巨木의 뒤에서 ‘열정’을 불어넣는다
巨木의 뒤에서 ‘열정’을 불어넣는다
  • 미래한국
  • 승인 2014.09.12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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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교회 박노철 담임목사
 

교회성장을 이룩하고 성경학자로서 큰 족적을 남긴 전임목사의 다음 자리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칼빈’으로 불리며 일체의 잡음 없이 큰 교회를 일군 이종윤 목사의 후임인 박노철 서울교회 담임목사를 만나 “부담이 클 것 같다”는 질문부터 던졌다.

“어려운 질문입니다. 여전히 부담이 되지요. 한국교회 거목의 뒤를 이어 나간다는 사실 자체가 부담입니다. 사람의 뜻이 아닌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온 자리라고 생각합니다. ‘원로목사님을 묵상하고 그 분의 스킬과 엄청난 일들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면 6개월도 못 견뎠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곳에 보내신 이유가 뭘까, 당장 할 수 있는 건 뭘까’를 생각하며 4년을 지냈습니다.”

서울교회 2대 담임 박노철 목사는 이종윤 목사가 은퇴하기 전인 2009년 8월 설교목사로 출발해 2011년 1월부터 본격적인 단독 목회를 시작했다. 2010년 12월 28일 책꽂이가 텅 빈 목회실에서 이종윤 목사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이 목사는 다음날 열리는 정년은퇴 감사예배를 마친 후 서울교회에 발걸음을 하지 않을 예정이어서 짐을 옮겼다고 말했다. 자신이 충현교회 담임목사로 있을 때 원로목사와의 관계가 ‘낙제’ 수준이었다며 바통을 넘기고도 같이 뛰는 건 덕스럽지 않다고 일러줬다.

박노철 목사는 실제로 그날 이후 이종윤 목사가 발걸음을 끊었다고 말했다.

“우리 교회 창립기념주일 때 장로장립식과 안수집사 임직식을 하는데 그때만 오십니다. 절기 때를 비롯해 그 어떤 날도 출입을 안 하십니다. 결혼식 주례 때 잠깐 오시지요. 전임목사님과의 갈등으로 힘든 교회들이 있는데 이종윤 목사님은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간섭을 안 하십니다. 존경을 받아 마땅한 분입니다.”

전임목사와의 ‘아름다운 결별’

박노철 목사는 중학교 3학년 때 부모를 따라 캐나다로 이민을 갔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을 졸업했다. 1994년에 귀국해 충현교회 전도사와 강도사를 거쳐 목사 안수를 받았다. 교포가 한국에 와서 안수를 받고 목회를 시작한 최초 그룹에 속한다. 그 후 지구촌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시무하다 2005년에 구리지구촌교회를 개척했다.

“구리에 갈 때 조사를 해보니 구리 지역에서 이전 10년 동안 개척해서 자립한 교회가 한 곳도 없었어요. 지구촌교회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30명의 창립멤버와 함께 시작했습니다. 4년 만에 550명으로 성장했죠.
복음으로 낳은 공동체가 있는데 서울교회로 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사임 설교를 하고 바로 다음날 비행기로 피신을 갔습니다. 물론 지구촌교회에서 좋은 분 보내주시기로 약속을 해 주셔서 떠날 수 있었죠.”

박 목사와 이종윤 목사는 개인적으로는 친분이 없었다. 웨스트민스터 신학대학 선후배 관계로 동문회에서 인사를 나눈 정도였다. 이종윤 목사는 인터뷰 당시 박 목사의 낙점 이유를 이렇게 밝힌 바 있다.

“5년 전부터 기도를 시작했고 3년 전에 10가지 기도제목을 정해서 장로님들에게 영적으로 성숙하고, 국제성을 갖추고, 하나님 앞에서 비전을 갖고 일할 목사님을 모실 수 있도록 기도해달라고 부탁드렸어요.

우리 교회에 홍해작전과 사명자 대회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그 기간 동안 젊은 목회자를 초청했어요. 그 분이 설교를 했는데 교회가 발칵 뒤집혔어요. 당 회원과 부목사님들을 대상으로 무기명 투표를 했을 때 만장일치로 그 분을 모시자는 의견이 나왔어요. 제직회에서도 100% 찬성이었어요. 이건 하나님이 하신 거지 사람이 한 게 아닙니다.”

