리본을 집 앞문과 나무에 묶고 폴리 가족과 함께 했다. 이 모든 기대와 염원은 지난 8월 19일 제임스가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에 의해 참수당하는 장면이 유튜브로 공개되면서 무참하게 짓밟혔다. IS는 자신들의 만행에 대해 “오바마 대통령의 명령으로 지난 8월 9일부터 감행된 이라크 북부지역에 대한 미군의 공습을 멈추지 않으면 또 다른 미국인 기자를 참수할 것”이라고 위협하며 전 세계를 패닉 상태로 만들었다. 의외인 것은 폴리 부부의 의연한 모습이었다.

제임스의 어머니 다이앤 폴리는 다음날 아들의 석방을 위해 개설했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IS를 향해 “다른 인질들을 풀어 달라. 그들은 모두 우리 아들처럼 무고하다. 그들은 미국 정부의 정책을 바꿀 만한 힘도 없다”고 글을 올렸다. 그녀는 “짐(제임스)이 우리에게 가져다준 모든 기쁨에 감사하다. 짐은 아주 특별한 아들이었고 형제였고 기자였다”고 말했다. 아버지 존 폴리 역시 기자들에게 아들을 ‘영웅’이라 말했다.

한편 미국 정부는 단호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존 케리 국무장관 등은 “미국은 절대 이 악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전 세계는 알아야 한다”며 IS를 향해 이 사악한 행동에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라크 북부 지역에서 활동 중인 IS에 대한 미군의 공습은 계속 이어졌으며 미 합참의장은 오히려 “공습의 범위를 IS의 본거지인 시리아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임스 폴리 가족을 위로하는 뉴햄프셔 로체스터 지역 주민들

IS에 한층 더 비판적으로 변한 미국 여론

미군의 공습에 회의적이었던 민주당 의원들도 지지로 돌아섰고 공화당 의원들은 IS가 미국 안보에 위협이라며 오바마 행정부가 보다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은 IS의 자금줄을 막고 다른 나라의 이슬람 무장세력들이 IS에 합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EU, 터키, 걸프만 국가들이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을 제시했다. 언론은 목숨을 걸고 분쟁 지역에 취재하러 들어간 제임스의 기자 정신을 높이 평가하는 내용의 기사들을 다루며 그의 죽음을 기렸다.

필립 발보니 글로벌포스트 회장은 “짐이 처참하게 참수당하는 모습을 통해 이슬람 무장단체 IS가 이라크, 시리아 뿐 아니라 미국에까지 위협이 된다는 논의가 전국적으로 이뤄지게 됐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뉴햄프셔의 한 성당에서는 제임스의 죽음을 추모하는 미사가 열렸다. 뉴햄프셔 주지사와 연방 상원의원을 비롯한 지역 주민 900여명이 미사에 참석해 폴리 부부를 위로하고 성당에 전시된 제임스의 사진들을 보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부부는 제임스의 이름으로 교육과 언론 분야에 대한 장학금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제임스 폴리의 참사에 의연하게 대처하는 미국 사회의 모습은 비슷한 비극에 직면한 한국 사회와 대조를 이룬다. 2004년 5월 이라크에서 무역회사 직원으로 일하던 김선일 씨가 이슬람 무장단체에 납치됐다. 당시 이슬람 무장단체는 한국군의 이라크 추가 파병 중단과 이라크에 주둔 중인 한국군 철수를 요구했고 그렇지 않을 경우 김선일 씨를 살해하겠다고 협박했다.

한국 정부가 이를 거부하자 김선일 씨는 한 달 뒤 참수 당했다.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노무현 정부와 미국 부시 행정부 때문에 김선일 씨가 처참하게 죽게 됐다는 식의 여론이 확산되면서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 중단을 종용하고 부시 행정부를 규탄하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다. 김선일 씨 가족은 정부가 재외국민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며 정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2007년 김선일 씨 피살 과정에서 국가의 과실 또는 불법행위가 없었다고 판결했다.


워싱턴=이상민 기자 proactive0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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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5 15:45:14
기사 잘 봤습니다.
그런데 2004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명분없는 전쟁, 석유를 위한 전쟁이라는 비판 떄문에 저런 반대 여론이 높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지금의 IS 사태와 비교가 되는 건가요? 당시 미국의 이라크 침공은 정당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