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한국은 1930년대 유럽의 평화무드와 흡사해
오늘의 한국은 1930년대 유럽의 평화무드와 흡사해
  • 미래한국
  • 승인 2003.03.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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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갑제 趙甲濟월간조선 발행인
황장엽 선생의 증언에 따르면 김정일은 히틀러 숭배자라고 한다. 이런 말을 남한의 김정일 추종자들이 들으면 황당할 것이다. 그들은 조선일보 같은 애국 언론을 파쇼라고 욕들하는데 그들의 두목이 사실은 파쇼의 추종자란 사실에 어떤 반응을 보일까. 김정일의 핵공갈이나 강제수용소 운영을 분석해보면 그는 히틀러의 전술과 유태인 학살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공부한 흔적이 많이 보인다. 특히 히틀러가 1930년대 평화 무드에 젖어 전쟁을 기피하려고 하던 프랑스와 영국의 사회 분위기를 잘 이용하여 공갈에 공갈을 거듭하여 정복정책을 실천해가고 있던 상황을 한국의 상황과 동일시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1930년대 유럽에는 아주 병적인 사회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었다. 1933년 영국의 옥스포드대 학생들은 어떤 경우에도 조국을 위해 총을 잡지 않겠다는 결의를 했다. 많은 서구 사람들은 1차 세계 대전은 독일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6·25남침은 김일성이 한 일이 아니라고 믿는 것과 같다). 그들은 또 1차세계대전 뒤 맺어진 베르사이유 평화조약이 독일에 너무 가혹했다면서 독일의 재무장과 히틀러의 공세를 이해해주려고 했다(김정일의 핵공갈을 미국이 너무 가혹하게 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 서구 사람들은 아무리 한쪽이 도발하여도 다른 쪽이 참고 있기만 하면 평화는 유지된다고 생각했다(김대중이 서해도발에 대해서 한 정책). 프랑스의 경우 이런 평화무드는 1차 세계 대전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과 이어져 있었다. 1914년에 20~32세의 연령층에 있었던 남자의 반이 전사했다. 약 140만 명의 젊은이들이 죽었다. 이런 악몽 때문에 프랑스 사회는 전쟁에 관해서는 아주 수세적, 회피적으로 되고 있었다. 프랑스의 우익은 소련의 영향을 받고 있는 좌익이 계급혁명을 획책하고 있다고 생각한 나머지 히틀러의 독재에 호의적이었다. 좌익과 우익은 상대를 스탈린이나 히틀러보다도 더 미워했다는 이야기다. 남한의 친북세력은 애국세력을, 애국세력은 친북세력을 미국이나 김정일보다 더 미워하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영국에서도 히틀러 숭배자가 많이 생겼다. 영국의 네빌 챔버린 총리는 appeasement policy, 즉 아부 정책이란 것을 추진했다. 독일이 요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자는 정책이었다. 햇볕정책도 그런 점에서 아부정책이라 부르는 게 정확할 듯하다. 히틀러의 공갈이 먹혀들 수 있는 분열과 가짜 평화주의가 유럽에 팽배해 있었다는 이야기다. 김정일은 히틀러의 이런 공갈을 연구하면서 오늘날 한국의 상황이 1930년대의 프랑스 영국과 매우 비슷하다고 고무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생각이 환상이란 것을 깨우쳐주려면 한국의 주류-정통-애국세력이 오직 김정일 타도를 목표로 삼고 궐기하는 길뿐이다. 전쟁회피가 아닌 전쟁불사론으로 무장하고서. 그래야 김정일의 공갈을 저지하고 오판에 의한 참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즉, 한총련 같은 남한의 친김정일 세력을 제거하는 것이 전쟁을 막는 길도 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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