어떻게 설교했기에 교회가 발칵 뒤집힐 정도였는지 묻자 박 목사는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저는 설교를 잘한 적이 없어요. 성도님들께서 좋아하신 이유는 원로목사님과 색깔이 좀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항상 먹는 음식보다 좀 다른 음식이 나오니까 반짝 좋아하셨던 거죠.

원로목사님은 신학적으로 풍성하고 교리적으로 탄탄한 설교를 하셨어요. 그런 설교가 듣기 쉽지만은 않죠. 반면 저는 아주 쉬운 내용으로 설교합니다. 주일 낮 설교는 쉽게 하고 수요일은 강해설교를 합니다. 주일에는 초신자들도 많이 오기 때문에 처음 나온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를 계속 생각하면서 준비합니다.

 

교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설교

박 목사는 부임 이후 교회의 전통과 문화를 인정하고 그 위에 젊은 열정을 덧입히는 행보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전과 똑같을 수는 없겠죠. 새로운 사람이 왔으니 새로운 색깔이 덧입혀지겠지만 오랫동안 공동체 안에서 신앙생활 했던 분들의 신앙 색깔과 습관을 존중하는 것이 지혜로운 후임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과 문화를 한꺼번에 무시하는 것은 무지한 일이죠.”

24주년을 맞는 서울교회의 전통 가운데 뺀 것이나 신설한 것은 하나도 없고 ‘변화’를 준 것이 몇 가지 있을 뿐이라고 했다.

“예전에는 교구 담당 부목사님들이 다락방 리더들을 간단하게 지도했는데 제가 온 후 다락방장을 다 모아 직접 지도했어요. 훨씬 많은 숫자가 모이고 있지요.

예전에는 금요집회에 참석하는 교인들이 적었어요. 우리 교회는 늘 조용한 분위기인데 금요집회만큼 뜨겁게 기도합니다. 요즘 금요집회에 성도님들이 많이 모이고 있습니다. 원로목사님 때는 분위기가 근엄했는데 제가 와서 경건의 분위기는 훼손하지 않은 채 따뜻함이 가미되고 있습니다. 서로 인사 시키고 찬송을 뜨겁게 부르는 정도의 변화지요.”

139개국 892명의 기독교지도자가 참가한 킴치 신학세미나와 교파를 초월해 연인원 1만2500명이 다녀간 목회자신학세미나 등 서울교회가 진행해오던 주요 행사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다만 매주 월요일 10주간 진행되던 목회자신학세미나는 올해부터 1박2일로 진행된다. 올해 10월 30, 31일 양일간 열리는데 시대에 맞게 형식만 약간씩 바꾸는 정도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원래 있는 걸 그대로 이어나가는 건 직무유기입니다. 계속하되 조금 더 젊은 열정을 가미해야 합니다. 세미나를 창립하신 이종윤 목사님은 행사 때도 일체 발걸음을 하지 않으십니다.”

박 목사가 부임했을 때 교회성장에 불리한 일들이 일어났다. 교회 인근의 청실단지아파트가 재건축을 시작하면서 1600세대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출석인원 400명이 일시에 줄었고 교육정책이 내신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면서 대치동으로 이사 오던 발걸음이 딱 끊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임 당시보다 교인들이 늘어났다는데 박 목사는 그 비결을 ‘잡음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후임목사는 ‘시집 온 며느리’

“사이즈가 좀 있는 교회 가운데 시끄러운 교회가 많은데 우리 교회는 전혀 아무런 얘기가 나가지 않는 교회입니다. 원로목사님이 온전히 맡긴 뒤 전혀 간섭하지 않으시고 장로님들이 완전히 한마음이기 때문이죠. 27분의 장로님들이 하나가 돼 원로목사님께 협조하듯 나이 어린 저를 잘 도와주고 있습니다.”

개척교회 담임과 큰 교회 후임목사를 다 경험한 박 목사는 후임목사를 ‘시집 온 며느리’에 비유했다.

“자신이 개척한 교회는 자신이 기도하고 원하는 걸 하면 돼요. 개척할 때는 제가 기획을 하고 네트워크를 동원해 문화를 통한 전도집회를 많이 했어요. 사역팀이 모여서 이번 크리스마스를 이렇게 준비하자고 계획한 뒤 그냥 밀고나가는 겁니다. 직접 나가서 전도도 하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봤죠. 개척한 목사의 특권이고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렇게 하면 안 돼요. 한 여인이 시집에 들어왔을 때는 시집의 전통과 문화를 배워야 합니다. 그 시댁은 며느리가 새로 들어왔으니 어차피 변합니다. 그런데 들어오자마자 내가 들어왔으니 내가 다 바꾸겠다, 이런 식이면 문제가 생깁니다. 지금 문제가 생긴 교회들이 다 그래서 그런 겁니다.”

최근의 뜨거운 화제였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은 그에게 어떻게 다가왔을까. 박 목사는 “만감이 교차했다”고 대답한다.

“그 분이 인간적으로 존경받을 만하고 배울 점도 있지만 1주일 동안 중심을 잃은 언론 보도는 유감입니다. 방한 중에 교황이 성모승천대축일미사를 집전했는데 성모 마리아를 신격화하는 것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죠.

교황 내한으로 가톨릭의 문제점이 다 가려지는 게 안타까웠습니다. 그럴수록 우리가 더 경각심을 갖고 열심히 해야겠다, 정말 겸손하게 그리스도 닮은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천주교의 중앙집권제가 컨트롤 타워(control tower)가 돼 퀄리티 컨트롤(quality control)을 한다는 건 부러운 점이죠.

로마 교황청은 엄청난 조직을 갖추고 있고 세계 각국에 교황청 대사가 나가 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는 하나였던 장로교가 250여개로 갈라졌습니다. 각 교단 각 교회 중심으로 나가다보니 퀄리티 컨트롤이 안 되는 겁니다. 우리 사회로부터 교회가 지탄받는 것도 바로 목회자의 퀄리티 컨트롤에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박 목사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한 교단 다 체제’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로교가 250여개로 나누어진 건 원죄입니다. 이종윤 목사님께서 장로교 안에서 ‘한 교단 다(多) 체제’라는 아름다운 비전을 제시하셨습니다. 4년 전부터 마음을 모으기 위해 애쓰고 계신데 각 교단마다 교단장이 있으니 쉽지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라는 모습을 보여주는 국면까지만 가도 컨트롤 타워 설립이 불가능하지 않을 거라고 봅니다. 회개하면서 더 낮은 곳으로 가고, 포기하며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국 교회의 영광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한 교단 다 체제’로 영광 회복해야

전체 예산 가운데 구제비율이 70%가 넘는 서울교회는 천국시민 양성, 만민에게 전도, 빈약한 자 구제라는 세 개의 기둥을 중심으로 달리고 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차세대 교육을 위해 단계별 과정을 충실히 시행하고 있으며 장학재단을 조성해 등록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장학금 지급도 꾸준히 하고 있다.

세계 84개국에 선교사를 파송했으며 국내 미자립교회 5곳을 정해 청년들이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실시하고 있다. 200억원을 들여 설립한 지체장애인 교육기관 호산나대학에서는 매년 30여명이 배출되고 취업률이 90%에 이른다. 박 목사는 서울교회는 예배 때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는 ‘애국 교회’임을 특히 강조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었을 때 박노철 목사는 큰 꿈을 꾸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종윤 목사님께서 워낙 탄탄하게 목회하셨기 때문에 거기에 열정을 불어넣어 조금 더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저의 사명입니다.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 거목 뒤에 저를 서게 하신 이유는 그분이 하던 일을 추스르며 열정을 더 불어넣으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실 때마다 한 걸음 한걸음 나아가는 것이 목표라는 박 목사는 “젊은 열정을 불어넣으며 가다보면 같은 목적에 도달하겠지요”라며 활짝 웃었다.


글 / 이근미 선임기자 www.rootlee.com
사진/장미애 객원기자 jangmi99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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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철나뻐요 2018-04-05 21:37:57
박노철이 용역 동원해서 교회 침입하는 모습입니다. http://naver.me/xwbuFa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